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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많은 취재 차량과 봉사단체들의 천막으로 넘쳐나던 팽목항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다.(아래)바람이 많이 부는 진도 팽목항의 일요일 오후, 사람들의 방문은 드물지만 리본의 펄럭임은 힘차다.
 (위)수많은 취재 차량과 봉사단체들의 천막으로 넘쳐나던 팽목항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다.(아래)바람이 많이 부는 진도 팽목항의 일요일 오후, 사람들의 방문은 드물지만 리본의 펄럭임은 힘차다.
ⓒ 강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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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도 가을이 왔다. 들녘엔 벼이삭이 누렇게 익어가고 가지를 늘어트린 감나무엔 햇볕에 빛나는 주홍빛이 탐스럽다.

봄에 터진 일이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왔다. 겨울을 지나 시작된 일이 다시 겨울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곳엔 여전히 가족들이 있다. 여전히 사랑하는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실종자 가족'이 있었고, 그들을 위로하겠다며 나선, 이미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도 있었다. 그들의 아픔을 담아낸 듯 감은 더욱 붉었고, 아직은 희망을 버릴 수 없다며 벼는 더욱 눈부신 황금색으로 빛났다.

진도 세월호 자원봉사자 손이 모자라다

3일 연휴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5일) 오전 8시. 안산시 올림픽체육관에서 진도로 출발하는 버스에는 20여 명이 탑승했다. 그 중 절반은 세월호 피해자(실종자, 유가족, 생존자)의 또 다른 가족들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들을 돕고 위로하기 위해 모인 봉사단이었다.

5개월 만에 다시 찾은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당혹감과 슬픔, 안타까움이 뒤섞인 속에서 서로를 위해 분주했던 지난 봄과는 달리, 지금 남아 있는 가족들과 봉사자들은 조용한 침묵 속에서 '서로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듯' 처연한 모습이다.

현재 세월호 실종자는 총 10명. 한 가족에 두 명의 실종자가 있는 집이 있어, 가구 수는 9가구다. 이 중 두 가구는 팽목항에, 나머지 가족들은 진도실내체육관에 머무르고 있다. 그나마 실내체육관은 주민들의 철수 요구가 만만치 않아 조만간 나가야 할 형편이다. 진도 현장에서 170여 일을 함께 하고 있는 안산시자원봉사센터의 김건주 팀장의 말이다.

"내년 4월에 진도에서 전라남도 체전이 잡혀 있다고 합니다. 전라남도 22개 시군의 선수들이 이곳으로 전지훈련을 오고 그로 인해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이를 위해 체육관 리모델링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이에 대해 실종자 가족들도 이해를 해주는 편입니다. 진도군과 실종자 가족들, 범국민대책위에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TF팀을 구성했으니 조만간 이동 장소를 정하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뉴스에서 세월호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듯 진도 현장에도 적막감이 지배적이다. 한 때 천여 명이 모여 '구조의 희망'을 외치던 실내체육관에는 불과 10여 명의 가족만이 남아 돌아오지 않는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다. 수백 명의 봉사자들이 모여 일사천리로 움직이던 모습도 이젠 어렵게 모인 10여 명의 봉사자들이 힘겹게 이어가는 모습으로 바뀌어 버렸다.

김건주 팀장은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다. 보통 50여 명의 봉사자가 필요한데 평균 15명 정도로 버텨나가야 하며 어떤 날은 봉사자가 단 한 명만 내려온 적도 있다"며 "아직 세월호가 끝난 것이 아닌데 너무 관심이 멀어져 안타깝다"고 말한다.
   
날도 추워지는데... 실종자 가족들 어디로 가야 하나

진도 팽목항 주변에 나부끼던 노란 리본들은 빨강 등대가 있는 방파제로 모두 모아졌다.
 진도 팽목항 주변에 나부끼던 노란 리본들은 빨강 등대가 있는 방파제로 모두 모아졌다.
ⓒ 강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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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기는 팽목항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중계차와 각 봉사단체들의 천막이 도열했던 거리는 말끔히 치워졌고, 사방에서 나부끼던 노란색 리본들은 빨간색 등대가 있는 방파제로 모아졌다.

주말봉사를 위해 안산에서 진도를 찾은 참안산사람들의 김재권(안산시 상록구 일동, 44)씨는 "아직도 찾지 못한 실종자가 10명이고, 사망자 294명에 대한 원인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제 잊자'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김씨는 "경제를 살리는 것과 세월호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엄연히 달리 생각해야 할 일"이라고 평가했다.

사고 발생 173일째인 5일 일요일 오후, 진도 팽목항 한 편에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는 주인을 기다리는 신발과 간식들이 놓여 있다.
 사고 발생 173일째인 5일 일요일 오후, 진도 팽목항 한 편에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는 주인을 기다리는 신발과 간식들이 놓여 있다.
ⓒ 강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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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실내체육관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특히, 남쪽 지방이라 따뜻할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듯 진도 읍내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옷깃을 여밀게 만들었다. 저녁 여섯 시경부터 시작된 실종자 가족들의 저녁식사가 얼추 마무리될 즈음, 자원봉사자들도 삼삼오오 모여 함께 식사했다. 제법 많은 양의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니 시계는 8시를 가리킨다.

더 이상의 북적거림도 없는 진도실내체육관은 조용히 수면 모드로 들어섰다. 체육관 1층은 실종자 가족들이, 2층엔 자원봉사자들이 다리 뻗을 곳을 찾아 이부자리를 폈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체육관의 밤은 고요함속에 지나갔다.

174일째를 맞은 월요일 아침, 특별한 일을 기대하지만 특별할 것 전혀 없는 또 하루가 시작됐다. 여저히 봉사자들은 가족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를 걷고, 체육관 이곳저곳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오전에 만난 실종자 가족 N씨는 "이제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한편, 안산시자원봉사센터의 김건주 팀장은 "실종자 가족들의 건강과 진도 군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조만간 거주지 이전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안산지역 인터넷뉴스 데일리안산(www.dailyansan.net)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태그:#세월호, #진도,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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