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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블록평상이 완성된 직후 주민 분들이 와서 앉아 본다.
▲ 평상이 있는 풍경 아트블록평상이 완성된 직후 주민 분들이 와서 앉아 본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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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프로젝트 <틈만나면>은 인천 문화재단에서 주최한 '2013년 지역 공동체 문화 만들기 청년작가 기획공모 <청년, 동네를 상상하다>'에서 프로젝트 지원금을 받아 시작했다.

우리 <틈만나면> 작가 팀은 2014년 5월부터 인천 동구 송림동에서 현대 제철과 인천 문화재단이 주최하는 <마을 공동체 문화 만들기>사업의 청년 작가팀으로 참여하고 있다. 주로 '평상'과 '마을신문'을 제작한다. 평상 제작은 완료됐고, 총 세 번 제작하는 마을 신문은 오는 30일 마지막 3호 발행을 앞두고 있다.

모든 시민은 예술가다

지난 8월 23일 토요일, 동인천역에서 송림동으로 넘어가는 언덕을 급하게 올랐다. 평상에 도착했을 무렵, 하늘색이던 웃옷이 퍼랗게 땀으로 물들었다. 이 날 1시부터 5시까지 <틈만나면> 작가팀과 마을 사람들, 인천 발도르프 학교 학생들과 함께 '평상 아트 작업'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그만 팀원 모두가 30분 이상 늦어버렸다. 인천 발도르프 학교 선생님과 아이들은 미리 와서 오래 기다리셨단다.​ 마을 분들은 평소처럼 고추를 말리시며 "일찍 왔네?" 반어법으로 핀잔을 주신다.

그렇게 시작한 '아트 평상' 작업. 이내 멋진 걸작이 탄생했다. 인천 발도르프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 이씨 아버님, 공씨 아버님, 이층집 어머님, 메아리 라디오 방송국 어머님, 마을 청년들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송현 공원로 36번 길 입구. 이곳은 나무 덕분에 시원한 그늘이 지고 시내가 흘러 지나가던 행인들이 손과 발을 담그며 땀을 식힐 수 있는 공간이다. 딱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언제부턴가 버려지기 시작한 쓰레기가 쌓여 악취를 풍긴다는 것이었다. 그곳에 평상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해보기로 했다.

<틈만나면>팀은 이곳에 평상을 두기 위해 인천 문화재단 행정팀의 도움을 받아 공문서를 작성, 인천 동구청에 공간 사용 허락을 요청을 했다. 이에 '해당 공간에 평상을 설치하되 주변 공원 나무에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한다. 설치 기간은 12월까지며 12월 이후 다시 공간 사용 여부를 논의한다'는 조건 아래 공간 사용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7월 18일, 말끔히 청소를 하고 평상 설치 준비를 했다.

틈만나면 작가 팀 (문성예 작가와 공혜진 작가)은 해당 공간의 쓰레기들을 쓰레기 마대에 담고 구청에 처리 신고를 했다. 사진① : 본래모습. 사진② : 쓰레기를 담는 사진. 사진③ : EM발효액을 뿌려 썩은 냄새를 제거. 사진④ : 잡초제거까지 된 이후의 모습.
▲ 청소과정 틈만나면 작가 팀 (문성예 작가와 공혜진 작가)은 해당 공간의 쓰레기들을 쓰레기 마대에 담고 구청에 처리 신고를 했다. 사진① : 본래모습. 사진② : 쓰레기를 담는 사진. 사진③ : EM발효액을 뿌려 썩은 냄새를 제거. 사진④ : 잡초제거까지 된 이후의 모습.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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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8일에는 이른 오후부터 저녁까지 이씨 아버님과 함께 평상을 설치했다. 필요한 공구는 공씨 아버님의 집에서 제공해줬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쏟아지는 땀을 훔쳐가며 재능 기부를 해주신 이씨 아버님과 오며 가며 응원해주신 마을사람들이 없었다면 목표한 바를 실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씨 아버님이 없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까마득하다. 이 자리를 빌려 이씨 아버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평상 위에서 피는 꽃

송림동에 피는 꽃, 도라지 꽃, 해바라기, 장미꽃, 능소화 스텐실 디자인.
▲ 마을에 피는 꽃 송림동에 피는 꽃, 도라지 꽃, 해바라기, 장미꽃, 능소화 스텐실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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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 위에 이미지를 새기는 작업은 스텐실 작업 형식으로 진행했다. 스텐실(stencil) 이란, 글자나 그림을 그 모양대로 오려 그 구멍에 물감을 채워서 그림을 찍어내는 작업 방식을 뜻한다. 대표적인 작가로 '얼굴 없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가 있다. 스텐실은 그림을 오려낸 밑작업만 있으면 긴 시간과 큰 노력 없이 반복적으로 많은 그림을 찍어 낼 수 있다.

<틈만나면> 작가들(공혜진, 문성예, 이승훈)은 마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도라지꽃, 해바라기, 장미꽃, 능소화 등을 토대로 스텐실 디자인을 했다. 처음엔 걱정이 앞섰다. 작가들의 손을 떠난 작업이 관연 멋지게 나올 수 있을까. 삐죽삐죽 물감이 그림 밖으로 튀어 나오거나, 그림들이 엉기정기 배치 되면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도 됐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착오였다. 즐거움과 애정을 담은 그림들은 하나둘 씩 채워졌다.

평상이라는 사각형  테두리 안에 구도와 배치는 불필요했다. 살아있는 그림들은 저절로 그 공간에서 어울리고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삐죽삐죽 튀어나와도, 바람에 날려 물감이 쏟아져도 미술을 전공한 우리들의 틀에 박힌 작업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의미 있는 작업이 되어갔다.

송림동에 블록평상을 설치하고 있는 이 씨 아버님. 이 날 아버님과 함께 평상 설치작업을 완료했다.
▲ 블록평상 설치과정 송림동에 블록평상을 설치하고 있는 이 씨 아버님. 이 날 아버님과 함께 평상 설치작업을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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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 한 번 보여줬을 뿐인데, 아이들은 아이대로, 어르신들은 어르신대로 작업에 깊이를 더해갔다. 물감을 짜고, 테이프로 돌돌 말아 스펀지로 톡톡 물감을 적셔 스텐실 구멍에 찍었다. 자연스럽게 색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나, 스텐실 구멍의 일부만 이용해 또 다른 그림을 찍어내기도 했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평상이라는 캔버스에 마음껏 자신의 감각을 쏟아내는 예술가였다.

평상, 그리운 그 이름

스텐실 작업 중인 공 씨 아버님. 공 씨 아버님은 이곳 송림동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 스텐실 작업중인 공 씨 아버님 스텐실 작업 중인 공 씨 아버님. 공 씨 아버님은 이곳 송림동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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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평상 위에 스텐실 작업을 하고 있는 송림동 어머님들. 이층집 어머님과 메아리 라디오 극장 집 어머님. 지나가던 꼬마아이가 해보고 싶다고 하자 함께 꽃을 그려 넣고 있다.
▲ 스텐실 작업중인 어머님들 블록평상 위에 스텐실 작업을 하고 있는 송림동 어머님들. 이층집 어머님과 메아리 라디오 극장 집 어머님. 지나가던 꼬마아이가 해보고 싶다고 하자 함께 꽃을 그려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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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의문이 우리를 찾아왔다.

'왜 대한민국의 거리나 공원에는 서양식 벤치들만 즐비한 걸까, 우리만의 미적이고 훌륭한 평상도 있는데, 왜 이를 개발할 생각을 안 하는 걸까'

옛날부터 마을에 오래된 나무가 있는 곳이면 늘 '평상'이 있었다. 그곳에는 세대를 아우르는 이들이 모여 쉼터로 이용해 왔다. 어르신들은 그곳에서 장기를 두었고, 아이들은 나무를 오르락 내리락 뛰어 놀았으며, 아낙들은 오며 가며 잠시 숨 고를 수 있는 좋은 쉼터였다. 마을의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소통의 구실이 되기도 했다. 공동체의 중요한 매개체로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평상이다. 요즘도 평상이 놓여 있는 마을에는 뿌리 깊은 마을의 정서가 남아있다.

도심에서는 이런 평상이 서양식 벤치에 밀려 점차 사라져 간다. 이런 모습이 안타까웠다. 보다 여건 좋고 실력 좋은 작가들이 평상과 같은 우리만의 문화를 활성화하는데 함께 할 수 있다면, 마을 사람들이 직접 예술가가 되어 마을의 명물 '아트 평상'을 만들어 본다면. 고유의 문화가 사라진 도심에서도 우리만의 정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블록평상 완성 직후의 사진. 옆면에는 마을 사람들의 대문을 그려 넣었다. 마을사람들이 앉는 윗면에는 마을에 피는 꽃들을 스텐실 기법으로 그려 넣었다.
▲ 틈만나면 아트평상 완성 블록평상 완성 직후의 사진. 옆면에는 마을 사람들의 대문을 그려 넣었다. 마을사람들이 앉는 윗면에는 마을에 피는 꽃들을 스텐실 기법으로 그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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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blog.naver.com/touchpaint)에도 중복게재합니다.



태그:#틈만나면, #마을공동체문화만들기, #공공미술, #평상, #아트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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