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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간들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해요. 못된 족속들이에요. 불구덩이에 쳐 넣어도 시원치 않을 구제불능이라구요."

나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할 때면 십여 년 전, 이스라엘의 한 협력업체 담당자의 말이 생각난다. 당시 그녀는 삼십 대 중반의 나이였고 쌍둥이 딸을 둔 엄마였으며, 텔아비브에 거주하면서 중소기업체의 수출담당 매니저로 일하는, 전형적인 중산층이었다. 한국에 출장 와서 역시 거래처 담당자인 나에게 그렇게까지 혐오와 분노의 감정을 드러낸 대상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었다.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1>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1>
ⓒ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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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1, 2>를 읽으면서 또 다시 부지불식간에 되살아난 기억이다. 평소 상냥하고 친절하던 그녀의 입에서 나온 상상하기 힘든 거친 말들은 도대체 어떤 근거로 생성된 것인지 궁금했다.

"유대교는 유일신을 믿는 보기 드문 종교이다. 이 세상의 종말에 메시아가 나타나 헤브라이인만이 신에 의해 선택 받은 민족으로 구제받을 것(선민사상)을 믿는 종교이다. 야훼란 '내가 있다'는 뜻으로 천지를 창조한 전능한 신, 군신, 율법과 정의의 신, 다른 신을 믿는 것을 금하는 질투심 많은 신이다. 유대교의 경전은 <구약성서>이다."(p.71)

지금으로부터 약 3000여 년 전에 모세를 따라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왕국을 건설하면서 '야훼'라는 민족신을 섬기는 유대교가 탄생했다. 수천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이젠 아랍인의 거주지가 된 팔레스타인에 1차 세계대전 기간 중 영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유대인들이 다시 이주해 유대인 국가를 건설한다(벨푸어선언).

최근 가자 지구에 폭격을 가해 수천 명의 희생자를 낸 이스라엘을 보면서 유럽의 백인들로부터 시작된 잔인한 폭력의 역사에 한숨 짓게 된다. 유대인들 스스로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되어 고통 속에 괴로워하던 2차 세계대전이 불과 70여 년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무차별 학살하던 당시의 나치와 뭐가 다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세계사를 보는 시야를 짧은 시간에 넓혀주는 역사책,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는 읽기가 수월하다. 이야기의 앞뒤가 연결되고 그림과 지도, 표들이 이해를 돕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역사적 사건들은 쉽게 잊히지만 이해된 맥락만큼은 기억 속에 남는다. 추천의 글을 쓴 이덕일의 분석에 따르면 이 역사책은 편년체적 기사본말체 서술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덕분인 듯하다.

물론, 하룻밤에 다 읽기는 역부족일 수 있겠지만,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400만 년 전 인류가 출현한 것을 시작으로 4대 문명지로부터 발원한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의 역사를 한 눈에 조감할 수 있다.

저자 미야자키 마사카츠는 유럽인들에 의한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이 이미 존재하고 있던 아즈텍, 마야, 잉카 문명과 7천만으로 추정되는 인디언들에게는 대재앙이었고, 아프리카 인들이 노예선에 태워지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운다. 또, 미국의 링컨이 주도한 남북전쟁을 기점으로 해방된 노예들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인도인과 중국인이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는 사실도 설명한다. 현재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화교와 인도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세계사가 선택과목이었다. 기술이나 공업과 같은 쉬운 암기과목 대신 세계사를 선택하는 아이들이 드물 수 밖에 없었고 나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 결과는 이스라엘 담당자의 어여쁜 입이 뱉어내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에도 변변한 언쟁도 못하는 부끄러운 내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때 세계사를 선택했어야 했다.

덧붙이는 글 |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1,2> 전 2권, 지은이 미야자키 마사카츠, 옮긴이 이영주, (주)알에이치코리아, 2000년 3월 27일 초판, 2014년 9월 14일 2판 5쇄 발행,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1 - 400만 년 전 인류의 출현부터 21세기 글로벌 사회까지 종횡무진 세계사!, 개정증보판

미야자키 마사카쓰 지음, 이영주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2012)


태그:#세계사,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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