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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세월호,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폐기'를 촉구하며 오체투지 행진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자들의 모습. 이들의 오체투지는 26일까지 이어진다.
 '일터의 세월호,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폐기'를 촉구하며 오체투지 행진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자들의 모습. 이들의 오체투지는 26일까지 이어진다.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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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기륭전자 해고노동자들의 오체투지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그냥 다녀온 게 아니라, 함께 오체투지를 하고 왔습니다. 두 손, 두 다리, 이마를 바닥에 대고 자신을 돌아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오체투지라지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데 십년 투쟁을 마감하는 여자의 마음으로 하는 오체투지라면, 오뉴월 서리는 명함도 못 내밀지 싶었습니다. 오뉴월 서리 찜 쪄 먹을 오체투지니까요. '집에서 애나 키우는 여편네'에 불과하지만 불쑥 함께 하고 싶었어요.

뭐랄까, 너도나도 하찮게 여기는 존재의 서릿발 같은 꿈틀거림이 전해왔달까요. 전기가 통하듯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자 친구의 엄마들이 "나 취직했어요"라는 소식을 전하고들 합니다. 뚝딱뚝딱 아이들 얼추 키워놓고 곳곳에서 무언가를 합니다. 식당에서, 마트에서, 어린이집에서,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둘러보면 마치 커다란 기계를 연결하는 작은 나사처럼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부업들입니다.

곳곳에서 기륭전자 사장 같은 이들을 만날 테지요. 시답잖은 농담이라는 이름의 무시와 희롱, 갑작스런 호통, 무엇보다 합당하지 못한 대우와 해고. 더러는 참고, 더러는 그만두면서 그 억울함을 풀어내지도 못할 테지요. 잘 알지 못해서, 알아도 혼자라서 혹은 더욱 힘들어질까 봐.

복직도 못했고, 억울하게 싸우다 청춘만 보냈다고, 괜히 싸웠다고 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륭 언니들의 온몸을 던지는 싸움이 있었기에 비정규직이라는 것도, 억울한 해고문제도 알게 된 사람이 여럿 아닐까요? 누가 뭐래도 이 엄동설한 동장군을 벌벌 떨게 만드는 서릿발 같은 기둥 하나는 마음속에 세웠을 듯싶었습니다. 그런 언니들이 하는 오체투지니까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이 사람들아, 우린 이런 사람들이야!

'일터의 세월호,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폐기'를 촉구하며 오체투지 행진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자들의 모습. 이들의 오체투지는 26일까지 이어진다.
 '일터의 세월호,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폐기'를 촉구하며 오체투지 행진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자들의 모습. 이들의 오체투지는 26일까지 이어진다.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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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여의도 한복판에 서려니 조금은 걱정 되었습니다. 게다가 점심 식사 후 몸을 일으키기 힘들어 하는 분들을 보자 더욱 두려웠습니다. 온몸이 냉기로 얼어 구급차를 부르는 사태가 오지나 않을까, 연대고 뭐고 민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오후 일정이 시작되어 여의도 한복판에서 하얀 소복을 입고, 한 줄로 섰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창피함도, 걱정도 사라졌습니다. 앞사람의 반듯한 등을 보며 내 마음도 평평해졌습니다. 혼자였다면 절대로 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함께였기에 시커먼 옷을 입고도 창피하지 않았습니다.

내 몸을 던져 오물로 가득 찬 땅바닥을 껴안았을 때 땅바닥은 배꼽을 통해 냉기라는 선물을 전해주었습니다. "어때, 춥지? 네가 날 어찌 이기겠어?" 하듯이.

하지만 한 번, 두 번 몸을 낮추어 온몸을 땅에 갖다 댈수록 몸에 훈훈한 기운이 퍼졌습니다. 세상은 차갑고 돌처럼 꿈쩍 하지 않지만, 달려가 안아도 차가운 냉기만을 던져주었지만, 언니들의 십년이 세상에 작은 깨달음과 훈기를 주었듯이 말입니다. 온몸을 던져 아픈 곳을 껴안아 주는 기륭전자 언니들의 오체투지가 이 길고도 차가운 겨울을 그나마 훈훈하게 만들어 주는 듯했습니다.

왜 일하는 사람이 거리에서 서러운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만든 법이 왜 가진 사람 편만 드는지, 우리가 뽑아준 정치인이 왜 기업의 편만 드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아는 사람 계신가요. 이것이 기륭전자 해고노동자들만의 문제인가요.


태그:#기륭전자, #오체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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