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2년 12월 8일 토요일, 그날 하필 베이징 지하철 10호선이 운행하지 않았다. 나는 우다코우에서 419번 버스를 탔다. 히터는커녕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버스였다.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어 몸이 얼어버릴 것 같았다.

냉장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만에 도착한 곳은 동팡동루 대사관 거리. 버스에서 내리자 이번에는 날카로운 북서풍이 온몸을 후려쳤다. 거리는 한산했고 거리를 따라 늘어선 각국 대사관도 썰렁했다. '괜히 온 걸까, 나 하나 왔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싶었다.

그런데 나 하나가 아니었다. 베이징 한국대사관에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 추운 날씨에도 젊은 부부들은 어린 자녀들의 손을 꼭 잡고 "선거는 말이야, 대통령이 뭐하는 사람이냐면, 저게 우리나라 태극기야..." 뿌듯한 얼굴로 하나하나 설명 하고 있었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허허, 살다 보니 이런 일도..."라며 감회를 드러냈다.

국민 투표에 대한 중국 대학생들의 생각...예상 외였다.
 국민 투표에 대한 중국 대학생들의 생각...예상 외였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가장 놀랍고 감동적인 것은 젊은 유학생들이었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이라고 익히 알 고 있는 젊은 세대. 더구나 한국을 떠나 있는 마당에 투표일이 언제인지, 투표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관심 없을 법한데 그들은 늦잠 자기 딱 좋은 주말 오전에 대사관에 와서 투표를 하고 있었다. 투표를 마친 유학생들은 한국을 상징할 만한 장소에 삼삼오오 모여 환한 얼굴로 인증샷을 찍었다. 그 모습이 참 대견하고 뭉클했다.

공기를 톡 건드리면 얼음 조각이 우수수 떨어질 것 같은 베이징의 12월. 나는 한국대사관에서 봄기운을 느꼈다. 제18대 대통령선거 재외국민 투표를 위해 베이징 주중대사관에 온 대한민국 국민들은 하나같이 조용하고 질서정연한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선거 결과를 떠나, 그 모습만큼은 내게 봄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가 가르쳤던 중국 학생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중국에 없는 다당제와 선거제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언젠가 나는 수업시간에 슬쩍 직선제 민주주의를 흘리며 중국 학생들을 떠 보았다. 신세대 '바링허우(덩샤오핑의 '한 가구 한 자녀 정책' 실시 이후 1980년부터 태어난 중국의 청년 세대)'라면 정치개혁에 무관심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이 어떤 나라인가. 수천 년을 내려온 봉건제와 근대 군벌 세력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쓰러뜨린 나라가 아닌가.

게다가 신중국 이후에도 학생운동은 있었다. 1986년 중국의 대학가에는 민주주의를 촉구하는 대자보가 붙었고 학생 시위가 일어났다. 1989년에는 2000명의 사망자를 내고 수천 명을 해외 망명객으로 떠돌게 만든 톈안먼 사태가 있었다. 물론 그 시위는 무참하게 진압됐다.

'바링허우'들이 말하는 선거와 민주주의

"중국인들은 침묵 속에서 그 사건을 잊지 않았다. 톈안먼 사태 1주기인 1990년 6월 4일, 베이징대학 기숙사 창가에 수백 개의 촛불이 밝혀졌다. 다음 해 1991년 6월 4일에는 베이징대 기숙사 창문에서 수백 개의 맥주병이 떨어졌다. 당시 맥주병은 덩샤오핑(邓小平)의 샤오핑(小平)과 발음이 같은 작은 병(小瓶)을 상징했다. 그 맥주병을 땅바닥에 '떨어뜨림'으로써 대학생들은 억압적인 정세 속에서도 자신들의 속마음을 드러내었다. 톈안먼 사태의 수배자들이 미국이나 유럽으로 망명하기 전에 거쳤던 홍콩에서는 1990년부터 매년 6월 4일에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 <중국을 읽다> 카롤린 퓌엘, 푸른숲, 2012 , 180~183쪽

천안문 사태를 희생자를 추모하는 홍콩시민들
 천안문 사태를 희생자를 추모하는 홍콩시민들
ⓒ flickr

관련사진보기


톈안먼 사태는 아직도 중국에서 입에 올릴 수 없지만 중국인들은 암호를 통해 기념하고 있다. 그 소식은 인터넷으로 은밀하게 유포된다. 바링허우는 다름 아닌 인터넷 세대다.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바링허우는 그 사건을 직접 접했을 수도 있고,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바링허우는 그 부모가 목격자일 수도 있다.

컴퓨터에 능숙한 바링허우들은 우회 접속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중국 정부가 금지한 인터넷 사이트에 잘도 들어간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 정부가 쉬쉬하는 정보를 찾아내고 퍼뜨린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그런 바링허우들이다. 그들이라면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선거에 관해 CCTV에서 말하는 식의 뻔한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중국 인구가 얼마나 많은데 선거로 지도자를 뽑아요? 그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도 혼란만 생겨요."

"대통령 직선제를 하면 아무나 대통령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문제가 많죠. 국가 지도자는 오랫동안 준비되고 검증된 사람이 돼야 해요."

"투표하는 사람들이 다 똑똑하지도 않은데, 인기에 영합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국가 장래는 어떻게 되겠어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수인계가 잘 안 되고 정책은 일관성이 없어져요. 또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기 쉽고요."

"선거비용은 누가 내요? 선거운동 기간에 국무가 제대로 돌아갈까요? 돈 낭비, 시간 낭비 아닌가요?"

뜻밖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복병을 만난 기분이었다. 당연히, 일당제보다 다당제가 합리적이지 않은가. 당연히, 직선제가 민주주의가 아닌가. 중국학생들은 내가 생각했던 당연함을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인 약점투성이로 봤다. 그들에게는 '중국식'과 '14억 인구'가 모든 사안의 전제조건이었다. 중국식 사회주의, 중국식 시장경제, 중국식 민주주의 그리고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 그 특수성이 먼저였다.

오늘날 중국 정치는 집단 지도체제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상하이방',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의 '공청단', 시진핑 현 국가주석의 '태자당'. 이 세 계파가 경쟁과 타협을 통해 중국을 이끌고 있다. 그중에서 핵심 그룹은 국가주석과 총리를 포함해 각 계파를 대표하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이다. 그들이 협상과 집단 합의를 통해 최종 의사 결정을 한다. 한 사람이나 한 계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치 구조가 아니다.

협상과 합의 과정을 높이 평가하는 중국 학생들은 한국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몸싸움을 하거나 미 연방정부가 셧다운될 정도로 민주당과 공화당이 갈등하는 현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정당들의 적나라한 파벌 싸움, 지지부진한 의사 결정 과정, 번복되는 정책, 국가 최고 권력자의 스캔들은 중국 공영 방송에서 보기 힘든 것들이다. 학생들은 부패한 공무원과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성토하면서도 최고 권력자의 승계 방식과 능력만큼은 신뢰하는 것 같았다.

상하이에서 떠돌이 차 장수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후진타오는 국가주석이 되기까지 자질과 능력을 검증받은데 30년이 걸렸다. 시진핑은 국무원 부총리를 역임했던 시중쉰의 아들이다. 문화대혁명 때 부친이 반당분자로 낙인 찍힌 이후, 시진핑은 깊은 산골에 하방됐다. 그곳에서 그는 옥수수 국수를 먹고 토굴에서 자면서 험한 노동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의 정치 경력도 낙하산을 탄 것이 아니라, 공산당 지방당원에서 시작하여 한 계단씩 밟아 올라온 것이다. 출신으로 따지면 태자당(太子堂 : 당·정·군·재계 실력자들의 자녀)이지만, 사람들은 그를 부모 덕에 출세한 태자당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처럼 중국의 최고 권력자는 오랫동안 경력을 쌓고 엄격하게 검증을 받은 다음 선발된다. 선발되기까지 족벌주의나 비리 혐의, 사생활 등 도덕성까지 철저하게 내사를 하기 때문에 부정부패와도 거리가 멀다. 충분히 준비되고 훈련된 사람들 중에서도 최고를 뽑는 셈이다. 어찌 보면 치밀하고 안정적인 권력 승계 시스템이다. 해외 특파원들도 중국 최고 권력자의 청렴성과 도덕성은 세계 어느 국가 지도자보다 깨끗하다고 한다.

그 범위를 최고 권력자의 친인척까지 포함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중국 최대 부동산 업체인 완다그룹 왕젠린 회장의 축재 과정에 시진핑 국가 주석의 친척이 끼어있다는 의혹이 해외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역대 최고 권력자들의 자녀가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봐도 그렇다. 리펑 전 총리의 딸 리샤오린은 중국전력국제유한공사 CEO인데, 2013년 취리히 보험 뇌물 사건에 연루됐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아들 장몐헝, 주룽지 전 총리의 아들 주윈라이,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의 아들 후하이펑, 원자바오 총리의 아들 원원송 등은 굵직굵직한 국유기업의 총재이거나 엄청난 재력가들이다.

18대 중국 공산당. 중국의 선거는 단계별로 진행된다.
 18대 중국 공산당. 중국의 선거는 단계별로 진행된다.
ⓒ wikipedia

관련사진보기


중국에도 선거가 있긴 있다

공산당 최고 간부의 자녀들을 가리키는 홍색귀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부모의 후광을 업고 정·재계에서 활개를 치는 셈이다. 오늘날 중국인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권력=부=관시'의 공식이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도 선거가 있긴 하다. 중국 헌법에는 1인 1표제가 규정돼 있다. 1인 1표제는 등급에 따라 단계별로 올라가며 실시 되는 선거다. 예를 들면 칭다오의 작은 행정구역 주민이 그 구역의 인민 대표를 뽑으면, 구역 인민대표가 칭다오시 인민 대표를 뽑고, 칭다오시 인민 대표는 전국인민 대표를 뽑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선거가 폐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의 뜻이 얼마나 반영될지는 의문이다.

정당도 공산당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독재하는 공산당 외에 8개의 '민주당파' 정당이 있긴 하다. 민주당파는 원래 국·공내전 시기에 중국 공산당을 지지하고 통일전선에 참여했다. 건국 초기만 해도 중국 공산당과 민주당파는 연합정부를 구성했다. 당시 다섯 명의 부주석 가운데 세 명이 민주당파였는데, 그 중 한 명이 쑹칭링이다. 얼마 못 가서 민주당파는 공산당의 통제를 받는 형식적 정당이 됐다.

"정치개혁을 원하는 지식인과 인권 운동가들은 진짜 정당과 진짜 자유선거를 요구해왔다. 1998년에는 지방에서 세력을 키워오던 민주당파가 민주당을 공식적으로 설립하려고 시도했다. 10년 후 2008년에는 지식인 300여 명이 '08헌장'을 선언했고, 중국에서 1만 명 이상이 서명에 동참했다. 선언문의 내용은 중국 공산당 일당 독재 종식, 삼권분립, 사법권 독립, 표현의 자유와 자유선거 등이었다. 선언문 작성을 주도한 사람은 201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류샤오보였다. 물론 정부는 그들을 탄압했고 여론을 통제했으며 주동자들은 중형을 받았다." - <중국을 읽다> 카롤린 퓌엘, 푸른숲, 2012, 563쪽

그러나 '08헌장'부터 민주화 운동은 예전과 달라졌다. 인터넷 때문이다. '08헌장'은 인터넷을 통해 유포됐다. 류사오보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정부는 모든 매체에서 그의 정보를 삭제하고 노벨상 수상 소식을 차단하려고 했다. 그러나 곧 인터넷에 류샤오보 석방 탄원서, 금지 문서와 기사 등이 엄청난 속도로 퍼졌다. 인터넷 감시 경찰이 막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정치개혁과 민주화에 대한 목소리를 숨죽이고 있을 뿐, 때를 만나면 언제든 다시 터져 나올 수 있다는 것, 인터넷으로 전파되는 정보의 속도는 바로 그 열망의 크기였다. 그런데도 기성세대와 사회 문제에 대해 가장 예민할 만한 신세대 대학생들은 정부의 입장만 되풀이했다. 그들의 의견을 정리하면 이렇다.

'중국의 권력 승계 방식은 최고 지도자를 아무나 뽑는 게 아니라 뽑을 만한 사람이 뽑고, 뽑힐 만한 사람이 뽑힌다. 그 과정이 하나의 공산당 체제 안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정권이 교체돼도 장기적 국가 정책을 일관되게 수행할 수 있다. 14억의 중국은 5000만 인구의 한국처럼 직접선거를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중국에는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정부의 논리가 맞다.'

아마도 그들이 줄곧 학교에서 배우고 외워온 내용일 테지. 어쩌면 내가 외국인이라서 말조심을 했을 수도 있다. 그들이 하는 겉말만 듣고 중국 대학생들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치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고민이 없다거나 독자적인 사고가 없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정부 견해 대변하는 중국 대학생들...속단해선 안 된다

당장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먼 이야기라서 유보해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저학년 때 학교방침에 고분고분하던 학생들이 고학년이 되자 학교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종종 보았다. 그들은 교육 환경 개선과 문제 교수에 대해 인터넷으로 의견을 공유하고 따로 만나서 협의를 한 다음, 학원장을 직접 찾아가 개선 사항을 요구했다. 그런 학생들이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 부조리한 현실을 경험하게 되면 그 때의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보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에 변화가 올 것이다.

그런데, 중국 학생들이 했던 말 중에서 한참동안 내 마음을 휘젓던 대목이 있다.

"국가의 지도자는 오랫동안 준비되고 검증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기에 영합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안 된다. 정권이 바뀌어도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할 수 있다."

그동안 내가 목격해온 선거를 떠올렸다. 그 말들이 생선가시처럼 걸려 따끔거렸다.


태그:#중국재외국민 투표, #칭다오이공대, #중국식민주주의, #중국선거, #중국정당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막이 좋다. 길이 없지만, 내가 걸어가면 길이 되니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