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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도 위에 있고 종교보다도 강하다.
약한 자는 밟아버린다. 강한 자에겐 편하다.
경배하라 그 이름은 돈"

최근 우리 곁을 떠난 신해철의 노래 <머니(Money)> 가사 중의 일부다. 돈이 정치권력을 바꾸기도 하고,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많은 문제들 중에서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는 단연 최대의 화두다.

최근 애플이 유럽에서 회사채 발행을 통해 35억 달러를 차입했다. 지난 5일, <워싱턴 포스트>의 경제 칼럼니스트 맷 오브라이언은 지면을 통해 이번 애플의 해외 차입을 비판했다. 회사채 발행은 회사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이자를 지급하면서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다. 애플은 이미 상당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의 이번 해외 차입이 조세회피의 한 방법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박영철 전 원광대학교 경제학부 국제경제학 교수의 분석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지난 15일부터 19일까지 이뤄졌다. 아래는 박영철 전 교수와의 일문일답 요지이다.

현금 부자 애플, 왜 추가로 차입했나?

애플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1550억달러로 추정된다. 작년 한국 GDP의 10%에 해당하며 애플의 2013년 총소득 370억 달러의 4배이다.
▲ Apple Inc. 애플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1550억달러로 추정된다. 작년 한국 GDP의 10%에 해당하며 애플의 2013년 총소득 370억 달러의 4배이다.
ⓒ NASD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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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보다 현금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할 정도의 애플이 왜 이 같은 거액의 사채를, 그것도 해외에 나가서 발행했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애플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1550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액수는 작년 한국 GDP의 10%에 해당하며 애플의 2013년 총소득 370억 달러의 4배가 넘습니다. 그런데도 애플이 유럽금융시장에서 35억 달러의 회사채를 발행했습니다."

- 애플이 구태여 유럽시장에서 회사채를 발행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물론 '조세 회피'를 위해서입니다. 미국에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두 가지뿐이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과 미국에서는 세금을 안 낼 수 없다' 입니다. 반대로 기업인들은 자주 이런 말을 합니다. '세금 다 내면서 장사 하면 남는 게 없다' 조세 납부 의무에 대한 일반 국민과 기업인은 상반된 의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엄청난 액수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애플이 '조세 회피' 목적으로 유럽에서 돈을 빌리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이 복잡한 '금융공학'의 수수께끼를 이해하려면 미국 기업에 관련한 조세법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선 주목해야 할 사항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해외에 쌓아 놓은 현금의 액수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입니다."

- 천문학적 숫자라는 말을 들었는데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요?
"CNBC의 기사에 의하면, 2014년 6월 기준 미국 다국적 기업이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2조 1000억 달러입니다. 그리고 이 액수는 미국 내에 보유하고 있는 현금 1조 9000억 달러보다도 많습니다. 이 2조 1000억 달러는 한국의 2014년 GDP 추정치의 1.4배가 넘습니다. 그리고 이 액수는 지난 12년 전에 비해 6배로 늘어난 숫자입니다."

- 해외 투자로 번 돈을 해외에 두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무엇이 문제인가요?
"이 같은 기업의 경제 행태가 결코 불법은 아닙니다. 문제는 경제 성장과 고용 창출을 경제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보는 정부 입장과 상충한다는 데 있습니다. 정부는 기업이 이 돈을 미국에 반입하여 법인세를 내고, 소비가 아닌 생산에 투자하여, GDP의 성장과 고용 창출을 돕고 노동자의 임금을 상승시키는 순기능을 해 주기를 바랍니다."

- 기업은 왜 이 해외 현금을 미국으로 반입하지 않는가요? 무슨 중요한 경제적 이유라도 있는가요?
"미국 다국적 회사들이 해외에 현금을 쌓아 두는 것이 이윤 창출에 더 효과적인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이윤 최대화', '주주 친화 정책', '주주가치 최대화' 등 주주 자본주의가 절대적인 기업의 생존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다국적 기업 조세법(World Corporate Tax System)'에 의하면 기업이 해외 소득을 국내에 반입할 때 세율 35%를 적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높은 세율을 피하고자 지속해서 해외에 보유하고 있습니다."

- 미국 다국적 회사의 이윤 창출은 70~80%가 유럽 국가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이자율은 거의 0.5~3% 의 낮은 수준에 머뭅니다. 현시점에서 현금 보유를 고집하는 것은 경제 이론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설명이 되나요?
"언뜻 보기에 비합리적입니다. 하지만 기업은 해외 현금의 국내 반입 때 내야 하는 조세법이 멀지 않은 장래에 완화된다고 믿습니다. 이 같은 기대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지난 2004년에 부시 대통령이 만든 일회용 '해외소득 반입세 휴일(Tax repatriation holiday)' 제도입니다.

미국 다국적 기업이 해외 소득을 국내에 반입할 경우, 35%가 아니라 5.25%의 낮은 세율을 매기도록 했습니다. 이 법의 시효가 만료되었지만, 기업들은 이 같은 조세법이 언젠가 다시 제정될 것을 믿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1년 공화당 의원들이 '해외소득 반입세 휴일' 제도를 다시 제정하려다 무산됐습니다. 실제로 이 특별법 혜택을 받고 국내에 들여온 현금이 3150억 달러인데, 생산 투자에 사용된 액수는 겨우 5%이고 80%가 자사주 매입에, 15%가 주식 배당에 사용 되었습니다. 굴지의 다국적 기업이 이 특별법을 통해 현금을 미국 내로 반입했습니다."

- 다국적 회사가 해외 현금 보유를 고집하는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해외에서 번(Earned) 돈이 아니고 해외에서 빌린(Borrowed) 돈을 국내에 들여올 때는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애플이 유럽에서 돈을 빌려오는 이유는 자사주를 사거나(Share Buyback) 또는 배당(Dividends)을 늘리기 위해서입니다. 애플 브랜드의 신제품을 제작하기 위한 연구개발 투자비용이 아닙니다. 생산적인 투자가 아닌 일종의 소비 지출인 셈입니다. 이 같은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증가 정책을 '주주가치 최대화 정책(Maximizing Shareholders Value Strategy)'이라고 합니다. 지난 3~4년간의 미국 증권시장의 호황을 만든 '숨은 영웅'입니다."

다국적 기업, 연구개발투자 대신 주주 '돈 잔치' 열중

2015년 예산에 추산된 총 법인세수는 4490억 달러,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로 발생하는 세수 손실이 총 법인세수의 30%가 넘는 엄청난 규모이다.
▲ 조세 회피로 발생하는 세수 손실 2015년 예산에 추산된 총 법인세수는 4490억 달러,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로 발생하는 세수 손실이 총 법인세수의 30%가 넘는 엄청난 규모이다.
ⓒ 전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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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성장의 동력은 무엇보다 투자와 기술진보라고 알고 있습니다. 미국의 투자, 특히 제조업의 투자가 활발하지 않은 이유와 주주가치 최대화 정책이 관련이 있나요?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미국 대기업은 일반적으로 소위 '최저 자본 수익률(hurdle rate)'이 확실할 때만 투자를 합니다. 이 수익률(after-tax)은 보통 10% 정도입니다. 경기가 부진한 요즘 이 같은 수익률을 보장할 투자 기회가 드물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 기업 문화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기업은 위에 설명한 '주주가치 최대화' 정책의 막대한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보통 주가가 떨어지거나 적대적 인수합병 등에 노출된 경우, 회사가 자사주를 매입하여 주식의 유통 물량을 줄입니다. 이를 통해 주가 상승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주가 상승은 회사의 CEO나 CFO의 임금 인상의 기준이 됩니다. 예를 들면, 지난해에 85명의 헤지 펀드 매니저가 각각 10억 달러(약 1조 50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고 합니다. 소득 불평등성을 높입니다. 결론적으로 미국 대기업은 고용 창출을 위한 생산적 투자보다는 단기적으로 최대 이윤 창출을 추구하는 '금융공학'적 투자를 선호합니다."

- 미국 다국적 기업이 사용하는 '법인세 회피' 방법과 그 규모를 말씀해 주십시오.
"우선 미국에 등록된 170만 개의 기업 중 해외에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은 약 500개가 조금 넘는 걸로 추정합니다.이들의 법인세 회피 방법은 크게 3가지입니다.

하나는 '역외 조세피난처(Off-shore tax heaven)'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이익 빼돌리기(Profit Shifting)'이라고도 합니다. 다국적 기업이 번 돈(Profit)을 세율이 낮은 케이맨 섬, 버뮤다 등으로 옮겨 놓는 것입니다. 보고서에 의하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굴지의 회사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다국적 회사가 번 이윤의 24% 정도가 이곳에 쌓여 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한 미 연방정부의 세수 손실은 매년 600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최근 가장 뜨거운 화제 중 하나인 '회사 법적 주소 이전(Corporate Inversion)'입니다. 이는 다국적 회사가 본사는 미국에 둔 채로 법인세율이 낮은 나라의 조그만 회사에 회사 소유권을 이양하여 회사의 법적 주소를 그 나라에 두는 것입니다. 지난 여름 버거 킹이 캐나다의 회사와 이 같은 인수합병을 하려다 무산 됐습니다. 백악관의 설명에 의하면 이로 인한 정부의 연간 세수 손실은 약 20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방법이 바로 애플이 사용한 '현금 해외보유'입니다. 해외에서 번 돈을 미국으로 반입하는 대신 해외에 계속 쌓아 놓고 있다가 언젠간 국내에 반입되는 해외소득에 매기는 법인세 면제나 감소 등의 특별 조치를 기다리거나 '해외 차입'이란 기발한 수법으로 법인세를 회피합니다. 이로 인한 세수 부족은 매년 약 760억 달러로 추정됩니다."

- 이들 합계가 약 1380억 달러인데, 미국 연방정부의 2015년 예산에 반영된 총 법인세수의 몇 퍼센트가 되나요?
"미연방정부의 2015년 예산에 추산된 총 법인세수는 4490억 달러입니다. 따라서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로 발생하는 세수 손실이 총 법인세수의 30%가 넘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특히 주목할 사항은 이 같은 법인세 손실 가운데 해외 현금을 국내에 반입하지 않아 발생하는 손실이 760억 달러로 가장 크다는 사실입니다."

- 정부 세입에 피해가 되는 이 같은 다국적 기업의 경제 행위에 대한 정부의 대응책이 궁금합니다. 완전히 손을 놓고 있나요?
"아닙니다. 지난 20여 년간 OECD의 선진국과 더불어 가장 강력히 '법인세 회피 방지책'을 마련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하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의 싸움으로 입법부는 마비됐고, 행정부는 무능합니다. 때문에 획기적인 법인세 개혁은 아직도 해결이 안 되고 협의 중에 있습니다. 그래도 '포괄적 조세법 개혁'은 초당적 정책 추진 목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박영철 교수는 2010년 은퇴 후, 현재 버지니아주 페에펙스에서 살고 있다. 벨기에의 루뱅(Louvain) 가톨릭 대학 경제학과에서 1975년에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부터 1988년까지는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경제분석가(Country Economist and Project Analyst)로 근무했다. 1989년부터 2009년까지 전라북도 익산에있는 원광대학교 경제학부 국제경제학 교수를 역임했다.



태그:#법인세 회피, #금융공학, #애플, #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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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이코노미스트, 통계학자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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