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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 생활 25년 만에 '디지털 기기 사용자 권리 찾기' 나선 구본권 한겨레신문 부설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신문기자 생활 25년 만에 '디지털 기기 사용자 권리 찾기' 나선 구본권 한겨레신문 부설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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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사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해요. 사람들이 앞으로 디지털기기와 서비스를 점점 더 많이 쓰기 때문에 이런 일도 늘어날 수밖에 없죠."

타이밍이 잘 맞았다. 카카오톡 검열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초에 나온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어크로스)는 마치 이번 사태를 예상이라도 한 듯 스마트폰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을 통한 우리들의 무감각한 사생활 노출을 '경고'하고 있었다. 필자가 정의한 '디지털 리터러시(문법) 10계명'에도 "온라인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기 전 프라이버시를 점검하라"고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었다.  

"카카오톡은 '내용증명 대화'... 국가기관도 털어선 안 돼"

지난 6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구본권(49)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은 이번 책이 카카오톡 사태에 맞춰 쓴 건 아니지만 언제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카카오톡 사태가 충격적인 건 민주 사회의 근간을 흔들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끼리 사적으로 대화하는 건 누가 엿들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사람들은 카카오톡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걸 생각 안 하고 일상 대화처럼 글을 올리는데, 사실 일종의 '내용 증명 대화'거든요. 그걸 다음카카오 협조로 국가기관이 털었으니 사용자들에게 커다란 불신이 생겨났고 사이버 망명도 자연스러운 거죠."

- 카카오톡의 수사 협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는데 왜 충격이 컸던 것인가요.
"지금까지는 불륜이나 살인사건, 세월호 사건처럼 주로 형사 사건이어서 대부분 사용자들은 일부 용의자에 국한된 문제로 여겼어요. 그런데 대통령 모욕 발언 이후에 국가기관이 노골적으로 검열을 하겠다고 의욕을 밝힌 상태에서,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 친구들까지 턴 것처럼 누구와 친구를 맺는 것만으로 (개인정보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 결국 이번 사건이 프라이버시 소중함을 일깨운 계기가 됐습니다.
"프라이버시를 잃어버리기 전까진 그 가치를 모르는 거고 사람마다 개념도 달라요. 기꺼이 자신을 노출하는 사람도 있는 거죠. 인터넷 서비스들도 프라이버시를 줘야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잖아요. 페이스북에서 무슨 학교 다니느냐, 어느 회사 다니느냐, 끊임없이 물어보면 결국 나를 드러낼 수밖에 없고 누군가 접근해서 '프로파일링(인터넷을 활용한 수사기법으로 일종의 네티즌 '신상털기' - 편집자 주)' 할 수 있는 거죠."

- 개인정보를 드러내면 그만큼 편리하기 때문 아닌가요.
"구글 스트리트뷰 개인정보 수집, 아이폰 위치정보 저장, 페이스북 감정 실험 논란에서 보듯 개발하는 사람 입장에선 더 많은 데이터를 모으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범죄에 쓰려는 것도 아니고 그만큼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거죠. 페이스북은 처음에 문제가 될 거라고 전혀 생각을 안 했어요. 누군가 문제제기를 하기 전까진 도덕적, 사회적 고민 없이 서비스 품질 개선을 위해 늘 하고 있다는 걸 자랑까지 했어요."

사생활 침해와 중독 부르는 '디폴트 세팅'의 함정

- 책에선 '디폴트 세팅(기본 설정)'의 위험성을 강조했습니다.
"서비스 초기 값은 사용자와 개발자 간의 역학 관계를 반영하고 있어 민감하게 봐야 해요. 카카오톡이 이번에 홍역을 치르고 대화 내용을 종단간 암호화한 '프라이버시 모드'를 도입하면 설정 화면에 새로운 메뉴가 추가되는 거잖아요. 그 전까지 감청된다는 사실을 회사와 국가기관만 알고 사용자들은 몰랐던 것이고.

사용자들의 프로그램이나 서비스의 '권장 설치'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대부분 사용자가 서비스에 더 몰입하게 만들어 업체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설계돼 있어요. 페이스북이 최근 게시물 공개 범위를 '전체 공개'에서 '친구 공개'로 좁힌 건 거꾸로 사용자들의 프라이버시 의식이 높아진 덕분이죠."

구 소장은 대표적인 개발자 중심의 '기본 설정' 사례로 카카오톡의 수신 확인 기능을 들었다. 카카오톡에서 발신자가 대화 내용을 입력하면 수신자 전체 숫자가 표시되고 상대방이 확인하면 숫자가 줄어든다. 하지만 대화 참여자들의 위계와 권력 관계를 고려하면, 수신자의 선택권을 고려하지 않은 발신자와 개발자 위주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개발자와 업체가 지금까지 이용자를 얼마나 고려하지 않았는가 보여주는 사례가 이번 카카오톡 검열 논란이에요. 이제 시민사회와 사용자들의 의식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가치와 주권을 요구하는 거죠. 그동안 '디폴트 세팅'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대부분 카카오톡 벨소리나 무음 정도만 바꾸고 지정된 대로 쓰고 있죠. 앞으로는 기술에도 사회적 요구가 생겨날 거예요. 우리가 매일 몇 시간씩 쓰는 기술의 위험성을 누군가 알려줄 필요가 있는 거죠."

'카카오톡과 공권력의 사이버사찰에 항의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지난 10월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다음카카오' 한남동 사무실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을 사찰하는 검찰과 사법부 및 정보제공에 협조한 카카오톡을 규탄했다. 이들은 검찰이 압수수색한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카톡 대화방에 함께 있었다며, "공권력 앞에 발가벗겨진 느낌'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카카오톡과 공권력의 사이버사찰에 항의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지난 10월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다음카카오' 한남동 사무실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을 사찰하는 검찰과 사법부 및 정보제공에 협조한 카카오톡을 규탄했다. 이들은 검찰이 압수수색한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카톡 대화방에 함께 있었다며, "공권력 앞에 발가벗겨진 느낌'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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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생활 25년 만에 '디지털기기 사용자 권리 찾기'

<한겨레>에서 25년 동안 기자로 일해온 구본권 소장이 올해 초 사내에 '사람과디지털연구소'를 만들어 '외도'를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IT(정보기술) 기자를 하다 보니까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 스펙 경쟁 기사 쓰는 게 더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스마트폰이나 SNS를 더 많이 쓰게 되면서 나타나는 변화들이 중요하다고 봤어요. 스마트폰에 중독되고 자발적으로 사생활을 노출해서 위험에 빠진다고 해서 아예 쓰지 말자는 게 아니라 기술의 속성을 알고 똑똑하게 쓰자는 것이죠."

구 소장은 이른바 '디지털 리터러시(문법)'라는 개념을 만들어 사용자 대상으로 똑똑한 사용법 교육이나 캠페인을 진행하는 한편, 인간 친화적이면서 사용자를 배려하는 기술과 제품을 평가하는 지표를 개발하고 '휴먼 프렌들리 테크놀로지상(가칭)' 제정도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폰 '방해금지 모드'나 '차단 모드'가 사용자를 배려한 대표적 기능이에요. 기존 '비행기 모드'와 달리 데이터는 오가면서도 미리 등록한 전화만 받을 수 있게 해서 사용자가 스마트폰 때문에 방해받지 않게 만드는 똑똑한 기술이죠. 카카오톡 '프라이버시 모드'도 사용자 선택권을 보장하고 장기적으로 사용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술이지만 당장 기업의 이익 극대화와 거리가 멀고 비용이 들어가요. 그러니 회사나 개발자에게만 서비스 설계를 맡길 게 아니라 사용자 권리 찾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거죠."

통신사 홍보팀장들도 자녀 스마트폰 제한 

이 책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 역시 그런 '사용자 권리 찾기' 저변 확대를 이한 노력의 하나다. 구 소장이 연구소를 만들고 이 책을 쓰게 된 직접적 계기가 재밌다.

올해 초 국내 이동통신3사 홍보마케팅팀 책임자들을 취재했더니, 하나같이 어린 자녀들에게 스마트폰을 안 사주려고 끝까지 버티거나 사주더라도 무료 데이터가 포함되지 않은 음성통화 전용 요금제를 골라주거나 통신요금을 자녀 스스로 내도록 하더라는 것이다. 국민들을 상대로 최신 스마트폰과 무제한 요금제를 파는 모습과는 딴 판인 것이다.

실제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 역시 생전에 자녀들에게 아이패드 같은 최신 디지털 기기를 쓰지 못하게 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IT 업계에 종사하면서 그만큼 디지털기기 중독의 해악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IT 회사 전문가나 종사자들은 기술의 장단점을 아는 만큼 제대로 자녀들을 가르치는데 정작 모르는 사람들은 유행에 뒤떨어질까봐 무턱대고 아이에게 최신 디지털기기를 사줘요. 사용법 모르는 상태에게 기기만 사주니 어느 순간 중독이 되고 쓰지 말라고 다그치기만 하는 거죠. 왜 이런 걸 IT 종사자들만 알아야 할까, 온 국민이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일을 시작한 거예요."

실제 최근 스마트폰이나 모바일 게임 중독이 확산되면서 스스로 스마트폰이나 SNS 이용을 거부하거나 자녀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막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구 소장은 사용 중단만이 궁극적인 해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당장 대부분 앱에서 기본으로 설정된 '알림 기능'만 꺼도 스마트폰 노예에서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 소장 스마트폰에서도 전화와 메시지를 제외한 모든 알림 기능을 꺼둔 상태다.   

"과거 인터넷을 하려고 PC방에 가던 시절이 있듯, 지금은 가끔 네트워크에서 격리되는 경험을 할 필요가 있어요. 스마트폰 알림 기능이나 배달 서비스가 편리하고 시간을 단축하고 발품을 줄여주지만 필요없는 '알림' 기능 때문에 내 소중한 시간과 집중력이 업체들의 상업적 의도대로 빨려 들어가고 있거든요.

하루에 페이스북을 2~3번 확인하면 될 것도 '알림' 때문에 20~30번씩 확인하게 되는 거죠. 기계 설계자의 의도대로 쓰게 되면 기계가 내 주인이 되는 거예요. 알림 기능을 꺼서 내가 기계의 주인이 되는 게 자기주도적인 서비스 이용법이죠."

구본권 한겨레신문 부설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이 6일 서울 광화문 한 커피점에서 자신이 쓴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구본권 한겨레신문 부설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이 6일 서울 광화문 한 커피점에서 자신이 쓴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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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리터러시 10계명
1. 기기가 당신을 조종하지 못하게 하라.
: 디지털 기술과 기기에 오히려 지배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

2. 디폴트 세팅을 '나만의 설정'으로 바꿔라.
: 기기를 구입하고 앱이나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맨 먼저 할 일은 초기 값이 어떻게 설정돼 있는지를 살피고 자신에게 최적화된 '나만의 설정'으로 바꾸는 것이다.

3. 가능한 한 자주 '방해금지 모드'를 활용하라.
: 회의 시간, 집중하고 싶은 시간, 심야 시간에는 스마트폰을 방해금지 모드(차단모드)로 사용하라.

4. 수시로 이메일, 알림을 삭제하고 청소하라.
: 필요하지 않은 이메일, 알림. 앱을 수시로 삭제하라. 꼭 필요한 사이트가 아니면 회원 가입을 삼가고, 가입 시에는 광고 메일을 받지 않도록 설정을 확인하라.

5. 뇌가 휴식할 시간을 제공하라.
: 자투리 시간이나 대기 시간에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대신 멍하게 지내면서 온갖 상념에 빠져보는 것이 좋다.

6. 올리기 전 프라이버시를 먼저 점검하라.
: 노출된 이후의 난처한 삶을 피하려면 온라인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기 전 최대한 고민하라. 위치정보와 궤적이 나타나 있는 인터넷 기록도 유의하라

7. 소셜네트워크의 분칠에 현혹되지 마라.
: 하루에 소셜네트워크를 얼마나 이용할지 시간을 정해놓고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입하지 않도록 하라.

8. 스마트폰과 동침하지 마라.
: 침실이나 이불 속으로 스마트폰을 가져가지 않도록 하라.

9. 스스로를 구글링해보라.
: 검색엔진에서 종종 자신의 이름과 아이디로 검색해보라. 자신이 인터넷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노출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10. '모바일 신언서판(身言書判)'이 새 에티켓이다.
: 통화 습관, 문자 대화, 소셜네트워크에서의 태도가 당신의 평판과 이미지를 만드는 세상이다. 당신이 상대의 통화 태도와 스마트폰 사용 습관을 보고 그 사람됨을 짐작하는 것처럼 상대도 당신을 그런 식으로 판단한다.

(자료 출처 :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



태그:#구본권, #카카오톡, #사이버검열, #프라이버시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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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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