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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나비 꽃향기에 취한 나비
▲ 꽃과 나비 꽃향기에 취한 나비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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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당신에게는
하늘로 피어오르는
진한 향기가 있어요

당신의 향기처럼
진한 사랑으로
피어나고 싶어요

나도 당신에게
그런 사랑이 되기를
송이송이 꽃을 따며
희망의 노래를 부릅니다

송이송이 꽃송이 다 바쳐서
향기를 주신 당신처럼
송이송이 사랑의 향기를
당신에게 바치고 싶어요

보랏빛 구절초 꽃잎이 기지개를 펴더니 어느새 하얗게 피기 시작했다. 새벽안개 속에서 얼굴을 내미는 구절초 새하얀 얼굴이 행복한 아침을 연다.

모든 농사는 때가 있다. 구절초의 또 다른 이름, 선모초(仙母草)는 여자들이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약초이다. 구절초 향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꽃차가 그 방법이다. 토종 진돗개 혈통보존 운동을 40년 가까이 해온 형님과 아우와 도란도란 구절초가 피기 시작한 산으로 간다. 어미를 따라 여섯 마리 강아지들이 줄지어 뛰어간다. 강아지들의 첫 나들이 산행, 그 설레는 행렬을 따라가는 우리의 발걸음도 즐겁다.

샛거리(새참)로 가져온 작은 수박을 잘랐다. 홀로서기를 가르치는 어미가 젖으로 파고드는 새끼들에게 으르렁거린다. 수박을 한 입 베어 어미에게 준다. 젖 달라 애원하는 새끼들, 더 이상 거절할 수 없는 어미가 수박 먹는 것도 미루고 젖을 맡긴다. 선 채로 젖을 빨리는 어미와 꽁지발을 딛고 젖을 먹는 새끼들. 지극한 사랑,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어디 있으랴. 행복이 따로 없다.

구절초 꽃을 딴다. 따는 손길마다 코끝으로 스미는 향기. 그 향기 속으로 또 다른 향기가 피어오른다. 가장 아름다운 향기, 인생의 향기다. 내 인생의 꽃은 어떤 꽃이고 내 인생의 꽃향기는 어떤 향기일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내 인생은 어디쯤 와 있나. 어느새 50대 중년이다. 가장 험난한 중년의 고개를 넘고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 50대 중년의 현실은 가혹하다. 명예퇴직의 압박감, 고공행진 중인 대학등록금과 자녀 양육비, 자녀들의 혼인, 노후대책까지 이중·삼중고의 시기다.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권위가 점점 퇴색해가는 사회적 분위기도 중년의 남성을 힘들게 한다. 그런 중년의 아버지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험난한 중년의 고개... 내 인생은 어디쯤 와 있나

거룩한 풍경 젖을 물리는 어미와 젖을 빠는 새끼들
▲ 거룩한 풍경 젖을 물리는 어미와 젖을 빠는 새끼들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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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결혼한 50대 후반의 한 형님이 찾아왔다. 중년의 고개가 얼마나 가혹한지 통감하게 하는 고백을 했다. 농부로서 특별히 겪는 어려움이라기보다는 모든 중년이 겪는 어려움일 것이다.

"수박 모종 값이 없어 외상으로 수박을 심었어요. 그렇게 심은 수박인데 수박 값이 폭락하고 말았어요. 팔 곳 없는 수박을 고2 딸, 중2 아들과 따서 트럭에 싣고 대전 공판장으로 갔어요. 저녁 먹고 모텔을 잡아 아이들과 선잠을 자고 새벽에 공판장으로 갔어요. 수박 300덩이 28만 원. '우리 수박은 한 덩이 천 원 받았는데 다른 집 수박은 한 덩이 100원짜리도 있었다고, 우리 수박은 값 잘 받았다'는 말을 할 수 없었어요."

눈물을 글썽이는 고백과 하소연에 그 어떤 위로의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뜨거운 이슬만 두 눈에 담아야 했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 꽃차를 만들면 그 형님에게 먼저 선물해야겠다. 꽃을 따면서 중년의 아버지들을 위해 기도한다.

치열한 세상의 숲에서 나와 산골짜기에 들어와 산 지도 6년, 세상의 숲을 바라보는 삶을 살고 있다. 공동체와 노동, 기도와 명상은 인생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해준다. 인생은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 슬픔과 고통도, 기쁨과 행복도, 희망도 절망도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 다만 슬픔과 고통 앞에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고통스러운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 그리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시련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버팀목이라는 것을 아는 시기가 아닐까.

앞만 보고 달려온 중년의 인생을 한 번쯤 뒤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뒤돌아보는 내 인생이 갈지자인지, 일직선인지, 산을 넘어왔는지, 강을 건너고 있는지 뒤돌아보는 때가 중년이 아닐까. 인생에서 내 뜻대로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들이 더 많지 않았던가. 발버둥 쳐봐도 안 되는 일은 하늘에 맡기는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들 사이로 강아지가 눈에 들어왔다. 산에만 오면 신명이 나는 어미를 따라 강아지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첫 산행이니 가르치고 싶은 게 많은 탓일까. 독사에게 물리면 강아지들이 죽을 텐데, 불안하다. 아우가 어미와 강아지들을 데리고 먼저 집으로 갔다.

형님과 둘이서 구절초 꽃을 딴다. 10월 한낮 햇살에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한 송이 한 송이 따는데 '이 꽃을 따는 일이 수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더니, '천국이 따로 있을까. 이렇게 함께 노동하는 것이 천국의 기쁨이 아닐까. 노동이 없는 천국이라면 가지 않겠다'라는 건방진 생각으로 이어졌다.

다시 정신을 모아 꽃을 딴다. 한 송이 한 송이 따는 손길마다 기도가 된다. 구절초가 꽃향기를 사람들에게 나누듯 이 꽃차를 마시는 사람들도 아름다운 사랑의 향기를 나누시길.

강아지들의 첫 산행... 세월호 아이들이 생각났다

구철초 가을의 향기가 가득한 구절초
▲ 구철초 가을의 향기가 가득한 구절초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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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꽃을 따는 형님 핸드폰이 울렸다.

"형님 만나(어미)가 새끼 세 마리 데리고 먼저 내려갔는데 집에 와보니 만나와 새끼들이 없어요."
"어디 먼 데 안 갔겠지. 찾아봐."

송이송이 따는 손길이 간절한 기도가 된다. 어미와 강아지들이 집에 무사히 도착하길, 간절한 기도만큼 손길이 빨라진다. 다행히도 꽃 따는 일이 십여 분 만에 끝이 났다. '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 대신 '꽃바구니 들고 강아지 찾는 총각' 신세다.

"오요요! 오요요!" 혀와 입술로 소리를 내며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어미가 갔을 만한 길을 따라가며 "오요요! 오요요!" 쉬지 않고 강아지를 불렀다. 혀가 당기며 아팠다. 잠시 소리를 멈추자, 실오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깨갱! 깨갱!" 귀가 쫑긋 섰다. 작은 개울가 가시덤불 속에서 들려왔다. 허리까지 자란 잡초와 덤불을 헤치며 뛰어갔다.

"오요요! 오요요!"
"깨갱! 깨갱!"

서로의 간절함이 소통하는 소리, "어디에 있니! 소리 질러봐! 얼마나 무섭니!", "아빠 여기 있어요.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하는 소리.

강아지를 찾았다는 안도감 속으로 세월호 아이들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얼까. 이렇게 인간과 동물도 소통을 하는데 왜 인간끼리 소통이 되지 않을까. 살려달라고 손톱이 빠지도록 세월호 철판을 굵어댄 아이들. 커튼을 이어서 아이들을 구하다 커튼이 끊어지자 고무호스까지 내려서 아이들을 구했던 어른들. 단 한 명도 구조하지 않은 해양경찰들은 골든타임 7시간 동안 사적인 일로 자리를 비운 대통령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50대 중년이 우리 사회의 중심이다. 중심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원칙을 지키면 된다. 세월호 사고는 우리 사회 안전망의 원칙이 깨진 결과다. 돈이 중심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라는 원칙이 깨진 탓이다.

새벽별을 보고 출근해서 저녁달을 보고 퇴근하는 중년, 자식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려는 아버지들의 눈물겨운 사랑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의료선진화 정책이라는 늑대의 탈을 쓴 의료민영화, 우리 자녀들에게 '맹장수술 4000만 원'의 미국식 의료체계를 물려줄 순 없지 않는가. 제2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부를 수명이 다한 고리원전 등을 폐기처분해야 하지 않겠는가. 가정과 사회에서 돈보다 사람이 중심인 아름다운 세상, 우리 자녀들에게 지속가능한 세상을 물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주교구 진안성당 부귀공소 신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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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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