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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깔크막 하나 포도시 넘은 것 뿐입니다."    

황풍년(49) 월간 <전라도닷컴> 대표 겸 편집장은 150호 째(10월)를 발행한 데 대한 소감을 묻자, 전라도말로 짧게 대답했지만 이 말엔 여러 의미가 함축돼 있다. 사연 많은 전라도 사람들의 눈물과 웃음, 그리고 구성진 전라도 문화만을 쫓아 잡지와 웹진에 오롯이 담아왔지만 지나온 시간들이 결코 녹록지만은 않았음을 시사해 준다.   

지난 2000년 웹진으로 출발한 <전라도닷컴>은 지금의 월간 잡지에 이르기까지 줄곧 전라도 곳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풀어내는 삶의 이야기, 전라도 구석구석의 자연과 음식에 담긴 이야기, 그리고 풍요로운 전라도 특유의 문화를 실어왔다. 보기 드문 토속성 넘치는 지역매체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황 대표를 비롯한 직원들, 그리고 열정 넘치는 독자들의 고집과 집념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굽이굽이 어여쁜 전라도길, 구절구절 사연 많은 전라도땅,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 그리고 구성진 전라도문화를 오롯이 담아내는, 묵은지 같은 잡지를 만들겠다'던 초심 그대로 지키며 150번째 잡지를 발행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과 독자들의 기쁨은 더욱 커 보인다.

거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전국 각 지역에까지 매체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서울의 언론재벌들에 맞서 설자리를 조금도 내주지 않고 꿋꿋하게 자리해 온 <전라도닷컴>. 전라도의 구수한 냄새가 가득 담긴 150호의 갖가지 기획특집들과 독자들의 이름으로 실린 응원광고는 <전라도닷컴>이 앞으로 나가야할 방향을 잘 암시해 준다.

<전라도닷컴> 150호, 열혈독자 응원광고 '눈길'

월간 <전라도닷컴>이 10월로 통권 150호째 발행했다(사진은 150호 잡지 표지).
 월간 <전라도닷컴>이 10월로 통권 150호째 발행했다(사진은 150호 잡지 표지).
ⓒ 전라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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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발언할 수 있는 힘 있는 사람 대신, 지난 시절 뭐든 나놔묵으며 버티고 살아온 할배할매들, 농부어부들, 아낙네들과 젊은이들을 찾아 전라도 구석구석 누벼온 <전라도닷컴>. 부와 권력이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내리 꽂는 시절, 변종 지역주의 혐오가 창궐하는 하수상한 시절, 나놔묵으며 함께 사는 길을 안내하는 실오라기 정신 줄 같은 책. <전라도닷컴> 150호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전라도닷컴> 150호를 맞는 열혈독자들의 응원광고는 점점 황폐해가는 지역 언론계에선 보기 드문 자랑거리다. 이러한 믿음직스런 독자들이 있기까지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라도닷컴>은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 '전라도 그림전', '촌스럽네 사진전' 등을 해마다 열어 지역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또 독자들을 초대해 매년 '영화 보는 송년회', '진도와 능주 씻김굿' 등 문화공연을 개최하여 독자와 함께 하는 모범적인 지역언론으로 손색이 없다.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올해의 우수잡지' 수상과 2012년 잡지산업 유공자 표창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수상 등은 이러한 바탕에 기인한다.  

그래서인지 통권 150회를 맞는 황 대표의 감회는 누구보다 크다. 그는 150호 발행에 부쳐 "돈과 권력을 가진 강자들의 기록이 우대받는 세상이지만, 순정한 전라도 어르신들의 삶이야말로 진정 오래오래 물려줘야 할 역사라는 믿음을 품어왔을 뿐이다"며 "여러분들의 사랑으로 전라도닷컴은 비탈진 '깔크막(비탈)' 하나를 또 넘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2014년 6월 열린 '제4회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 개최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황풍년 대표.
 2014년 6월 열린 '제4회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 개최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황풍년 대표.
ⓒ 황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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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호를 발행해 오기까지 황 대표의 보람과 자부심은 누구보다 크지만, 지난 8월 30일 보수단체 회원들로부터 해킹과 사이버 테러를 당한 것은 가장 가슴 아픈 일로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전라도닷컴이 전라도의 문화와 사람, 소중한 문화적 자산 등을 기록하고 가꿔 나가는 역할은 계속해 나갈 것"이라며 "더불어 진정한 지역화합을 위해서도 열심히 뛸 것"이라고 덧붙여 강조했다.    

편집장을 겸하는 것도 부족해 현장 취재기자로 뛰면서 전라도 음식과 숨겨진 남도 문화를 꾸준히 소개해 온 황 대표는 <벼꽃 피는 마을은 아름답다>에 이어 최근 <풍년 식탐>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경상도닷컴, 충청도닷컴, 강원도닷컴 등 팔도닷컴을 만드는 게 꿈"이라는 황 대표와 지난 3일과 4일 이틀 간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전라도닷컴> 150회 통권 발행기념 인터뷰를 했다.

<전라도닷컴>의 지나온 세월의 평가와 향후 운영방안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아울러 지역신문기자(전남일보 공채 3기) 출신인 그에게 갈수록 암울해져만 가는 지역언론계의 당면 현안과 나아갈 길 등에 대해서도 함께 들어보았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작은 깔크막 하나 포도시 넘어...'사이버 테러' 내내 가슴 아파"

- <전라도닷컴>을 운영해 오면서 보람도 많았겠지만 어려움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150호를 손에 든 소감이 어떤가?
"전라도말로 하자면 '또 작은 깔크막 하나를 포도시(간신히) 넘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면 아득하지만 독서인구가 급감하는 시대에 정기간행물을 펴낸다는 건 한 권 한 권 숨 가쁘게 비탈을 넘어가는 기분이다. 전라도의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신 우리네 엄니 아부지들과 변함없이 사랑해주신 독자들, 그리고 내 곁에 있어준 <전라도닷컴> 식구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 전라도 특유의 색깔을 고집하며 철저한 지역의제로 승부를 펼쳐왔다. <전라도닷컴>이 지역에 어느 정도 울림을 전했다고 보는가?
"울림이 있었다면 아마도 뉴스와 정보가 크고, 센세이션하고, 세계적인 것들만이 아니라 정작 중요한 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지금 여기'의 삶과 문화라는 인식을 조금이라도 확산시켰다는 점이랄까? 특히 지역말을 읽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 편의대로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해 매체의 중심 언어로 만들었다는 점, 또 요즘 지역마다 지역말의 소중함이 다시 부각되고 있는 점에서 조금 기여했다고 본다."

- 최근 <전라도닷컴> 사이트가 해킹과 사이버 테러를 당해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고 들었는데,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다. 진행상황이 궁금하다. 
"우선 전라도니 경상도니 충청도니 하는 이름이 정치적으로 갈등과 반목의 지역성으로 악용되고 있는 풍토가 여전하다는 점이 안타깝다. 이런 풍토에 기반 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있고, 그 연장선에서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같은 극단적 일탈이 방조되고 조장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전라도닷컴>은 주로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과 오래된 마을 공동체 이야기인데 이런 사이트에 들어와 '홍어'같은 말로 도배를 하고 어르신들의 얼굴 대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이상하게 편집해 싣는 등의 행위는 가히 패륜행위나 다름없다고 본다.

이는 결국, 전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등 지역을 망라해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식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전라도닷컴>은 지역의 속살을, 본때를 꾸미지 않고 보여줌으로써 궁극적으로 모든 지역이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고 화합해야 한다는 소신을 품어왔는데... 현재 사이트를 해킹하고 사이버 테러를 한 네티즌들에 대한 경찰수사가 진행 중이다. 아마 불법행위에 대한 사법처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팔도닷컴> 만들어 화합·소통중심 채널 될 것"

두라도에서 방풍할매의 삶을 취재하고 있는 황풍년 대표.
 두라도에서 방풍할매의 삶을 취재하고 있는 황풍년 대표.
ⓒ 황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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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닷컴>뿐 아니라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등 <팔도닷컴>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도 그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지, 이유도 궁금하다.
"2000년 처음 <전라도닷컴> 사이트를 오픈할 때 나는 <전라도닷컴>뿐 아니라 <경상도닷컴>, <경기도닷컴>, <충청도닷컴>, <강원도닷컴>, <제주도닷컴>까지 모두 한글 도메인을 등록해 두었다. 모든 지역이 자기 지역의 삶과 문화를 자기 지역의 언어로 기록하는 일이야말로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시대에 결핍된 기록을 메우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모든 인간이 자존감을 갖는 출발이며 문화 다양성을 지키는 발판이라 여겼다.

실제로 나는 <전라도닷컴> 출범 이후 <경상도닷컴>을 만들기 위해 부산쪽 사람들과 상당한 진전을 보기도 했으나 결국 좌절됐다. 그런 여러 지역 웹진의 연대를 <팔도닷컴>으로 이뤄보고 싶었다. 지금은 그런 최초 의도는 이루지 못했지만, 작년부터 대전의 월간 <토마토>, 부산의 격월간 <함께 가는 예술인>, 수원의 계간지 <사이다>, 인천의 월간 <옐로우> 등과 연대하는 '지역문화 잡지연대'를 만들어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 시민청 갤러리에서 '촌스럽네' 사진전을 열었고, 8월 부산에 이어 대전 등으로 확산시켰다. 서울과 다른 지역의 종적관계가 아니라 지역 간의 횡적연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진정한 지역화합과 소통은 서울중심의 정책적, 인위적 시도들이 가져다주지 않는다."    

-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고, "<전라도닷컴>의 표준말은 전라도 말"이라고 강조할 정도로 전라도 사투리에 많은 애정과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지역말은 문화 다양성의 보루다. 지역말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지역사람들의 삶과 공동체문화를 표현하고 담아온 문화의 그릇이자 그 자체가 문화다. 어느 지역이나 나름의 자연환경과 역사적 특수성들이 사람의 말글살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왔고 그 지역사람들만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의미와 뉘앙스를 주고받으며 정착되어왔다. 서울중심의 협소한 표준말은 이제 여러 지역언어들을 포괄하는 확장적인 표준말로 변화되어야 한다. 지역말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말이다. 돌아보면 시, 소설, 산문 등 우리 문학을 살찌운 언어들은 풍부한 감성과 다채로운 수식과 형용으로 가지를 쳐온 지역말에 기반하고 있다."

- 지역밀착형 콘텐츠로 다른 지역언론들과는 차별화를 보여 왔는데, 그로 인해 다른 지역언론들도 변했다고 보는지.
"<전라도닷컴>은 전라도라는 좀 큰 마을의 이야기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주장해온 셈이다. 요즘 '마을 만들기'와 '마을 미디어'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그런 작은 매체운동에 적잖이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은 하지만..." 

- 전라도는 지역신문이 다른 지역에 많은 편인데다, 지역민들로부터 썩 좋은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지역신문들은 아직도 서울지역의 이른바 중앙지들을 흉내 내고 있다. 작지만 생활에 밀착되어있는 지역의 의제들을 현장을 중심으로 퍼 올리기 보다는 관공서 중심의 큰 뉴스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뉴스가 실제의 삶과 밀착되기보다는 센세이션하거나 재미있거나, 아무튼 독자의 삶과 유리된 그저 구경만 강요하는 식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역 삶 기록하는 지역언론 기자, 매우 가치 있는 일"

2012년 잡지의 날을 맞아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한 <전라도닷컴> 황풍년 대표.
 2012년 잡지의 날을 맞아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한 <전라도닷컴> 황풍년 대표.
ⓒ 전라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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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부자신문들의 무분별한 시장공략으로 지역신문은 물론 잡지의 판매시장이 갈수록 비좁아지고 있는데, 계속 잡지를 만들 것인지.   
"지역의 잡지시장은 갈수록 협소해진다. <전라도닷컴>은 지역을 이야기하지만 사람살이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잡지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서 그나마 전국적으로 독자가 분포되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다루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함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광고나 사업 등이 어렵다. 창간 이후 단 한 번도 지역의 토호나 완장(속된 말로 하자면)들의 낯 내기용 혹은 띄워주기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암튼 어렵지만 민초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기록을 계속해나갈 각오다. 그러나 언제까지 주변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할 수 있을지..."

- 대표를 맡으면서 편집장과 현장기자로까지 뛰고 있는데, 앞으로 꼭 기획하여 취재해 보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쇠락해가는 농어촌에 뛰어든 젊은 일꾼들을 줄기차게 다뤄나가는 연재를 해볼 요량이다. 또 전라도 음식에 대한 취재도 좀 더 깊이 있게 해보고 싶다."

- 지역언론, 특히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는 여전히 팍팍한 실정이다. 그래도 지역언론 기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느 시대나 글을 배운 사람들은 주로 강자들을 기록함으로써 밥벌이 삼아왔다. 그 기록들이 역사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힘 있는 사람들의 역사만 갖게 되고 수많은 민초들은 역사의 실제 주인공이면서도 사라져 버렸다. 지역사람들의 삶과 마을공동체를 기록하는 지역의 기자는 진정한 역사를 기록하는 가치 있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 문화의 뿌리를 지키는 자존심이요 후손에게 모든 인간의 존엄을 가르치는 교과서가 될 것이다. 훌륭한 기자는 결코 연봉, 대우, 돈이 결정하지 않는다. 가치 있는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 

1964년생 순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고향에서 마치고 서울의 한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황 대표는 1991년 광주지역 일간지(전남일보) 기자로 출발해 2000년 <전라도닷컴> 웹진을 만들고, 2002년 3월 월간 <전라도닷컴>을 창간해 발행인과 편집장을 겸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이국적인 외모와 이름에서 풍기는 토속적인 이미지가 어쩐지 잘 어울리는 그에게서 강한 자신감이 묻어난다. <전라도닷컴>이 200호를 넘어 500호, 1000호를 발행하는 순간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건강한 지역매체로 성장해 나갈 것이란 확신이 느껴졌다.


태그:#전라도닷컴, #황풍년, #팔도닷컴, #전라말자랑대회, #묵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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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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