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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낚시로 리바이어던을 낚을 수 있느냐? 그 혀를 끈으로 맬 수 있느냐? 코에 줄을 꿰고 턱을 갈고리로 꿸 수 있느냐?"

없다. 그럴 수 없다. 그 괴물은 전복된 세월호를 칭칭 감아 내동댕이치고 있다. 날카로운 펜으로 만들어진 혀가 촛불 든 사람들을 사정없이 찔러도 막을 수 없다. 부정한 돈다발의 똬리를 틀고 있어도 불평조차 할 수 없다. 앞으로 나가면 경찰의 방패에 막히고 또 앞으로 나가면 몽둥이에 맞을 테니까. 그것보다 그 괴물을 떠받치고 있는 건 관료, 국회의원, 검찰 등의 콘크리트 기득권 세력이니까.

박순찬 화백의 <세월의 기억>.
 박순찬 화백의 <세월의 기억>.
ⓒ 비아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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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유통기한이 있나?'를 묻는 <세월의 기억> 

성경에 등장하는 아무도 맞설 자 없다는 괴물 리바이어던을 나는 오늘 한 권의 책에서 본다. 얼마 전 장도리의 대한민국 현재사(現在史) 시리즈 2014년판 <세월의 기억>(비아북)이 출간되었다. <세월의 기억>은 2013년과 2014년 <경향신문>에 연재되었던 박순찬 화백의 네 컷 만화 '장도리'를 모아 놓은 책이다. 장도리는 김영삼 정부 때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20년간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록한 풍속화이며 실록이다.

장도리를 통해 박순찬 화백은 대한민국의 하루를 네 컷에 담았다. 10초에 하나를 본다면 7300초, 즉 120분이면 대한민국의 20년사를 통독하게 된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은 좋은 것, 나쁜 것 모두를 기록한다. 장도리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속에는 해학이 있고 풍자가 있다. 그러나 20년 역사의 가장 참담하고 슬픈 그림은 <세월의 기억>을 감싸는 표지이다.

<세월의 기억> 표지에 리바이어던과 같은 괴물 뱀이 등장한다. 뱀은 자본과 탐욕에 물든 언론을 상징한다. 언론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다. 뱀도 언론이고 두 손 떠받들어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찍고 있는 펜의 얼굴도 언론이다. 언론은 괴물로 변했다. 말끝마다 척결을 외쳤던 '×피아'들의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지는데 갈 길은 막혀 있다. 그나마 남은 희망은 변방에 찍혀 있는 노란리본뿐이다. 이것이 2014년 대한민국이다.

인터넷 언론 <칼라밍>에서 한 대학생 칼럼니스트는 슬픔에 유통기한이 있는지를 묻는다. 슬퍼야만 하는 기간이 있다면 슬퍼하지 않아도 될 기간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치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똑같은 참사가 발생되지 않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권력은 유한해도 자본은 영원하다

장도리의 대한민국 현재사 시리즈는 지금까지 총 세권이 나왔다. 첫 번째가 <나는 99%다>이고, 두 번째는 <516공화국>이다. 그렇다. 이 시리즈에는 '현재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역사는 과거를 말한다. 하지만 장도리가 기록한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그것은 이 세권의 표지에서 드러난다.

<나는 99%다>의 표지에는 삽을 든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깃발을 든 박근혜 대통령이 중앙에 서 있다. 삽을 든 그분이 떠난 자리에 박정희의 깃발을 든 그분이 오실 거라는 이야기다. 여전히 촛불을 든 사람들은 공격당하고 있고 지하에서는 백성들이 고된 노동으로 그들을 떠받치고 있다. 여기에서 의미심장한 장면은 파라오의 자리를 차지한 이건희 회장이고 그 아래 곱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검찰의 모습이다. 파라오는 영생불멸의 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권력은 유한해도 자본은 영원하다.

표지는 상부세계와 하부세계로 나뉘어져 있다. 상부는 갑의 세상이고 하부는 을의 세상이다. 갑 중에는 말 잘 듣는 갑이 있고, 보도하는 갑이 있으며, 슈퍼갑과 아이언갑이 있다. 여기에서 하부의 백성들이 갑들의 세상에서 촛불을 들면 공격당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2013년의 <516공화국>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박정희는 돔이 되어 세상을 감싼다. 그 안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위풍당당하고 검경을 비롯한 언론과 관료는 두 손 들어 그를 경배한다. 누가 오시든 일반 백성들은 밑을 떠받치거나 포박당할 뿐이다. 그리고 <세월의 기억>이 왔다.

<나는 99%다>가 봉건과 유신으로의 회귀와 퇴행이라면 <516공화국>은 그 체제의 공고화다. 이 구조는 결국 <세월의 기억>이 보여주는 참사를 낳는다. 2012년에서 2014년 현재까지 구조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슬픔에서 벗어날 기간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진격의 윤창중이 가한 불의의 습격에도 문창극의 낙마에도 세 모녀가 쓸쓸히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정말 무서운 건 라면 상무가 난동을 펼치고 땅콩이 램프 리턴의 주범이 되도 이 사회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이고 그 절망에 서서히 중독되어 절망을 절망으로 느끼지 못하게 될 무감각이다.

박순찬 화백의 <나는 99%다>와 <516공화국>.
 박순찬 화백의 <나는 99%다>와 <516공화국>.
ⓒ 비아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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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리에게 희망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달라 

옛날 중국신화에 의하면 황제의 손자인 전욱과 홍수의 신인 공공이 세상의 패권을 얻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전욱을 이길 수 없게 되자 공공은 화를 참지 못하고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부주산을 머리로 받아버렸다. 그로 인해 인간의 세상엔 걷잡을 수 없는 화재와 홍수가 생겨났다. 그때 하늘을 수리하여 인간을 살게 해준 신이 여와이다.

세상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독재자나 권력자의 관심은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에 있다. 그들에게는 국민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아니라 누가 국민의 위에 서 있는지가 중요하다.

신화에서 여와는 인간을 창조한 신이다. 그럼 여와는 또한 인간 자체인 것이다. 신이 망쳐 놓은 세상을 인간이 되돌렸던 것처럼 권력자의 세상에서 국민을 구원할 존재는 우리 자신뿐이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슬픔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슬픔에만 빠져 있지 않는 것이다. 두 눈을 부릅뜨고 내가 사는 세상에서 멀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눈을 뜬 자만으로 이룰 수 없다.

세상엔 신화인 것도 없고 신화 아닌 것도 없다. 아침에 똥을 싸고 밥을 먹고 차를 타고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정치인 것도 정치 아닌 것도 없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윽박지르지 말고 의견이 다르다고 귀를 닫지 말고 눈 감았다고 무시하지 말고 눈 뜨고 함께 보자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예산안이 국회에서 회기 내 통과된 것을 가지고 국민에게 큰 선물을 드렸다는 그런 말을 듣지 않게 된다. 누리과정 예산을 목적예비비라는 꼼수로 없애고도 버젓이 '보육우선 새누리당'이라는 플래카드를 거리에서 보지 않게 된다. 헌재가 정말로 헌법을 제대로 해석하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세상을 만나게 된다.

안드로메다로까지 간 상식을 찾아오자.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안드로메다에서 온 선물은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다. 결정적으로 장도리의 대한민국 현재사 시리즈의 표지 같은 저주받은 걸작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제발 장도리에게 희망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임병희씨는 한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서 <판타지 소설과 온라인 게임의 신화구조 분석>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동북아와 우리 신화를 분석한 <한국신화역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공방에서 목수를 꿈꾸며 산다. 지금은 인터넷 언론 <칼라밍>의 편집장으로 있다. 쓴 책으로는 <韓國神話歷史>(중국남방일보출판사), <인문라이더를 위한 상상력 사전>(생각정원) 등이 있다.



나는 99%다 (장도리의 대한민국 생태 보고서) - 장도리의 대한민국 생태 보고서

박순찬 지음, 비아북(2012)


516 공화국 (장도리의 대한민국 생태 보고서)

박순찬 지음, 비아북(2013)


세월의 기억 - 장도리의 대한민국 現在史 2013~14

박순찬 지음, 비아북(2014)


태그:#박순찬, #세월의 기억, #장도리, #나는 99%다, #516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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