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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죠. 그럴 애가 아닌 거 같은데...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친구는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워낙 좋고 싫은 게 분명한 애였거든요. 북한은 이전부터 굉장히 싫어하곤 했어요. 그래도..."

지난 12일 전북 익산시의 한 실업계 고등학교. 이곳 화공과 3학년 이성현(가명)군은 "다시 만나면 도대체 왜 그랬는지 물어보고 싶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지난 10일 전북 익산시 신동 성당서 열린 '신은미·황선 통일 토크콘서트'를 자작 폭발물을 이용해 방해한 혐의로 구속된 A군(19)의 같은 반 친구다.

학교는 A군이 벌인 테러 소식으로 뒤숭숭했다. 삼삼오오 모여 하교하던 학생들은 그의 이름을 거론하며 '대박(매우 놀랍다는 의미)'을 연발했다. A군의 이름 말고는 아는 것이 없는 학생들도 한 마디씩 보탰다. 일부 학생들은 친구에게 "너도 그렇게 될지 모르니 '일베(일간베스트)' 하지말라"고 타박을 주기도 했다. 일간베스트는 A군이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진 극우 커뮤니티 사이트다.

그러나 동급생, 담임선생님 등 A군과 친밀한 관계였던 이들은 그가 전형적인 일베 이용자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A군을 어른 말에 순종적이고 행동이 재미있는 학생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A군이 수업을 받던 교실. 2학기에는 반 학생들이 실습에 나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책상이 치워져있다.
 A군이 수업을 받던 교실. 2학기에는 반 학생들이 실습에 나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책상이 치워져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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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 행동 특이한 학생... 친구들에게 인기 많았다"

학생기록부에 기록된 A군은 큰 특징이 없는 학생이었다. 결석, 지각 기록이 없고 학교 성적은 중간보다 조금 잘 하는 편. 이 학교에 근무하는 한 선생님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착실한 애였다"고 설명했다.

기록상으로는 평범했지만 교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A군은 오히려 반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에 가까웠다. 같은 반 친구인 한정윤(가명)양은 "말과 행동이 정말 특이해서 뭐만 하면 주변 친구들이 '빵' 터지는 애였다"면서 "여자애들도 다 재밌어했다"고 말했다.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말이 느린 편이었다. 또 평소에 언뜻 보면 50대나 40대처럼 보이는 옷을 즐겨 입었다. 걸을 때도 뒷짐을 지고 팔자걸음으로 걸었다. 담임 교사인 김아무개씨는 "그런 점들 때문에 혹시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유심히 봤었는데 친구들은 오히려 (그런 면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김 교사는 A군의 특징으로 화학물질을 다루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는 점을 꼽았다. 학교 특성상 화공과 학생들은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는데, A군은 환경기능사와 화학분석 기능사 자격증을 딴 상태다. 위험물 기능사도 필기는 통과했다. 지난 7월에는 군산의 한 실험실에서, 올 11월부터는 김제의 석유정제회사에서 실습근무 중이었다.

그러나 화학물 제조에 대한 흥미나 실력은 자격증 수준을 웃돈다는 게 김 교사의 설명이다. 그는 "A군이 테러 때 썼던 '로켓캔디' 같은 건 자격증을 딴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사실 나도 어떻게 만드는 지 모른다"고 털어놨다.

3월, 페이스북에 '노무현 비하' 합성사진 올려 주의 받아

A군은 올해 3월께 '일베' 문제로 김 교사에게 주의를 받았다.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내용의 합성사진을 여러 장 올린 게 화근이었다. 사진을 본 친구들은 'A군이 이상한 사진을 올린다'며 김 교사에게 제보했고 그는 A군을 설득했다.

"'나는 이렇게 다른 사람 비하하는 거 싫다'는 표현을 했죠. 그랬더니 '예 알겠습니다' 해요. 그 후로는 친구들이나 제가 볼 수 있는 공간에 그런 사진을 올리는 일은 없었어요."

4월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우연히 A군의 휴대전화 사진첩을 본 반 친구들이 김 교사에게 '이상한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알린 것. 김 교사는 A군을 불러 휴대전화 사진첩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A군은 거부했다. 그는 "A군이 '이걸 보여주면 앞으로는 선생님 얼굴 못 본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사가 못 본 사진첩은 결국 며칠 후 급우들이 확인했다. 노무현 대통령 합성사진 수십 장과 잔혹한 내용의 일본 애니메이션 그림 수십여 장이 담겨있었다.

김 교사는 "소녀나 젊은 여자가 피칠갑을 한 채로 사지가 절단되어 있는 잔인한 그림들이 잔뜩 있어서 모두가 놀랐다"면서 "그 일을 부모님께도 알리고 사진은 지우도록 지도했다"고 했다. 그는 "몇 주 후에 A군에게서 '일베에서 누구와 다퉈서 일베도 이제 가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익산경찰서 조사실. A군이 조사를 받고 있다.
 익산경찰서 조사실. A군이 조사를 받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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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꿈 '폭탄만들기'... 리본 달린 마법봉 모양 폭탄 제조 계획

이 같은 일을 겪었지만 A군에 대한 반 학생들의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지연(가명)양은 '그 잔인한 그림을 직접 봤느냐'는 질문에 "나는 직접 봤고 다른 애들도 많이 봤다"면서 "그 이후로 (A군에 대한 친구들의 태도가) 크게 달라진 건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성현군은 "나도 놀랐지만 개인의 취향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두 가지 일로 변한 것은 A군이었다. 그는 친구들 대신에 '네오아니메' 등 지인들이 없는 일본 애니메이션 커뮤니티에 속내를 털어놨다. 과거와는 달리 본인이 좋아하는 폭발물 관련  글들도 지인들에게 공개된 공간에는 올리지 않았다.

지난 5월 10일 그는 네오아니메에 '어릴적 꿈이 폭탄만들기였는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글 내용에 따르면 그는 글리세린과 질산, 황산으로 니트로글리세린을 만들고, 산화철과 알루미늄을 이용한 테르밋 뇌관을 장착해 리본이 달린 마법봉 모양의 폭탄을 만들어볼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A군은 이 글에서 "제조화학 선생한테 참고용으로 뇌관이랑 도화선 물어보다가 뭔일인지 담임(선생님) 귀로 넘어가서 무기한 연기됐다"고 털어놨다.

A군은 테러를 계획한 후부터 폭발물 투척 직전인 지난 10일 저녁까지 이 사이트에 몇 차례에 걸쳐 테러 예고글을 올린 바 있다. 강연자인 재미교포 신은미씨에 대한 살의를 담은 내용이었다. 반면 담임교사와 학교 같은 반 친구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는 강연 당일 짧게 '통일콘서트에 간다'는 글을 올렸다.

담임 교사 "극우 세력들 끼어들면 A군만 피해"

김 교사는 아직도 A군이 맨정신으로 그 같은 테러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소 겁도 많고 덩치도 작은 데다 술·담배도 전혀 안 하는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A군은 현장에서 체포당시 1/3 가량 남은 250㎖ 고량주를 소지하고 있었다.

김 교사는 세간의 시선과는 달리 A군과 일베의 연관성도 크지 않게 봤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 본 '일베 학생'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일베를 하는 학생에게 '일베를 하지말라'고 지도하면 '내가 왜 그래야 하느냐'며 강하게 반발하는데 A군은 그런 게 전혀 없이 지도에 잘 따랐다"고 말했다.

그는 담임 교사로서 A군이 일부 극우 세력과 연계되는 것에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정상적인 법적 절차를 밟아서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지어야지, A군을 영웅시하는 정치세력들이 끼어들면 결국에는 학생만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그는 "어제는 인천에서 어떤 80대 노인이 제 휴대폰으로 전화해서 '훌륭한 학생 키웠다'고 했다"면서 "앞으로 구속이 되거나 하면 보수·우익 단체들이 익산에 내려온다는 얘기도 있어 걱정이 많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A군의 테러 대상이었던 신은미씨와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를 '종북세력'으로 낙인찍고 있던 극우세력들은 A군에 대한 금전적, 법적 지원에 나설 의사를 표명한 상태다.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는 12일 트위터에서 "후원 모금을 마감한 결과 1340만8843원이 입금됐다"면서 입금 내역 사진을 공개했다. 반면 A군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한 모든 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오마이뉴스>는 김 교사를 통해 A군의 부모에게 취재 의사를 타진했으나, '이 사건과 관련해 언론에 별도의 입장을 표명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태그:#김동환, #익산, #테러, #폭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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