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 플라차거리에서 열린 음식축제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안녕하세요? 한국사람 맞지요. 혹시나 하고 가만히 말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우리말을 하네요. 반가워요"
"어머, 우리나라 사람이었어요. 우리도 정말 반가워요."

만난 지 오래된 사람처럼 그들과 친숙하게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두 모녀는 한국을 떠나온 지 2개월이 되었고 아직도 한 두 달은 더 배낭여행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타향에서는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는데 한국 사람을 만나니 정말 반가웠다.

메주고리예성당 주변 숙소에서 단잠을 자고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3층에서 내려다보이는 그곳의 아침 풍경은 우리나라와 아주 비슷했다. 학교를 가려고, 직장을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이 아주 친근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색이 변하는 단풍의 모습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가 없었다. 단풍은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가 최고인 듯했다.

다시 버스에 몸을 싣고 크로아티아 중에 두브로브니크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국경선을 넘어야하는데 거기에선 버스에서 전부 내려 걸어 국경선을 넘은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출발을 했다. 오히려 기다리는 시간이 없어 다행 중 다행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크로아티아 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풍경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비취색 바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은 가히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3시간을 달려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했다.

두브로브니크는 9세기부터 발칸과 이탈리아의 무역중심지로 막강한 부를 축적했다. 11~13세기에는 금, 은의 수출항으로 번영하였다. 1667년엔 큰 지진으로 도시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가 나폴레옹 전쟁 때 다시 옛날의 번영을 누렸다. 1994년 구시가지가 국제연합교육과한문화기구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1999년부터 도시 복원작업이 시작되어 성채, 왕궁, 수도원, 교회, 등 역사적인 기념물 가운데 가장 크게 손사된 건물들이 복원되었고 옛 명성을 되찾을 만큼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고 한다.

..
▲ 두브로브니크성곽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
▲ 1667년 대지진에도 끄덕하지 않았던 성사비오성당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
▲ 오노프리오 샘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
▲ 천연재료로만 약을 만든다는 700년 된 말라브라차약국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두브로브니크의 첫 풍경은 돌로 쌓아 올린 높은 성곽이었다. 그 성곽은 전쟁 중에 사람들이 인간 띠를 만들어 지켜낸 성곽이라고 했다. 성안으로 들어가서 제일 처음 성사비오르성당을 볼 수 있었다. 성사비오르성당은 1520년, 1528년 두차례의 지진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지은 성당이라고 한다.

그 후 1667년 대지진에도  지을 당시의 그 모습이라고 한다.  그 건너편에는 '오노 프리오 샘(음수대)'이 있고  프란체스코수도원과 700년 된 말라브라차란 약국이 있다. 그곳은 천연재료 만든 크림종류가 아주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곳의 소문을 알기도 했다.

...
▲ 축재를 알리는 포스터가 걸려 있는 그옆에는 시계탑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
▲ 축제를 위한 축제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그곳을 나오면 바로 플라차거리로 이어져있다. 그날은 마침 음식축제가 있는 날이라 우리 일행도은 그 축제에 참여하기로 했다. 음식축제에 참여 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가이드의 말이었다. 3유로(우리나라 돈 약 4200원)를 내고 티켓을 사면 접시와 와인 잔, 포크와 나이프를 준다. 축제가 시작되면 티켓을 내고 자기가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나와 언니는 생선과 해산물 앞에서 올케는 고기 앞에서 축제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기와 생선을 나누어 먹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올케는 고기코너를 못 찾겠다면서 결국은 우리와 합류를 했다.

...
▲ 두달째 배낭여행을 한다는 두 모녀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그때 한국에서 온 두 모녀를 만난 것이다. 71세의 어머니는 마냥 즐거운 표정이고 딸은 "우리엄마는 애로사항을 잘 몰라요"해서 한바탕 웃기도 했다. 그 어머니는 우리에게 "한살이라도 젊었을 때 여행 많이 다녀요. 나도 왜 더 일찍 시작 못 했나 후회 돼요."한다. 그는 지난 해 추석에는 명절도 지내지 않고 동유럽을 딸과 함께 떠났다고 한다. 물론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한다. 한번 그래 놓으니 또 떠난다고 해도 식구들이 그러려니 한단다.   이것저것 따지면 아무것도 못한다면서. 시간만 나면 여행 생각이라고 전해주기도 했다. 꽤나 공감이 되는 말이었다. 우리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수다를 떨고 있으려니 드디어 축제가 시작된다는 했다. 축제에서는 질서가 잘 안 지켜지는 것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인 듯 했다. 더구나 그곳 사람들은 덩치가 커서 체격이 작은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어딜 쑤시고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다 내 앞에 있던 덩치가 아주 큰 남자가 음식을 받아들고 나가자 조그만 틈새가 생겼다.

난 그 틈새로 지친 얼굴을 내밀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접시를 들고 있었다. 사방에서 사람들은 "here here~~"하며 접시를 들이밀고 소리를 질러댔다. 먹고 사는 것이 뭔지. 그곳에서 서비스하는 사람들은 근처 호텔에서 그런 행사를 하기에 호텔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얼마나 기다렸나? 인심 좋은 아가씨가 내 접시에 이것저것을 담아주었다. 다행히 내가 좋아하는 해물과 생선으로 접시를 채워졌다.

..
▲ 음식축제시작 전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
▲ 내가 처음에 받아든 음식메뉴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
▲ 와인도 한잔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우리나라 오징어순대인 듯한 것을 무려 두 개나 담아주었다. 그런데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내 접시에 담긴 음식을 보더니 한국에서 온 젊은 여성들이 "어머 저거 맛있겠다."한다. 바로 오징어순대를 가르치면서. 난 얼른 그에게 오징어 한 마리를 그의 접시에 놓아 주었다. 그러자 그는 맛을 보라며 파스타를 덜어주기도 했다. 빵을 받은 사람은 다른 음식과 고기는 또 다른 음식과 나누어 먹는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음식을 더 맛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와인을 맛봐야 하는데 돈을 따로 내는 것인가? 하며 한동안 망설였다. 그러다 와인코너 앞에서 무조건 와인 잔을 내미니 인심 좋게 맛좋은 와인을 한잔씩 따라주는 것이 아닌가.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와인 한잔에 그들의 넉넉한 인심이 그대로 전달이 되는듯했다. 와인을 맛보며 우린 무엇인가 해냈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마주보면서 기분 좋은 웃음을 아주 큰소리로 웃었다. 며칠 만에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마신 후 우린 자유 시간을 즐기러 2Km의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산책에 나섰다.


태그:#음식축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주로 사는이야기를 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