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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저거, 차가 뒤집혀졌자녀... 택시인가? 트럭 같은데... 오OO 셔틀 같기도 하고 제OO 셔틀 같기도 하고... 사람 여럿 죽었겠네. 쯔쯔..."

지난 8월 어느 날 새벽녘, 경기도 용인까지 대리운전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셔틀버스 안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창밖을 보니, 가로수를 들이박고 뒤집힌 차가 한 대 보였습니다. 노랗고 커다란 차, 트럭인가? 그렇게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는데... 그리고 그날 대리기사협회 카페에 셔틀 사고로 숨진 동료기사 추모글이 올라왔습니다.

뉴스를 찾아보니, 새벽에 대리기사들을 싣고 가던 '대리 셔틀'이 분당에서 가로수를 들이박아 사망자와 중상자가 생겼다고 합니다. '아... 성남 새벽녘 그 장면이 대리 셔틀 사고였다니...'

달리는 시한폭탄에 올라탄 대리기사들 

지난 8월 새벽 발생한 대리운전셔틀 사고. 사망자가 차량 안에 있는지도 모른 채 방치되었습니다.
 지난 8월 새벽 발생한 대리운전셔틀 사고. 사망자가 차량 안에 있는지도 모른 채 방치되었습니다.
ⓒ O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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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방송을 찾아보니, 차 안의 부상자를 발견하지 못한 채 한 시간이 넘도록 방치되다 결국 사망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터무니없습니다. 대리기사, 아무리 미약한 존재라지만 어떻게 사고 차량에서 죽어가는지도 몰랐단 말입니까. 40대 중반의 그 대리기사는 낡은 승합차 뒷좌석에 끼어 그렇게 외롭고도 고통스럽게 죽어간 것입니다.

'아... 그때 내가 내려서 사고 현장에 갔어야 하는데... 혹,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었을 텐데...' 막연한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옵니다. 사망자 신원을 어렵게 파악해 부상자들과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함께 할 방법을 생각하고, 어떻게든 힘을 모아 볼까라는 생각에 머리를 짜내 봅니다. 저는 전국대리기사협회 회장입니다.

하지만 '대리 셔틀'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제멋대로 운영되는 불법적인 자가용 운행차량입니다. 대중교통이 멈춘 시간에 이리저리 이동해야 하는 대리기사들이 어쩔 수 없이 타고 이용하는 심야 교통수단입니다. 하지만 승합차 자체도 낡았을 뿐만 아니라 과속과 탈법 운행, 신호등 무시 등 난폭 운전이 판치는, 그야말로 달리는 시한폭탄입니다.

황금노선의 경우, 그 좁고 낡은 버스 안에 대리기사들을 꽉꽉 채우고 운행하는 게 예사입니다. '아... 이러다 사고 나면 다 개죽음이지...' 모두 다 알지만,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이놈의 대리판, 온통 엉터리다 보니, 이러다 죽으면 그뿐이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상으로도 대리 셔틀은 불법입니다. 그렇기에 사고 나면 어떠한 치료비나 보상도 받지 못합니다. 그간 몇 건의 대리 셔틀 사고가 있었습니다. 난폭운행은 사고가 나기 마련입니다. 특히나 컴컴한 새벽녘이니 더욱 그럴 수밖에요.

전국대리기사협회가 망설인 까닭은

대책 없는 대리판의 현실 속에서 오늘 밤도 대리기사들은 목숨을 내놓고 대리셔틀에 올라탑니다.
 대책 없는 대리판의 현실 속에서 오늘 밤도 대리기사들은 목숨을 내놓고 대리셔틀에 올라탑니다.
ⓒ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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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거나 다쳐도 드러내 놓고 이야기도 못합니다. 불법운행이라는 게 알려지면 피해자의 보상에 지장이 있을까 봐 쉬쉬하면서 편법으로라도 몇 푼 보상이 이루어지길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리 셔틀 교통사고는 벌써 여러 방송에 보도가 돼 버렸습니다. 사망자를 현장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시신을 방치했다는 점 때문에 더 크게 보도된 듯합니다. 걱정입니다.

망설여집니다. 억울한 동료 기사의 죽음을 추모하고, 어떻게든 피해자의 어려움을 풀어줘야 합니다. 형편없는 당국의 부실한 조사를 탓하고 대책을 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치료와 보상이 우선입니다. 혹시라도 그런 활동으로 불법운행이 부각돼 피해자 보상에 걸림돌이 될까 걱정부터 앞섭니다.

방송사의 인터뷰도 사양한 채, 그렇게 며칠 동안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망자의 피해 보상액이 몇십만 원이라니... 아, 참혹합니다. 자괴감과 모멸감에 마음이 끓어오릅니다. 대리기사의 처참한 현실이 너무 억울하고,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슬픔과 서러움이 밀려와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안 되겠습니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방도를 찾아야겠습니다.

대리기사 심야이동권 보장하라

대리운전은 이제 우리 시민들 생활에 익숙한 서비스가 되었습니다. 음주운전을 방지해 주고, 교통사고를 예방하며 시민들의 안전한 이동과 귀가를 책임지는 사회적 역할도 합니다. 하지만 대리기사들은 거칠고 험한 노동에 형편없는 수입, 업자들의 약탈 경영에 시달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대책 없이 법적·제도적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가엾게 죽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빨리 합리적 대리운전법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대리기사들의 심야 이동방도가 제대로 잡혀야 합니다. 혹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라도 고쳐서 대리셔틀의 합법화·양성화를 통한 개선책이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기다리기엔 너무 멉니다. 그리고 대리기사들에게 닥친 현실은 너무나 엄중합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81조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81조

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상으로라도 해결책이 없지는 않습니다. 해당법 곳곳에는 예외조항이 있습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81조에 따르면 "천재지변, 긴급수송, 교육 목적을 위한 운행, 그 밖에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사유에 해당되는 경우로서 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자치구의 구청장을 말한다. 이하 같다)의 허가를 받은 경우"에는 자가용 자동차를 유상운송 수단으로 쓸 수 있습니다.

각 지방자치단체장은 이를 적극 해석해 대리셔틀을 합법화 시키고 양성화해서 종합보험이나 유상운송특약보험에라도 가입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자격을 정비하고 조건과 관리 감독을 강화해서 안전운행과 보험 보장이 가능하게 해야 합니다. 대리셔틀의 실태를 조사하고 개선책을 마련해 투명한 업체 선정과 운영이 이루어지도록 정책당국은 노력해야 합니다.

'대리셔틀', 전국적으로 20만여 명에 달한다는 대리기사들을 상대로 하는 상당한 규모의 시장이 됐습니다. 필요악이라 했던가요. 달리 이동수단이 없는 현실이기에 대리기사들은 그야말로 목숨을 내놓고 시한폭탄에 올라 타 몇 푼이라도 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역에 따라 어느 곳에서는 '카바차', 혹은 '합차'니 해서 업자들이 대리기사에게 비용을 받고 심야버스를 운행합니다.

수도권에는 '오OO 셔틀'이니 '제OO 셔틀', 'OO연합'이니 해서 이미 거미줄 같은 셔틀 노선이 운행되고 있습니다. 웬만한 셔틀 운행길은 대리기사들이 넘쳐 만원버스로 달릴 만큼 돈벌이 되는 사업이 됐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리판은 항시 셔틀 사업을 노리는 업자들이 나타납니다. 몇몇 개인의 사업적 욕심에 맡겨 놓을 문제가 아닙니다. 법적 미비, 폭력조직의 개입, 제도적 정비와 대안의 부재 등 이 문제 해결은 사적 이해를 앞세운 업자에게 내맡겨두기엔 불가능한 시장이 돼버렸습니다.

행정부와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야 합니다. 공공의 이익이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고 책임 있게 해결책을 내놔야 합니다. 당국의 책임 있는 태도를 촉구합니다. 이 대리판, 참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은 시장입니다.

외롭고도 고통스럽게 숨져가신 동료 대리기사 이OO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제는 부디 고단하고 힘든 몸을 내려놓으시고 평안하고 행복한 곳에서 편히 지내소서. 부상자들의 조속한 쾌유를 빕니다.

[성명서] 대리기사 심야이동권을 보장하라
지난 8월 19일, 서울에서 성남으로 가던 대리운전 셔틀버스가 무리한 속도경쟁으로 운행 중 가로수를 들이받고 전복, 대리기사들이 사망,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나 경찰과 관계당국의 허술한 현장 조사로, 차 내의 사망자도 확인하지 못한 채 시신을 방치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졌다. 사망한 대리기사 이모씨는 그렇게 조그만 찌그러진 버스 뒷좌석 아래에 끼여, 외롭고 고통스럽게 죽어간 것이다.

대리운전을 담당하는 대리기사들은 대중교통이 끊긴 심야시간대에 달리 마땅히 이동할 수단이 없기에 사설버스인 소위 대리셔틀을 주로 타고 업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이는 관련법도 전무한 대리운전시장의 현실을 반영, 어떠한 합법적 근거도 없이 불법으로 운행되고 있는 달리는 시한폭탄인 것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상 자가용 영업이 금지된 현실 속에서 셔틀버스 업자들은 상호 경쟁을 의식, 대책없는 과속과 난폭운전, 무리한 불법 운행을 일삼고 어떠한 보험 혜택도 보장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망한 이모씨의 경우도 기껏 몇십만원의 위자료밖에 지급받지 못했다는 소식은 하루하루 고된 노동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대리기사들에게 참으로 커다란 모멸감과 불안감, 자괴감만을 안겨 줄 뿐이다.

비록 야간에 고된 노동과 형편 없는 수입, 업자들의 무도한 횡포에 시달리는 대리기사들이지만, 음주운전을 방지하고 교통사고를 예방하며 시민의 안전한 이동과 귀가를 책임지는 공익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아무런 법적, 제도적 대책도 없이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가엾게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공공의 이익이 무엇인가 염두에 두고 책임있는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사단법인 전국대리기사협회는 다음과 같이 최소한의 안전한 야간 이동권을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1. 서울시를 비롯, 각 지방정부는 심야버스를 도입, 확대하라.
2. 현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을 적극 해석, 서울시장 등 각 자치단체는 대리셔틀의 합법화와 양성화의 대책을 수립하라.
3. 위 사항과 관련, 사단법인 전국대리기사협회는 정책당국의 성의있는 소통과 논의가 있기를 촉구한다.

이미 위 사고가 발생한지 여러 날이 지났건만 피해자들의 피해보상의 어려움을 감안, 그간 성명서 하나 발표하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이는 아무런 법적 보장 없이 온갖 위험에 방치된 대리기사들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단법인 전국대리기사협회는 위 사항들이 관철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도를 통해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정책당국의 깊은 관심과 대책을 촉구한다.
2014. 8.
사단법인 전국대리기사협회

덧붙이는 글 | 김종용 기자는 사단법인 전국대리기사협회의 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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