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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안에는 공통의 맥락이 담겨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MBC)와 <슈퍼맨이 돌아왔다>(KBS2), 그리고 <오늘부터 출근>(tvN)을 살펴보자. 주요소재가 연예인의 가상결혼, 실제 방송인 부부의 육아 일기, 회사에 가상으로 입사한 인물들의 직장생활 체험이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인기 있는 연예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한 쌍의 짝을 이루어 '신혼'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치 실제로 결혼한 커플처럼 '여보'나 '서방'의 호칭으로 출연진들이 서로를 부르고, 달콤한 사랑 고백과 이벤트도 이어진다. 연애의 아기자기한 측면을 부각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진짜도 아니고 가짜도 아닌, 애매한 감정이입과 역할극으로 시청자를 헷갈리게 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해서 평소와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추성훈.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육아의 모습이 삼포 세대인 우리의 현실과 얼마나 비슷할까.
▲ <슈퍼맨이 돌아왔다> 한 장면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해서 평소와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추성훈.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육아의 모습이 삼포 세대인 우리의 현실과 얼마나 비슷할까.
ⓒ 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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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이 돌아왔다>는 가상이 아닌 실제 부부의 아이 돌보기를 다루고 있다. 이휘재나 송일국, 추성훈 등 '아버지'가 아이들을 데리고 겪는 좌충우돌 일화를 비춘다. 훈훈한 장면의 연출로 시청자들의 미소를 끌어낸다.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쩔쩔매는 중년 남자들의 모습이 교차한다. 출연자가 기존의 방송에서 보여줬던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보이며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지난 9월 20일부터 막 방송이 시작된 <오늘부터 출근>은 케이블 채널인 tvN의 프로그램이다. JK김동욱과 로이킴, 홍진호와 김성주가 등장하여 한국 대기업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상황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서 보여주는 모습은 앞서 소개된 두 프로그램과는 약간 다르다. 미화된 현실이 아니다. 그래도 어쩐지 씁쓸한 부분이 느껴진다.

사실 세 방송을 접하는 시청자들은 유쾌하게 시청하다가도 마냥 웃기만 할 수는 없다. 도대체 어째서일까?

현실과 다르거나 고스란히 재주입하거나

<우리 결혼했어요>는 달달한 연애와 사랑 이야기를 보여 준다. 그러나 가사 분담, 수입 분배, 육아에 대한 계획 등 현실의 결혼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판타지에 국한된 이야기이다.
▲ <우리 결혼했어요> 홈페이지 메인 화면 <우리 결혼했어요>는 달달한 연애와 사랑 이야기를 보여 준다. 그러나 가사 분담, 수입 분배, 육아에 대한 계획 등 현실의 결혼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판타지에 국한된 이야기이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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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했어요>의 내용으로 채워지는 집안 살림과 연애는 현실의 결혼생활과는 상당히 다른 비중으로 다루어진다. 실제 결혼생활이 아니기에 수입문제나 가사 분담 등의 현실적인 문제는 가볍게 걸러내고, 결혼의 아름다운 측면만 부각된다. 덕분에 방송은 훈훈한 분위기로 매주 일요일을 장식한다.

마치 '이렇게 달콤하고 화려한 연애의 연장인 결혼, 당신은 어째서 하지 않는가?'하고 시청자에게 묻는 듯하다. 이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도 마찬가지인데, 프로그램에서는 아이를 낳아 아무런 경제적 어려움이나 맞벌이의 고뇌 없이 육아를 거뜬히 해내는 남성의 모습이 시종일관 방영될 따름이다.

'삼포 세대'로 불리는 오늘날 청년세대는 연애와 결혼, 육아를 사실상 포기하면서 살고 있다. 단순히 '하기 싫어서'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벽이 너무 높기에 차마 넘보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해당 소재를 다룬 예능 프로그램은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상황을 미화하면서 대리만족을 안겨주는 선에 그친다.

<오늘부터 출근>은 현실을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재주입한다.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는 직장의 문화가 그릇된 것이 아니라 적응하지 못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진다.
▲ <오늘부터 출근> 포스터 <오늘부터 출근>은 현실을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재주입한다.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는 직장의 문화가 그릇된 것이 아니라 적응하지 못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진다.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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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출근>은 조금 다른 편이다. 이 프로그램은 회사생활을 즐겁고 유쾌하게 그려내면서도, 마냥 아름답게 포장하기보다는 기업 특유의 딱딱한 시스템과 문화에 일침을 날린다. 신입사원에게 부서 업무와는 무관하게 정수기 물통 교체나 커피 심부름 등의 잡일만 안겨주는 비효율적인 업무체계, 군대처럼 상사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절대복종을 강요하는 '상명하복'의 분위기, 회식자리에 예외 없이 참석을 강요하는 것 등이 사례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의 합이 보여주는 것은 회사에 변화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출연진일 뿐이다.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슈퍼모델, 가수, 전직 프로게이머가 수직적인 체계와 엄한 규율에 당황하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담아낸다. 마치 비상식적인 지시와 창의성을 말살하는 폭압적 구조가 아니라, 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개인이 문제라는 식으로 끝을 맺는다. 결국 '회사생활'의 폐해를 보여주면서도 대안이 아닌 기존의 권위주의와 편견을 시청자에게 고스란히 재주입하는 셈이다.

현실 미화의 역할에 머무르는 예능의 현주소

<꽃보다 할배>가 보여주는 따뜻한 여행기는,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의 노인들과 큰 차이가 있다.
▲ <꽃보다 할배> 홍보 포스터 <꽃보다 할배>가 보여주는 따뜻한 여행기는,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의 노인들과 큰 차이가 있다.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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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tvN에서 방영된 <꽃보다 할배>는 '예능은 젊은 세대들만 출연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프로그램이다. 노년의 배우들이 유럽을 여행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꽤 새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구, 이순재, 박근형, 백일섭 등 평균연령 76세의 '할배'들이 자유롭게 세계 각국을 둘러보는 모습은 따뜻했다. 배낭여행은 청년의 전유물이라는 발상에 도전하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아 6%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기록했고, 올해에만 두 번째, 세 번째 시즌이 제작됐다. 나영석 PD의 기획이 성공적이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젊은 나날에 자신의 분야에 매진하던 인물들이 삶의 노을이 보이는 시기를 맞아 훌쩍 여행을 떠나는 설정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모습은 젊은 세대의 꿈이자 노년층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사정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기성세대는 흔히 '젊을 때 고생하면 늙어서 행복하다'고 믿고 살아왔는데, 최근 발표된 자료들은 다른 결과를 말하고 있다. 지난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JTBC 뉴스룸>에서 보도한 바로는, OECD 34개 회원국 중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1위라고 지적되었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을 받는 노인은 38%에 불과하고, 65세 이상 노인 중 상대적 빈곤율도 2006년보다 5%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한국의 노인들은 해외여행은커녕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생계를 이어가기도 힘든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방송되는 예능은 격차가 큰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예능 속의 모습이 한국 노인 다수의 현실과 다른 이유는 외면한다. 노후문제를 사회가 아닌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시킨다. 여행을 즐기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판타지가 되며, 마치 '노력하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결혼과 육아, 취업에 더해서 행복한 노후까지도 이제는 그저 예능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해야만 하는 시대가 됐다.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일자리와 임금, 치솟는 물가와 대학등록금, 부족한 정부의 지원과 줄어드는 복지정책까지... 하나하나 천천히 돌아보면 개인의 노력으로 넘기 힘든 벽이다. 그러나 구조와 환경의 문제는 언급되지 않고 현실 미화의 역할에 머무르는 것이 오늘날 예능의 현주소이다. 현실의 일상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결혼제도와 직장생활, 노후와 육아를 핵심 소재로 다루면서도 말이다.

현실과 예능의 거리감, 정부의 책임이 크다

물론 마냥 예능만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이런 프로그램들은 가볍게 시청하며 웃고 즐기는 차원에서 소비되도록 만들어졌다. 사회의 문제 요소들을 탐사하고 취재하는 일은 다큐멘터리나 뉴스가 맡아야 할 영역에 가깝다.

현실과 예능의 멀고 먼 거리감은 어디서 왔을까. 더 중요한 원인은 지나치게 가벼운 예능에 있지 않다. 지나치게 추락하는 현실에 더욱 큰 책임이 있다. 청년실업률은 높고, 출산율은 떨어지는 상황에서 현실과 예능의 괴리감은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무엇을 대책으로 추진 중인지 살펴야 한다.

지난 1일, 보건복지부는 심각한 출산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는 두 명 이상 낳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방송광고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광고를 통해 출산 장려에 나서는 모양새다. 육아휴직 정책에 변화가 생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청년 세대에게 출산은 하나의 거대한 난관이다. 심각한 취업난을 뚫고 간신히 일자리를 가져도 낮은 임금에 시달린다. 결혼과 내 집 마련 자체가 힘들다.

노후를 보장받을 수 없고, 당장 오늘을 먹고 살기도 빠듯한 현실이다. 국민들은 총체적인 절망에 시달리고 있다. 이 와중에 세월호 참사로 '안전에 대한 불안'도 커진 상태이다. 진상규명이나 재발방지를 위한 정부의 노력도 와 닿지 않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9월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43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9월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43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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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박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당시 슬로건이었던 '국민행복시대'와도 거리가 멀고, MB시절 자랑스럽게 홍보하던 'G20에 속하는 경제 대국'의 모습과도 동떨어졌다. 결국 한국의 많은 사람은 '꽃보다 밥줄'을 생각하며 '우리 포기했어요'하는 심정으로 결혼을 바라볼 따름이다.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사회에서 '슈퍼맨은 어디갔나' 자문하며 '오늘도 비정규직'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1박2일' 일하는 일용직도 감수하고, 어떤 직종이든 '무한도전'하며, 늙어서도 쉼 없이 뛰는 '런닝맨'으로 지내야만 한다.

정부가 재계의 요구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처우개선도 함께 고려하고, 증세에 걸맞은 복지정책의 시행도 수반되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자리 문제와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후보 시절 내세웠던 공약을 지키기 위해 절실히 노력해야 한다. 훗날 유권자가 될 시청자들이 언제까지나 예능을 그저 밝게 웃는 얼굴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태그:#예능, #우리 결혼했어요, #슈퍼맨이 돌아왔다, #꽃보다 할배, #오늘부터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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