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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 알퐁스 도데의 별 이야기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었던 나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월의 빠른 흐름에 밀려 어느새 50대 중반의 중년이 되어버렸다. 정신없이 살아온 지난 시절이 늘 아쉬워 가끔은 생물학적 나이를 의도적으로 망각하고 엉뚱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가슴에 구멍이 난 것처럼 마음이 허전하고 알 수 없는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던 어느 날. 뜻밖의 일이 나를 찾아와 마음을 달래주었다.

지난 6월 중순경, 길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집 뜰에 새끼 다섯 마리를 낳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측은한 마음에 그때부터 먹이를 주기 시작했는데, 고양이들이 줄을 서서 질서있게 밥을 먹는 모습이 너무도 신기하여 이 사실을 <오마이뉴스>를 통해 세상에 알리기도 하였다(관련 기사 : 고양이보다 못한 인간은 되지 말아야지).

어미 고양이 양순이가 새끼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
 어미 고양이 양순이가 새끼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
ⓒ 이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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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로플 집 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순동이
 스티로플 집 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순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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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동이와 닮은 꼴인 순실이
 순동이와 닮은 꼴인 순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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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마철에 고양이들이 비를 맞을까 염려되어 스티로폼 박스로 집을 근사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어미 고양이는 '양순이'라고 부르고, 새끼 고양이들은 각각의 특징에 따라 순동이, 순실이, 회순이, 검동이, 표순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암수를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느낌상 그렇게 불렀다. 처음엔 인기척이 나면 소스라치게 놀라 쏜살같이 나무 더미 틈새로 숨던 새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 중 한 마리는 유독 겁도없이 나에게 접근하여 내 손길을 마다않고 재롱을 떨었다. 그래서 나는 그 녀석의 이름을 순동이라고 하였다. 내가 퇴근하여 거실 문을 열면 어디선가 놀고 있던 순동이는 얼른 달려와서 펄쩍 펄쩍 뛰며 나를 반겼다. 그 모습을 보니 '만세' 부르며 나를 반기던 어릴적 아들 녀석의 귀여운 모습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일을 하면서도 순동이 얼굴이 눈앞에 가물거리고 출장을 가면 보고 싶은 생각이 더욱 간절하여 귀가를 서둘렀다.

나는 고양이들과 노는 재미로 주말이 쓸쓸하지 않았고 세상의 시름도 잊을 수 있었다. 아내는 나와 평생을 살면서 내가 그렇게 행복해 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노라고 독백하였다. 고양이들이 뛰어 놀다가 마당 한편에 놓아둔 화분을 밀어 넘어뜨려 깨뜨려도 괜찮았고, 에어컨 실외기로 연결된 줄의 보호피복을 할퀴고 물어뜯어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아도 그렇게 밉지가 않았다. 자유를 맘껏 누리면서 서로 장난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을 뿐이다.   

고양이들과 함께한 지난 여름은 정말 행복하였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겨울 추위를 대비하여 고양이들의 새집 마련을 궁리하고 있을 즈음 예기치 못한 사건이 나를 슬픔에 빠뜨렸다. 10월 중순경인 어느 날 그렇게도 씩씩하고 활동적이던 순동이가 평소 잘먹던 먹이를 심드렁하게 바라보더니 스티로폼 방안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앉아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잠시 외출을 했으려니 생각을 하고 반갑게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어미 고양이 양순이는 내가 새끼들을 보살핀 이후 진작에 어디론가 떠나버렸지만 크게 걱정되지 않았는데, 가장 귀여워 했던 순동이가 갑자기 사라져버리니 나는 마치 실연을 당한 것처럼 가슴이 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시간이 나는대로 집 주변을 돌며 찾아 나섰지만 어떻게 찾을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후 남아있던 네 마리 고양이 중 순실이외 회순이가 순동이와 비슷한 행동을 하여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더니 결국 부슬비가 내린 10월의 마지막 날 밤, 그 두마리는 4개월 여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다음 날 아침 평소 잘 놀던 자리에서 빳빳하게 굳어진 몸으로 발견되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싸늘하게 식은 그 두 마리의 주검을 뒤뜰에 묻으며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해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울려고 남겨두었던 눈물을 모두 쏟아부었다.

"이 녀석들아! 이렇게 빨리가려면 뭐하려고 나한테 왔니?"

나는 통곡하였다. 도대체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며 남은 두 마리는 조심해서 잘 키우리라 다짐하고 먹이도 고급으로 주었는데 엿새가 지난 11월 6일 저녁 검동이가 또 이상한 증세를 보였다. 우는 소리가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 나는 놀라서 아내와 함께 급히 검동이를 종이 상자에 담아 차에 싣고 인근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검동이는 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을 치다가 병원에 도착하자 곧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젠 주어지는 상황이 슬픔을 넘어 공포로 다가왔다.

표순이 한 마리만 남아 있는데 이 녀석도 어떵게 될지 몰라 문을 열기가 두려워졌다. 그런데 검동이가 떠난 이틀 후인 지난 토요일 아침 표순이가 나를 따라오라고 부르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뒤를 따라가 보았다. 나무를 타고 2미터 높이의 옹벽위를 지나 이웃집 뒤뜰로 들어가기에 나는 사다리를 타고 쫒아갔는데 인기척에 놀란 주인 아주머니가 누구냐고 소리치며 문을 열고 나왔다.

내가 고양이가 이쪽으로 왔기 때문이라고 말하자 그 아주머니는 나에게 볼멘소리로

"고양이 키우십니까? 나는 고양이 싫은데…, 고추밭을 파헤치고 엉망으로 만들어 놨다 아잉교, 먹이 주지 마이소 다른데로 가구로…"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의 의문이 모두 해소됨과 동시에 극도의 허탈감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우리집과 통하는 이웃집 뒤 옹벽위에는 그 아주머니가 가꾸어 놓은 작은 텃밭이 있었다. 내가 고양이들을 사랑하는 동안 그녀는 나와 고양이들을 증오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리했던 순동이는 나에게 험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눈에 안 띄는 곳으로 이동하여 쓸쓸히 죽어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다시 한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표순이는 억울하게 죽어간 형제들을 위해 나에게 뭔가 한마디 해줄 것을 원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바보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되돌아 오고 말았다.

이젠 다섯마리 고양이중 가장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겁이 많았던 표순이만 마지막으로 남아 내 손등에 얼굴을 비비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표순아! 너는 내가 주는 것만 먹고 오랫동안 같이 사랑하며 살아가자"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표순이의 눈빛이 너무나 애처롭다.

회색 줄무늬의 회순이
 회색 줄무늬의 회순이
ⓒ 이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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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시도를 멋지게 차려입은 검동이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입은 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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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고양이를 닮은 표순이
 어미 고양이를 닮은 표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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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로폼으로로 만든 고양이집
 스티로폼으로로 만든 고양이집
ⓒ 이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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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길고양이, #중년, #고양이 사랑, #고양이 죽음, #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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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 즐거운 학교, 함께 가꾸는 경남교육을 위해 애쓰는 경남교육청 소속 공무원이었으며, 지금은 경남학교안전공제회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댄스스포츠를 국민 생활체육으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무도예술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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