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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바꿈 :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표지
 <탈바꿈 :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표지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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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라'는 말 속엔 영원히 그늘이 질 거다. 특정 단어를 쓸 때마다 그 말 아래 깔리는 어둠을 의식하게 될 거다. 어떤 이는 노트에 세월이란 단어를 쓰려다 말고 시간이나 인생이란 낱말로 바꿀 것이다."

소설가 김애란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이란 글에서 세월호 참사가 남긴 상처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의 말처럼 세월호 참사 이후 '가만히 있어라', '세월' 같은 말의 의미는 변했다. 많은 사람은 이제 세월이란 단어를 들을 때 세월의 사전적 의미인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끔찍한 사건과 당시 배 안에서 죽어간 이들을 먼저 떠올린다.

후쿠시마도 어떤 사건 이후 뜻이 바뀐 단어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난 후, 후쿠시마라는 단어에는 그늘이 졌다. 후쿠시마라는 단어는 이제 단순히 일본의 한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 아니라 체르노빌과 더불어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가장 엄중한 경고를 의미하는 단어가 됐다. 이제 우리는 후쿠시마 사고 이전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탈바꿈(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은 이런 후쿠시마 이후의 세상을 사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탈바꿈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각계 전문가 21명과 인포그래픽 팀을 모아 "엄마와 아이가 함께 볼 수 있고, 핵과 방사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의 입문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을 만들기로 했다. 그 결실이 바로 <탈바꿈>이다.

탈핵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탈핵을 주제로 한 책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여러 권 나왔다. 하지만 <탈바꿈>은 그런 책들과 비교해서도 몇 가지 눈에 띄는 장점이 있다.

첫째, 애초 입문서로 계획된 만큼 초보자가 읽기 좋다. 원전에 관한 내용은 용어부터 전문적이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탈핵 용어사전'을 부록으로 삽입해 전문 용어를 설명하고 있고, 본문도 비교적 쉽게 쓰여 있다. 특히 각 부가 끝날 때마다 동영상과 책, 언론기사들을 소개해 이후에 더 공부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둘째,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탈바꿈>은 후쿠시마의 실상과 한국의 원전 실태를 비롯해 방사능 안전 급식 조례, 독일의 탈핵 사례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윤근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소장이 제기한 의료방사선 문제는 다른 책이나 언론기사에서 잘 다루지 않던 문제라 흥미로웠다.

질병의 진단 혹은 치료를 위한 검사 과정에서 노출되는 방사선을 의료방사선이라 하는데, 한국은 컴퓨터단층촬영(CT 촬영) 등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제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영국의 '국가 환자 방사선량 데이터베이스'를 사례로 들어 구체적인 정책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셋째, 단순히 원전이 나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이후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한 실용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전선경 방사능안전급식 실현을 위한 서울연대회의 대표는 방사능에 오염된 식품으로부터 안전해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하고 있다.

전 대표는 방사능 정밀검사를 실시하는 생활협동조합의 식품을 이용하거나 마트에 방사능 검사 체계를 마련하도록 요청하고,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등에 민원을 제기하며, 시민방사능감시센터 등에 식품 방사능 검사를 의뢰하자고 제안한다. 모두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실생활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특히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는 무료로 방사능 검사를 해준다고 하니 서울시민에게는 유용한 정보일 듯하다.

핵폐기물 문제가 기술 문제?

후쿠시마 원전사고 3주기인 11일 서울 중구 세종로 사거리 이순신동상 앞에서 열린 밀양송전탑 공사 중단 촉구 및 탈핵 선언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가 공연되고 있다.
▲ '후쿠시마가 고통스러워 하고 있어요' 후쿠시마 원전사고 3주기인 11일 서울 중구 세종로 사거리 이순신동상 앞에서 열린 밀양송전탑 공사 중단 촉구 및 탈핵 선언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가 공연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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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내용 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은 여러 분야를 다양하게 다루지만, 하나하나를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탈바꿈>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아쉬운 부분은 핵폐기물을 다룬 대목이다. 일본의 반핵운동가 고이데 히로아키는 원전을 '화장실 없는 맨션'에 비유한다. 원전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음을 꼬집은 것이다. 고이데 히로아키는 이 때문에 설령 사고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원전은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만큼 핵폐기물 문제는 탈핵 진영에서 원전을 반대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탈바꿈>에 서술된 핵폐기물에 관한 설명은 아쉽다. 김익중 동국대 교수는 현재 우리 기술로는 50년 정도 사용 가능한 방폐장을 건설할 수 있는데 사용후핵연료는 10만 년 이상 보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엄청난 기술적 진보가 이뤄지지 않는 한 50년에 한 개씩 중간저장소를 약 2000개 만들어야 합니다"라며 중간저장소를 2000개나 만드는 데 많은 비용이 들고, 사용후핵연료를 옮기는 과정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10만 년 동안 엄청난 기술적 진보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가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내가 원자력을 옹호하는 입장이라면 일단은 임시방편으로 50년 정도 사용 가능한 방폐장을 만들어놓고, 그동안 기술을 발전시켜 오랜 시간 쓸 수 있는 방폐장을 건설하면 된다고 반박할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중간저장소를 2000개나 만들 필요도 없고, 사용후핵연료를 옮기는 횟수도 줄어드니 그 과정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게 줄 것이다. 김 교수가 말한 것처럼 핵폐기물 문제가 기술 문제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충분히 해결되거나 심각성이 크게 줄어드는 문제인 셈이다.

또 아쉬운 점 하나는 정부의 원전 정책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설명하는 데만 주력하다 보니, 정부가 이런 잘못된 원전 정책을 왜 추진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원전이 위험하고, 핵폐기물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없는데다 독일 같은 성공적인 탈핵 사례도 있는데 정부는 왜 계속 원전을 확대하려 하는지 이 책만 봐서는 알기 힘들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

하지만 그런 단점에도 <탈바꿈>의 의미가 퇴색하지는 않는다. 책 한 권만으로 탈핵의 모든 것을 아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한 데다 이 책은 탈핵 입문서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 데다 '탈핵 용어사전'을 실어 전문 용어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게다가 이 책은 참고할 만한 각종 동영상과 책, 언론 기사를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으니 관심 가는 것부터 하나씩 보면 된다.

소설가 장정일은 <공부> 서문에서 "공부란 원래 내가 조금 하고 그 다음에는 '당신'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을 쓴 전문가와 활동가들은 그 '조금 한' 공부를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나눠줬다. 그러니 그 다음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공부'할 차례일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탈바꿈>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이 책에 소개된 탈핵 동영상들을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탈바꿈>을 읽고, 그 다음에는 '당신'이 탈핵 공부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탈바꿈 :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탈바꿈프로젝트 씀, 오마이북 펴냄, 2014년 11월, 1만6000원



탈바꿈 -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탈바꿈프로젝트 엮음, 히로세 다카시 외 지음, 오마이북(2014)


태그:#탈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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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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