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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박았습니다. 난 얼마나 못난 아버지이고, 못난 시민이었던가. 빚에만 몰두하다가 나의 안전, 내 아이의 안전이 뿌리부터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죠. 외면과 방관, 나 힘들다고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눈 감고 있었던 겁니다. 적이 나타나면 땅에 얼굴을 묻고 나 몰라라 등돌리는 꿩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죄인입니다. - 본문 중에서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못난 아빠>라는 책을 냈습니다. 딸 유민을 잃고서야 못난 아빠, 못난 시민임을 깨달은 아빠의 고백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고 목숨을 건 단식을 한 아빠의 고백이라 그 느낌이 남다릅니다.

세월호 참사는 참사를 당한 가족만의 일일까요? 세상 일에 방관자였던 못난 시민이 어디 유민 아빠뿐일까요? 분명한 학살, 인재임을 보고도 잠시 안타깝다, 슬프다, 안 됐다 하다가 금세 잊고 안전하지 않은 일상의 굴레로 되돌아간 우리 모두의 잘못은 아닐까요?

나를 태우고 질주하는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지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지 못하고, 좀 더 안전한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 놓지 못한 우리 모두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촛불집회도 한 번 안 갔는데 40일 단식한 유민 아빠

단원호 희생자 유가족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11월 15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전국문화예술인행동 주최 '세월호, 연장전(延長戰)'에서 발언하고 있다.
 단원호 희생자 유가족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11월 15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전국문화예술인행동 주최 '세월호, 연장전(延長戰)'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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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 아빠는 "철저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여 안전한 나라를 만들 때까지 잊지 말아 주십시오. 항상 진실만을 알려주는데 앞장 서 주십시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습니다. 가슴 아픈 깨우침을 담은 죽비소리 입니다.

단식을 하면서 유민아빠로 유명해진 김영오씨는 평범하고 수줍음이 많은 보통 사람입니다. 말수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런 그를 향해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이니 강성일 것이다,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다 등 억측을 쏟았습니다. 소박하고 솔직한 유민 아빠의 책 <못난 아빠>를 읽는다면 못난 시민들은 또 한 번 고개를 숙여야 할 것입니다.

그는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때 누구나 한번은 참석했을 법한 촛불 집회 한 번 참석한 적이 없는 사람이더군요. 학력과 지연과 스펙과 자본의 유무로 철저하게 계층화된 사회에서  평범하고 가난한 소시민으로 그저 빚에 허덕이다 이혼을 했고 빚을 갚기 위해 주말에도 야근을 했습니다. 이따금 사랑하는 두 딸 유민과 유나를 만나는 것을 낙으로 살던 사람이니까요.

유민 아빠는 유민양이 수학여행을 가기 일주일 전쯤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합니다.
유민양이 수학여행을 간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고 단 돈 만 원의 용돈도 건네지 못했지요. 속 깊고 아빠를 사랑하던 딸 유민양은 아빠가 혹 무리해서 용돈이라도 보낼까 싶어 수학여행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유민양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자신이 모아 용돈으로 가져 간 만 원짜리 여섯 장이 지갑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유민 아빠는 그 중 한 장을 지갑에 늘 넣어가지고 다닌다고 합니다.

김영오씨는  2013년 난생처음 정규직이 되었습니다. 정규직은 노조에 가입해야 한다고 해서 노조원이 되었고 야근을 하느라 노조 활동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제대로 해 준 게 없이 딸을 잃어  미안한 유민 아빠는 둘째 딸 유나양이 사는 세상만큼은 안전한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모든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폭염 속, 광화문 한복판에서 40일을 단식하게 만든 건 약속을 어긴 대통령과 국회 때문입니다.

집단 단식을 시작할 때 유가족들은 삼일이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삼일을 최대 단식 기일로 잡았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단식을 해도 아무런 진전도 해법도 생기지 않아 유민 아빠는 단식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이지요.

단식을 하면서 유민 아빠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로 마음 아파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 연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요.

단식농성하면서 '재난가족안전협의회' 분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오셔서 저희 유가족을 보시자마자 눈물을 쏟으셨습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같은 아픔을 겪었던 분들이었습니다. 제 손을 꼭 쥐는데 느낌이 사뭇 달랐습니다.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만이 느끼는 감정의 전이였을 겁니다! 저도 울었습니다. 슬픔이, 억울함이,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유치원 아이들 19명을 포함해서 23명이 죽었고 6명이 다친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건, 55명이 죽고 78명이 다친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사건(1999년), 192명이 죽고 148명이 부상당한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2003년), MT중인 대학생 등 13명이 목숨을 잃고 26명이 크게 다친 춘천 산사태(2011년). 2013년 유민이 또래의 학생 5명의 목숨을 앗아간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사건 그리고 2014년 올해 일어난 장성노인요양원 화재사건(21명 사망 8명 부상), 고양버스터미널 화재사건(5명 사망, 42명 부상) 등 대형 참사 유가족 분들입니다.

참 부끄럽게도 저는 몰랐습니다. 워낙 대형 사건들이라 오가면서 참사라는 사실만 알았지,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그야말로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했습니다. 재난가족안전협의회분들 말씀을 듣고서야 내가 얼마나 바보처럼 살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대형 참사들은 하나같이 발생에서 수습까지 인재였고, 우왕좌왕했고, 서둘러 종결시켰습니다. 죽거나 다친 유가족들 역시 하나같이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요구했고요. 그러나 왜 참사가 일어났는지 본질과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처벌은 실무선에서 그쳤고, 매해 유사한 사건들이 재발했던 겁니다. - 본문 중에서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합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 대힌민국은 분명 달라야만 합니다. 이후에도 여전히 못난 시민으로  남아 계시겠습니까? 세월호를 잊는 순간 바로 자신이 선 발밑이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유민 아빠처럼 저와 당신은 못난 시민, 못난 아빠, 못난 엄마가 되어 울부짖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왜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세월호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대형 사고의 대부분이 피할 수 없는 사고라기 보다는 안전불감증과 인명에 대한 경시, 돈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안이한 태도가 키워낸 인재입니다.

인재는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구조를 바꿔내고 안전한 기틀을 만들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천재지변의 상황에서도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국가의 의무입니다.

시민들이 가만히 앉아 방관만 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시민들 스스로  국가가 책임과 의무를 다 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안전사회의 틀을 만들어내도록 힘을 모아야만 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안전한 지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는지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 호라는 한 배를 타고 항해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세월호 침몰 이전에 저는 세상에 무관심했습니다. 제 먹고 제 살기에만 급급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남 일처럼 대했습니다. '뭐, 잘 굴러가겠지.' 그게 다였습니다. 그런 안이한 생각이 세월호를 침몰시킨 겁니다. 세상이 제멋대로 굴러가는 동안 저는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죄인이고 못난 아비입니다.

세월호 이후에 저는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난생처음 집회에도 참석하고 시위도 해봤습니다. 40일 넘게 단식농성도 하게 되면서 하루아침에 유명해졌습니다. 덕분에 별별 악의적인 험담과 비난을 다 들어야 했고, 악플의 홍수도 견뎌야 했습니다. 지금 저한테 일방적으로 욕하고 비방하는 분들, 나중에 진상도 규명되고, 성역 없이 책임자도 처벌되고, 안전한 나라로 거듭나면 그분들도 고마워할 것이라 믿습니다. - 본문 중에서

덧붙이는 글 | 못난 아빠/ 김영오 지음. 박태옥 글꾸밈/ 부엔리브로/ 12,000원



못난 아빠 - 이제야 철이 드는 못난 아비입니다

김영오 지음, 박태옥 글꾸밈, 부엔리브로(2014)


태그:#못 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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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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