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야 세월호 특별법이 타결되고 난 뒤, 유가족들은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아이들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추스릴 경황도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진실을 밝히라"고 외친 가족들. 그동안 쌓인 피로감과 함께 찬바람과 비마저 몰아쳐 세월호 유가족들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유가족들의 최근 근황을 담아보았다.

[고 박수현군의 가족들]

수현이가 남긴 낙서. 내가 꿈 속 세계의 주민처럼.
 수현이가 남긴 낙서. 내가 꿈 속 세계의 주민처럼.
ⓒ 윤솔지

관련사진보기


마치 내가 꿈속 사람인 듯이
현재의 나는
마치 내가 꿈속 세계의 주민처럼
이 꿈은 익숙해 진 것 같아.

넌 어느때와 다르지 않게 웃고 있어.
넌 날 모르지 너와 난 그런 사이니까

달라진 것도 달라지지도 않았는데
세상은 변하고 있고 어제와 다르지 않게
또 흘러가고 있는
오늘은 정상적인 나날
- 2학년 4반 박수현군의 지워진 낙서 중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마지막 사진과 동영상을 남긴 단원고 2학년 4반 박수현군이 수학여행을 떠나기 4달 전쯤 남긴 낙서를 보게 됐다.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는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 글은 사진에서 보듯 줄로 깨끗이 지워놔 수현군 가족들이 눈여겨보지는 않다가 지난 10월 말쯤 답답한 마음에 수현이의 방에서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찾았다고 한다. 지난달 31일 만난 수현 엄마의 아쉬움 섞인 말이 귀에 맴돈다.

"글쎄요. 지금의 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네요. 수현이가 남긴 글들과 그 안에 담긴 생각들을 보면 참 어른스럽고 든든한데 그저 집에서는 애교 많은 막내라고 어린 아이 대하듯 한 게 미안해요. 저희 부부가 마루에서 잘 때면 쏙 들어와서 수현아빠 팔베개를 하고 자던 아이였거든요. 수학여행 전날에도 그랬어요. 이젠 그런 날이 없겠지만요."

박수현군 방
 박수현군 방
ⓒ 윤솔지

관련사진보기


[고 신호성군의 가족들]

부르는 것은 쉽지만 되는 것은 어려운 그것.
불려지는 것은 쉽지만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그것. 부모.
...
아플때나 슬플때나 든든한 모습인 아버지
힘들때나 화날때나 따뜻한 모습인 어머니
항상 같은 모습인 우리 부모님
가끔은 공원에 있는 벤치처럼 자식에게 기댈 수도 있지만
바로 일어나 버리는 그런 그런 부모
- 단원고 2학년 6반 신호성 '그 이름'

그 이름
▲ 호성이가 쓴 시 그 이름
ⓒ 윤솔지

관련사진보기


2013년 한글날 기념 백일장에서 장려상을 받은 '그 이름'을 쓴 단원고 2학년 6반 신호성군. 국어 선생님이 꿈이었던 호성이 엄마, 아빠는 상장을 안산 합동분향소 호성이 영정사진 앞에 가져다 놓았다. 호성군의 엄마는 시의 내용처럼 '부르는 것은 쉽지만 되는 것은 어려운' 것이 부모임을 실감하는 듯했다.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겠어요. 잘 가라고 인사할 수도 없고. 아직은 호성이를 대할 면목이 없어요. 세상이 이렇게 무서운지 몰랐어요. 요즘들어 부쩍 호성이 사진을 보면서 말해요. 호성아. 엄마가 어떻게 하면 좋겠니. 엄마에게 힘과 용기를 줘."

호성이랑 엄마랑. 엄마니까
 호성이랑 엄마랑. 엄마니까
ⓒ 호성엄마

관련사진보기


호성아빠가 옆에서 다소 울컥해진 말투로 거든다.

"한 번은 청운동사무소 앞에 있는데 누군가 지나가면서 그러더라고요. 정말 저 부모들 끈질기다고. 이렇게 오랫동안 버티는 것도 대단하다고. 그때 제가 욱하는 마음에 그랬어요. 처음에는 우리도 정신없었지만 이제 진짜 부모가 어떤 건지 알게 될 거라고요. 맞아요. 요 며칠 날도 추워져서 감기도 심하게 걸리고 몸과 마음이 가라앉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이제 다잡아야죠. 우리는 부모니까.

그래도 얼마 전 국회 앞으로 대통령이 지나갈 때는 정말 너무 했어요. 창현아빠가 김무성대표 차 앞에서 무릎 꿇은 사진 봤죠? 창현아빠가 따라가면서 애원했어요. '제발, 제발 우리 아이들이 죽은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런데 김 대표는 마치 창현아빠가 잡고 매달릴까봐 옷자락까지 걷어 붙이고 줄행랑을 치다가 그렇게 차 문을 닫아버린 거예요".

그때 무릎 꿇은 창현아빠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3일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열린 29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차를 타고 떠나려하자, 한 세월호 유가족이 무릎을 꿇고 "세월호특별법제정 꼭 도와주십시오"라며 간절하게 요청하고 있다.
▲ 김무성 앞에 무릎 꿇은 세월호 유가족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열린 29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차를 타고 떠나려하자, 한 세월호 유가족이 무릎을 꿇고 "세월호특별법제정 꼭 도와주십시오"라며 간절하게 요청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아빠니까. 아빠가 무능해서 할 수 있는 게 그거 밖에 없어서 미안하죠. 아빠란 그런 거예요. 우리 아들 창현이를 위해서라면 더 굴욕적인 것도 할 수 있는 게… . 심지어 죽음이 될 지라도 그런 게 아빠예요. 아빠가 일부러 지갑을 열어놓고 가도 손 한 번 대지 않았던, 친구를 좋아하던 개구쟁이 창현이. 그렇게 17년 살고 간 창현이 아빠라서 기운 차리고 꼭 진상을 밝혀낼 거예요."

창현이랑 아빠랑.
 창현이랑 아빠랑.
ⓒ 창현아빠

관련사진보기




태그:#세월호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