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이 죽었다. 돌아가셨다고 해야 하나 아님 서거했다고 할까, 그냥 일상적인 표현으로 사망이라고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신해철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은 지극히 평범한 '죽었다'다.
그는 비범했지만, 항상 평범한 이들에게 시선이 가 있었기에.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함께 고민해 준 그에게 그 어떤 수식어가 붙은 말보다는 '죽었다'가 어울린다.
그렇다. 신해철이 죽었다. 아, 이 청천벽력같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의 사춘기와 20대의 열정과 고스란히 함께 한 그의 음악과 삶을 난 어떻게 갈무리해야 할까. 누군가 청춘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아픔을 느낀다고 했던데 정확히 내 맘을 표현 한 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신해철의 어록, 행동들을 추억하며 눈물짓고 있는 이때, 무한궤도가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타던 그 순간 생방송을 보며 환호했고, 1집이 나왔을때 가장 먼저 레코드점에 달려가 판을 사고 끊임없이 돌려듣던 나는 어떻게 그를 보내줘야 할까.
따지고 보면 나는 신해철을 극성스럽게 좋아한 것도 아니었다. 2000년 중반부터는 음반보다는 TV에서 그를 보는 횟수가 많아졌고, 넥스트 5집은 아예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런 내가 왜 이런 기분이 들지? 광팬이라 하기엔 부끄러운 내가. 며칠간 알 수 없는 복잡한 마음에 휩싸여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의료사고가 의심되고 부검이 실시된다는 소식을 들은 날, '마왕은 가는 길 마저도 순탄치 않구나'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죽어서도 더 나은 세상을 외치고 있는 그에게 뭔가 답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가 부르고 싶어졌다. 숱하게 노래방을 들락거리던 대학시절 언제나 첫 번째 아님 두번째 순서를 차지했던 신해철의 노래들. 노래방이란 공간에서, 신해철만을 위한 추모노래를, 평범한 우리의 목소리로, 뱉어내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차 올랐다.
SNS에 복잡한 심경과 함께 나만의 추모식을 하겠다고 썼고 신해철 추모노래방을 함께 할 분들은 대환영이라고 남겼다. 다행히 소박한 추모공간에 모여준 사람은 나를 포함해 20대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 5명. 그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흔쾌히 함께 해주었다. 추모노래방 순서는 다른 게 없었다. 내가 아끼는 신해철 노래를 선곡하고, 부르기에 앞서 사연을 들려주는 것이다. 맨 먼저 30대 초반 비정규직노동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아, 아, 저는 제 또래들과는 달리 김광석이나 신해철 등 좀 연식있는 가수들 노래가 좋았어요. 다들 아이돌에 빠져있을때도 저는 신해철이었죠. 대학1학년 때부터 5년간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고백도 하고 그랬는데 결국 안됐어요. 그때 나를 지탱해준 노래가 바로 '먼훗날 언젠가'였죠. 영혼기병 라젠카라는 만화의 엔딩부분에 나온 음악인데 만화는 망했다지만 ost는 정말로 제 영혼을 구원해 줬어요. 라젠카 세이브 미."
전주가 흐르고 노래가 시작되자 다들 첫사랑의 아련함으로 빠져든다.
말하지 않아도 넌 그저 눈빛만으로 날 편안하게 해 먼 훗날 언젠가나를 둘러싼 이 모든 시련이 끝나면 내 곁에 있어 줘- <먼훗날 언젠가>'나도 첫사랑의 풋풋함과 연이어 이별의 아픔이 찾아왔을 때 The Dreamer라는 노래로 위안을 삼았지.
항상 처음 아니면 마지막에 이 노래를 부르곤 했어.'
내 차례가 오면 이것을 부르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웬 걸, 내 앞 순서에서 이 노래가 터져나오고 말았다. 이제 40이 된 여성노동자.
"제가 고등학교 때 방황하고 고민할때 신해철은 힐링멘토였어요. 그의 노래를 음미하며 듣고 있노라면 내가 하는 고민이 '나 혼자 짊어지고 있는 짐은 아니구나' 하는 위안을 갖게 했죠. 그리고 그 짐을 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힘을 모아야 거기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제일먼저 한 게 신해철 콘서트를 내 힘으로 간 거였죠. 학생운동을 하면서는 집회 마치고 노래방에 갈때가 많았는데 당근 신해철 노래는 단골 메뉴였겠죠?"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 버릴 수는 없어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Dreamer>사춘기 시절부터 우리에게 던져졌던 질문들, 여전히 풀지 못한 그 질문. '우리는 왜 세상에 왔고 무엇을 하다가 어떻게 죽는게 값진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을 찾다가 세상에 길들여지면서 꿈을 잃어온 우리들. 신해철은 지쳐 쓰러질 것을 두려워하지말고 훨훨 날아오르자고 말했다. 마치 오늘날 우리에게 들으라는 듯 무려 20년전에 예언을 한 것일까.
내 차례가 돌아왔을때 난 '길위에서'를 선택했다. 아마도 고1 봄소풍때 였을 것이다. 새로 산 마이마이 이어폰을 꼽고 해운대 광활한 바다를 보며 이 노래를 들었던 벅차오르던 그 감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뒤늦게 수염이 나기 시작한 사춘기에 접어들었을때 나는 이 노래를 통해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가고 픈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닐거란 예감도 했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어느정도 맞아 떨어진 것 같다.
무엇을 해야하나어디로 가야하는걸까알수는 없었지만그것이 나의첫 깨어남이었지내심 오늘 온 20대가 궁금해졌다. 그는 신해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솔직히 저는 신해철 관련 기사들을 읽기 전까지는 그저 '이상한 사람', '기인'정도의 이미지만을 갖고 있었어요. 그 왜 있잖아요, 자유분방하게 책임못질 독설을 찍찍 해대는 부류 말이예요. 근데 기사들을 읽어가다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구요. 특히 서슬퍼런 2009년에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축하한다는 글을 남겼다가 보수단체로부터 국가보안법으로 고소 당했던 기사를 보니 '와 이사람 대단하구나. 권력이 그어놓은 테두리 안에서 진보입네 말로만 떠드는 그런 사람이 아니구나' 싶더군요. 2005년엔가 문화부장관 제의를 '내가 장관나부랭이나 할려고 음악한줄 아냐'며 단칼에 거절했다는 일화를 접했을때는 온 몸에 전율이 돋았어요. 이 사람 대단하다. 이런 사람이라면 당연히 추모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20대 답다. 자신과의 특별한 추억은 없지만 그의 인생은 추모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이곳까지 온 그 용기. 역시 20대다. 그는 잘 아는 노래는 없지만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던 '그대에게'라는 곡을 선택했다. 88년 대학가요제가 끝난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온통 무한궤도로 들끓고 있던 그 교실. 그 때 혜성처럼 등장한 신해철은 오늘 혜성처럼 빨리 지고 말았다.
숨 가쁘게 살아가는 순간 속에도 우리는 서로 이렇게 아쉬워하는걸아직 내게 남아있는 많은 날들을 그대와 둘이서 나누고 싶어요- <그대에게>이제 갓 30살이 된 한 참가자는 자신을 락의 세계로 안내해 준 신해철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락은 저항인데 내게 그런 의식을 쌓아준 게 바로 그였다며 죽음을 슬퍼했다.
'Lazenca, Save Us''Forever''money''도시인''인형의기사''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그렇게 노래를 주고 받으며 두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각, 추모노래방은 막바지를 달리고 있었다. 모두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엔딩곡은 '민물장어의 꿈'으로 생각하고 아껴두고 있었다. 신해철이 자신의 장례식때 쓸 곡이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그 곡.
그래, 신해철은 민물장어처럼 저 바다 깊은 곳에서 알을 낳고 사라져 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낳은 알들은 곧장 부화해서 수년간 난류를 타고 바다위를 떠돌다가 결국 그의 정신이 깃든 강물위로 거슬러 오를 것이다. 우리가 오늘 이 노래방에서 추억을 씹으며 눈물만 지은게 아니라 남겨진 당신 아이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이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가자고 다짐했듯이 말이다.
추모노래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엔딩곡이 흥얼거려졌다. 우리 역시 또 다른 민물장어들이 아닐까. 서슬퍼런 이 독재의 시대에 민주주의와 통일이라는 알을 낳는 민물장어들. 기어이 바다로 가야 하는 숙명을 가진 존재들.
<민물장어의 꿈> 신해철 작사·곡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저 강물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 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