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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추대, 현장 경선, 여론조사, 모바일 투표, 대의원 선거, 국민참여경선….

새정치민주연합이 1990년대 민주당 시절부터 지금까지 당 대표 선출 때마다 도입해온 경선 룰(규칙)들이다. 당 총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밀어주기 위해, 계파끼리 지분을 나누기 위해, 특정 세력의 당권 진입을 위해, 전당대회 경선 룰(아래 전대 룰)은 부침개 뒤집듯 뒤바뀌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12번의 전당대회 동안 당 대표 경선 룰은 총 8번 바뀌었고, 특히 2008년 이후로는 매회 다른 룰로 경선을 치렀다.

공정한 경선을 위한 전대 룰은 후보 간의 합의나 표결에 따라 왔다 갔다 하기 부지기수였다. 계파 간 이해관계가 첨예할 때는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했다가 강한 리더십이 필요할 때는 단일성 지도체제로 바꿨고, 또다시 계파별 나눠먹기가 필요할 때면 이전 제도를 꺼내오는 방식이었다. 정치 혁신이라며 도입한 새로운 경선 룰을 다음해에 곧바로 폐기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당권 후보들도 룰을 가볍게 여겼던 걸까. 전대 룰을 둘러싼 계파 간 줄다리기 싸움은 해가 갈수록 첨예해졌고, 심지어 합의된 룰을 두 차례 뒤엎는 일도 벌어졌다. 당의 발전을 위한 전당대회가 어느새 계파 간 세력싸움으로 변질됐다는 자성마저 나온다.

전문가들은 수시로 바뀌는 전대 룰이 숱하게 '헤쳐 모여'를 반복한 새정치연합의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당의 기본인 제도적 규칙이 쉽게 흔들리는 만큼 당 기반 자체가 허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08년 민주통합당부터 '전대 룰 갈등' 표면에 드러나

새정치연합이 집권해 10년간 여당으로 지낼 때는 당 대표 경선을 둘러싼 갈등이 비교적 첨예하진 않았다. 당시 민주당이 계파에 따라 열린우리당과 통합신당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혼란을 겪은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안정된 편이었다. 경선은 대체로 '대의원 100% 투표'로 이뤄졌고 당 지지도가 급격히 하락하는 등의 특별한 경우에만 합의 추대로 대표를 뽑았다.

'전대 룰 갈등'이라는 표현이 언론 보도에 본격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대선 패배한 이후인 2008년 통합민주당 때부터다. 흩어졌던 세력들이 다시 모인 만큼 새로운 당권을 노리는 경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세균·추미애 의원 등이 출마한 2008년 7·6 전당대회 때는 지도부 체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단일성 집단지도체제와 순수 집단지도체제로 갈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정 후보 등 주류 세력은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해서 뽑는 단일성 지도체제를 택해 대표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대선 패배로 무너진 당을 책임지고 살리려면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반면, 비주류 쪽에서는 최고위원 경선에서 최다 득표한 후보가 대표가 되는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해 계파별로 권력을 안배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주류 쪽의 입장이 반영돼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 선출하는 방안으로 결론 났다.

그러나 2010년 10·3 전당대회를 앞두고 집단지도체제가 다시 거론됐다. 대표 경선에 탈락한 쪽은 당무에서 완전히 소외되는데, 다양한 계파가 혼재된 민주당에는 적합하지 않은 방식이란 주장이다. 당시 당권 후보 '빅3'로 꼽힌 주자 가운데 주류에 속한 정세균·손학규 의원은 단일성 체제를 주장한 반면, 정동영 상임고문은 집단체제 도입을 외쳤다.

결국, 세 주자가 의견을 좁히지 않고 끝까지 맞서자 전국대의원대회준비위원회(아래 전준위)에서 표결을 통해 '집단지도체제'로 결론을 내렸다. 막판에 손 의원 쪽 전준위 의원들이 단일형 체제에서 집단체제로 입장을 선회한 결과다. 계파 간 이해관계에 따라 지도부 체제가 뒤바뀐 것이다. 

대의원 100% 투표로 이뤄지던 선거인단 비율도 이때 최초로 바뀌었다. 당시 정 의원은 대의원 투표 100%, 손 의원은 여론조사 포함, 정 상임고문은 개방형 전당원 투표를 요구하며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최종 룰은 '대의원 투표 70%+당원 여론조사 30%'로 결정됐고, 경선 결과 손 의원이 대표로 당선됐다.

민주통합당 첫 당대표로 선출된 한명숙 신임대표가 2012년 1월 15일 오후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대회'에서 축하의 꽃다발을 들어보이며 지지자들에게 답례 인사를 하고 있다. 한 대표 뒤쪽으로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박영선, 문성근, 박지원 최고위원들이 축하꽃다발을 들고 있다.
 민주통합당 첫 당대표로 선출된 한명숙 신임대표가 2012년 1월 15일 오후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대회'에서 축하의 꽃다발을 들어보이며 지지자들에게 답례 인사를 하고 있다. 한 대표 뒤쪽으로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박영선, 문성근, 박지원 최고위원들이 축하꽃다발을 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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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이라던 모바일투표, 대선 참패하자 곧바로 폐지

시민사회 세력과의 통합이 이뤄진 2012년에는 '국민참여경선'과 '모바일 투표'라는 새로운 룰이 당 대표 경선에 도입됐다. 문재인·이해찬 등 시민통합당 세력의 제안 때문이다. 이들은 시민 참여가 보장돼야 통합이 가능하다면서 '대의원·당원 20%와 국민 80%' 방식으로 새로운 당의 대표를 뽑자고 요구했다.

반면, 박지원 당시 원내대표 등은 이러한 경선 룰에 강하게 반발했다. 정당의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인만큼 당원 참여 비율을 균등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실상 친노(친노무현)인 시민·사회계 위주로 경선이 치러지면 당권이 특정 계파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한몫했다.
 
시민통합당과 손학규 당시 대표의 합의로 '대의원 30% + 당원·국민 70%' 방식이 정해졌지만, 경선 룰을 둘러싼 계파 간 갈등은 더욱 치열해졌다. 당원 간의 욕설과 몸싸움이 난무하기도 했다. 이후 임시 전당대회에서 통합이 결정되자, 민주당은 국내 최초로 당 대표 선거에 국민경선과 모바일 투표를 도입했다. 당시 이들은 자신들의 전대 룰을 대한민국 정치역사상 유례없는 혁신으로 평가했다.

시민들 역시 폭발적으로 반응, 시민·당원 선거인단 76만 5000명 중 78.1%에 달하는 59만 8000명이 모바일 투표를 신청해 경선에 참여했다. 그 결과 한명숙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됐다.

'한명숙호'가 같은 해 4·11 총선에서 패배하자, 당은 다시 대표 선출에 나섰다. 룰은 이전과 같은 방식을 적용하되 대의원 현장 순회투표를 지역마다 사전에 공개하는 방식을 치르기로 했다. 비주류 인사들은 사실상 친노로 분류되는 이해찬 의원이 세몰이를 위해 유리한 룰을 밀어붙인 것 아니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물론 대의원 투표에서 김한길 의원이 우세하는 이변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최종 투표에서는 이 의원이 이겼다.

그러나 민주당이 혁신이라 평가한 이 제도는 결국 대선 참패와 함께 물갈이됐다. 당은 대선 평가 과정을 거치면서 당원 위주의 경선으로 회귀했다. 당심과 괴리된 지도부가 선출되는 것을 막고 계파의 담합구조를 깬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마저도 순탄치 못했고, 정해진 룰이 두 번이나 변경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당초 전준위는 '대의원 50% + 권리당원 30% + 일반 국민 여론조사 20%' 방식으로 전대 룰을 정했지만, 당내 반발 때문에 여론조사 항목을 '당원 10% +일반 국민 10%'로 수정했다. 지도부 임기도 원래는 1년 6개월로 얘기됐지만, 최종적으로는 2년 임기로 결정됐다. 지도부체제 역시 기존의 집단지도체제에서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 돌아왔다.

"당 대표 경선 룰, 우세한 계파따라 왔다 갔다"

정당정치 전문가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계파의 유·불리에 따라 야당의 경선 룰이 엎치락뒤치락한 것을 두고 "단기적으로는 자신의 이익이 추구된다 해도 장기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싸움"라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경선 룰이란 결국 더 적합한 당 대표를 뽑기 위해 정하는 건데, 야당은 어떤 제도가 자신에게 더 유리한지만을 두고 싸우기 때문에 경선 룰 갈등이 불거지는 것"라며 "그렇게 하면 특정 계파가 당권은 가질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당을 향한 사회적 지지를 깎아내리는 결과를 낳게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당이 수차례 분당·합당을 거치며 유지가 안 된 것 역시 당권을 둘러싼 계파 갈등의 결과라고 봤다.

그는 "다원주의를 유지하면서 당 전체의 발전을 모색해야 하는데, 현재 야당 계파들은 상대를 찍어 누르기 위한 게임에 몰두하며 부정적인 이미지의 경쟁만을 펼치고 있다"라며 "전대 룰을 둘러싼 기 싸움이 첨예해질수록 당내 계파 갈등을 향한 외부 인식도 냉소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전대 룰 갈등을 지켜봐 온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당 대표 경선 룰은 곧 그때 우세한 계파가 어디냐에 따라 왔다 갔다 해왔다"라며 "당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룰을 더 이상 바꿔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2015년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새정치연합 계파 간 경선 룰 샅바싸움이 또다시 시작됐다. 각 계파를 대표하는 전준위 소속 의원들은 일반 국민과 대의원 참여 비율을 놓고 치열하게 주판알을 굴리고 있다. 이번에는 '권역별 최고위원제'라는 룰이 새롭게 언급되면서 계파전쟁의 뇌관이 추가로 등장한 형국이다. "공정·화합의 전당대회를 치르겠다"라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을 쉽게 믿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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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전당대회, #당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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