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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프랑스 파리에서도 오래 살았다고 하니. 분명 새침데기일 것이다'라고. 그런 그녀가 전라남도 나주에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왔단다. 궁금했다. 대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기에 머나먼 파리에서 남도 끄트머리까지 왔을까.

만남을 약속하고 찾아갔다. 지난 8월 24일 일요일이었다. 전남 나주시 봉황면 와우 2구의 마을회관. 분동 마을과 각동 마을 어르신들의 보금자리다. 그녀는 회관에서 귀농인과 마을주민의 만남인 '희망나누기' 행사를 돕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프랑스 파리의 생활 12년을 정리하고 전남 나주로 귀농한 손주희 씨. 그녀가 나주의 들녘에서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생활 12년을 정리하고 전남 나주로 귀농한 손주희 씨. 그녀가 나주의 들녘에서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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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로 들어온 귀농인이 주민들에게 점심을 대접하는 자립니다. 회관에 필요한 물품도 하나 설치해 드리고요. 조금 전에 싱크대를 새로 놨어요. 지금은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고요. 귀농인의 신고식인 셈이죠."

이날 '희망 나누기'는 귀농인과 마을 주민이 함께하는 점심 식사와 레크리에이션으로 진행됐다. 나주시 귀농귀촌지원센터가 주관했다. 예산도 지원했다. 그녀는 이 센터의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파리에서 나주로 귀농 온 손주희씨(40). 그녀는 어르신들과 한데 어울려 점심을 먹었다. "식사 더 하세요", "반찬이 맛있네요", "과일도 드세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어르신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영락없는 시골 아낙네 모습 그대로다.

식사를 마친 다음엔 다른 자리의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마을 이장과 얘기할 때는 한바탕 크게 웃기도 했다.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되자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행사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귀농인과 마을주민이 한데 어우러진 나주 분곡마을의 '희망나누기 한마당'. 지난 8월24일의 모습이다.
 귀농인과 마을주민이 한데 어우러진 나주 분곡마을의 '희망나누기 한마당'. 지난 8월24일의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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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희 씨가 지난 8월24일 나주시 봉황면에서 열린 희망나누기 한마당 행사를 촬영하고 있다. 손 씨는 이날 행사를 주관한 나주시귀농귀촌센터의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다.
 손주희 씨가 지난 8월24일 나주시 봉황면에서 열린 희망나누기 한마당 행사를 촬영하고 있다. 손 씨는 이날 행사를 주관한 나주시귀농귀촌센터의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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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입견이었다. 새침데기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말 잘 어울린다. 행동 하나하나가 자연스러웠다. 겉보기와 달리 농촌 사람보다 더 농촌 사람다웠다. "재밌어요. 적성에도 맞는 것 같고요. 제가 원래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어떤 일이든 잘 적응하는 편이에요" 손 씨가 말했다.

그녀의 과거가 궁금했다. 어떤 계기로 프랑스에 갔고, 거기선 무슨 일을 했는지. 다른 지역도 많은데 나주로 들어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물었다.

손주희 씨가 마을주민과 얘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지난 8월 24일 희망나누기 행사가 열리고 있는 나주시 봉황면에서다.
 손주희 씨가 마을주민과 얘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지난 8월 24일 희망나누기 행사가 열리고 있는 나주시 봉황면에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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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 학교를 졸업했어요. 사회복지를 전공했죠. 서울에서 일본 회사에 근무하던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요. 2000년에 남편이 프랑스 파리로 발령이 나면서 함께 갔어요."

그녀는 파리에서 어학과 판화를 공부했다. 이후엔 다양한 나라의 행정 업무를 도왔다. 국제행사에 참가해 통역을 하거나 기업의 설립과 민원처리도 도왔다. 프랑스 유학생의 학교 등록 업무를 대신 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파리에서 12년을 살았다. 귀국은 2012년 2월에 했다. 서울에서 잠시 머물다 아이들과 함께 나주로 내려왔다.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는 남편의 생각에 흔쾌히 따랐다. 그녀도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싶었다. 나주는 남편의 고향이다.

나주에서 남편은 버섯 재배를 경험하며 재배법을 익혔다. 그녀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나주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2년 가까이 일하며 농촌 생활에 적응했다. 그 사이 발효와 효소과정 교육도 받았다. 나주시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는 지난 7월 중순부터 일하고 있다.

"솔직히 들어올 땐 걱정이 됐죠. 프랑스로 나갈 때보다 더 고민됐어요. 다만 공기 좋은 데선 살고 싶었고요. 남편의 기관지가 좋지 않은 편인데, 건강도 생각했고. 막상 나주로 내려올 때는 큰 고민 안 했어요. 농가주택에 산다는 게 조금 부담됐을 뿐이죠."

손 씨는 나주 시내 주택에 살고 있다. 농사지을 땅은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다 3300 제곱미터를 장만했다. 남편은 여기서 버섯 재배사를 직접 짓고 있다. 표고버섯을 재배할 생각이다. 주변 밭에는 고추와 깨 씨앗을 뿌렸다. 고구마도 심고 과일나무도 몇 그루 가져다 심었다.

손주희 씨의 남편 김경태 씨. 농사를 위해 마련한 밭에서 표고재배를 위한 버섯 재배사를 직접 짓고 있다.
 손주희 씨의 남편 김경태 씨. 농사를 위해 마련한 밭에서 표고재배를 위한 버섯 재배사를 직접 짓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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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희 씨와 김경태 씨 부부가 다섯 살 된 둘째아이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손주희 씨와 김경태 씨 부부가 다섯 살 된 둘째아이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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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주변 나라와 도시를 돌아다니며 여행도 많이 했고요. 그러면서 우리 부부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된 것 같아요. 나주에서의 생활도 기대가 커요. 지금까진 만족하고 있어요, 열심히 살아야죠."

그녀의 말에 남편 김 씨가 환하게 웃는다. 밭에서 놀고 있는 다섯 살배기 아들의 얼굴도 천진하다.


태그:#손주희, #김경태, #나주시귀농귀촌지원센터, #귀농귀촌,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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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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