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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7일)는 아내와 함께 '상사화 축제'(19일~21일)가 열리는 전남 영광군 불갑사(佛甲寺)에 다녀왔다. 복잡하지 않을 때 가서 맛있는 법성포 돌솥밥도 먹고, 지천으로 깔린 상사화도 구경하자는 아내의 제의로 갑자기 이루어진 나들이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먼저 돌솥밥을 먹기로 했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는 보기에도 풍성한 황금들녘, 호남평야를 좌우로 가르며 한 시간쯤 달려 굴비의 고장 법성포에 도착했다.

내비게이션 안내로 비좁은 골목길 모퉁이에 있는 식당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상에 오를 조기와 꽃게를 손질하는 아줌마의 분주한 손길이 토속적인 식당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입안에 착착 감기는 '으뜸 돌솥 비빔밥'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영양 돌솥밥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영양 돌솥밥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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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솥 굴비정식 2인분을 주문했다. 정갈하고 맛깔스러운 밑반찬이 상위에 가득 차려진다. 하얀 상이 이내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로 바뀐다. 이어 탈모와 치매 예방에 좋다는 검은콩(서리태)과 흑미가 섞인 영양 돌솥밥이 나온다. 햅쌀로 지었는지 밥에서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식당이름 '토우'(흑인형) 유래를 설명하는 아주머니의 정겨운 남도 사투리는 더 없는 양념이다.

배추김치를 비롯해 된장국, 계란탕, 호박나물, 도다리구이, 풀치조림, 단호박에 후식으로 먹을 모시떡도 보인다. 조기 네 마리에 유명한 밥도둑 간장게장도 나왔다. 비빔용 나물까지 합하면 족히 20가지는 되는 것 같다. 음식의 생명인 정성이 느껴지는 푸짐한 반찬들. 보기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어떻게 해야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궁리하는데 아내가 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란다.

밥을 떠내고 비어있는 돌솥에 물을 부어놓았다.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아내와 두 마리씩 나눈 조기는 두었다가 누룽지와 함께 먹기로 했다. 삼삼하게 얼간한 조기는 구수한 누룽지와 먹어야 제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완성된 돌솥비빔밥
 완성된 돌솥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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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솥비빔밥 한 수저와 배추김치.
 돌솥비빔밥 한 수저와 배추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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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비빔그릇에 비빔용 나물과 돌솥밥을 떠 넣고, 고추장을 뿌리면서 팔이 아프도록 팍팍 비볐다. 비빔밥과 쌈밥은 얌전하게 만들면 맛이 떨어진다고 했다. 해서 상위의 호박나물, 감자볶음, 버섯무침, 시금치나물에 계란탕도 넣고 힘차게 비볐더니 먹음직스러운 비빔밥이 만들어졌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색깔이 꽃처럼 아름다워 더욱 맛깔스럽다.

잘 비벼진 비빔밥 한 수저에 포기김치를 한 가닥 얹어 떠 넣으니 밥알이 토실토실해서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우러났다. 가끔 씹히는 고소한 검은콩과 상큼한 호박무침은 맛을 돋워주었다. 입안에 착착 감기는 비빔밥에 구수한 된장국은 그야말로 금상첨화. 최고의 조화를 이룬다. 돌솥 굴비정식 1인분에 1만 원. '만원의 행복이 이런 거구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처음으로 맛본 돌솥 굴비정식. 이름을 '으뜸 돌솥 비빔밥'이라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았다. 10가지가 넘는 채소가 조화를 이루는 비빔밥에 구수한 누룽지, 그리고 조기 특유의 고소한 질감까지 음미하며 즐거운 점심을 마치고 불갑사로 방향을 잡았다.

꽃밭을 더욱 짙게 물들이는 '상사화 노래'

용마루 중간에 사리탑이 있는 불갑사 대웅전
 용마루 중간에 사리탑이 있는 불갑사 대웅전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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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사는 '불법의 시원이요, 모든 사찰의 으뜸'이라는 뜻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백제 무왕(600~640) 때 행은(幸恩)스님이 세웠다는 설과 백제 침류왕 원년(384) 인도 고승 마라난타가 진나라를 거쳐 백제로 들어올 때에 영광에 도착해서 세웠다는 설이 내려온다. 

앞면 3칸 삼분합 빗살문과 단청이 아름다운 대웅전(보물 제830호)은 석가모니를 주존불로 모시는 법당으로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장식물이 발견된다. 용마루 중앙에 자기로 만든 사리탑(스투파)이다. 이는 인도에서 전해진 건축 양식으로, 보주 형식의 수투파 장식은 네팔, 동남아 불교권, 남중국 등에 내려오며 한국에서는 불갑사 대웅전이 유일하다 한다.

불갑사 경내의 상사화군단1
 불갑사 경내의 상사화군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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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를 앞둔 불갑사는 연초록의 경내가 온통 선홍색 꽃밭이다. 군락을 이룬 상사화(꽃무릇)가 붉은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하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양으로 꽃망울을 터뜨린 꽃무릇들이 미를 뽐내며 나들이 나온 가족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상사화의 애절한 전설과 아름다움에 도취된 방문객들은 크고 작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나도 한 컷, 너도 한 컷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과 달리 상사화가 만개한 꽃밭 사이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가는 사람들은 마냥 행복하고 밝은 표정들이다. 선홍색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갔더니 붉은 빛이 더 화려하고 유혹적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큰 꽃송이 옆으로 치켜든 가녀린 가닥은 여인의 초승달 눈썹을 닮은 듯하다. 주홍색 입술을 닮은 놈도 보인다.

불갑사 경내의 상사화군단2
 불갑사 경내의 상사화군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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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오늘따라 하늘이 더욱 높아 보인다. 지상의 선홍 빛깔이 반사되면서 착시현상을 일으켜서 그런지 창공에도 다양한 꽃 그림이 그려진다. 모악산(불갑산) 줄기를 휘감으며 떠가는 솜털구름이 상사화 군단과 조화를 이루며 운치를 더한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구수하고 담백한 '상사화 노래'는 꽃밭을 더욱 짙게 물들인다.

상사병이 상사화에서 유래?

불갑사 경내의 상사화군단3
 불갑사 경내의 상사화군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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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화(相思花)는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어 잎은 꽃을 생각하고 꽃은 잎을 생각한다고 하여 불리게 되었다 한다. 이는 '서로가 끝없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상사화는 이루지 못한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표현한단다.

불갑사 전설에 의하면 불공을 드리러 절을 찾은 처녀를 사모하게 된 젊은 스님이 짝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표현을 못 하였고, 처녀가 불공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자 스님은 상사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입적(入寂)했다. 이듬해 봄 스님 무덤에 잎이 진 후 꽃이 피어나자 세속의 여인을 사랑하다 말도 건네지 못한 스님과 닮았다 하여 '상사화'라 불렀다 한다.

반대로 스님을 사모하는 딸을 부모가 다른 사람과 억지로 결혼시키자 홀로 애태우다 죽은 여인의 넋이 꽃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수행하는 스님을 사모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은 처녀의 넋이 꽃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같이 스님을 주인공으로 '이루지 못한 사랑', 즉 '상사병'과 연관되어 있어 흥미를 끌었다.

영광 불갑공원의 인공폭포와 천년방아
 영광 불갑공원의 인공폭포와 천년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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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사 경내를 돌아보고 나오는데 문득 떠오르는 분이 있었다. 사주쟁이 50년 경력의 강발성 할아버지. 만나 뵙고 안부라도 여쭙고 싶어 찾았더니 보이지 않는다. 작년에는 수령 650년의 느티나무 그늘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점쳐주었는데···. 궁금증이 발하여 포장마차 커피숍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자세히는 모르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다. 밀려오는 안타까움을 어쩔 수 없었다.

영광 불갑공원에 들러 수생단지와 천년방아를 구경하고 집으로 오면서도 중절모 차림에 온화한 인상의 강 할아버지 모습이 자꾸 그려졌다. '상사화 꽃말'도 떠올랐다. 비록 한 번이긴 하지만, 할아버지와의 인연도 상사화 꽃말처럼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사이가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생각이 들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법성포 돌솥밥, #영광 불갑사, #상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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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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