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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예술가의 책무

두 명의 신해철이 그립다. 하나는 음악가 신해철이요, 둘째는 소셜테이너 신해철이다. 그런데 고백하건대 나는 후자가 더 그립다. 내 부족한 음악적 소양 때문이리라. 내 '막귀'로는 그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줄 수가 없어서 아쉬울 뿐이다. 가수 신해철이 전자로 기억되기를 더 원할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그래도 어쩌랴. 나는 내가 더 그리운 신해철을 내 방식으로 추모해야 한다. 그는 특별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예술가가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유난히 터부시 되는 한국 사회에서 그는 특별했다. "사회적 발언을 하거나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게 다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와 사회와 음악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음악이 이상해진다." 지난 7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다. 

그가 한때 깃들였던 그룹의 이름,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고 했지만, 신해철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은 없었다.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백분 토론'에 이르기까지. 간통죄, 대마초 합법화, 공교육 문제 등 일견 예술가와는 상관없는 주제들을 넘나들며 주장을 밝혔으며 2009년에는 북한의 로켓 발사를 축하한다는 패기(?)넘치는 발언을 하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되는 일도 있었다.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유세에도 직접 참여해 당파성을 띠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책임감 있는 대중 예술가였다. 그는 대중 예술이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두 명의 유대인 사상가가 그 검의 각 단면에 새겨져 있다. 아도르노의 지적처럼 대중문화는 민중의 비판의식을 소거하고 허위의식만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혹은 벤야민의 예언처럼 아우라(aura)없는 대중문화가 민중의 정치적 역할을 증대시킬 수도 있다. 신해철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도 한국에서 가수가 정치적인 발언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입을 열었고, 비판했으며, 종종 누군가와 함께 걸었다. 그것은 대중가수로서 음악을 대중적 재앙으로 귀결시키지 않으려는 그의 책임감이었다.

그들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

나는 앞에서 신해철을 소셜테이너라고 불렀다. 소셜테이너 혹은 폴리테이너. 사실 뭐라고 불리든 우스운 조어가 아닐 수 없다. 굳이 만들어져 쓰일 이유가 없는 단어들이다. 엔터테이너들은 근본적으로 정치나 사회랑 척을 져야 한다는 듯한 뉘앙스가 배어 있어 자못 괘씸하다.

이런 괘씸한 단어가 통용되는 사회라서일까. 한국에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예술가들은 모두 제도권 밖으로 끌어내 지고 '선동꾼'이라는 악명을 뒤집어 쓴다. 선동이 무슨 문제랴. 과거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처럼, 선동은 용기를 감염시키는 일일 뿐인데. 그러나 이 예술가들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이들이 쓰는 선동이란 단어는 이와 다른 뜻을 품고 있다. 그들의 '선동꾼'은 허위 사실을 만들어내고 반국가적 신념을 확산시키는 종북 세력의 첨병이다. 애먼 이들을 선동꾼으로 만들어 입을 막으려는 것이다.

예술가들에게 정치적 발언을 허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그들도 국민의 일부라서가 아니다. 예술가들의 심미적 정치참여는 대중의 가슴을 더욱 울리는 힘이 있어서다. 이성의 언어가 패권을 쥐고 있는 사회, 그래서 냉소주의가 판치는 이곳에 감성적인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이들이 바로 예술가다. 세월호 안에서 수장된 아이들에 대한 슬픔과 무력한 정부에 대한 분노는 마땅히 터져 나와야 할 감정이었다. 그런데 내재화된 우리의 냉소주의는 감정마저 마비시켰다.

얼마 전 가수 김장훈이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에 참여하고 그들을 위한 노래를 불렀을 때, 그를 향한 것은 응원의 양만큼이나 많은 모욕이었다. 유가족들을 선동한다는 혐의였다. 더 나아가 조롱이 이어졌는데, 저기서 단식할 시간에 노래 연습이나 더 하라는 비웃음이 야멸차게 터져나왔다. 이거야말로 냉소주의에 지배되고 있는 사회와 그것에 감수성을 불어넣어야 할 예술가들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정치참여를 권장을 해도 모자랄 판에 밀쳐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태그:#신해철, #소셜테이너, #김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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