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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우리는 세월호 사고를 통해 한 사회의 문화가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새들마을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 즉 교육이 이 사회의 문화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배움으로 바른 문화를 만들기 원하는 이들이 모여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산하 '새들마을학교'는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를 10월 9일부터 12월 25일까지 12회 진행합니다. 이를 계속 연재합니다. - 기자말

파커 팔머가 쓴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에는 '달에서의 실종'이라는 모의 게임이 나온다. 학생들은 자신을 달의 표면에 추락한 우주선의 승무원이라고 가정한다. 추락 뒤에 15가지 장비가 남았다. 추락한 곳에서 300킬로 떨어진 곳에는 또 다른 우주선이 그들을 지구로 귀환시키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달에서 본 별자리 지도, 몇 리터의 물, 나침반, 산소 탱크, 밧줄 등을 사용해서 추락 지점에서 구조선까지 이동해야 한다.

유용성에 따라 15가지 장비에 대해 등급을 매긴다. 학생들은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각자 등급을 매긴다. 그 다음에는 6~8명 정도가 한 그룹으로 모여 각자 매긴 등급에 대해 토의하고 이견에 대해 협상한 뒤, 그룹이 공동으로 등급을 정한다. 15가지 장비의 상대적 유용성에 대해 합의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룹이 공동으로 매긴 등급과 개인이 매긴 등급을 미항공우주국(NASA)이 제공한 등급과 비교한다. 그룹 점수는 거의 언제나 개인 점수의 평균보다 높았다.

새들마을학교에 다니는 중학교 3학년 김지호 학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일반학교에서 이 게임을 한 적이 있다. 반 친구들 중 '달에서의 실종' 게임을 아는 학생은 김 군을 포함해 2명. 이들은 인터넷에서 NASA의 장비 선정 목록을 본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이 둘만 같은 조로 묶었다. 다른 친구들은 6명씩 그룹을 이뤄서 장비의 등급을 매겼다.

결과는 아무 사전 정보 없는 그룹이 2명보다 더 좋았다. 지호 학생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타그룹의 점수를 능가할 수 있다 생각했고, 자신이 자만했음을 알았다. 이야기를 듣던 석현수 학생은 한 개인보다는 주위 사람들과 공동으로 힘을 합쳐 좋은 점수를 낸 거 같다고 평했다.

이날은 새들마을학교 학생들로 한 모둠을 이뤘다. 학생들이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은 새들마을학교 학생들로 한 모둠을 이뤘다. 학생들이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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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8번째 시간에 참석한 이들은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5부부터 7부까지 읽고 토론했다. 이전 시간, 참석자들은 가르침과 배움은 상호 변화를 요구하며 가르치고 배우는 자는 인격적 진리 앞에서 열려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공유했다. (관련 기사 : 어려운 수학 문제를 명상으로 풀었다고?) 이번 시간에는 상호 변화를 위한 훈련의 과정과 영적인 덕목에 대해 함께 공부했다.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공간

파커 팔머는 "가르친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보통 교실을 실천하는 장소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파커 팔머는 교실이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배운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지식만을 단순히 습득하는 일이 아니다. 참배움은 삶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일이다. 그리고 교실은 세계의 축소판이다. 따라서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바로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 받아들이고 참여하고 책임지도록 가르쳐져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순종'이란 노예적이고 기계적으로 추종한다는 뜻이 아니다. 분별하여 듣는 것이다. 또 들은 말에 담긴 인격적 의미에 신실하게 응답하는 것이고, 실천하는 것이다. 인격적 의미에 응답한다는 것은 "자신이 화자 및 그 사람의 말과 언약 관계에 있음을 인정하며 인격적으로 응답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진리에 대한 순종'을 가르치고 배우기 위해서는 합의에 의한 학습법이 도움이 된다. 앞에서 말한 '달에서의 실종' 게임이 그 훌륭한 예다.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서로에게 귀를 기울일 때 진리는 우리가 서로에게 순종하도록 만든다. 서로에게 순종함으로 우리는 진리를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합의는 우리가 순종과 언약을 실천하는 실제적인 과정이다. 합의는 다수의 의견을 곧 진리로 여기는 의견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우리가 서로와 당면 주제에 귀 기울이고 응답할 때 나타나는 진리는 단순히 집단의 의견으로 전락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초월한다. 합의란 바로 그러한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203쪽)

이렇게 서로에게 순종하며 더 좋은 합의에 이르게 될 때, 우리는 개인의 총합보다 더 나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지호 학생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이고 함께 지혜를 짜내 합의에 이를 때 더 좋은 결론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함께 푸니깐 수학 문제를 더 꼼꼼히 풀 수 있었다." 수업 후 학생의 소감.
 "함께 푸니깐 수학 문제를 더 꼼꼼히 풀 수 있었다." 수업 후 학생의 소감.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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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고독, 그리고 기도 속에서

파커 팔머는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공간을 창조하려는 교사들은 먼저 자기 내면부터 바꾸어 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사의 마음 변화에서부터 가르치는 일의 변화가 시작되어야 하며, 사랑과 진리가 우리 마음을 재형성하도록 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영성 훈련을 위해 그는 교사들에게 침묵과 고독 속에서 잠잠히 머무는 시간을 가지라고 권한다. 침묵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 주고, 고독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 준다. 이 속에서 우리는 진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만드는 자아의 왜곡들을 발견하고 바로잡을 수 있다.

그는 침묵과 고독의 훈련은 기도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 낸다고 확신한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정한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세계를 인정한다. 그리고 기도 속에서 우리는 우리와 세계를 하나로 묶어 주는 영적 끈들을 인정한다. 파커 팔머는 기도는 어떤 면에서는 역설의 방법이라고 정의한다. 세계 전체의 말을 듣기 위해 침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세계 전체의 관계성을 느끼기 위해 고독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방성, 경계, 그리고 환대의 '공간'

파커 팔머는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공간'은 다음의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먼저 우리는 배움에 대한 방해물, 곧 진리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숨을 수 있는 장벽을 치워야 한다. 이것이 '개방성'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무지하게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 또 우리가 진리를 찾으려 애쓸 때 동시에 진리도 우리를 찾으려 애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배움의 공간이 무작정 개방되어 있을 수는 없다. 학생들은 무한한 개방성으로 도망가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경계'가 있어야 한다. 어디까지가 배움의 공간인지 교사가 신중하게 정해야 하고 이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경계 없이 무한한 개방성으로 도망하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배움의 공간은 개방성과 경계가 공존하는 역설적인 환경이기 때문에 긴장감이 서린 장소일 수 있다. 때문에 긴장감을 해소할 '환대'가 필요하다. 파커 팔머에게 환대란 "우리가 서로를, 서로의 갈등을, 서로의 새로운 생각을 개방적이고 주의 깊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배우는 공간에 환대가 필요한 이유는, 배움에서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움에 따르는 고통스러운 일들이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무지의 폭로, 잠정적 가설에 대한 검증, 거짓되고 치우친 정보에 대한 문제 제기, 서로의 사상에 대한 비판 같은 고통스러운 일들 없이는 어떠한 배움도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 하나하나는 진리에 대한 순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이 위협과 비난을 느끼는 분위기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166쪽)

본질을 분별하고 붙잡는 배움

교육문화연구학교 참석자들은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을 나눴다. 한 참석자는 순종이란 게 수동적인 게 아니라 '본질을 분별하고 관계 안에서 깨어서 만나 가며 이뤄지는 진리를 따르는 응답'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다가왔다고 했다. 다른 참석자는 가르침과 배움에 있어서 고통을 견뎌 가는 데에는 환대의 역할, 함께하는 공간과 신뢰하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참석자들이 토론하는 모습.
 참석자들이 토론하는 모습.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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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팔머가 말하는 영적 훈련을 해 나가야겠다는 다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는 "내가 먼저 변해야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고 변화하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고 말했다. 다른 이는 말이 침묵의 기회를 깨뜨리지 않도록 기다리는 훈련을 해 나가겠다고 했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진리와 만나게 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아이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잘 살피면서 필요한 이야기를 잘 포착하고 진리 안에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저 혼자서는 어려운 일인 거 같습니다. 함께 가르치는 길을 걷고 있는 다른 선생님들과의 관계를 굳게 다지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참석자 중 현직 교사의 나눔 중)

모둠 토론 후 발표하는 새듫마을학교 학생.
 모둠 토론 후 발표하는 새듫마을학교 학생.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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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새들마을학교 학생들끼리 토론 모둠을 짰다. 한 학생은 순종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위압감이 느껴지는 건 그 전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 때문인 거 같다며, 순종은 진리에 하는 것이라는 본질을 붙잡아야겠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은 가르치고 배우며 맺는 관계가 긴장감을 놓치게 되면 도구적인 관계로 전락할 수 있음을 주의하며 지금 허락된 관계를 충실히 맺어야겠다고 마음을 나눴다.

삶과 행위가 넘쳐나서 나오는 말의 초월성

새들마을학교 최봉실 교장.
 새들마을학교 최봉실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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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실 새들마을학교 교장(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대표)은 침묵과 고독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태초의 말의 본질은 행위의 충만이라고 지적했다.

최초의 소리로서의 말의 본질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감탄을 표할 때, 바위에 부딪혔을 때 아픔을 표현할 때처럼, 우리 존재 안에서 넘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말은 삶과 행위가 넘쳐나서 내 안에서 나오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말이라고 했다.

또한 최 교장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말의 초월성을 지적했다. 지금 이순신에 대한 글을 읽으며 이순신이 치열하게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대목을 읽다가 그 헌신에 감동하여 울컥하게 될 때, 바로 그때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관련 기사 : 한글창제와 명량대첩, 모두 '충' 덕분? )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언어생활을 돌아보아야 한다.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말, 자신이 없다고 걱정하는 말, 자신을 향해 규정하는 부정적인 표현이 우리 생활을 얼마나 지배하고 있는지 돌아보자고 했다. 최 교장은 삶의 넘침으로서의 말,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말의 본래 힘을 잘 회복하며 살아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침묵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우리를 번잡하게 하는 말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걸 끊어내는 작업으로 침묵과 고독이 필요합니다. 쓸데없는 말들을, 단절시키는 말들을, 본질을 만나지 못하게 막는 말들을 고요히 잠재울 때 비로소 우리 안에 서서히 부상하는 진리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최 교장은 예전보다 침묵과 고독의 시간을 갖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우려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더 편리한 것들이 나오는 가운데 우리는 침묵의 시간을 더 갖기 어려워졌습니다. 이러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큰 의지를 내야 하지요. 우리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시도들은 항존합니다. 이를 분별하지 못하면 우리는 본질을 상실한 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경계하고 깨어 있지 않으면 지금의 노력도 5년 뒤엔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최 교장은 인생의 문제를 맞닥뜨리게 될 때, 두 갈래의 갈림길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게 힘들어서 진이 빠지고 피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버티고 넘어서면 진리가 주는 환대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고 했다. 이렇듯 삶은 언제나 역설로 이뤄져 있고, 이 역설은 음양의 원리처럼 긴장을 내포한다. 아이가 거짓말을 할 때 바로잡아 주기 위해 가르치는 자는 혹독하게 야단을 치는 것과 동시에 '내가 너를 정말 사랑해서 나쁜 길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같이 전해야 한다. 이 두 상반된 듯 보이는 가치를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고 붙드는 긴장, 우리는 바로 이 역설의 긴장을 견디는 역량을 길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연결된 존재라고 한다면, 이 모든 연결된 존재의 안위를 생각하는 그가 누구든지, 신이든지,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이든지, 어릴 적 주일학교 선생님이든지, 우리가 이 역설과 긴장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맞게 될 긴장과 갈등을 넘어서도록 환대해 주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 어려움보다 더 큰 환대의 달콤함을 우리가 맛본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이 길이 힘들지만 함께 가자고 기꺼이 손 내밀 수 있을 겁니다."

끝으로, 최 교장은 참교육의 걸음을 고민하면서 우리를 환대해 주었던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와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저자들의 수고에 감사드리며 우리가 함께 공부한 내용을 힘써서 살아가자고 당부했다.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다음 시간(12월 5일)에는 우리 교육을 고민하면서 대안적인 가르침과 배움을 살아왔던 학교들의 교육 이념을 읽고 전체 토론의 시간을 갖는다. 오산학교, 풀무학교, 거창고등학교, 간디학교, 이우학교, 밝은누리움터 등의 교육 이념을 함께 공부하며,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이들이 생명의 교육을 고민하는 우리를 어떻게 환대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들마을학교 홈페이지(club.cyworld.com/saedeulmaeul)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새들마을학교, #교육문화연구학교, #교육,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파커 팔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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