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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점심 먹었나?"
"네, 어머님... 장사는 잘 되시죠?"

화천시장에 들어서자 70대 할머니가 나를 반겼다. 내 어머님이다. 다음 블록으로 들어서자 '아들, 들어와서 만두 먹고 가'라며 나를 이끈다. 이분 또한 내 어머님이다. 이불가게 할머님도 나를 아들이라 부른다. 대체 내게 어머님은 몇 명이란 말인가.

"상인들에게 엮이지 말아라" 선배 공무원들의 충고

감사패. 내가 받은 많은 상중 가장 가치있는 상이다.
 감사패. 내가 받은 많은 상중 가장 가치있는 상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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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는 평소 투철한 사명감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여 왔으며, 특히 화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화천시장 환경개선사업에 기여한 공이 크므로 화천시장 조합원들의 뜻을 모아 감사의 마음을 이 패에 담아 드립니다.'

2004년 12월20일. 화천전통시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형식적 공적조서에 의한 표창이 아니라서 일까,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볼 때마다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1950년대 화천시장이 생긴 이래 시장상인들이 공무원에게 감사패를 준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특별히 장사가 잘 되도록 한 것도 없는데, 왜 내게 감사패를 줬을까.

2003년 9월, 난 지역경제 계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 내 담당업무 중 하나는 '재래시장 환경개선 사업'이었다. 정부에선 일률적인 현대화를 통해 대형마트에 몰리는 고객들의 관심을 재래시장으로 유도해 보자는 것이 환경개선 사업이다.

"시장 상인들은 닳고 닳은 사람들이다. 요구하는 말에 섣불리 대답해선 안 된다."

발령을 받았을 때 선배 공무원들의 충고는 다들 비슷했다. 시장상인들에게 잘못 엮이면 일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중심을 잡고 내 주관대로 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계장님이라니까 말하는데, 시장 화장실 그거 설계가 잘못된 거 아니요?"
"글쎄요. 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겁니까?"

잔뜩 긴장을 하고 인사차 들른 시장조합 사무실. 한 임원진은 다짜고짜 사업 이야기부터 꺼냈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군기를 잡으려는 모양이다'라는 생각이 앞섰다. 나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 이후 시장조합회의 때는 거의 나가지 않았다. 나가봐야 시시콜콜 요구사항이 많을 테고, 그러면 상인들에게 끌려 다니는 꼴이 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조합에서 어떤 요구를 할 땐 내 사무실로 와서 토의하자는 제안을 했다.

생각의 전환, 상인들이 마음을 열었다

화천전통시장. 이곳을 지나갈때 마다 내가 했다는 자부심도 갖는다.
 화천전통시장. 이곳을 지나갈때 마다 내가 했다는 자부심도 갖는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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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닌데...'

소통이 없으니 사업도 삐걱거렸다. 조합 또한 말로 해도 될 것을 꼭 문서로 요구했다. 시장 상인들 그리고 조합임직원들과 거리가 멀어진다고 생각될 즈음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행정이나 상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서로 불신만 생기는 일이다. 사업이 원활히 추진될 리 없다.

"이 분이 우리 시장 환경개선사업 담당계장입니다."

사무장과 함께 시장을 찾았다. 발령을 받은 지 딱 한 달 만이다. 그는 상인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대부분 '그래서 뭐?'라는 눈치다. '사업이나 빨리 끝내지 공무원이 왜 시장상인들에게 인사를 하느냐'라는 분위기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당시 내 느낌은 그랬다. 

"조합회의는 언제하나요?"
"그건 왜요?"
"참석할까 하구요."
"오실 필요 없어요."

사무장은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조합원들이 (사업과 관련해)결정한 사항을 올리면 행정에선 반영을 해 주면 되지 굳이 참석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대답이다. 괜히 와서 이것저것 묻는 말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어쨌건, 그 이후 매달 개최하는 조합회의에 참석했다. 조합원들 단합행사에도 일부러 참석했다. 뻔뻔스럽게 회의가 끝난 후 마련한 저녁도 얻어먹었다. 

시장상인들이 야유회를 갈 때도 따라갔다. 나이로 보면 내가 거의 막내 축에 든다. 잔심부름도 도맡아 했다. 점잖으신 어르신이 '계장이 이럴 필요 없다'는 말도 무시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 춤도 추며 마이크를 잡고 재롱도 떨었다. 당시 내 나이 43살. 그 나이가 얼마나 재롱스럽게 보이겠냐만, 그냥 그렇게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얼음장처럼 차갑게 대했던 상인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시장환경 개선사업에 대해서도 상의하는 일도 잦아졌다.

악몽과도 같았던 시절...

"솔직히 우리 가게 주말 매출액만 600만 원이 넘는다. 대체 언제까지 손해를 봐야 하냐? 너만 아니면 군청에 손해배상 청구라도 하고 싶다."

일 년 정도 지나 시장바닥 교체 공사를 실시했다. 바닥을 들어내다 보면 고객들 통행이 금지된다. '하자'는 측과 '하지말자'라는 의견이 나왔다. '업자가 일주일이면 끝난다니까 나중을 생각해 손해 좀 보자'는 내 말에 반대하던 상인들도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업체대표를 불러 야간작업을 해서라도 일주일 안에 작업을 끝내 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다.

200여 미터에 이르는 시장바닥을 뜯어내자 가관도 아니다. 얽히고설킨 통신선로, 수도관, 하수관. 이대로라면 도저히 일주일 안에 끝낼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새벽 4시쯤 시장에 나갔다. 야간공사를 하기로 한 인부들은 한 명도 없다. 사방이 온통 물바다다. 뒤집어 놓은 흙은 모두 뻘로 변해있다. 악취도 심했다. 공사 중 하수관을 잘못 건드렸나 보다. 공사 감독을 찾아도 없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불통이다. 겨우 인근 여관에서 잠을 자고 있는 공사 관계자를 찾았다. 전날 술을 드셨는지 '그럴 리 없다'며 횡설수설했다.

결국 '이 사업을 할 자신 없다'는 대답을 듣고 업체를 교체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공사를 누가 인수를 하느냐는 거다. 업자들 사이에선 '남이 시작한 공사를 떠맡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란다.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선배를 불러 사정했다. '대신 1개월 이내에 절대 못 끝낸다'는 조건도 받아 들였다. 시장상인들에게 변명할 말이 없다. 일주일이 지났는데 가게 문을 내린 시장이 조용했다. 마치 폭풍전야 같았다.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났는데 상인들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러다 한꺼번에 군수실을 찾아와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어쩌나'. 잠도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한 식당에서 조용히 나를 불렀다. 만나자마자 사장님은 한숨부터 쉬었다.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입을 열었다. '너만 아니면 군청에 1주일 손해 600만원×4주 해서 2400만원 요청 했을 거다'라는 말을 했다.

여러 명의 어머님이 생겼다

20년을 넘게 시장을 지키고 있는 어느 할머님. 이 분도 내 어머님이다.
 20년을 넘게 시장을 지키고 있는 어느 할머님. 이 분도 내 어머님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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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못 벌은 기 뭐 대수가? 시장 공사하느라 고생했제?"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바닥공사가 마무리 된 날, 시장상인들이 마련한 자축 준공파티에 나갔다. 자신들이 손해 본 것보다 나보고 맘고생 했단다. 괜히 콧등이 시큰했다. 

"시장 종무식 할 때 니 꼭 와라"

2004년 시장조합 종무식. 바닥공사를 엉망으로 한 것이 미안해서라도 거절할 구실을 찾지 못했다. 깜짝 파티였나 보다. 느닷없이 안기는 감사패. 잘한 건 없지만 인간성이 좋아서 주는 거란다. 바닥공사가 엉망일 때 인부들과 밤샘도 하고 새벽에 나와 고민하는 내 모습을 봤단다. 

"니 오늘부터 내 아들하자"
"뭔 소리나? 얘 내 아들 삼기로 했다."

그 이후로 난 여러 명의 어머님이 생겼다. 돌이켜보면 지난 10년 세월만큼이나 늙으신 분들... 올 12월은 참 유난히 춥다. 올해가 다 가기 전 내 어머님들께 내의라도 사다 드려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화천, #화천재래시장, #화천전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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