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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의 희망은 있는가? 6·4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 이후 정치적 주변화에 내몰린 한국 진보정치에 대한 조롱과 냉소가 만연하고 있다. 정치전문가들 역시 수많은 주문을 쏟아내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조언은 대부분 '외부 시각'에 머물러 있다. 당사자들은 진보정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전망하고 있을까? 몇 차례에 걸쳐 진보정치 당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본다. - 기자 말

민주화가 진전될수록, 큰 문제들이 하나 둘씩 해결될수록 그동안 수면위로 등장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회적 갈등과 적대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군부독재세력에 대한 단순한 적대에 기반을 둔 진보정치운동도 점진적인 민주화와 사회의 진보에 따라 새롭게 출현한 갈등과 적대를 끌어안아 왔다. 이는 전통적 '진보'의 가치와 정체성이 새롭게 구성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NL-PD 갈등선을 따라 전개된 진보정치세력의 통합과 분열의 반복은 새로운 진보적 가치의 재구성은커녕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한 운동의 발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몇 차례의 대규모 통합과 분열 과정에서 진보정치가 적극적인 대변을 약속했던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 운동은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했고, 진보정치의 외연은 좁아졌다. 

진보정치의 부침 속에 주변으로 밀려났던 이들은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진보정치 연속집담회 4차는 여성, 성소수자 활동가들을 만났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여세연) 전 상임대표이자 현재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인 김은희(43), 민주노총 여성국장이자 노동당 전국위원인 김수경(47), 진보신당에서 성소수자 활동을 펼쳐왔지만 2011년 탈당 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상임연구원과 장애여성공감 정책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나영정(37),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성소수자 활동을 펼쳐오다 2012년 탈당한 동성애자인권연대 전 운영위원장 곽이경(36)씨다.

"진보정당, 희망도 주고 상처도 줬다"

- 이번 집담회는 주로 여성운동과 성소수자운동을 펼쳐 오신 분들이 모였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주류 진보정치운동이 주변화 시킨 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곽이경씨와 나영정씨는 진보정당 열혈 활동가였지만 지금은 탈당했는데, 이유부터 들어보고 싶다.

곽이경 전위원장은 2004년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인 정당활동을 펼치다 2012년 통합진보당을 탈당했다.
▲ 곽이경(동성애자인권연대 전운영위원장) 곽이경 전위원장은 2004년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인 정당활동을 펼치다 2012년 통합진보당을 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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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이경(동성애자인권연대 전운영위원장) : "사실 2012년에 (통합진보당을) 탈당했지만 2011년 이후로는 진보정당 경험이 없는 셈이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통합이 부결되고, 민주노동당에서 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면서 당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2011년 9월 4일 진보신당 당대회에서는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안이 부결됐고, 9월 25일 민주노동당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했으나 당대회에서 부결된 바 있다. – 기자 말)

당시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양당이 통합되어야 성소수자 정치가 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연서명도 받고 입장도 발표했다. 그런데 막상 통합이 무산되니까 (심리적) 타격이 컸다. 2004년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가 만들어질 때만 해도 '아 이제 우리도 뭔가 나서서 할 수 있구나' 하는 희망적인 분위기 같은 게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성소수자 운동은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진보정당의 역할은 예전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

나영정(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상임연구원) : "사실 너무 옛날이야기인데... 비슷한 것 같다. 진보신당에서 대외협력실과 정책위원회, 여성위원회와 성정치위원회에서 일하다 2011년 9월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이 무산되면서 탈당했다. 좀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진보정당 활동이 사실 '반여성주의'와 싸우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당시 성정치위원회에도 (민주노동당과 통합하자는) 통합파와 (통합을 반대하는) 독자파가 있었는데, 독자파 중에서 반여성주의적 활동을 하는 그룹들이 일부 있었다. 이런 상황이 좀 막막하게 느껴졌다. 계속 당에서 활동하기보다 다른 것을 모색해봐야겠다 싶어서 탈당했다. 무당파로 있으면서 진보정당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고민해 보려고 했는데, 아직까지는 진보정당에 들어가야 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 진보정당 활동을 하면서 상처를 많이 받은 느낌이다. 어떤 일들이 있었나?

나영정 : "일일이 꺼내자면 한도 끝도 없다. (진보신당) 초기에 일어난 성폭력 사건 처리방식에 일부 당원이 불만을 품으면서 시작된 것 같다. 성폭력에 대한 진보적 처리방식, 임신중절(낙태)에 대한 여성주의적 입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반(反)여성주의적인 공격을 가했다. 담당자인 나를 비롯해서 당 게시판에서 논쟁했던 여성활동가들에 대한 개별적인 공격이 있었고 신상도용, 사이버 성폭력 등 전형적인 사이버 폭력의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김수경(민주노총 여성국장) : "그때 진보신당에 촛불시민들이 많이 입당하면서 뭔가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명박 정부와 싸우면서 권력이나 규율에 도전하는 것이 대체로 정당화되는 상황? 이게 성폭력 사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런데 가장 반여성주의적 관점을 보인 사람들은 사실 촛불시민들도 아니었고, 예전부터 진보정당 활동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권력에 도전하는 정서를 이용해서 여성활동가들을 공격했다. 2차 가해다. 당시 진보신당에 젊은 페미니즘 그룹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마치 그동안 억눌려 있던 걸 여성을 대상으로 터뜨리는 것 같았다."

"진보정치 문화, 여전히 가부장적"

- 여성이나 성소수자가 느끼는 일상적인 편견과 차별, 상처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들어보도록 하자. 김은희 위원장은 오랫동안 여성운동을 해오다 녹색당에 들어왔다. 여성운동가들 중에서는 비교적 진보정당과 친밀한 편으로 평가받았는데, 녹색당으로 입당해서 의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은희 위원장은 지난 해 까지 여세연 상임대표를 역임하고 최근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으로 당선됐다. 녹색당은 모든 선출직을 남녀 동수로 구성한다.
▲ 김은희(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전 상임대표/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김은희 위원장은 지난 해 까지 여세연 상임대표를 역임하고 최근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으로 당선됐다. 녹색당은 모든 선출직을 남녀 동수로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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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전 여세연 상임대표/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 "그동안 정치권을 비판하거나 정책적인 요구를 하는 활동을 하면서 항상 제3자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 갑갑했다. 그러다 녹색당이 창당하면서 자연스럽게 당원이 됐다. 녹색당에 가입하니까 진보정당에 계시는 어떤 분이 '왜 우리 당에 오지 않고 녹색당으로 갔냐?'고 하시더라. 그런데 그동안 가까이 지내던 진보정당 누구도 나한테 입당을 권유한 사람이 없었다. '녹색당만 오라고 해서 갔다'고 대답했다.(웃음)

사실 민주당은 자신을 비판하는 단체 활동가에게도 계속 뭔가를 요청하고 참여를 제안하는 반면에 진보정당은 지지를 요청하긴 해도 입당을 권유할 정도의 동지로는 생각하지는 않는 거리감 같은 것이 있다. 요즘 다시 강조하고 있는 노동중심성도 그렇다. 어떤 측면에서는 '노동'이 모두에게 존중받아야할 가치라기보다 권력적이고 폐쇄적인 자기표현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이 모든 노동자들을 포함하는 것인가? 지금까지 이야기되어 온 노동에는 나도 포함되지 못했다고 느낄 정도로 제한적이었다. 노동이 어떻게 스스로 변하고 바뀔 것인지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노동중심성과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타자란 없다'고 하는데,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기존 진보정치가 여전히 여성을 타자로 간주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보다보니 기존 진보정당에게서는 '내가 함께하고 싶은 정당'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할까?"

- 그동안 진보정당이 여성이나 소수자 운동과의 연대를 중시해 왔는데, 막상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가부장적 문화나 보수적 감수성이 많다는 평가인 것 같다.

김수경 : "의외로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패권이 있다. 자기들은 전혀 모른다. 처음에는 나도 내가 느끼는 어떤 불편함 같은 것을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내가 여성활동가가 아니었다면 나를 이렇게 대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얼마 전에 오랜만에 당원모임을 갔는데, 어떤 사람이 너무 심하게 주사를 부렸다. 너무 화가 나서 막 뭐라고 했더니 처음 본 남성 당원이 '좀 세련되게 말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 만약 남자가 주사부리는 사람에게 뭐라 했어도 그렇게 말했을까? 종종 나한테 '안아주는 따뜻함', '어머니, 누나같은 리더십'을 원한다고 하는데... 내가 그 사람들의 엄마나 누나는 아니지 않나? 나한테 그런 리더십을 바라지 말라고 했다."

김은희 : "보통 여성들에게 엄마 같은 포근한 여성적인 리더십을 원하는데,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게 있다. 여성적인 리더십이 따로 있나? '여성적인 리더십'을 마음대로 그려놓고 거기에 맞출 것을 요구한다. 단호하게 안 하면 듣지도 않는다. 공기처럼 익숙해서 존재를 느끼기도 어려운 강고한 남성연대가 존재한다."

- 성소수자들은 더 심한 일도 겪었을 것 같은데?
곽이경 : "성소수자들은 이런 상처가 일상적이다. 우리가 어떤 주장을 하면, '당에는 민폐'라는 식이다. 표를 얻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거다."

나영정 : "진보신당도 창당 초기에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 한 (총선)후보에 대해서 우려가 많았고, 당 대표단 경선에서도 성소수자가 당의 얼굴이 되는 것에 대해 여전히 못마땅해 하는 시각을 느꼈다. 물론 그것이 낙선의 모든 이유는 아니었겠지만. 당직자 생활을 하면서 내가 성정치위원회 활동이나 연대활동에 집중하는 게 당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봤는지 자꾸 '당을 위해 일하라'라는 평가를 받아서 사직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많다.

또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진보정당을 비판하면, 당이나 노동조합 출신이 아니라서 그런 비판을 한다는 평가도 들었던 것 같다. 달리 생각하면 인적 네트워크 없이 진보정당에서 자리 잡는 게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런 문제를 단지 문화나 분위기 때문으로 돌릴 일은 아니고 당이 누구를 대표해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진지하게 물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진보정당 분열, 운동도 위축시켰다"

곽이경 : "진보정당 활동을 하면서 받은 일상적인 상처와 성소수자로서 느끼는 어려움은 약간 다른 것 같다. 정당 활동을 하면서 받은 가장 큰 상처는 2008년 분당이었다. 바로 한 시간 전까지 같이 앉아있던 대의원이 다 일어나서 나가고... 분당 이후 진보신당에서 성소수자가 국회의원후보로 출마했는데 당이 다르니까 선거운동도 함께 할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도 정당 활동을 하면서 가장 꿈꿔오던 순간이었는데, 얼마 안 되는 성소수자의 힘도 모으지 못했다. 성소수자들은 그때를 굉장히 힘들었던 때로 기억하고 있다."

나영정
: "그때 분당이 안 됐다면 민주노동당 총선 후보였겠지만, 분당이 되면서 정치적 입장이 갈리니까 성소수자 운동 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 물론 당시 성소수자들 내에서도 새로운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와 열의가 높아서 분당에 적극적이었던 활동가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점점 더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 진보정당이 분열을 반복하면서 여기에 결합되었던 운동 역시 어렵게 만들었다고 보는 것 같다. 여성운동도 그렇게 평가할 수 있나?

김은희 : "다른 나라의 경우 진보정당이 여성참여나 소수자를 존중하는 계기적인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이게 다시 주류 정당에 확산되는 전이효과가 있었다. 민주노동당 때도 충분한 건 아니었지만 할당제 등 여러 논쟁을 거치고 상처도 받아가면서 규정을 만들어 왔다. 외부에서 제대로 평가받고 지지되지 못해서 그렇지 매우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후 진보정당이 재편되는 과정마다 이 규정들이 후퇴했다. 여성할당 비율도 낮아졌고, 이런 요구를 하는 것 자체가 힘들게 되고 있다. 2012년 총선 때 진보정당 당대표를 만나서 여성계 요구를 전달했더니 '충분히 노력하겠지만 다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수 있다. 당이 자리 잡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더라. 더 큰 대의가 있기 때문에 (여성의제 등은) 차순위라는 것을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린 거다. 예전에는 (여성운동이나 소수자의 요구에 대해) 동의하지 않더라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일단은 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안 되고 있다."

- 진보정당들의 당규 상에는 여성할당 30% 조항이 유지되고 있지 않나?

김수경 국장은 2005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진보신당을 거쳐 현재 노동당 전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김수경(민주노총 여성국장) 김수경 국장은 2005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진보신당을 거쳐 현재 노동당 전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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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 : "2011년에 여성할당 비율을 20% 정도로 낮추자는 논의가 있었다. 아무도 (30% 조항을) 지키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고, 또 (할당을 채우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진보정당인데, 지키지도 못할 것을 당위성만으로 만들어 놓고 그래도 지켜보자고 결의도 못하는 상황이 참 비참했다."

- 진보정당이 가장 여성이나 성소수자를 잘 대변하는 정당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른 기성정당에 비해 여성비율이 너무 적다. 기성정당은 여성당원 비율이 대체로 50%에 근접한데 녹색당을 제외한 진보정당들은 대체로 25% 안팎 아닌가?

김수경 : "진보정당의 토대가 노동조합이나 사회단체다. 내가 진보정당, 사회단체, 노동조합 여성비율을 쭉 살펴봤는데, 25% 전후에서 크게 차이가 없다."

김은희 : "기존 정당도 여성당원이 과반수라고는 하는데 진성당원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녹색당은 다른 진보정당과 당원구성이 다른데, 처음으로 정당에 가입한 사람들이 많고 여성도 절반이 넘는다. 서울은 청년당원도 절반이 넘고. 녹색당이 다른 진보정당과 기반이나 성격이 좀 달라서 그런 것 같다."

"진보정치 재편, 필요하지만 아직 답은 없다"

- 진보진영 내에도 여전히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 있고 이게 진보정당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녹색당은 좀 다르겠지만. 그래서 기존의 정파와 무관한 운동 주체들이 어떤 정당을 '나의 정당'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는 것 같다. 최근에 진보정치의 위기 속에서 재편 이야기도 솔솔 나오고 있는데, 활동가 입장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나?

곽이경 : "사실 통합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기자회견 한 번 하면 당이 너무 많다. '다 인사시키지 마라. 시간 없다' 이런 얘기도 나온다.(웃음) 그렇지만 성소수자 운동 내에서 진보정당이나 통합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논의를 만들기는 해야 하는데, 아직 계획이 없다."

김수경 : "여성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갑갑하다. 진보정당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여전히 있다. (진보정당은) 너무 (정파적) 구획이 나눠져서 세력화되어 있다. 여성 쪽에서도 이런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것 같다. 만약에 당 대 당 통합을 한다고 했을 때 여성은 아직까지 뭉칠 수 있는 의제가 없다. 정당 안에서의 여성세력화나 자기 목소리를 키울 수 있는 내용이 필요한데 그게 잡히지 않는다. 또다시 할당제 문제로 뭉치는 것도 맞지 않고... 그런 내용들이 없으면 또다시 정파에 동원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있다."

김은희 : "지금 진보 재편 기준이 정파적인 노선, 이를테면 통합진보당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한 입장차만을 가지고 진행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니까 폭이 넓어지지 않는다. 그게 유일한 판단 기준이 되면 다른 모든 것은 부차화되고 보이지 않는다. 다양하게 얘기해볼 여지 자체가 없어지는 거다."

나영정 연구원은 2008년 진보신당 창당과 함께 당활동을 시작해 2011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이 무산된 즈음 탈당했다. 현재 장애여성공감 정책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나영정(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상임연구원) 나영정 연구원은 2008년 진보신당 창당과 함께 당활동을 시작해 2011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이 무산된 즈음 탈당했다. 현재 장애여성공감 정책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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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정 : "통합논의를 어떻게 보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논의에 참여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느냐다. 성소수자운동에서 논의해서 (진보정당에) 참여하자고 결정했을 때 이미 통합이 되어 있다면 훨씬 좋겠지만, 지금은 진보의 재구성이나 가치 재구성이 쟁점이 되지도 않고 굉장히 지쳐 있는 느낌이다. 과연 진보의 가치를 재구성해봐야 과거와 얼마나 다를까? 성소수자 운동에서도 진보정당 재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운 상황이고, 정의당과 노동당에서 활동하는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성소수자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지만 이런 논의들을 이끌어주기에는 어려운 상황 같다."

- 진보정당의 분열이나 위기에 여성운동이나 성소수자운동이 책임져야할 부분이 명확하다면 고민이 많을 수도 있는데, 문제의 원인이 주로 다른 곳에 있으니까 뭘 해볼 의지가 안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녹색당도 다른 정당과 좀 다른 맥락에 있는데, 어떻게 보고 있나?

김은희 : "녹색당은 '진보'를 사고하는 방식이 다른 정당과 좀 다르다. 기존 진보정당이 '성장주의'를 전제로 녹색을 보고 있지만 우리는 성장주의 자체를 거부한다는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전통적인 기준으로 우리가 진보정당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고, 새롭게 진보 가치를 만들자는 입장에서는 진보정당에 포함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진보정치가 어떻게든 재구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야 녹색당의 정치공간도 확보되니까.

물론 여성문제를 중심으로 보면 녹색당도 고민은 있다. 녹색당은 당헌에서 남녀동수를 선언하고 있고 여성당원도 절반이 넘는다. 그런데 이런 제도가 우리 내부에서 싸워서 이뤄놓은 게 아닌지라 그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녹색당에는 여성위원회도 없는데, 일각에서는 '여성당원도 절반이 넘고 선출직도 동수니까 그걸로 됐다'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여성들을 어떻게 세력화할 것인가, 젠더에 관한 사안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다. 제도는 우월하지만 오히려 제도의 존재로 인해 그 다음을 모색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다."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종북프레임과 닿아 있다"

- 진보정치가 전반적으로 어려워진 상황이기 때문에 여기서 딱히 대답을 내놓기는 불가능한 것 같다. 다만, 진보정치가 어떻게 나아갔으면 좋겠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곽이경 : "최근에 성소수자운동에 대한 '혐오'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 이게 성소수자운동만의 문제가 아닌 게, 종북프레임과 맞닿아 있다. 반여성주의하고도 맞닿아 있고. 한마디로 우리나라 우파들의 정서를 건드리고 있다. 진보정치에서도 최근에 엄청나게 가속화되고 있는 혐오문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때 정말 열심히 집회에 나갔다. 그들의 의견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가해지는 마녀사냥이 성소수자에게 행해지는 것과 너무 닮았고 이게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너무 명확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에 훌륭한 분들이 참 많은데도 이 문제 때문에 정의당이 미워지기까지 했다.(웃음) 누군가를 마녀로 만든다는 게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봐야 한다. 마녀가 되지 않으려고 다 같이 마녀를 공격해 왔던 것 아닌가? 세월호도 종북이고, 뭐든 종북종북 하는데 진보진영의 가장 큰 과오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성소수자들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심하더라도, 여기에는 지켜야할 굉장히 중요한 원칙과 가치가 있다. 이 원칙과 가치를 지키는 것이 진보정당의 역할이다. 엄청난 논쟁이 생기겠지만 이런 원칙과 가치를 지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나영정 : "비슷한 고민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대응하고 차별과 혐오에 대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진보 프레임을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권 프레임을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권은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나 고민이 떨어지는 당원들까지도 같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고, 진보적 시각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하지 못한다면서 진보재구성에 우리가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인권 프레임을 진보정당이 가져올 수 있을 때 이주민 운동, 장애인 운동, 성소수자 운동, 그리고 성평등 의제까지 새롭게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지 않을까?"

김은희 : "진보정치가 그래도 자기 역할을 잘 했던 시기에는 여성이나 성소수자,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것을 어느 정도 자기 검열했다고 해야 하나? 조심스러운 것이 있었는데, 진보정치가 어려워 진 후에는 자신의 혐오를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당당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생겼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우경화되는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는 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보정치가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공간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녹색도 여성도 숨 쉴 공간이 만들어 진다.

왼쪽부터 곽이경 동성애자인권연대 전운영위원장,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 나영정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상임연구원, 김은희 여세연 전상임대표
▲ 여성, 성소수자 활동가들의 집담회 왼쪽부터 곽이경 동성애자인권연대 전운영위원장,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 나영정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상임연구원, 김은희 여세연 전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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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는 내가 여성이라는 것이 모든 사안의 유일한 판단기준이 되지 않는 게 자연스러운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갖고 있음에도 지금은 무슨 사안이든 '여성으로서,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같은 한 가지로만 보니까."

운동은 다양하다. 어떤 하나의 이름으로 정의되거나 경계를 나눌 수 없다. 그래서 집담회에 모인 이들도 모든 여성운동, 모든 성소수자를 대표하지 못한다. 특히 아직 진보정당에 남아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활동가와 성소수자들은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제까지의 진보정치가 이런 다양성과 이질성, 기존의 가치와 새로운 가치들을 얼마나 잘 결합해 왔었는지는 성찰해볼 일이다. 그 공존의 어색함이, 기계적 결합이 수많은 부침의 와중에 많은 이들을 떠나보냈다. 떠나간 이들이 뒤돌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최소한 예전의 호감을 다시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진보정치 재구성이 지향해야할 목표가 아닐까?

"반여성주의적 활동을 하는 그룹" 관련 알립니다
이 기사에 대해 공동체가치실현모임은 반여성주의적 활동이나 사이버 성폭력 등을 행사한 사실이 없으며, 진보정당의 여성주의에 대한 입장이 다를 뿐이라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집담회는 민주노총, 박정환, 강종구, 정용일, 이상범, 김은희, 박래훈, 강시원, 안영선, 오은혜, 정규식, 김보연, 윤지선, 이승철, 홍기웅, 홍명근, 장모씨님의 후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속기·정리: 정경윤



태그:#진보정치, #여성,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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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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