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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어제 하루 종일 팽목항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 명의 몸을 거둘 수도 있다는 소식에, 수습이 잘 안 되고 있다는 소식에 어찌나 마음 졸였는지…. 팽목항에 있는 가족들은 더했겠지. 다행히도 한 명이 무사히 뭍으로 올라왔다. 고 황지현 학생은 198일 만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났다.

그녀가 바다에 있었던 시간들은 200일 가까이 되었지만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녀가 만약 하늘에서 우리를 본다면 어떤 마음일까. 세월호 참사 200일이라는 시간은 흘렀는데, 우리 사회는 바뀌고 있는지…. 나는 얼마나 바뀌었는지…. 도무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만 머리를 맴돈다.

세월호 참사가 봄 한창인 날에 일어났는데 어느덧 가을이다. 아직도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하나도 제대로 해결된 것 하나 없는데, 열매도 맺지 못한 채 낙엽이 떨어지듯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했던 마음들이 발길들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고 그 배를 탄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던 분노하고 애통해하던 마음들은 어디로 갔는가.

여야가 약속한 세월호특별법 처리 시한을 하루 남긴 30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농성중인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차가운 바닥에 이불로 추위를 버티고 있다. 가족들의 본청 출입을 차단하기 위해 경찰이 출입문 입구를 가로막고 있다.
▲ 세월호법 타결 소식은 들리지 않고... 여야가 약속한 세월호특별법 처리 시한을 하루 남긴 30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농성중인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차가운 바닥에 이불로 추위를 버티고 있다. 가족들의 본청 출입을 차단하기 위해 경찰이 출입문 입구를 가로막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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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광장에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제 일상이 바빠서 이제 그만'이라는, '이제 당신들과 내 일상을 나누는 건 쉽지 않아요'라는 말들이 읽혀질까 두렵다. 나의 것이기도 한 말들. 그래서 아프고 부끄럽다. 아프고 부끄러운 건 아마 그 담담하고 평범한 말들에서 냉기를 알아챘기 때문이겠지. 그때, 배가 침몰하던 것을 보던 그때, 난 뜨거운 눈물과 분노에 잠을 이룰 수도 없었는데…. 언제 이리 순식간에 차가워진 걸까.

신자유주의의 놀라운 속도는 상품생산과 소비의 속도만큼 아픔의 기억도, 죽음의 기억도, 분노의 기억도 이렇게 쉽게 속도 경쟁하듯 흘러 보내나보다. 나 자신도 자본주의적 속도에 익숙해진 인간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그렇게 달라지자고 했건만 우리도 어느새 모르게 익숙해져버린 그 속도. 그리고 그 속도는 이상한 세상 질서를 유지하게 만든다.

어느새 가족만의 일이 된 세월호 참사

세월호에 갇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목숨들, 그야말로 국가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벌거벗었던 삶은 죽어서도 가치 있는 삶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죽음의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니 수장된 목숨만이 아니라 그/녀들의 가족들도 벌거벗은 채 국가로부터 모욕을 당하며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다.

9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순수한 유가족'을 언급하며 세월호 특별법을 포기했을 때, 벌거벗은 삶은 아예 얼어붙게 될 위기에 처했다. '순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벌거벗은 삶, 벌거벗은 인간이다. 벌거벗은 삶은 언제나 생명을 부지하기에도 바쁘다.

권력은 벌거벗은 삶을 요리하는 정치를 그동안 해왔고 해갈 것이다. 벌거벗은 삶을 살릴 것인가, 말 것인가는 권력이 정하는 것이 되어왔다. 한 생명이 살고 죽음은 권력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아니 권력의 유지가 필요할 때만 관심일 뿐. 그러하기에 '세월호 참사'는 예외적 사건인 동시에 예외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불확실성과 유동성이 언제든 누구에게든 불안과 공포를 만들기에 한국사회에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따라서 벌거벗은 삶이 아예 얼어붙게 될 위기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만의 위기가 아닌 셈이다. '순수하라'고 하는 저들의 주문은 가만히 처분을 기다리라는 뜻이다. 또 순수하게 벌거벗은 채 그냥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어느새 세월호 참사는 가족만의 일이 된 듯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사건이라던 말들은, 약속들은 저편으로 날아간 듯하다. 언제까지 싸울 것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만들고 채우는 건 우리 몫이듯이 물리적 시간을 만드는 것도 우리라고 말하자. 아니 나에게 말한다.

대통령에게 우리가 분노하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는 28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일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위해 방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언제든지 만나주겠다고 약속했던 저희들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며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
▲ 세월호 가족, 박 대통령 면담 요청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는 28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일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위해 방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언제든지 만나주겠다고 약속했던 저희들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며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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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집회에서 만난 한세창님은 딸의 방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쁘지? 우리 딸 방. 아직 안 치웠어. 보고 싶어서 3년까지는 그대로 두려고."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 한세영 학생의 아버지 한세창님은 직장에 복귀했다. 직장에 복귀했지만 그는 아직 딸의 방을 그대로 두고 있다. 아직 그의 마음을 정리하기에는 달라진 게 없으니까. 언제까지 싸울 거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세월호 희생자의 방을 정리하지 못하는 이 마음들을, 이 삶들을 함께 보자고 권하자.

얼마 전 토론회에서 만난 또 다른 희생자 단원고 김동혁 학생의 엄마 김성실님이 우리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가족들에게 물어요. 세월호 특별법이 엉터리로 만들어지면 어떻게 하실 거냐고.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무얼 하면 좋을지 여러분이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함께 풀어야 할 질문에 우리는 유가족들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볼 때다. 언제든 고개를 돌릴 수 있는 '우리'가 될 때 세월호는 우리의 손을 떠난다. 세월호 참사가 모두의 문제라고 했을 때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당사자이고 해결 주체이고 싸움의 주체인 것이다.

세월호를 그만 접으려는 정부와 국회에게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민들이 이렇게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는 듯 우리의 힘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10월 29일 국회 본청 앞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외치는 유가족의 목소리를 외면한 대통령에 대해 우리 모두가 분노하고 있음을 전달해야 한다.

지난 7월 24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문화제'에서 참가한 시민들이 "시민들아 깨어나라!"를 울부짖고 있다.
▲ "시민들아 깨어나라!" 울부짖는 사람들 지난 7월 24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문화제'에서 참가한 시민들이 "시민들아 깨어나라!"를 울부짖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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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이면 참사가 일어난 지 200일. 우리의 행동을, 우리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청와대와 국회에 보여주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유가족이 아니라 우리가 답해야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동혁 엄마의 질문이 아프다. 다리도 아프고 마음도 지치고 세월호 참사를 해결하는 힘든 여정의 한복판에 우리 모두 서 있지만 온통 비를 맞고 서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 게 보인다. 우산을 펼칠 수 없다면 같이 비라도 맞자. 그러면 덜 아프지 않겠는가. 그 비가 덜 차갑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나는 내일 친구 손을 잡고 함께 비를 맞으러 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이자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입니다.



태그:#세월호, #세월호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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