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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8월 18일 당시 세월호특별법제정 촉구 단식 36일째를 맞이한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
 8월 18일 당시 세월호특별법제정 촉구 단식 36일째를 맞이한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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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딱 감고 화끈하게 규제를 풀어야 한다."(박근혜 대통령)
"여당과 청와대를 막 조사하겠다는 건가?"(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원장)

무려 143일째다(9월 5일 현재). 세월호 참사 후 여전히 10명의 실종자는 돌아오지 않았고, 사고의 원인은 오리무중이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러나 앞서 기자가 지적했듯이(관련기사 : 또 '민생' 카드 꺼낸 정부, 많이 급한 모양이네)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단식을 계기로 세월호 정국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김영오씨와 문재인 의원의 단식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특별법이 정국의 가장 뜨거운 이슈로 자리 잡은 것이다.

김영오씨의 단식이 국민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하자, 그를 폄훼하는 여론전을 펼치고 관변단체까지 동원해 사람들에게 세월호 피로감을 전하려던 정부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다. 분명 그들의 의도대로 김영오씨라는 결속의 핵심이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월호는 이슈의 중심으로 돌아왔으며 오히려 유가족 주장대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의견은 예전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KBS의 의뢰로 미디어리서치가 실시한 8월 30일자 여론조사 결과, 세월호 특별법을 '다시 협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53.7%로 '재합의안대로 통과해야 한다'는 의견 41.6%보다 앞섰다. 또 세월호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에 '동의한다'는 의견이 58.3%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 38.6%보다 많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다시 세월호에 관심을 두는 것일까?

비극적인 사실은 이와 관련하여 정부여당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생각이 왜 달라졌는지 분석하기보다 '마이웨이'를 외치며 정면돌파에 집중하고 있다. 세월호 유족들과 2차 면담까지 하면서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던 새누리당이 다시금 막말을 던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에 대해서는 다시금 선장 탓을 하며 대신 '화끈'하게 규제완화를 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결국 '민생경제', '경제성장' 프레임으로 세월호 특별법 난국을 극복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묻는다. 과연 가능할까?

무능한 새정치연합의 패착

사실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하여 여당과 야당이 협상할 때에는 여당이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다. 결국 협상이란 그 당사자들이 내세우는 당위성의 우열에 따라 흘러가기 마련인데,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아래 새정치연합)은 특별법의 당위성을 강조하기보다 실현 가능성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협상에 재협상까지 거듭했지만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오히려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린 박영선 새정치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경우를 떠올려보자. 그의 가장 큰 패착은 두 가지다. 단정할 순 없지만, 박영선 원내대표는 야당이 기한 내에 어떻게든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또 협상의 상대였던 새누리당이 청와대의 완강한 반대에 따라 수사권과 기소권은 절대 못 주리라고 지레 짐작한 듯하다. 즉 세월호 특별법을 당위성의 문제가 아닌 실현 가능성의 영역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는 과거 야당이 군사독재 정권을 상대로 끈질기게 싸웠던 것과 정확하게 반대 방향이다. 당시 야당 총재들은 실현 가능성이 아니라 당위성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당위성이 아니라 실현 가능성을 두고 협상을 하는 순간, 야당은 정부의 힘에 밀릴 수밖에 없으며, 실현 가능성의 영역에서는 야당보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줄 것이 많기 때문이다.

8월 27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야·유가족 3자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며 강경투쟁에 나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모여 유가족이 동의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8월 27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야·유가족 3자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며 강경투쟁에 나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모여 유가족이 동의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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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는 야당이 알아서 세월호 특별법을 실현 가능성의 영역으로 가지고 내려왔다. 당연히 처리되어야 할 세월호 특별법을 정쟁의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새누리당은 야당과 협상함에 있어서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원칙론을 운운했다. 세월호 특별법이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당위성을 강조했고, 야당은 그 프레임 속에서 실현 가능성을 운운했다.

기껏 한다는 이야기가 '세월호 특별법이 사법체계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무능한 야당. 그러니 사람들이 새누리당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당위성과 실현 가능성이 맞서면 양보의 여지가 없는 당위성이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모라는 당위성

반전은 다음에 일어났다. 그렇게 야당이 나가떨어지고 나서 그 자리에 세월호 유가족이 들어섰다. 비록 여당의 협상 파트너는 아니었지만, 야당을 거치지 않은 유족의 특별법 요구는 근본적으로 이전 여야협상과 그 궤를 달리할 수밖에 없다. 야당은 세월호 특별법을 실현 가능성의 영역으로 생각했지만 유가족들에게 특별법은 당위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죽어간, 생때같은 자식들의 죽음 앞에서 최소한 그 죽음의 원인이라도 알아야겠다는 부모들의 요구. 과연 세상에 어떤 명제가 이 천륜을 덮을 수 있을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사법체계의 근간이 어찌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들의 심정보다 더 중요할 수 있겠는가.

앞서 인용했던 KBS의 최근 여론조사는 바로 이와 같은 국민들의 의식 변화를 의미한다. 여야가 협상하고 싸울 때는 그저 하나의 정쟁으로 보였던 세월호 특별법이, 유가족들이 전면적으로 나섬에 따라 이제는 자식 잃은 부모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몸짓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하여 조급해진 건 이제 정부여당이다. 협상의 파트너로서 야당이 아무런 역할을 못하는 지금. 새누리당이 이전보다 격한 말을 쏟아내고, 내부적으로 다른 의견들이 오고가는 것은 바로 여당이 지금까지 주장했던 당위성이 세월호 유족들의 당위성을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주호영 의원은 아예 대놓고 '여당과 청와대를 막 조사하겠다는 거냐'며 폭언을 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새누리당이 세월호 특별법을 당위성의 문제가 아니라 실현 가능성의 영역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월호 특별법 통과가 어쩔 수 없는 대세라고 한다면 그들이 양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 반대로 물어보자. 그렇다면 정부여당은 여당과 청와대를 조사하지 않겠다고 하면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켜 줄 용의가 있는가?

자식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을 살펴라

정부는 현재 계속되는 세월호 특별법 요구에 맞서 끊임없이 민생경제 프레임을 강조하고 있다. 단순히 말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9·1 부동산 대책, 파격적인 규제 완화 정책 등을 쏟아내며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있으며, 대중들의 관심사를 그리로 몰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 엄청난 가계부채 시대에 또 다시 빚을 내어 집을 사고, 얼토당토않은 4대강 사업으로 국토가 썩어가는 지금 또 다시 난개발을 하라고 부추기는 정부.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위와 같은 경제 프레임으로 인해 줄어들 가능성은 매우 낮다. 비록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아무리 화끈하게 '창조경제', '민생경제'를 강조한다 할지라도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요구는 어떻게든 지속될 것이다. 왜냐? 바로 그곳에 자식 먼저 보낸 부모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주목하라
▲ 여론의 변화 정부여당은 주목하라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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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현재 정부는 계속 이렇게 시간을 끌다보면 세월호에 대한 기억도 옅어질 것이라고 판단하는지 모르겠다. 지난 1년 그토록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도 결국 지금에 와서는 흐지부지하게 끝나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은 세월호 참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경우는 명백한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훼손되었다는 점에서 모든 국민이 피해자이겠지만, 이는 동시에 분명한 피해자가 아무도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굳이 꼬집어내면 박근혜 후보의 상대였던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가 피해자이겠지만, 그를 피해자 자리에 올리는 것은 정치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반면 세월호 참사에는 명명백백한 피해자가 존재한다. 300명이 넘는, 그것도 꽃다운 학생들이 많이 죽었으며 그 부모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세월호 참사가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비근한 예로 유가족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근 10년 만에 '기업살인법'을 제정하게 된 영국의 경우가 있지 않은가.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는다면 세월호 유가족은 현 정부에게 끝까지 가장 큰 정치적 부담으로 남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김영오씨의 단식이 예상을 뛰어넘고 현 정국의 기폭제가 되었듯이 자식 먼저 보낸 부모의 절박함은 어떻게든 표현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는 이전 참사들과 달리 아직까지 그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실시간 생중계 속에 거대한 여객선이 침몰하고 300명이 죽었는데 아직까지 그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그야말로 정부여당이 강조하고 있는 국격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원인은 무능력 혹은 비리에 따른 은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 그것만이 현 정국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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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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