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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서울 압구정동 S 아파트 앞에서 경비노동자 인권 쟁취 결의대회가 열렸다.
 9일 오전, 서울 압구정동 S 아파트 앞에서 경비노동자 인권 쟁취 결의대회가 열렸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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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노동자도 인간이다, 가해자는 사죄하라. 이만수 열사를 살려내라."

9일 오전, 조용하던 서울 압구정동 S아파트 앞을 가득채운 절규다. 그곳은, 아파트 입주자의 언어폭력 등에 시달리다 사망한 경비노동자 이만수씨가 자신의 몸에 불을 당긴 장소다. 또, 이씨와 갈등을 빚은 입주자의 집이 바로 올려다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민주노총과 서울진보연대, 통합진보당, 노동당 등으로 구성된 '경비노동자 대책 및 투쟁을 위한 시민단체 연석회의' 소속 200여 명은 경비노동자 인권 쟁취 결의대회를 열고 당사자와 입주자 대표의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당사자 집 대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대신 입을 연 것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입주자다. 결의대회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한 한 입주자는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 '다시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게 함께 고민하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를 집회까지 하면서 요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그런데 이 일이 발생한 지역공동체에서만 재발방지 약속을 않겠다고 고집하는 건 다른 입주자한테도 피해를 끼치는 거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 2의 이만수씨가 생길지 모르는 일"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더 늦기 전에 더 많은 입주자와 국민이 관심을 가져달라"라고 호소했다.

"전태일 분신한 지 40년 만에 강남서 분신... 개인문제만은 아냐"

이날 결의대회에서는 이씨 아내의 음성 메시지가 전달되기도 했다. 이씨의 아내는 "아직도 남편에게 사과하지 않는 가해자 할머니와 입주자 대표를 생각하면 원통한 마음"이라며 "지금이라도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남편이 고이 하늘 나라로 떠날 수 있다, 경비노동자가 사람 대접 받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입주자 대표는 사과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S아파트 김아무개 입대회 회장은 하루 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한 주민의 개인적인 문제이지 입대회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거나 사과해야 할 이유가 없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9일 오전, 서울 압구정동 S 아파트 앞에서 경비노동자 인권 쟁취 결의대회가 열렸다.
 9일 오전, 서울 압구정동 S 아파트 앞에서 경비노동자 인권 쟁취 결의대회가 열렸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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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만난 주민들도 대체로 '개인의 일'이라는 입장이 강했다. 한 주민은 "할머니가 이상한 거다, 빨리 이사를 갔으면 좋겠다"라며 "그 사람 하나 때문에 왜 우리 아파트 주민 전체가 도매급으로 평가돼야 하나"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씨의 분신을 목격하고 가장 먼저 신고한 한 주민은 "그 할머니가 쩌렁쩌렁하게 소리 지른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며 "당사자가 빨리 사과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입주자대표 사과 요구에 대해서는 "개인 하나가 잘못한 일인데 주민대표가 사과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주민은 "이웃 간에도 얘기를 안 해서 나는 잘 모른다"라고 손사래 치며 답변 자체를 꺼렸다.

반면, 오상훈 민주노총 서울본부 사무차장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며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지 40여 년이 지나가고 있는데, 2014년 부의 상징 강남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당겨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라며 "경비하는 사람을 사람 대접하지 않는 건, 개인 문제인 건 맞지만 개인으로만 해결될 수 없다, 조합을 관리하는 사람들(입주자대표)의 문제이기도 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자 입주자대표자 회의 회장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분노를 참을 수 없다"라고 소리 높였다.

이처럼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입주자 대표회의의 재발방지 대책 강구와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입주자대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태그:#경비노동자, #분신, #압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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