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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아래 새민련)이 공무원연금 국회 특위와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주고받았다. 이를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여권이 이슈 분산을 노리는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새민련은 항상 아슬아슬한 타협선을 걷고, 새누리당은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것 같다. 세월호 특별법은 아쉬움이 남고 쌍용차 해고노동자 사태는 석연치 않다. 게다가 4대강과 비선실세 얘기는 쏙 빠지고 매번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이 없다. 그런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협상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정치는 만나면 합의다, 좋은 만남이었다"라고 평가했고,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할 말을 허심탄회하게 했다"라고 자평했다. 매번 만남 뒤엔 자위를 하고 있다. 국민들이 양당의 협상결과를 진정 수긍하고 있을까. 협상이 대중을 위로하고 있을까.

정작 중요한 것은, 중요한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모든 현안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양당만이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원론적인 문제점은 양 거대정당이 매번 정권을 바꿔가며 밥그릇의 위치만 바꾼다는 것이다. 편향적인 의석 수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지 못하도록 하고, 오로지 거대양당의 정치적인 논리 속에서만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새누리당을 '갑'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을 '을'의 관계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상 생각해 보면 양 거대정당은 매번 '갑'일 뿐이다. 다만 새누리당과 새민련을 큰 갑과 조금 덩치가 작은 갑, 그리고 나머지 소수 이익을 대변하는 소수정당들을 을로 보는 것이 맞다.

양 거대정당은 정권을 바꿔가며 매번 일정 의석수를 확보하고, 그 시스템만 유지할 수 있다면 큰 변화를 이룩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조금' 더 확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지 사실상 암묵적으로 이뤄진 둘만의 싸움이 아닌 합의일 뿐이다. 상식적이고 민주적인 시스템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국회 또한 성공한 집단 간의 굳히기가 돼 버린 것 같다. 매번 그 사이에서 소수정당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 뿐이다. 원론적인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혹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두 거대정당에 의해 선거법 개정이 헌법 개정보다 어렵다는 이야기가 이따금 등장한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살펴보자. 지역구 득표결과, 새누리당은 127석, 새정치민주연합(당시 민주통합당)은 106석, 통합진보당은 7석을 가져간다. 이것이 과연 민심을 정확히 반영한 결과인지는 명명백백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잠시 비례대표 득표 결과로 눈을 돌려보자. 새누리당은 42.80%, 새정치민주연합은 36.45%, 통합진보당은 10.30%의 득표율을 얻었다. 비례대표 득표율은 곧 정당의 지지율을 의미한다.

비례대표 득표 결과
▲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득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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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지역구 당선결과로 눈을 돌리자. 당시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42.80%이다. 전체 지역구 246석 중 대략 105석에 가깝다. 그러나 지역구 선거결과에 따른 의석수는 127석이다. 여기서부터 오차가 발생한다. 정당의 지지율과 지역구 의석수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지율에 비해 대략 22석을 더 가져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게다가 비례대표 의석수에서도 격차가 발생한다. 전체 54석 중 42.80%는 대략 23석이다. 허나 새누리당은 25석을 가져갔다. 결국 지역구 22석과 비례대표 2석을 합하면 24석을 더 가져간 것을 알 수 있다. 24석은 소수정당에겐 엄청난 숫자다. 현재 새누리당과 새민련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비교섭단체인 것을 생각하면 그 숫자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새정치연합의 비례대표 득표 결과도 보자. 위에서 언급한 대로 36.45%의 득표율을 얻었다. 전체 지역구 의석 중 90석에 가깝다. 그러나 지역구 선거결과에 따른 의석수는 106석이다. 16석을 더 가져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역시 새누리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비례대표 의석수에서도 격차가 발생한다. 36.45%의 지지율은 대략 19석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1석을 가져갔다. 역시나 여기서도 지역구 16석과 비례대표 2석을 합하면 18석을 더 가져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통합진보당의 경우를 살펴보자. 10.30%의 득표율을 얻었다. 전체 지역구 의석 중 25석에 가깝다. 그런데 지역구 선거결과에 따른 의석수는 7석이다. 지지율을 반영한 의석수를 생각하자면 비례대표를 포함하여 총 30석에 가까웠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당의 지지율을 상당히 왜곡되게 반영하였다. 현행 선거제도 자체가 거대 양당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경우, 당시 지지율이 반영되었다면 지역구 246석 중 25석 정도가 확보되었어야 했다
▲ [정당별 의석수] 통합진보당의 경우, 당시 지지율이 반영되었다면 지역구 246석 중 25석 정도가 확보되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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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양당제도는 투표민심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왜곡해서 반영하고 있다. 이는 결국 민심의 왜곡을 암시한다. 투표의 평등권까지 상당히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지금 같은 선거제도 속에선, 계속해서 새누리당과 새민련이 번갈아가며 권력을 장악하는 시스템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선거법 개정의 결정권은 양당이 지니고 있지만, 그 양당이 바꿀 생각이 없는 한 이 체계는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슈퍼갑과 조금 덩치가 작은 갑에 의해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통로가, 그 방법이 영원히 막히는 알고리즘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독일식 선거구제가 논의되고 있지만, 역시나 직접적인 양 '갑' 당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탁상공론일 뿐, 현실에 적용될 수 없는 판타지로 보인다. 이대로만 간다면 스스로의 밥그릇이 보장되는 시스템 속에서 선거법 개정을 국회에 맡기는 것이 힘든 것은 당연지사이며, 따라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다음 대선주자가 대선 공약으로서 국민투표를 약속하여 그 의사를 국회에 표명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듯하다.

거대 정당에게 유리한 선거 환경 속에서, 소수 진보정당들은 매번 비교섭 단체로 남는 수모를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 [국회 정당별 의석수] 거대 정당에게 유리한 선거 환경 속에서, 소수 진보정당들은 매번 비교섭 단체로 남는 수모를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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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현실정치의 문제점은 거대 정당 사이 빅딜에서 오는 팽팽한 긴장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것은 명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진보정당의 부재로부터 출발한다. 통합진보당의 경우, 정당해산심판은 180일 이내에 처리해야 하는데 그 안에 선고가 가능할지 확실치 않다. 게다가 어떤 결과가 발생하든 과거 경선과정에 있었던 갈등으로 인해 지지층 일부가 돌아섰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나마 버티고 있는 정의당 또한 의석수가 부실하다. 전체 지역구 의석 중 1석, 비례대표 4석, 총 5석에 불과하다. 비교섭 단체이다. 이래서는 민심을 정확히 반영하기 어려울뿐더러, 소수의견이 존중될 리도 없다. 이러한 현실에선 민주주의가 소수의 의견도 존중한다는 이야기는 실현되기 힘들다. 투표의 평등권 왜곡이 한국 정치의 큰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태그:#진보, #정당, #위기,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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