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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월 25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규제개혁을 강조하며 "일자리 창출과 투자 가로막는 규제들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때문에 기업이 투자를 하고 있지 않으니, 규제를 없애면 기업이 투자를 늘리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개혁을 강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상반기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진돗개는 한 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怨讐)', '암덩어리'" 등 과격한 표현을 쏟아냈었다.

표현이 과격하지만 그만큼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과연 정부가 없애고자 하는 규제들 모두가 우리가 쳐부숴야할 '원수(怨讐)', '암덩어리'에 해당하고, 진돗개처럼 끈질기게 물어져서라도 단두대에 올려서 없애 버려야할 것들일까? 혹시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규제마저 한꺼번에 없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국무조정실에서 개설한 '규제정보포털(https://www.better.go.kr)에서는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있는 규제개혁의 분야와 내용, 추진 현황을 자세히 볼 수 있다. 그런데 규제개혁 분야에는 기업의 투자와 경영에 직접 연관되는 분야뿐만 아니라 교육, 국가재정, 고용, 금융, 복지, 부동산, 환경 등 우리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분야를 모두 다루고 있다. 정부에서 규제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박근혜 정부 들어서 사라져가고 있는 '꼭 필요한' 규제들

- 학교 근처에 관광호텔 짓는 것도 규제개혁
정부는 규제개혁의 일환으로 학교 주변 관광호텔 건립 허용을 추진하고 있다. 학교보건법 상 상대정화구역(학교로부터 200미터 이내)에는 지자체에서 심의하여 관광호텔 신축을 승인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지자체로부터 건축 승인이 나지 않은 관광호텔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개혁회의에서 거론했다. 그러자 정부가 해당 지자체에 관광호텔 건립 승인을 권고하였고, 결국에는 지자체와 호텔개발회사 간 소송으로까지 번졌다.

게다가 상대정화구역 내 관광호텔 신축을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지자 교육부는 훈령을 제정해서라도 이를 허용하려 하고 있다. 학교정화구역은 학생들의 안전과 관련된 사항으로, 관광호텔 신축에 대해 학교, 학부모, 교육청이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도 규제개혁이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정부는 밀어붙이고 있다.

- 상속세 특혜도 규제개혁
규제개혁의 이름으로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 특혜도 추진되고 있다. 그간 가업상속을 명분으로 상속세를 공제해왔는데 정부는 이 공제 규모를 확대하고 요건을 완화하려 한다.

사실 가업상속과 관련하여 이미 공제율은 2008년 20% → 2013년 100%, 공제한도는 2007년 1억원 → 2013년 500억 원, 적용대상은 2009년 1000억 원 이하 중소기업 → 2013년  3000억 원 미만 중견기업으로 공제율과 공제한도는 오르고 대상 규모는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공제대상을 매출액 3천억 원→5천억 원 미만 중견기업으로 확대, 가입 요건 완화(10년 이상 경영 → 5년 이상), 최대주주 지분보유요건 완화, 상속인의 가업 사전 종사(2년 이상) 및 1인 단독상속 요건 폐지, 사후관리기간 단축(10년→7년), 각종 사후관리의무 완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상속세 공제 요건을 무력화하고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수억 원을 상속 받았을 때도 상속세를 납부한다. 그런데 정부의 이러한 계획은 특별히 가업에 관여하지 않은 자가 500억 원의 재산을 상속받고도 이를 전액 공제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 것이다. 이는 상속세 체계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으로 세금 특혜를 규제개혁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와 관련한 법률 개정안이 상정되었고 부결되었다.)

- 주택 분양가 상한제 폐지도 규제개혁
주택 분양가 상한제도 규제개혁 대상으로 지목되어 폐지가 추진되고 있다. 주택 분양가 상한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집값 안정화를 위해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종합부동산세 등과 함께 사회적 합의를 거쳐 도입되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주택분양가 상한제는 과거 집값 급등기에 도입되었으나, 주택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도 지속 적용되어 주택공급을 위축하고 있다는 이유로 폐지하려 한다.

그러나 주택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고 있는 현재 주택공급은 위축된 상황이 아니라 과잉 공급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11월 25일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전국 미분양 주택은 전월 대비 2.4% 증가한 4만92가구이며, 이 중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85㎡를 초과하는 미분양 주택도 1만4109호에 달한다. 현재로서는 주택 분양가 상한제 때문에 주택공급이 위축되었다고 볼 여지는 없다. 

- 의료를 돈벌이로 만드는 것도 규제개혁
박근혜 정부는 투자활성화를 명분으로 영리병원을 막고 있는 여러 규제들을 끊임없이 없애려 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법인 해외 진출 시 영리자법인을 허용하여 대형병원들이 비영리인 국내 의료 사업보다는 영리인 해외 의료 사업에 치중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또한, 자법인을 통해 건강기능음료 연구개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영리병원 허용이 국민들의 저항으로 불가능해지자 영리 자회사 설립을 확대하여 의료영리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의사-환자 간 원격 의료도 규제개혁 이름으로 허용하려 하고 있다. 이 일환으로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고 지난 10월부터 6개월 간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원격 의료에는 의사들의 절대 다수인 95.22%가 반대하여, 대한의사협회가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아 보건복지부 단독으로 진행 중이다. 의사들도 반대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실효성도 없는 원격 의료를 추진하는 것은 의료를 기업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설치도 규제개혁
강원도 양양군에서 추진하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는 이미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환경 훼손을 이유로 2회나 부결되었다. 그러나 지난 8월 박근혜 대통령이 참가한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규제개혁 대상으로 논의된 후 지난 11월 노선이 확정되어 설치가 추진되고 있다. 국립공원의 생태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조차도 규제개혁이라는 말 한마디에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박근혜식 규제개혁은 부자와 재벌을 위한 것

박근혜 정부는 규제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기업의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가로막는 전근대적이고 불필요한 규제는 당연히 없어져야겠지만,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경제민주화 실현, 사회적 약자 보호, 생태환경 보호를 위한 규제는 오히려 강화되어야 한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도 안전과 관련한 규제를 규제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없애거나 완화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과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규제개혁을 강조하는 것은 규제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활용하여 우리에게 꼭 필요한 규제마저도 없애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꼭 필요한데 사라지고 있는 규제들이 없어지면 결국 그로 인한 이익은 결국 부자와 재벌에 돌아갈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위원회는 공장진입로 허용 등 단순 민원성 규제개혁만을 추진하지 않는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 완화,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통한 조선업종의 근로시간 유연성 확보 등 근로조건을 기업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것을 규제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심의하고 있다.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과세 완화,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중소벤처기업 인수 시 지분율 요건 완화, 주식회사의 외부 회계감사 기준 100억 원 이상으로 상향 등과 같은 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고 회계 투명성을 높여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조치도 없어져야할 규제로 간주하고 있다. 우리 국민이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규제개혁위원회는 규제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실로 수많은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이제는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허울 속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규제마저 덤터기로 사라져가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 일환으로 당면해서 권한은 막강하나 책임은 전혀 없는 규제개혁위원회의 개혁이 필요하다. 행정규제기본법에 따라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민간위원에는 현재 노동자, 농민을 대표하는 사람도 없고, 환경, 교육, 보건, 복지 전문가도 전혀 없다.

대부분 대학교수나 연구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기업 사외이사를 겸직하는 위원은 4명이나 되고, 민간위원장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 출신이다. 규제개혁위원회가 그 구성부터 친기업 성향을 띌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구성원을 노동조합, 농민단체, 각 분야 시민단체 등으로 확대하여 규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모하는 기구로 규제개혁위원회부터 개혁해야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1) 이 기사는 진보정책연구원 홈페이지(www.uppi.or.kr)에도 게재되었습니다.
2) 글쓴이는 진보정책연구원 경제전문 연구원 최동석 입니다.



태그:#규제개혁, #규제개혁위원회, #투자활성화, #일자리창출, #단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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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책연구원은 통합진보당의 싱크탱크입니다.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 이래 10년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정책을 연구하며 진보의 발전을 위해 매진해왔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매주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진보적 시각으로 분석하고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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