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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파출소에서 본 남성로 입구
 중앙파출소에서 본 남성로 입구
ⓒ 추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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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심부의 남성로는 흔히 '약전골목'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이름 남성로는 많이 잊혀졌다. 친일파 대구군수 박중양이 1906-1907년 일본인 상인들의 장사를 돕기 위해 자기 마음대로 대구읍성을 부숴버린 이후 생겨난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 중 가장 심하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된 것은 약전골목 때문이다. 약전골목이 너무나 유명한 탓이다. '약을 파는 가게들이 많은 골목'이라는 뜻의 약전골목이 지금 자리에 형성된 때는 1908년의 일이다. 즉, 1658년 경상감영 객사 앞에 처음 형성되었던 대구약령시는 박중양이 대구읍성을 파괴하면서 지금 자리로 이전된 것이다.

그러므로 약전골목이라는 이름은 대구읍성 파괴 이후에 생겨났다. '약전골목'의 공식 명칭은 '대구약령시'라는 말이다. 하지만 대구약령시는 1941년 조선총독부가 개장을 불허하여 폐지되는 운명을 맞는다. 그 후 한참 세월이 흐른 뒤인 1978년에야 다시 개장된다.

약전골목과 현대백화점
 약전골목과 현대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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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로 일대 상가 임대료 3배나 급등... 한약방 15곳 문 닫아

그러나 대구약령시는 현재 '죽어가고' 있다. 2011년 8월 현대백화점이 문을 연 이래 남성로 일대 상가 임대료가 3배나 급등한 탓이다. 그 결과 한약방 15여 곳이 문을 닫았고, 약업사도 6-7 곳 폐업했다. 폐업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행인의 눈에 띄지 않는 후미진 골목 안으로 숨어버린 약업사도 20여 곳에 달한다.

대구약령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기자는 혼자 생각해본다. 약령시가 경상감영 객사 부근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그 이후 현재 위치로 옮겨진 데서 답을 찾아본다. 첫째, 약령시가 감영 인근에서 출발한 것은 관공서의 물품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약령시에 그런 기능이 전혀 없다. 따라서 관공서 주변에 꼭 위치할 까닭은 없다.

둘째, 현재 위치로 옮겨진 것은 대구읍성의 정문에서 서문시장으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즉, 부산에서 한양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지나가는 교통과 통상의 요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자가용 시대'인 지금은 교통이 혼잡한 도심 복판에 있어 오히려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장소일 뿐이다.

따라서 경부고속도로에서 진입하기 매우 쉽고, 대구 시민들이 오가는 데에도 편리한 곳을 적합한 이전 장소로 꼽을 만하다. 그곳은 어디일까? 기자는 방천시장을 추천하고자 한다.

경부고속도로 북대구IC에서 신천대로로 들어서면 바로 닿고, 대구 시민들도 어느 곳에서든 접근하기가 용이하다. 게다가 방천시장 일원은 '김광석 거리'와 '방천 문화, 음식거리'가 조성되어 있을 뿐더러, 아직 빈 점포가 많아 낮은 임대료 부담만 안고도 약령시가 형성될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제일교회
 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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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령시를 제외하면 남성로 '제일'의 역사유적은 '제일교회'이다. 1919년 3월 8일 대구 3.1운동 때 이 교회의 김태련 장로 등이 주동적 역할을 했다. 1933년 완공된 이 예배당은 한강 이남 최초의 서양식 교회 건물로 대구시 유형문화재 30호로 등록되어 있다. 본래 담쟁이로 뒤덮인 고색창연미 넘치는 건물이었는데, 수리를 한다면서 모두 걷어버려 느낌 없는 빌딩처럼 되어버렸다.

약전골목 중간 지점, 현대백화점과 동아쇼핑센터 사이로 들어가는 중간 골목에 또 하나의 답사지가 있다. 동학교주 최제우를 처형한 곳이다. 대구중구청이 이곳에 안내판을 세워두었으므로 현장을 찾은 답사자라면 그 내용을 아니 읽고 지나칠 수는 없다.

관덕정은 경상감영이 관할하는 국사범을 공개처형하던 곳으로 1749년 경상도관찰사 민백상이 무과시험장인 도시청을 건립하면서 세워졌다. 조선 후기에는 선무군관과 별무사를 선발하던 군사훈련장이었고,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진위대로 개편되었다. 1907년 진위대 해산 이후 일본군이 잠시 사용하다가 해방되면서 헐려 없어졌다. 1933년 간행된 <천도교 창건사>에는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가 1864년 대구읍성의 남문 앞 개울가(대구천)에 있는 관덕정 뜰에서 참형되었다고 묘사되어 있다. 현재의 관덕정은 1990년 천주교순교기념관으로 건립된 것이다.

전국 동학 교당에 게시되어 있는 최제우 공식 영정
 전국 동학 교당에 게시되어 있는 최제우 공식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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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남성로에서 볼 수 있는 답사지로는 대구한의약문화관, 교남YMCA건물 등이 있다. 남성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약령 서문'이라는, 근래에 건립한 일주문이 세워져 있다. 이 일주문에서 약간 동쪽 지점이 <동무 생각>의 음악가 박태준 생가터이다. '터'라고 말하는 것은 집이 철거되고 그 자리를 도로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로 답사가 끝나면 약령서문에서 왼쪽으로 접어드는 게 좋다. 매일신문 건물, 계산성당을 지나 상화고택으로 가는 길이 이어진다. 상화고택 맞은편에는 국채보상운동의 서상돈 고택이 있고, 바로 인근에 이상화 시인의 형인 이상정 독립군장군의 고택도 있다. 이상정 장군의 고택은 지금 <바보 주막>이라는 간판을 내건 막걸리집으로 변해 있다. 답사를 마친 나그네들은 이곳에서 시원한 탁주 한 잔을 걸쳐도 좋을 것이다.

약령서문
 약령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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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약전골목, #남성로, #박태준, #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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