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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강소국 핀란드는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지 않겠다는 교육철학을 갖고 있다. 그 덕분인지 이곳에서는 학교 간 성적 편차가 거의 없다. 그 이웃 나라인 네덜란드는 지원자가 가장 많은 의과대학 입학생을 성적순이 아니라 추첨제로 뽑는다. 서유럽의 강대국 독일에는 사설학원이 없다. 이곳에서는 선행학습이 커닝에 준하는 부도덕한 행위로 여겨져 철저히 금지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와 반대다. 대학과 고등학교는 '서연고서성한중'이니 '특목고-자사고-일반고-기타고'니 하는 식으로 위계 서열화해 있다. 의대생은 전공 적합성과 무관하게 성적 이외에는 묻지마 식으로 선발된다. 선행학습 광풍에 국회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을 만드는 지경이다. 그들과 다른 우리만의 독특한 '교육 유전자'라도 있는 걸까.

속된 말로 '지랄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사춘기 아이를 둔 엄마들 사이에 떠도는 말이다. 그 어느 때든 모든 아이들은 정해진 양만큼 부모 속을 썩인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대한민국 가정과 학교 문화의 독특성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아이들이 '지랄'을 떠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과도한 경쟁 교육에 따른 성적지상주의 그리고 대학 입시가 주는 중압감일 것이다. 대학은 철저히 위계 서열화 됐다. 어떤 대학에 입학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많은 부분이 결정된다. 학생들은 성적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서 성적 차별은 인종차별보다 더 심각합니다"(박재원 '아름다운 배움' 부설 '행복한 공부연구소' 소장)라는 말까지 나올까.

바른교육상 수상한 SBS 프로그램, 책으로 나오다

<부모 vs 학부모>(SBS 스페셜 부모 vs 학부모 제작팀 지음 / 예담Friend 펴냄 / 2014.09 / 1만 4800원)
 <부모 vs 학부모>(SBS 스페셜 부모 vs 학부모 제작팀 지음 / 예담Friend 펴냄 / 2014.09 / 1만 4800원)
ⓒ 예담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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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페셜 부모 vs 학부모> 제작팀은 이 책에서 과도한 입시경쟁과 교육열로 인해 우리 사회와 가정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폐해를 살핀다. 이 책의 밑절미가 된 <SBS 스페셜 부모 vs 학부모>는 '2014 학부모가 뽑은 교육브랜드 대상'에서 '2014 바른교육상'을 수상했다. 성적주의와 대입 중압감에 시달리는 이 시대 부모들에게 다가온 게 많았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는 '부끄러운' 교육 현실이 있다. 지난 14년 간 우리나라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의 전 영역(읽기, 수학, 과학)에서 최상위권을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2012년 평가에서는 수학 평가 결과가 OECD 국가 중 1위였다.

그런데 제작팀은 이것이 사교육으로 인한 착시현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가령 수학의 주당 수업시간은 평균 3시간 33분으로 OECD 평균(3시간 38분)과 비슷했다.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사교육을 의미하는 '별도 수업 참여 시간'은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세 배 넘게까지 차이가 났다. '수학에 대한 흥미도'와 '내적 동기'도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청소년 자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201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5세에서 19세 사이 청소년 중 300여 명이 매년 자살로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하루에 한 명꼴이다.

지난 2013년 3월, "제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어 이제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라는 글을 남기고 목숨을 끊은 한 아이를 기억하는가. 아이는 전국에서 서울대를 가장 많이 보낸다는 지방 명문 사립고 재학생이었다. 입학 당시 450명 중 150등 정도였던 그 학생은 자살하기 2주 전 치른 수능 모의고사에서 인문계 일등을 차지할 정도로 놀라운 성취를 이뤄냈다고 한다. 하지만 과도한 성적 압박은 그 성실한 아이를 결국 죽음으로 내몰았다. 더 서글픈 사실은 학교가 그 아이의 죽음을 마치 '없던 일'처럼 취급했다는 점이다.

"몇 학년 몇 반 누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으니 그를 위해 명복을 빌어주자는 선생님은 없었다. 하다못해 "동요하지 마라, 공부에 집중하라"는 훈화 말씀조차 없었다. 친구의 부재는 물 떠낸 자리처럼 고요했다. 기숙사 생활도 같이했고 같은 지역 중학교 출신이라 부모들끼리도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 친구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더 깊은 충격과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2년 전, 한 선배가 자살을 했을 때도 학교의 대응은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본문 52쪽 중에서)

제작팀은 이런 야만적인 현실에 조그마한 균열이라도 내보자는 심정으로 한 프로젝트를 시도한다. 서울 대치동의 어느 카페를 중심으로 진행한 '기적의 카페' 프로젝트이다. "대치동이 바뀌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사교육이 '불안 마케팅'으로 주도해온 학부모 문화의 잘못된 흐름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학부모'가 아니라 '부모'가 되기 위해 필요한 능력

제작팀은 부모와 학부모 사이에서 길을 잃은 채 불안해하는 많은 이에게 '기적의 부모력'이 되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새가 높은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세상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조감력'이 그 첫 번째 항목이다.

'부모'와 '학부모'는 모두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란다. 어디에서 차이가 날까. 제작팀은 '상황의 압력'을 통해 설명한다. 공부를 못하면 세상 살기 힘들고, 성적은 무조건 잘 받아야 하며, 공부를 잘 시키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외적 압력 때문에 평범한 '부모'가 '괴물'이 되어 아이들을 괴롭히는 '학(虐 : 사나울 학)부모'가 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제작팀은 부모의 불안한 마음에 자신의 무능력이나 아이의 성적보다 상황의 압력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하늘을 나는 새가 '조감력'을 통해 아래를 두루 넓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아이를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토대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제작팀은 그런 조감력만 갖춰도 부모의 불안이 한층 낮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부모가 스스로 자신의 불안을 다스리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은 그것이 아이의 자존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언행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규정하고 세상을 바라본다. 부모가 장점을 찾아 칭찬하면 아이는 "내가 괜찮은 사람인가 보구나"라고 생각하고, 부모가 늘 단점만 지적하면 아이도 "나는 구제 불능이구나"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본문 154쪽 중에서)

제작팀은 조감력 외에도 아이의 감정을 공감하고 조절할 수 있는 조절력, 상상한 만큼 아이를 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상상력, 실천하는 만큼만 부모로 만들어주는 실행력 등을 강조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상상력 4단계법'이었다. 저자는 부모가 상상하는 딱 그만큼만 아이가 달라진다며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상상력 4단계법을 설명한다. 성찰일기와 부모 십계명 등을 통해 '학부모'가 '부모'가 되는 구체적인 팁을 제공하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시카고대학의 스티븐 레빗과 컬럼비아대학 스티븐 더브너가 자녀의 학교성적과 상관관계가 있는 부모의 특징을 살핀 연구 사례 또한 음미해볼 만하다.

"자녀의 성적은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는지'가 아니라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책을 열심히 읽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책을 많이 읽는 부모일수록,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해주는 게 아니라 자기 삶에 충실한 부모일수록, 자녀를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워킹맘이라면 아이에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갖는 대신,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지고 즐기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라. 전업주부라면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대신, 엄마 자신의 인생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본문 183~184쪽 중에서)

'학부모'에서 '부모'로 거듭나는 일은 생각이나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제작팀의 말대로 대한민국 전체가 '부모'가 아니라 '학부모' 천지인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제작팀은 전문가들이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하는 '협동'을 상기하자고 말한다.

책에는 <경쟁에 반대한다>라는 저서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알피 콘과의 인터뷰가 비중 있게 실렸다. 그는 진화생물학과 비교문화인류학, 조기아동교육 등을 넘나들며 30년간 연구에 매진했다. 알피 콘 박사는 인류의 생존과 진화에 더 적합한 본성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경쟁은 인간 본성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혹은 심리적 결핍 때문에 나타난다.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때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제작팀은 우선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뜻이 맞는 이웃과 함께 사회적 연대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삶의 중심을 아이가 아니라 부모 자신에게로 살짝 옮겨오는 것도 필요하다. 부모로서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책읽기 모임이나 토론 모임 등을 통해 배움에 힘쓰고, 사회 변화에 기여하는 여러 단체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할 때 부모의 욕망과 불안을 자녀 사랑이라고 여기는 착각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부모 vs 학부모>(SBS 스페셜 부모 vs 학부모 제작팀 지음 / 예담Friend 펴냄 / 2014.09 / 1만 4800원)

이 기사는 정은균 시민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부모 vs 학부모

SBS 스페셜 부모 vs 학부모 제작팀 지음, 예담Friend(2014)


태그:#<부모 VS 학부모>, # 제작팀,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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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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