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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중국 칭다오 이공대학에서 중국 학생들을 가르쳤다. 칭다오라는 지역성, 건축이라는 전문성, 교수와 대학생이라는 계층성, 한국인과 중국인이라는 민족성...언뜻 보면 좀 특이한 소재이지 싶다. 하지만 이 소재들이 엮어내는 이야기는 중국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이며 작고 밀도 있는 이야기들이다. 중국의 대국굴기를 대표할 만한 잘난 사람이 아닌, 고만고만한 약력을 가진 한국인 선생과 함께 지지고 볶던 고만고만한 중국 대학생들과 이웃의 울퉁불퉁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기자말

2008년 가을, X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2009년 가을, A가 황망한 표정을 짓더니 입 언저리를 실룩거렸다.
2010년 가을, L이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였다.

한국과 달리 중국은 가을에 신학기가 시작된다. 대개 한 학년은 세 반으로 나뉘는데, 세 명의 교수가 한 반씩 맡아서 1년 동안 가르쳤다. 학년 별로 설계 주제는 공통이지만, 담당 교수마다 그 주제를 해석하는 관점부터 설계 과정, 결과물로 이어지는 방식이 다르다.

그러니 1년 수업이 시작되는 가을 학기 초반은 새로 만난 교수와 학생들이 서로에게 적응하는 기간이 된다. 수업방식뿐 아니라 한국인과 중국인의 문화 차이, 개인적인 경험과 정서 차이도 서로 밀고 당기는 적응거리가 된다. 나는 그 차이를 인지하고 미리 조심하고 배려하면 되겠지 싶었다. 그럼에도 뜻밖의 순간에 엉뚱한 일로 스파크가 튀는 일이 생겼다. 그 결과 나는 3년 동안 가을마다 학생 한 명씩은 꼭 울리고 말았다.

첫 해 가을 어느 날, 바비 인형을 닮은 X가 일 주일 동안 해온 과제를 발표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른 학생들과 질의응답이 오갔고, 그 다음에 내 의견이 이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크고 동그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지? 중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 나는 당황했다. X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대답 없이 그저 훌쩍이기만 했다. 나는 다른 학생들을 빙 둘러보고 힌트를 얻으려고 했지만, 도무지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내 말 한마디에 닭똥같은 눈물을 흘린 학생

2010년 동아시아 건축 포럼과 한중 대학생 건축설계 워크숍 참가자들의 단체사진.
 2010년 동아시아 건축 포럼과 한중 대학생 건축설계 워크숍 참가자들의 단체사진.
ⓒ 칭다오 이공대 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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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국 학생들이라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같은 중국 학생인 X는 왜 울지? 체면과 자존심을 목숨처럼 여기는 중국인에게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어지러운 내 속을 그대로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얼마안가 X가 눈물을 닦고 울먹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냥 답답해서 울었어요."

답답하다니, 뭐가? 내가 더 답답해졌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반장이 나섰다.

"진라오스(金老师, 학생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가 '다시'라고 말했잖아요."

다른 학생들도 짐짓 비죽비죽 우는 표정을 지으며 거들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우리도 울고 싶다고요."

아무리 한국어를 못하는 중국 학생이라도 반드시 알아듣는 한국어가 있다. 아무리 설계가 좋아 죽는 학생이라도 질색하는 한국어가 있었다. 바로 내가 한국어로 말하는 "다시!"였다. 학생들은 내 입에서 "다시"라는 말만 나오면 소리 없는 경기를 일으켰다. X, A, L처럼 표 나게 반응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설계에 욕심이 많은 학생일수록 그랬다.

물론 나도 안다. 밤 새워 한 작업을 발표하자마자 "다시"라는 말을 들을 때 얼마나 맥이 빠지는지, 때로는 그 말을 하는 사람조차 얼마나 원망스러운지를. 그러나 나는 또 안다. 구운 도자기를 미련 없이 산산조각 내고 다시 빚는 도공처럼 '다시'하고 '다시' 한 후에 비로소 얻게 되는 진화의 희열을.

그때의 진화는 설계 실력만이 아니다. '다시'하는 창작의 담금질은 마음까지 진화 시킨다. 또 있다. '다시' 소리를 덜 듣기 위하여, 그 '다시'에 제대로 맞대응하기 위하여, 준비하다보면 초짜의 물컹하고 푸석한 논리력은 어느새 예리하고 치밀하게 다듬어진다. 생각의 우물 안에 갇혀 있던 개구리가, 설령 당장 우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더라도, 우물 밖을 상상하게 된다.

학기 초면 학생들은 대지조사를 나간다. 건물이 들어설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조사하고 그 내용을 설계에 반영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발표하는 내용이 고작 사진 몇 장과 현황 설명이라면? 당연히 '다시'해야 한다. 대지조사는 눈에 보이는 것만 조사하는 것이 아니다. 대지의 면적, 주변 건물의 높이, 용도, 형태, 풍향, 교통 체계, 기후, 일조 등 물리적인 요소는 기본이다. 그 대지와 관련된 역사, 인구, 생활문화, 경제 상황, 앞으로의 발전 계획 등 인문 사회적인 요소도 조사하고 분석해야 한다.

거기까지 해도 학생들은 또 '다시' 소리를 듣게 된다. 정작 중요한 것이 빠졌기 때문이다. 대지 조사한 내용을 어떻게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디자인에 담아낼 것인지, 자신만의 시각과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대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곧 설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개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지조사부터 기본적인 설계 계획이 잡힐 때까지 학생들은 매번 '생각부터 다시' 소리를 들어야 했고, 그때마다 끔찍하게 지루해하고 피곤해했다. 그런 학생들을 보는 나도 지루하고 피곤했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나와 학생들이 생각하는 '다시'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어느 날 복도에 학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서 있었다. 모두들 책을 꺼내 들고 목청껏 읽고 있었다. 그 옛날 사서삼경을 읽는 선비처럼 말이다. 학생들마다 읽는 페이지가 달라서 복도는 중구난방 저마다의 소리로 요란했다. 계단 창가에 서 있는 학생도 목에 핏대를 세우고 책을 읽고 있었다.

"도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니?"

내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시험이 있어서요. 교실 문이 잠겨 있어서 기다리는 동안 시험공부를 하는 거예요."

한 학생이 얼른 대답하고 다시 책을 줄줄 읽기 시작했다. 맙소사! 이게 시험공부라고? 복도를 꽉 채운 학생들은 한결같은 모양새로 큰소리를 내며 책을 달달 외우고 있었다. 저러고도 공부가 될까 싶었지만, 다들 오직 자신의 목소리에 몰입해 있었다.

놀라운 것은, 곧 시험을 치를 학생들의 표정이 시험이 없는 내 수업시간보다 더 편안하게 보였다는 것. '다시'를 들을 때의 불안하고 흔들리는 표정이 아니었다. 시험공부를 많이 하고 안 하고를 떠나, 공통된 하나의 정답만 찾으면 된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니 학생들이 왜 '다시'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지 짐작이 갔다. 그 후 우리는 '다시'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았다.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많은 문제를 풀도록 훈련된 학생들에게 '다시'는 후퇴와 퇴보를 의미했다. '다시'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과제를 하기 위해 밤을 새운 시간은 그대로 낭비한 것이 되고, 소중한 시간을 그렇게 낭비했다는 것은 자신이 그만큼 무능력하다는 것이며, 그래서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다.

학생과 나 사이의 간격... '다시'

2010년 칭다오 이공대에서 열린 동아시아 건축 포럼의 한 장면
 2010년 칭다오 이공대에서 열린 동아시아 건축 포럼의 한 장면
ⓒ 칭다오 이공대 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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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다시'라는 말을 들을 때, 그동안 쌓아올린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다시' 하는 것보다, 문제가 있는 부분을 가려내어 수정해 나가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은 설계가 아니라 '땜빵'이라고 말했다.

내게 '다시'는 그렇게 무겁고 부담스러운 의미가 아니었다. 생각의 밑바닥부터 뒤집고 흔들어대면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탐색하는 실험이고, 통찰력과 감각을 길러주는 훈련이었다. 학생들은 내가 말하는 '다시'의 의미를 머리로는 납득을 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제안을 했다.

"나는 앞으로도 내 입장에서 '다시'를 말하겠지만, 여러분은 여러분 입장에서 '다시'할 필요가 없다면 안 해도 돼."

몇 명은 "우-"하며 반색을 했고, 다른 몇 명은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으며, 또 다른 몇 명은 '이건 또 무슨 함정일까?' 생각하는 눈치였다.

"대신 조건이 있어. '다시' 안 할 경우, 왜 다시 안 해도 되는지 그 이유를 내게 설명해야 돼."

나는 덧붙여 말했다. 몇 명은 '그 까짓것쯤이야' 자신 있는 얼굴이었고, 다른 몇 명은 어리둥절해했으며, 또 다른 몇 명은 '쳇, 그럼 그렇지!'의 표정이었다.

어쨌든 가을이 깊어갈수록 '다시' 안 하려고 애쓰는 학생들은 줄어들었다. '다시' 하는 것 보다 '다시' 안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더 어려웠을까, 아니면 '다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일까. 첫 해 가을을 그렇게 보낸 후, 두 번째 세 번째 가을에도 우는 학생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또 가을이 왔구나. 단풍이 멋지게 들 때까지만 기다리면 돼.'

2010년 여름 방학 때 칭다오 이공대에서 동아시아 건축 포럼과 한중 대학생 건축설계 워크숍이 열렸다. 내가 가르치는 국제학원 건축학과, 중국인 교수들이 가르치는 건축학원 건축학과, 한국에서 온 건축학과 학생들이 서로 섞여 팀을 만들어 설계 경기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맡은 팀 학생들에게 '다시'를 말하게 되었다. '다시'가 일상용어인 한국 학생들과, 점점 익숙해져가는 국제학원 학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오케이"라고 대답했지만, 건축학원의 중국 학생들은 무슨 소리냐며 기겁을 했다. 그러자 내가 가르쳐왔던 국제학원 학생 S가 펄쩍 뛰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설계를 하다 보면 '다시'는 기본이지. 우리는 이미 습관이 됐어. 진라오스(金老师)가 '다시' 말을 안 하면 우리는 더 불안해져. 우리를 포기했을까봐."

S는 나를 향해 '이만 하면 어떠냐'는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한 쪽 눈을 찡긋했다. 그 옆에는 또 다른 국제학원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순간, 그동안 학생들과 실랑이하며 쌓인 피로감이 싹 날아가 버렸다. 어느새 나와 그들 사이에 든든한 다리 하나가 생긴 듯했다. 나는 행복했다.


태그:#칭다오이공대, #국제학원 건축학과, #건축설계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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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좋다. 길이 없지만, 내가 걸어가면 길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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