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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야경과 주민들의 삶을 함께 느낄 수 있어 좋은 여수 밤바다길.
 아름다운 야경과 주민들의 삶을 함께 느낄 수 있어 좋은 여수 밤바다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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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 '갯가길'이라는 걷기 좋은 길이 생겨났다는 건 여수 기차역 앞 관광안내소에 들어갔다가 알게 되었다. 주요 관광지에 자리하고 있는 관광 안내소는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일하고 있어 외지인 여행자에게 좋은 점이 많다. 특히 나이 지긋한 직원에게선 유명 관광지외에 주민들이 주로 찾는 식당과 숨겨진 명소 등 친지역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좋다. 작년에 생겨났다는 여수 갯가길도 그렇게 알게 되었다. 

여수의 제일 큰 섬 금호도를 명소로 만든 비렁길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수가 점점 풍성한 여행지가 되고 있는 듯하다. 추운 겨울 힘든 산행 보다 바다를 보면서 바닷가, 산길, 숲길을 포근하게 걸을 수 있는 갯가길이라 찾는 이들이 늘어날 것 같다. 여수는 집안 식구들이 모두 좋아하는 돌산 갓김치도 있지만, 무엇보다 수려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어서 좋은 길이 생길만 한 동네다. 현재 3개의 갯가길이 이어져 있고 앞으로 여러 해에 걸쳐 25개의 여수 갯가길을 조성한다고 한다.

수산시장, 교동시장, 서시장이 있어 더 풍성한 여수 갯가길 

여수 시민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엿볼 수 있는 수산시장과 교동시장, 서시장은 서로 이어져 있다.
 여수 시민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엿볼 수 있는 수산시장과 교동시장, 서시장은 서로 이어져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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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통에서 만난 여수의 철물점, 포스(force)가 느껴진다.
 시장통에서 만난 여수의 철물점, 포스(force)가 느껴진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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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살고 있는 중년의 주민이기도 한 관광안내소 직원은 3개의 갯가길을 가보기 전에 여수  밤바다길 (1-1 코스)를 먼저 가보라고 추천했다. 15km가 훌쩍 넘는 다른 갯가길 코스와 달리 약 8km의 비교적 짧은 길이다. 바닷가와 이어지는 여수 구도심의 아름다운 야경을 즐기며 걷는 특별한 코스란다.

따스한 이불의 유혹을 이겨내며 새벽같이 나서야 하는 여수의 바다 일출 명소 향일암과 달리, 밤바다를 즐기는 이 코스는 느지막이 나서도 마음이 여유로워 좋다. 전국에 무수한 이름의 길들이 나있지만 이렇게 야경과 밤바다를 즐기며 걷는 도보여행 코스는 드물지 싶다.    

여수시 중앙동 이순신 광장에서 해양공원을 따라 돌산대교를 건너 돌산공원, 거북선 대교를 지나 다시 이순신 광장으로 돌아오는 코스. 이 길에 있는 정겨운 언덕동네이자 벽화골목이 있는 고소동은 지나치면 안 된다.

상설시장이자 매 4일, 9일에 오일장이 열리는 큰 시장인 수산시장, 교동시장, 서시장도 품고 있다. 게다가 새로 만든 길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공원길, 인도, 시장통길, 골목길, 다리 위 보행로를 이어 붙인 이상적인 도시여행 길이기도 하다.

해양공원으로 이어지는 널찍한 이순신 광장에 들어서면 배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게 만든 커다란 거북선이 눈길을 끈다. 위용이 느껴지는 거북선 안엔 노를 젓고, 포를 쏘고, 전투를 준비하는 병사들이 실감나는 자세와 표정으로 서 있다. 불을 뿜고 대포를 쏘고 몇 배나 많은 수의 적선를 격파한 거북선의 전설은 이렇게 평범한 병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말해주는 듯 했다.

여수 해양공원을 걷다가 만난 거북선, 배안에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다.
 여수 해양공원을 걷다가 만난 거북선, 배안에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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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아직 해가 저물지는 않았지만 살짝 배고픔이 느껴졌다. 여수에 오면 이상하게 시장기가 자주 찾아온다. 이순신 광장, 해양공원을 따라 여객선 터미널로 가면 길은 자연스레 수산시장과 교동시장, 서시장을 만난다. 바닷가에 있어 수산물이 많은 교동시장엔 남해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물메기(표준말은 꼼치)가 한창이다.

길쭉하고 큰 덩치에 비해 눈이 무척 작고 입은 매우 큰 게 아귀처럼 못난이 과의 물고기다. 10여 년 전만 해도 '물텀벙이'라 부르며 못생겼다고 다시 물속에 던져 풀어주더니, 요즘엔 왜 놓아주지 않느냐는 듯 물렁하고 억울한 표정이 안 됐다. 수북하게 굴껍질을 까는 아주머니에게서 싱싱한 굴 냄새가 난다. 남해의 바다는 사철 풍성한데 특히 겨울이야말로 제철이다.

내 어머니의 몸매 같아 마음이 푸근해지는 항아리 장터를 지나 자연스레 이어지는 서시장은 관광객보다 여수 시민들을 만날 수 있는 큰 동네 시장이다. 새알죽집, 떡집, 국밥집 등 다양한 먹거리 가게가 들어서 있어 갯가길은 깜박 잊은 채 미로 같은 시장통을 골목골목 헤매며 돌아다녔다. 2천 원짜리 김밥 한 줄을 먹어도 속이 꽉 찬 게 배가 부르다. 어묵 집 냄새에 이끌려 후식삼아 먹은 어묵탕, 옆 자리에 앉은 주민들과 상인들의 대화만큼이나 어묵 살이 찰지고 뜨거운 국물은 시원했다. 

벽화골목이 있는 언덕동네에서 마주한 여수 밤바다

고소동 언덕동네에서 보이는 여수 밤바다, 푸근하고 정답다.
 고소동 언덕동네에서 보이는 여수 밤바다, 푸근하고 정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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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며시 다가와 몸을 부비고는 쿨하게 떠난 고소동 그묘.
 슬며시 다가와 몸을 부비고는 쿨하게 떠난 고소동 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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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 쓰이는 물건들이 많은 이채로운 철물점 물건들을 구경하며 시장통에서 나와 여수 앞바다가 보이는 언덕동네 고소동으로 갔다. 땅거미가 지고 불 켜진 가로등 따라 좁은 골목길을 걸어 본 게 얼마만인지... 아련한 기분에 오르막 언덕길이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저녁 무렵 어느 집에서 솔솔 흘러 나오는 밥 짓는 냄새가 얼마나 은은하고 구수한 지, 발길을 멈추고 쌀 익는 냄새를 음미했다. 이어지는 딸그락 딸그락 밥그릇 놓는 소리, 젓가락 챙기는 소리가 이루마의 피아노곡처럼 내 마음을 잔잔하고 포근하게 했다.

한결 부드러워진 내 마음을 느꼈을까, 골목길에서 마주친 길고양이 한 마리가 도망가지 않고 잠시 나와 눈을 맞추었다. 앉은 자세로 "야옹아, 안녕~" 하며 그 모습을 사진에 담는데 놀랍게도 내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어라! 당황해 하는 사이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 왼쪽 다리에 몸을 한 번 쓱 부비곤 '쿨하게' 제 길을 간다. 드물게 마주치는 이런 독특한 길고양이들은 여행자에게 잊기 힘든 추억을 남겨주는 영물이다.      
                 
언덕동네에 여수시에서 벽화골목을 조성해놓아 담벼락 그림 구경하며 걷는 맛도 좋다. 벽화골목길을 벗어나 다른 골목으로 잠시 빠졌다가 길을 잃었을 정도로 고소동은 무척 큰 동네다. 높다란 아파트 몇 동도 들어서 있다. 골목길에서 마주친 중장년의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네면 처음엔 뉘 집 자식인가 유심히 쳐다보다가, 곧 카메라 든 흔한 관광객을 알아보곤 웃어 주신다. 어두운 저녁나절 처음 보는 외지인 그것도 수염을 짧게 기른 시커먼 남자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건, 아마도 눈앞에 정다운 여수 밤바다가 펼쳐져서가 아닐까 싶다.

벽화 골목길에서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보아도, 언덕동네의 이름 없는 슈퍼 옥상에서도 여수 앞바다의 야경이 정답게 펼쳐졌다. 불빛 깜박이며 어선들이 드나들고, 무인도 장군도와 어우러진 돌산대교의 야경이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하나, 둘 불 켜지는 고소동 언덕동네의 아담한 집들과 어우러져 더 정답고 아름다웠는지도 모르겠다. 동네 이발소 아저씨가 나와 담배 한 대를 피워 물며 '긍께, 겁나게 아름답지라' 하는 눈으로 흐뭇하게 날 쳐다보고 있었다.

여수 야경의 절정, 돌산대교·돌산공원·거북선대교

여수 밤바다의 3총사. 왼편의 무인도 장군도와 돌산대교, 뒤로 거북선 대교.
 여수 밤바다의 3총사. 왼편의 무인도 장군도와 돌산대교, 뒤로 거북선 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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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빛노리야 축제'로 돌산공원이 더욱 화려해졌다.
 '여수 빛노리야 축제'로 돌산공원이 더욱 화려해졌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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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터벅 언덕동네를 다시 내려오면 해양공원이다. 여수 밤바다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어 관광객과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동네 사람들이 섞여 산책으 한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관광명소가 유명 박물관 같다면, 이렇게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함께 할 수 있는 여행지는 어떤 책이 있을까 기대되는 작은 도서관 같다. 동네 아저씨들이 낚시를 하다 잡은 숭어 구경도 하며 바닷가 해양공원길을 따라 돌산대교, 돌산공원으로 향했다.

오르막길인 돌산대교로 가까워질수록 고소동 언덕동네와는 또 다른 느낌의 야경이 펼쳐졌다. 돌산대교를 건너기전 다리 바로 앞에 웬 넓은 정자가 자리하고 있는데, 돌산대교와 주변바다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쉼터다. 정자 앞에 있는 매점 화장실에 가면 또 놀라게 된다. 소변기 위 창문으로 남해 바다 야경이 펼쳐지는 데 볼일을 다 봤음에도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화려한 조명으로 한껏 치장한 돌산대교와 거북선 대교를 차도가 아닌 보행로로 여유롭게 건너가는 것도 색다른 추억이 된다. 대교 위를 걷는 사람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여수와 남해 밤바다 풍경이 자꾸만 발길을 붙잡나 보다. 하긴 빨리 지나갈수록 그만큼 아쉬움이 남을 만한 명물 다리다.         

야경이 멋진 돌산대교, 거북선대교는 걸어서 건너는 게 제맛.
 야경이 멋진 돌산대교, 거북선대교는 걸어서 건너는 게 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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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해양 케이블카가 떠다니는 거북선대교 밑으로 빨간 하멜등대가 보인다.
 위로 해양 케이블카가 떠다니는 거북선대교 밑으로 빨간 하멜등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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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밤바다 갯가길 최대 난코스가 나타났다. 돌산대교를 건너면 바로 나오는 돌산공원. 이름대로 산꼭대기 위에 있는 공원이다 보니 등산하는 기분으로 계단과 산책로를 따라 올라갔다. 얼마 전 생겨난 해양 케이블카의 정류장이기도 한 돌산 공원은 힘들게 올라온 만큼 즐거운 보상을 해주었다. 바닷가에 면한 여수 동네와 돌산대교 야경이 어우러진 밤바다 풍경에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게다가 올 3월 말까지 하는 '여수 빛노리야' 축제까지 공원에서 열려 야경에 화려함을 더했다. 

남해 바다 쪽으로 유리창을 낸 돌산 공원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했다. 드넓고 컴컴한 남해 바다위 어느 무인도에 서있는 등대에서 불빛이 깜박이는 게 흡사 밤하늘의 별 같았다.

돌산공원에서 내려와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쉬고 있는 진두 해안길을 따라 가면 거북선 대교가 나온다. 거북선 대교의 끝에 빨간 하멜등대가 수고했다며 여행자를 반긴다. 네덜란드 사람 하멜은 제주도에 표류 후, 이곳 여수 전라 좌수영으로 배치되어 잡역에 종사하면서 억류 생활을 이어가다, 조선에 억류된 지 14년 만인 1666년(현종 7) 마침내 7명의 동료와 함께 배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탈출하였다고 한다. 하멜의 입장에선 그리 반가운 등대는 아닐 듯 싶다.     
      
여수 밤바다 갯가길을 걸으며 이 코스에 어울리는 숙박지를 발견했다. 돌산공원 밑 작은 어선들이 오가는 바닷가에 돌산해수타운이라는 전망 좋은 찜질방이 있다. 뜨끈한 찜질방에 등을 지지며 편안하게 누우면, 큰 창문 너머로 불 밝힌 배들이 오가는 밤바다 풍경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문득 2015년 새해엔 그림 그리기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살풋 잠이 들었다.
     
 * 여수 갯가길 1-1 코스  : 중앙동 이순신 광장 - 해양공원 – 수산시장, 교동시장, 서시장 - 언덕동네 고소동 벽화골목 - 해양공원 - 돌산대교 - 돌산공원 – 진두 해안길 - 거북선대교 - 중앙동 이순신 광장

덧붙이는 글 | ㅇ 지난 12월 31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여수 갯가길, #고소동 벽화골목, #서시장 교동시장, #거북선대교, #돌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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