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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에 판서하며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는 모습에 남다른 아우라가 존재한다.
▲ 김영주 선생님 강연 장면 칠판에 판서하며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는 모습에 남다른 아우라가 존재한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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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숲 협동조합 연구회, 그 두 번째 초청 강연 이야기다. 첫 강연이었던 오연호 대표 강연때는 수능한파가 오더니, 두 번째 손님을 모시는 날(12월 2일)에는 첫눈이 내렸다. 뭐, 그전에도 싸라기눈이 잠든 틈을 타서 땅을 핥고 지나갔던 적은 있었다. 허나, 그날 아침의 눈이야말로 진정한 첫눈스러운 자태를 지니기에 그렇게 인정하기로 한다.

우리 동네(경북 구미) 특성상, 눈이 내리면 모든 운전자들은 운전의 기억을 상실한다. 택시기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자전거보다 늦은 속도로 도로 위를 걷는다, 아니 구른다. 김영주 선생님을 모시기로한 날은 바로 그런 교통대란이 예상되는 위험한 날이었다. 다행히 눈발은 오후가 되자 그쳤고, 예상했던 큰 혼잡은 피했다.

퇴근길 정체를 눈탓으로 돌리며 부랴부랴 성당에 도착했더니, 다행히 아직 강연이 시작되지는 않았다. 앞자리에 앉아 숨을 가다듬으며 단상을 바라보는 순간, 살짝 놀랐다. 스크린과 빔 프로젝트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흰색 칠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 아닌가? 현란한 시청각 장비 따위는 거부한다는 강연의 고수들만 사용하는 바로 그 칠판이었다. 얼마나 재미있을까? 말씀으로만 들었지, 처음 뵙는 분이다. 내심 기대가 되었다.

카메라의 초점을 손보고 있는데, 주변의 수군거림이 잦아들며 누군가 내 곁을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드디어 오셨구나, 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 이번에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백발의 노인 한분이 외투를 벗고는 단상을 향하고 있었다. 신부님의 소개 및 인사 후에 마이크를 건네받은 분은 나의 예상과는 거리가 먼 김영주 선생님이셨다. 강연회를 준비하면서도 나이를 여쭤볼 생각은 전혀 못했던 것이다.

올해 여든 한살이신 선생님. 지학순 주교님과 장일순 선생님, 김지하 시인등과 함께 원주 협동조합의 기틀을 마련하시고, 현재까지도 협동조합 관련 일을 하고 계신다. 우리나라 협동조합 역사의 산 증인이시다.
▲ 김영주 선생님 올해 여든 한살이신 선생님. 지학순 주교님과 장일순 선생님, 김지하 시인등과 함께 원주 협동조합의 기틀을 마련하시고, 현재까지도 협동조합 관련 일을 하고 계신다. 우리나라 협동조합 역사의 산 증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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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협동조합의 산 증인을 만나다

여기서 잠깐 김영주 선생님을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메카라고 불리는 원주에서 1970년대부터 지학순 주교님,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김지하 시인등과 함께 협동조합 운동을 일으켰던 분이다. 한마디로 한국 협동조합의 산 증인인 셈이다. 그리고 그분의 현재 나이는 81세. 사실, 두 시간 남짓한 강연 시간을 버텨 내실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걱정은 여지없이 기우임이 드러난다. 강의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원주 협동조합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놓으셨다. 더구나, 아침 일찍 원주에서 서울에 들렀다 구미까지 내려온 분이라고는 생각 들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강의에 임하셨다. 강의 전 평범한 백발의 노인에서 강의를 듣고 난 후 협동조합의 거장으로 이미지가 확 바뀌었다.

강의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는 시대에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며, 그러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상호존중과 상부상조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장일순 선생님의 말씀도 강조되었다.

첫눈이 내린 추운 날씨에도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김영주 선생님의 협동조합 이야기를 듣고 있다.
▲ 김영주 선생님 강연 장면-2 첫눈이 내린 추운 날씨에도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김영주 선생님의 협동조합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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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나서, 지학순 주교님과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만남에서부터 협동조합 운동을 진행하는 과정 등의 다양한 일화들이 소개되었다. 군사정권의 가혹한 탄압아래에서도 평양 출신의 젊은 주교와 원주 출신의 피끓는 청년은 운명처럼 만났고 서로를 알아보았다. 로마 교황청에 유학 가서 이탈리아의 협동조합을 직접 목격한 지학순 주교의 눈에, 진취적이고 인간적인 장일순 선생이 눈에 띄인 것이다.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평화통일을 주장하다가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8년형을 선고받고 3년간 옥살이를 했던 장일순 선생. 그는 교도관의 검열을 피해서 진보적인 서적을 읽으려고 모든 책을 외국의 원서로 구해서 읽었다고 한다. 그의 진보적인 사상은 역설적이게도 독재정권의 옥살이 중에 다듬어져 완성된 것이다.

그렇게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원주에 카톨릭센터를 설립하고, 그때부터 사회 활동을 시작한다. 교회 일치 운동을 시작으로 원주지역의 종교계를 묶어내고, 낙태 반대 등의 생명운동과 협동조직운동을 전개한다. 원주 협동조합의 기틀이 다져지는 순간이었다. 김영주 선생의 역할은 그 당시부터 실무적인 일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삥땅 심포지움'이 열리게 된 계기

당시의 여러 에피소드를 말씀해 주셨지만,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가지만 지면으로 옮겨본다. 이름하여, '삥땅 심포지엄'. 요즘은 볼 수 없지만, 내가 어릴 적 만해도 버스안내양(여차장)이라 불리는 소녀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시골에서 도시로 돈 벌러 나와 집안 생활비와 동생들의 학비를 대야했던 소녀 가장들이었다. 70년대에 새벽 4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고 그들이 받는 일당은 고작 540원(1977년 기준). '삥땅'이라는 부수입이 없다면, 딸린 식솔들을 책임지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한 소녀들 중 한 소녀의 이야기다.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인 삥땅을 챙기던 그녀는 어느 순간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런 삥땅이 없으면 동생들 학비며 부모님 치료비가 턱없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계속하는 건 일종의 도둑질이었으므로 혼란에 빠진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소녀는 용기를 내어 서울의 한 교회에 편지를 쓴다. 이러이러한 상황인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 교회의 목사는 섣불리 답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 편지의 내용은 서울 시내의 교회와 성당등지로 순식간에 퍼지게 된다. 수많은 목사와 신부들이 또렷한 답변을 찾지 못하는 상황속에서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에게도 전달되었다. 그리고, 지학순 주교는 누구보다 명쾌하고 확실한 답을 내리게 된다.

"버스회사 과장님, 시청 교통과장님, 경찰서장님, 그리고 장관님들. 여러분들은 월급만 가지고 생활할 수 있습니까? 아니, 그렇게 생활하십니까? 이 소녀에게 도둑질을 했다고 욕할 수 있는 분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지학순 주교가 지적한 전 국가적인 부패의 문제는 당시로써는 함부로 언급해선 안될 사안이었으며, 목숨을 걸만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지학순 주교는 한 발 더 나아가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심포지움을 개최한다. 1970년 4월 28일. 서울 종로 YMCA 에서 열린 삥땅 심포지움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심포지움을 통해 당시 버스 안내양들의 열악한 근무조건이 소상히 공개되었으며, 그로 인해 생존권과 관련된 의식이 깨우쳐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후 생존권에 관한 문제는 농민들에게 쌀 생산비 조사와 노동자들의 월 생계비 조사운동으로 확산된다. 최저 생활비를 위한 생존권 보장 운동의 불길이 타오르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1973년에 시작된 부락개발사업의 송아지 분배이야기와 1975년 국내 최초로 유기농 생산운동을 전개할 때의 이야기 등을 구수한 옛날이야기처럼 한 보따리 풀어놓으셨다. 그리고 강의의 마지막에 정리해주신 말씀은 지금껏 내가 이해하던 협동조합의 가치를 근본에서부터 고민하게 만들고 말았다.

협동조합은 잃어버린 이웃을 찾는 운동이고, 이는 결국 진정한 인간화의 과정이며, 상생의 원리를 통해 결국에는 생명의 존엄에 다가가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협동조합은 바로 생명이라는 것이다. 협동조합을 단순히 착한 기업의 시각에서 풀어보려던 나에게 일침이 가해지던 순간이었다.


태그:#무위당 만인회, #원주 협동조합, #김영주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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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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