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처음에는 가랑이 주변에 극심한 통증이 온다. 한순간 이물감이 느껴진다. 며칠 지나면 물리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과도한 압력으로 터진 미세혈관 때문에 가랑이부터 무릎 위 안쪽 허벅지까지가 온통 시퍼렇게 변한다. 덩달아 통증 부위가 넓어진다. 엉거주춤 걷는 일도 불편하다. 군대 신병 시절, 태권도 훈련 중 다리 찢기 이후 일어난 일들이다. 잠결에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셨다. 일어나 앉았다. 무슨 일이냐고 여쭈었다.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시던 어머니가 내 허벅지 부위를 가리켰다.

"다리가 왜 이러느냐? 매를 얼마나 맞았기에 이 모양이란 말이냐?"
"맞은 거 아니에요, 어머니. 태권도 훈련하다가 그런 거예요."
"그런 훈련이 어디 있다니? 이렇게 허벅지가 퍼런데···."

급기야 어머니의 울음은 대성통곡으로 변하셨다. 귀한 아들이 강원도 깊은 산골 부대로 들어갔다. '육지 속의 섬'이라는 별호가 붙어 있는 오지 고장이다. 고개를 넘고 넘어도 신병훈련소는 쉬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노부부 가는 길 내내 마음이 무거우셨단다. 신병훈련소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던 날, 아버지께서는 눈물을 보이셨다. 장성한 아들 앞에서 처음 보이는 눈물이었다.

태권도 훈련 뒤에 숨은 폭력, 어머니는 울었다

고 신 상병 친구들 "친구위해 왔습니다"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28사단 폭행 사망 희생자 윤일병과 군 사망 희생자 추모제에서 11사단에서 뇌종양으로 사망한 신성민 상병의 친구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8월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28사단 폭행 사망 희생자 윤일병과 군 사망 희생자 추모제에서 11사단에서 뇌종양으로 사망한 신성민 상병의 친구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그런 아들이 100여 일 만에 휴가를 나왔다. 늠름한 모습이 장하고 자랑스럽다. 그런데 이상하다. 밤마다 헛소리를 해댄다. 쇳소리 나는 말로 잠꼬대를 한다. '이병 정은균, 넷 알겠습니다'. 낯설고 서늘한 군대 말들이다. 잠을 깨우려고 불을 켠다. 아들이 몸부림을 친다. 안타깝다. 그때 무심코 아들의 허벅지가 눈에 들어온다. 무릎 바로 위까지 온통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다···. 대한민국 군대가 우리 어머니에게 안겨 준 애타는 눈물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태권도 훈련은 공포의 시간 그 자체였다. 다리 찢기 시간은 특히 그랬다. 다리 찢기는 품새 연습이 끝나고 훈련을 마무리할 즈음에 했다. 선임병 셋이 달려들었다. 두 사람이 내 다리를 하나씩 잡는다. 나머지 한 사람은 내 뒤에 서서 두 어깨를 잡는다. 최선임병의 신호가 떨어진다.

당기고 누르는 힘 세 개가 양쪽 다리와 어깨에 가해진다. 세 개의 힘이 가랑이에서 만난다. 가랑이와 허벅지 주변의 미세혈관에 고통스러운 압박이 가해진다. 비명은 지를 수 없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이러다 가랑이가 찢어지면 어떻게 하나. 그럴 즈음 가랑이에 모였던 힘들이 사그러진다. 선임병들은 노련하고 일사불란하다.

그렇게 합법적인(?) 방식으로 후임병들을 괴롭힐 수 있어서 그랬을까. 선임병들은 은근히 태권도 훈련 시간을 즐기는 듯했다. 거기에는 비정한 고문자들의 불법적인 고문이 합법화하는 것과 비슷한 기제가 작동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고문자들에게는 국가 안위를 지킨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들은 그것으로 자신들의 야만적인 고문을 정당화했다. 선임병들은 지휘관들에 의해 모든 게 부족한 후임병들을 단련시켜야 하는 책무가 주어졌다. 옆발차기에 젬병인 병사들에게 강제적으로 다리를 찢는 일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비명을 지르고, 그만 하라고 고함을 치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신성한 훈련에 도전하는 불경스러운 짓이었다. 모든 태권도 훈련(군대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훈련이라고 해야 옳을지 모르겠다) 뒤에는 '집합' 시간이 있었다. 원칙적으로 훈련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과 평가가 차분하게 이루어져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대개는 선임병들의 언어 폭력과 구타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리 찢기에서 비명을 지르고 고함을 친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가중 폭력을 당하곤 했다. 공포스러운 태권도 훈련의 대미를 장식하는 또 다른 합법적인 공포이자 폭력이었다.

군인 출신 대통령이 통치하던 시절도 지났는데...

"수치스럽고 안타깝다.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 8월 2일,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이 육군 28사단 포병연대 윤아무개 일병(21)이 지난 4월 선임병들의 집단폭행으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 내놓은 말이라고 한다.

나는 1992년 4월 마지막 날 육군 병장으로 군대를 마쳤다. 강원도 최전방에서 28.5개월 동안 소총수로 근무했다. 쿠데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던, 군인 출신 대통령 노태우가 집권하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23년이 흘렀다.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남는 긴 세월이다.

폭력적인 정치 군인 출신 대통령이 통치하던 시절도 지났다. 그뒤로 들어선 민간 정치인 출신 대통령이 벌써 다섯 명째다. 분명 우리는 '21세기 문명사회'를 살고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시대, 이 사회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일까.

태권도 훈련을 빙자한 다리 찢기를 다시 떠올린다. 내 피멍 든 허벅지는 구타에 의한 '폭력'이 아니라 태권도 '훈련'으로 생긴 것이다. 맞다. 동시에 그것은 훈련을 가장한 폭력이었을 뿐이다. 이 또한 그르지 않다. 훈련과 폭력적인 구타의 경계가 모호한 곳, 갖가지 방식으로 신체에 가하는 폭력이 교육과 훈계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곳, 그곳이 지금 대한민국의 군대가 아닐까.

나는 특별히 윤 일병의 사망 사건이 의무대라는 '공적 공유 공간'에서 이루어진 점에 주목한다. 군인권센터의 지적처럼 28사단 포병연대 의무대는 사병들의 복무 현장이자 생활관이다. 사적 공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시스템 전체가 공적 체제로 유지되는 곳이 군대다. 원칙적으로 군대는 사적인 공간을 절대 가질 수 없다. 그런 곳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언제나 공적인 합법성을 가장한다.

그러한 가장을 정당화하는 요소는 두 가지다. 계급 체제. 군대 내부라는 공적 공간성. 대한민국 군대의 계급 체제는 심하게 경직되어 있다. 상명하복으로 철저하게 위계 서열화해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부당한 폭력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데 용이하다. 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계급 체제야말로 군대 내 폭력 구조를 유지하는 일등공신 중 하나다.

폭력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군대 내부라는 사실은 폭력의 정당화 기제와 관련하여 좀 더 본질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태권도 훈련 막바지에 이루어진 다리 찢기는 내게 '고문'과도 같은 폭력일 뿐이었다. 하지만 선임병들에게 그것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엄연한 훈련이었다. 군대의 명령 시스템이 하달한 여러 가지 공적 복무들 중의 하나였다. 훈련 방법의 정당성에 대한 고민이나 죄의식 따위를 성찰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이유다.

'윤 일병 사망'은 괴물 같은 병장 때문이었을까?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 군 수사기록

관련사진보기


일각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을 범인들의 개인적인 인격 결함이나 고질적인 내무반 폭력의 대물림에서 찾으려는 듯한 분석을 내놓는 경우가 보인다. 사건 주동자인 이아무개 병장이 신병 때 심각한 따돌림을 당해 자대배치 한 달 만에 지금 부대로 옮긴 사실을 비중 있게 전한 <채널 A>의 보도 사례(8월 2일자 뉴스 보도)가 대표적이다.

그럴 수 있겠다. <채널 A> 류의 분석을 따라 이 병장을 '괴물'처럼 규정해 보자. 그 '괴물'이 날뛸 수 있었던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이번 사건과 관련한 군 인권센터의 긴급 현안 브리핑(7월 31일)을 보면 이 병장의 상급자라고 할 수 있는 의무대지원관 유 하사가 범인들의 구타 가혹행위를 방조했음을 지적한 대목이 나온다.

이는 단순한 방조가 아니었던 듯하다. 유 하사는 분대장인 이 병장에게 가르쳤는데도 안 되면 때려서라도 고치라고 했다. 심지어는 유 하사 본인 역시 윤 일병에게 화풀이로 폭행을 자행했다고 한다. 주적이 북한이 아니라 우리 군대 내부에 있다고 말한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자신들에 대한 폭행을 묵인하고 방조하는 상급자나 지휘관의 명령을 충심으로 따를 병사가 과연 있을까.

구타와 폭행에 대한 상급자의 묵인 내지는 방조야말로 군대 내 폭력을 정당화하는 가장 핵심적인 근거가 아닐까. 폭력은 군대 지휘관들에게 낯선 어떤 것이 아니다. 군대 시절, 대대장에게 '쪼인트를 까인' 중대장 얘기는 얘깃거리도 아니었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들 지휘관들이 적당한(?) 폭력은 쉽게 묵인하고 방조한다고 말하면 지나칠까.

윤 일병은 주범 이 병장과 공범 지 상병 등의 물리적인 폭력에 의해 사망했다. 그들의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폭력을 뒷받침한 것은 상급자의 방조 내지는 묵인이었다. 그러자 그들은 윤 일병에게 거리낌없이 폭력을 자행했다. 윤 일병을 죽인 것은 또 다른 동료 병사들이었다. 결국 군 검찰은 지난 2일 윤 일병 사건의 공소장을 상해치사에서 살인죄로 변경했다. 그리고 사인도 질식사에서 장기간 폭행 등 가혹행위로 인한 '좌멸증후군' 및 '속발성 쇼크'로 변경했다.

그러나 그 죽음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그들 모두의 상관, 나아가 군대라는 시스템 전체였다. 의무대라는, 군대 내 공적 공간에서 벌어진 폭력은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그들 스스로 폭력의 비인간성 따위를 성찰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의 폭력은 하달 받은 명령에 따른 근무의 연장이자, 공적 공유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합법적인 복무의 하나일 것이었겠기에 말이다.

국방장관에서 묻고 싶다, 군인은 시민인가 아닌가

국방위 출석한 국방장관과 육군참모총장 4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왼쪽)은 선임병의 폭행과 가혹행위로 사망한 윤 모 일병 사건에 대해 "지난 4월 초 28사단에서 선임병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윤 일병이 사망한 사건의 원인이 재판과정에서 밝혀져 국민께 많은 심려를 끼쳐 드렸으며, 진심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공식 사과했다. 오른쪽은 권오성 육군참모총장.
▲ 국방위 출석한 국방장관과 육군참모총장 8월 4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왼쪽)은 선임병의 폭행과 가혹행위로 사망한 윤 모 일병 사건에 대해 "지난 4월 초 28사단에서 선임병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윤 일병이 사망한 사건의 원인이 재판과정에서 밝혀져 국민께 많은 심려를 끼쳐 드렸으며, 진심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공식 사과했다. 오른쪽은 권오성 육군참모총장.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윤 일병 사건 이후 국방부는 대책이랍시고 장병 정신교육을 급조해 내놓았다. 내무반 침상에 2열 종대로 앉아 인권교육을 받는 28사단의 한 부대 사진은 그런 국방부 대책을 희화화하기에 충분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부동 자세로 받는 인권 교육이 장병들에게 인권의 '인(人)'자 하나라도 진지하게 성찰할 기회를 가져다 주었을까.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번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일벌백계와 병영문화 쇄신을 말했다고 한다. 일벌백계는 그렇다 치자. 병영문화 쇄신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 결과에 따라 병영을, 폭력을 정당화하는 공간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군대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실현하는 공간으로 볼 것인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 장관은 병영문화 쇄신을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

윤 일병 사건 후 병영문화 쇄신에 골몰하고 계실 한 장관에게 진심으로 전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국방장관이니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말이다. '제복 입은 시민'이 그것이다. 1952년, 당시 독일 사회민주당 국방정책 자문가인 베르만이 처음으로 사용한 개념이다.

베르만에 따르면 제복 입은 시민은 인권과 민주주의, 국제 평화와 인도주의를 지향하는 군인상을 가리킨다. 독일은 이 말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프로이센과 나치의 유산인 부정적 군인상을 청산하는 데 큰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학생은 '교복 입은 시민'이다. 그 학생이 통제와 관리의 대상이 아닌 것처럼, 군인은 전쟁의 총알받이나 권력자를 지키기 위해 명령에 따라 동원되는 사병(私兵)이 아니다. 군인을 제복 입은 시민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그런 '시민'들이 병영을 이끌 때 이 병장과 같은 '괴물'들이 조용히 지내며 순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한 국방장관에게 묻고 싶다. 대한민국 군인은 제복 입은 시민인가 아닌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