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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하루만 쉬고 일하는 사람

"일주일에 몇 시간 일하세요?"
"그걸 왜 물어? 다 똑같아. 하루 10시간씩 일하고. 점심, 저녁은 빼는 거 알지? 토요일, 일요일도 일하잖아. 주 66시간."
"작년에 이틀인가 쉬었어. 명절 때, 휴가 때 빼고는 거의 일했지. 그래야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임금을 받는 거야."

파업 때마다 언론에서 항상 주목받고 있는 한 대기업 노동자의 이야기다. 주간 연속 2교대 실시 전에 인터뷰했던 내용이지만, 우리나라 제조업 노동자들 대부분은 아직도 이 정도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한 달에 하루도 못 쉬는 노동자들도 있다. 24시간씩 맞교대 하는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은 실제 주 84시간 노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24시간 근무 중 3시간만 다른 곳에 가 있으라고 무임금의 자유를 준다. 집에 다녀올 수도 없고, 쉴 곳도 없어 어디선가 불편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근무지로 돌아온다. 근무 다음날은 잠을 자고, 저녁 시간은 다음날을 준비하는 시간이니, 하루를 온전히 쉬는 '휴일' 이 근무조건에 없는 것이다.

택시·버스 노동자도 장시간 노동의 대표들이다. 사무직과 서비스직종에서 장시간 노동 역시 잘 알려져 있다.

긴 노동시간, 이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도 없다

근로기준법으로 주 40시간을 정하고 있지만, 12시간의 초과 근무를 허용하고 있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주말근무를 이 시간에 포함하지 않고 있어서, 실제로는 주 68시간까지 일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군다나 악법이라고 할 수 있는 59조의 특례는 운수업, 의료업, 교육 분야 등 상당수의 서비스업에서 실제 무한정 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59조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업에 대하여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한 경우에는 제53조제1항에 따른 주(주) 12시간을 초과하여 연장근로를 하게 하거나 제54조에 따른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

1. 운수업, 물품 판매 및 보관업, 금융보험업
2. 영화 제작 및 흥행업, 통신업, 교육연구 및 조사 사업, 광고업
3. 의료 및 위생 사업, 접객업, 소각 및 청소업, 이용업
4. 그 밖에 공중의 편의 또는 업무의 특성상 필요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
주 5일제 근무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못한 것도 문제다. '2013년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전체 임금근로자 중 주 5일제를 시행하는 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전체의 65.8%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인 미만 규모에서는 전체 노동자의 24.8%만이 주 5일제를 시행하는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나, 중소기업에서는 여전히 주 5일제가 실시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장시간 노동이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독일에서 진행한 연구에서 산재발생이 근무를 시작한지 8시간이 지난 시점에 집중되어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는데, 이는 피로의 증가와 집중도의 저하, 이로 인한 산재의 발생이라는 구조적인 산재발생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노동자가 그 효과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장시간노동은 신체와 정신이 회복되는 시간을 줄이게 되고, 누적되는 신체적, 정신적 피로는 다양한 건강의 문제를 야기한다. 일본 노동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한 달에 이틀 이하로 휴일이 있었던 노동자에서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3배 가까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발표한 연구에서는 60시간 이상 노동하는 집단에서 4배 넘는 심혈관질환의 발생을 보고하였다(그림 1 참고).

그림1. 국내 감시체계자료 이용한 연구 (노동시간과 심혈관계 질환 위험도), 정인철 등. 2013.
 그림1. 국내 감시체계자료 이용한 연구 (노동시간과 심혈관계 질환 위험도), 정인철 등. 2013.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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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노동시간으로 인한 우울증의 증가와 비만의 증가도 보고되었다. 비만은 심혈관질환의 주요한 위험요인이며, 긴 노동시간으로 인해 신체활동의 양이 감소하고, 정크 푸드 섭취가 증가하고, 높아진 스트레스로 인해 먹는 양이 증가하는 것이 원인으로 생각되고 있다.

최근에 진행된 연구에서는 어머니의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자녀의 비만 정도가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는데, 이는 장시간 노동의 결과가 노동자 본인의 건강 뿐 아니라, 가족의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시간이 1시간 줄어드는 것의 효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완성차 공장의 주간 연속 2교대 근무가 시작되었다. 필자는 국내의 한 완성차 공장의 노동자들과 교대제 근무변화 전후의 삶과 건강의 변화에 주목하며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필자가 기대하였던 첫 번째 대답은 '밤에 집에 가서 잠을 잘 수 있어서 좋았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인터뷰를 진행한 모든 노동자들의 대답은 '노동시간이 줄어서 좋았다'라는 답변이었다.

하루 10시간 노동에서 1시간 줄어드는 것이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올 지 몰랐다고. 훨씬 덜 피곤하다고... 다시 주말 특근을 시작하며 노동시간단축의 효과가 줄어들긴 했지만, 주간연속2교대로의 변화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의미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이다.

노동시간의 정치

앞서 말했듯이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규제 장치를 마련하고 실제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휴일을 포함하여 주 노동시간이 계산될 수 있도록 하는 당연한 조치가 이루어져야 하고, 근로기준법 59조의 특례는 폐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노력은 당장 노력해야 할 개선의 방향이다. 그러나 노동의 현장을 들여다보면 제도와 법적 규제만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현장의 정치"가 있다.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투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다양한 현장의 구조적 원인이 있으며,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주체의 투쟁을 조직하기 힘들다. 임금구조의 문제, 생산물량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고용불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 등은 노동시간과 연동된 현장의 구조적이며 동시에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노동시간의 감소는 임금감소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를 감내할 수 있거나 보존할 수 있는 곳은 아직까지 노동조합의 투쟁이 가능한 대기업에 한정되어 있다. 이들 대기업 역시 대부분 노동강도를 늘려 생산을 늘려주거나, 비정규직을 고용하여 생산경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노동시간 단축이 곧 임금삭감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 단축은 독립적이고 당위적인 과제일 수 없는 것이다. 

완성차 공장에 이어 1,2차 밴드 사업장들의 주간연속2교대가 준비되고 있는 요즈음, 노동강도의 증가, 비정규직 고용 등이 노동시간 단축의 대가로 논의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노동시간을 둘러싼 현장의 정치를 노동에 의한 현장통제로 성공적인 주간 연속 2교대를 정착 해온 두원정공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원정공은 완성차 공장에 앞서 2010년부터 8+8 형태의 주간 연속 2교대를 실시하고 있으며, 10여 년에 걸친 노동자 참여에 기반한 현장중심의 노동안전보건활동을 해온 사업장이다.  

장시간 노동의 패러다임을 넘어서기 위해

긴 노동시간은 노동의 강도, 노동시간의 배치(교대근무)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노동의 밀도를 증가시키려 할 것이고,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생산물량의 감소는 교대근무를 통한 노동시간 확장을 통해 해결하려 할 것이다.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투쟁은 노동강도의 강화가 없어야 하며, 교대근무의 확대를 야기해서는 안 된다.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필요한 인력충원이 비정규직의 고용확대로 이어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장시간노동으로 유지되는 이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노동시간단축이라는 큰 흐름 속에 어떻게든 이윤율 저하를 극복하려 기를 쓰고 있는 자본에 맞서는 노동하는 우리가 내놓을 대안은 무엇인가?


태그:#장시간노동, #심야노동, #주간연속2교대, #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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