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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난 졌다. 자유여행가며 노마드 소설가인 교수 함정임이 쓴 <먹다 사랑하다 떠나다>를 읽으며 그녀가 너무 부럽다고 생각했으니 난 이미 진 거다. 몇 달을 혹은 한 달을 이곳의 모든 것을 떨치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만나고 싶은 음악가, 화가, 소설가, 시인, 영화 속 주인공들을 만난다. 그리고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는다.

책 <먹다 사랑하다 떠나다>는 그녀가 그렇게 먹고 사랑하고 떠나 머물렀던 곳들의 지긋한 발자취이다. 허브 향 가득한 와인의 향기다. 그녀도 책에 썼듯, "이 책은 소설가이자 여행가로서 맛보고 글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다채로운 공간의 풍물과 요리를 직접 찍고 선별해서 구성하는 데 많은 발품과 공력이 들어간" 책이다.

또 하나의 창조 작업, 여행

<먹다 사랑하다 떠나다> 표지
 <먹다 사랑하다 떠나다> 표지
ⓒ 푸르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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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포도주>라는 폴 발레리의 시에서 시작하여 세상의 상징과 맛을 찾아 떠난 여행기이다. 그리스에서 남미, 네팔에 이르기까지 지구 한 바퀴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작가의 말로는 20여 년간의 기록이라고 한다. 유럽과 남미 등 14개 국가의 정취와 음식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어느 날인가 나는 대양에
(허나 어느 하늘 아래선지 모르겠다)
던졌다, 허무에 진상하듯
귀중한 포도주 몇 방울을(중략)
그 포도주는 사라지고, 물결은 취해 일렁이도다!
나는 보았노라 씁쓸한 허공 속에서
끝없이 오묘한 형상들이 뛰어오르는 것을(폴 발레리의 '잃어버린 포도주' 중에서)

작가는 "바다에 떨어뜨린 몇 방울의 포도주의 마법에 이끌려 떠난 모험"이라고 자신의 여행을 표현한다. 다른 말로는 '창조 작업'이다. 프랑스에서 크레프 한 접시를 즐기면서 간식용과 요기용이 있는데, 요기용에는 장봉(베이컨)과 치즈를, 간식용에는 설탕이나 꿀을 첨가하라고 권한다. 이게 바로 자신의 연구라며, 연구에는 반드시 요리를 먹어 본 경험과 추억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소설이든, 영화든, 요리든 나는 본질(전통)에 충실하면서 현재와 소통하려는 시도를 존중한다. 이때 시도란 창조 작업과 동의어이다.(본문 143~144쪽 중에서)

프랑스의 북노르망디 해안가를 거닐면서 영화 <쉘부르의 우산>에서 카트린느 드뇌브가 우산을 들고 역 앞을 서성일 때 입었던 코트를 상상하고 코트를 꼭 준비하라고 이른다. 그녀의 그리스 여행은 국민가수 마리아 파란투리가 동행한다. "카타리나행 기차는 8시에 떠나네"로 시작하는 그의 노래를 차 안에서 듣는 게 바로 그와 동행하는 방법 중 하나다. 이처럼 작가의 창조 작업은 조금은 억지스럽다. 그러나 부럽기 그지없다.

길 위의 학자... 아는 만큼 보인다

작가는 음악이며 소설이며 그림이며 모르는 게 없다. 그리스에서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생각해낸다. 그러면서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를 외친다. 아크로폴리스에서는 피아니스트 야니의 공연을 재생시킨다. 여행지에서는 "음악이 본래 가지고 있는 힘을 능가하는 힘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체코의 프라하와 빈 사이를 잇는 기차 안에서는 밥 딜런의 <하늘 문을 두드리며>를 보헤미안풍으로 들으며 소녀시절을 떠올린다. 프라하에서는 그 좋은 데 다 뒤로 하고 카프카의 무덤으로 향한다. 홍수 때문에 이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굳이 <변신>을 썼던 황금소로의 누이의 오두막집으로 간다.

뒤돌아서며 존 레논의 <진실을 말해줘>를 듣고, 밀란 쿤데라의 <향수>를 떠올린다. 이어 라이너 마리아 릴케, 보후밀 흐라발, 스메타나, 드보르작을 거명한다. '돌발성과 지연, 우회는 여행의 기본 항목'이라면서 어렵사리 체스크프롬로프로 가서 안톤 드보르작을 찬미한다. 물론 스메타나도 잊지 않는다. 화가 실레의 어머니 고향인 그곳에서 유명한 수프 굴라시와 오리요리 카흐나를 즐긴다.

그리스에서는 크노소스 궁전보다 궁전 한 귀퉁이에 늘어선 포도주 항아리에 탐닉한다. 이유는 그 자체가 "가장 오래된 태초의 현장"이기 때문이란다. 올리브 나무 아래서 포도잎 쌈밥 돌마데스를 먹는다. 이는 멕시코에서 선인장으로 만든 독한 술을 음미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여정이다.

그러나 "키싸스, 키싸쓰, 키싸스"라고 노래하는 넷킹 콜을 빼놓지 않는다. 멕시코 음악의 진수는 영화 <화양연화> 삽입곡으로 유명한 트리오 로스 판초스가 넷킹 콜을 대신한다. 그들의 또 다른 유명곡 <베사메 무초>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선인장 농장에 투입된 한국인들의 애환을 떠올리며 "맹탕 헛것"이었다고 한다.

쿠바의 치코와 리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탄생지 모히토, 책 읽어 주는 남자가 들려주는 <몬테크리스토>와 <로미오와 줄리엣>을 담배를 말면서 들었다는 이야기는 참 흥미롭다. 길 위의 여자, 그가 하라는 대로 하면 포도주에 취하고 말 것 같다.

길 위의 요리 연구가... 아는 만큼 맛있다

쿠바에서 체 게바라가 즐겨 피웠다는 '몬테크리스토'를 입에 문다. 물론 유기농 양배추와 토마토로 빚은 샐러드 타로토란, 검정팥밥 아로스 콩그리도 대령한다. 프랑스로 가 에디트 피아프, 사르트르 보부아르, 보들레르를 만나는 것은 물론 그들이 즐겼을 법한 산해진미를 즐긴다. 푸아그라와 퐁듀, 에스카르고(달팽이 요리)를 먹기 위해 포드페르 식당을 찾는 건 기본이다.

나폴레옹이 칼로 제국을 건설하려 했다면 발자크는 "펜으로 소설의 제국을 건설하려고 했다"는 너스레를 떨면서 루아르 강변의 와인 맛을 보기 위해 수도 없이 그 길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물론 액상프로방스도 잊지 않는다. 당연히 음악이 빠질 수 없다. <어린 시절의 프랑스>라는 앙리코 마샤스 곡을 듣는다.

내가 그리스에 갔을 땐 음식이 그리 달갑지 않았었는데(내 입맛엔 안 맞았다) 길 위의 요리 연구가인 저자는 산토 와인 아티리와 수주카키아를 추천한다. 역시 그도 그리스 음식이 대체로 짜다고 말한다. 알퐁스 도데와 반 고흐의 <아를의 여인>의 무대인 아를에서는 레드 와인과 카마르그 꽃소금으로 밑간을 한 등심스테이크를 먹어야 한다고 추천한다.

스페인에서는 르 클레지오의 소설 <허기의 간주곡>을 들으며 폴 발레리의 고향 세트로 간다. 포르부라는 국경지대에서는 피레네 와인 바뉼과 해산물 빠에야를 즐긴다. 멸치 튀김 보케로네스를 추가하는 것도 괜찮다고 알려준다.

아일랜드에서는 영화 <타이타닉>을 생각하며 코브항에 들렀다 더블린으로 가 오븐에 구운 랍스터를 먹는다. 미국에서는 잠시 뉴욕커가 되어 맨해튼 근처 식당 리퍼블릭에 들러 베트남 쌀국수의 매운 맛에 취한다. 터키에서는 미트볼 케이테와 감자를 곁들인 케밥을 먹는다. 파리에서는 직접 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길 위의 여자, 식도락 여행이 부럽다.

벨기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루벤스 작) 앞에서는 앙베르의 <플랜더스의 개>를 떠올리고 네로와 충견 파트라슈를 추억한다. 물론 백포도주를 넣은 홍합탕을 놓치지 않는다. 홍합탕 예찬을 옮기며 글을 마친다.

나는 기억하고 있다. 통영바다에서 건져 올려 직접 끓였던 홍합탕과 부산 송정 단골 횟집의 홍합탕, 멀리 북대서양 서쪽 끝 아일랜드의 골웨이의 홍합탕,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니스와 아를의 홍합탕, 그리고 파리 레옹 드 부뤼셀의 홍합탕 맛을.(본문 192쪽 중에서)

덧붙이는 글 | <먹다 사랑하다 떠나다>(함정임 지음 / 푸르메 펴냄 / 2014. 10 / 322쪽 / 1만5000원)



먹다, 사랑하다, 떠나다 - 노마드 소설가 함정임의 세계 식도락 기행

함정임 지음, 푸르메(2014)


태그:#먹다 사랑하다 떠나다, #함정임, #여행기, #식도락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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