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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판으로 어우러진 작품들

리키의 '세 개의 철판'
 리키의 '세 개의 철판'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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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시마 베넷세 하우스 지역은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살아있는 공간이다. 왜냐하면 관람객들이 예술을 찾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도 이제 야외전시장에서 예술품을 찾아다닌다. 우리는 먼저 해안의 돌출된 부분(串)으로 간다. 그곳에는 예술작품이 다섯 점이나 있고 잔교(棧橋)형 부두도 있다. 그 중 조지 리키(Jeorge Ricky), 월터 드 마리아, 오다케 신로의 작품이 유명하다.

먼저 리키의 '두께가 있는 세 개의 철판'을 살펴본다. 정확히는 철판이 아니고 스텐레스판이다. 그런데 이것이 뾰족한 끝을 땅에 박고 조금은 불안하게 서 있다. 그래서 오히려 역동성이 느껴진다. 그 옆에는 오다케 신로의 난파선(Shipyard Works) 시리즈가 있다. 하나는 '잘려 나간 선수(船首)'고, 다른 하나는 '구멍 뚫린 선미(船尾)'다. 모두 배를 오브제로 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오다케 신로의 '난파선'
 오다케 신로의 '난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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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잘려 나간 선수'는 모래밭에 처박혀 있고, '구멍 뚫린 선미'는 모래밭에 정연하게 설치되어 있다. '선미'는 네모 형태의 주석판에 구멍을 숭숭 낸 것이 마치 치즈 덩어리처럼 보인다. 이들 작품은 바다, 해변, 풀, 모래와 잘 어울린다.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는 배를 통해 산업으로 죽어간 세토내해를 표현한 것 같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 절벽에는 스기모토 히로시(杉本博司)의 '노출된 시간'이있다. 이제 세토내해 예술의 섬들은 이러한 예술작품을 통해 재탄생하고 있다. 그 선두에 나오시마 섬이 있는 것이다. 예술을 통해 섬을 재생시키려는 운동은 데시마(豊島), 이누지마(犬島), 쇼도시마(小豆島)로 확대되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잠깐 잔교도 밟아본다. 그것은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개인이 만든 일종의 선착장이다. 

비치의 풀밭에 펼쳐진 니키 드 쌩 팔의 예술

 니키 드 쌩 팔의 '벤치'
 니키 드 쌩 팔의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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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보고 우리는 해안선을 따라 비치 호텔 쪽으로 발을 옮긴다. 바다 건너로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이 보인다. 해안 안쪽으로 비치 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2층 건물로 방마다 앞으로 테라스를 만들었다. 우리는 호텔 옆 광장으로 간다. 그곳에 니키 드 쌩 팔(Niki de Saint Phalle: 1930-2002) 등의 설치미술품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나는 먼저 니키의 '벤치(La Banc, 1989)'를 살펴본다. 우리에게 '신문 읽는 사람'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멋쟁이 남자가 벤치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하얀 모자를 썼는데, 얼굴은 검다. 와이셔츠는 하늘색이고, 넥타이는 화려한 점박이다. 양복 상의 역시 세모 네모 줄무늬로 상당히 조형적이다. 노란 바지에 검은 구두 역시 인상적이다. 이 사람이 앉아 있는 벤치에도 은박을 입혔다.

예술과 관람객의 교감
 예술과 관람객의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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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옆에는 강아지가 한 마리, 인간처럼 앉아 의심장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자와 잘 어울린다. 이 남자가 읽는 신문의 제호는 <우주(O KOΣMOΣ)>다. 그 내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989년 발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남자 옆에는 빈자리가 있어 누구나 앉을 수 있게 했다. 아내가 옆에 앉는다. 그림이 된다. 현대예술은 관람객과 교감할 때 그 의미와 가치가 높아진다.

그 옆으로 니키의 작품이 네 점이나 더 있다. 재질은 모두 유리섬유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 모두 색감이 뛰어나고 귀엽다. 고양이, 코끼리, 낙타, 뱀과 같은 동물들을 표현했다. 나는 그녀의 작품에서 안토니오 가우디의 영향을 읽을 수 있다. 작품의 색깔이 화려하고 재료에서 도자기 느낌이 나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센터 앞 스트라빈스키 분수에서 처음 본 이래 항상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만큼 그녀의 작품이 매력적이고 인상적이라는 얘기다.

코끼리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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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가 만든 고양이, 코끼리, 낙타의 등에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여름이라 잎이 무성하다. 겨울이 되면 줄기만 앙상하게 남을 수도 있겠다. 뱀은 서로 등을 대고 마주보는 의자의 장식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들 의자에는 두 사람이 앉아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은 '대화(La Coversation, 1991)'다. 이곳의 작품은 '벤치'를 빼고 모두 1991년작이다.

이곳에는 또한 카렐 아펠(Karel Appel)이 만든 '개구리와 고양이(1990)'가 있다. 개구리가 고양이를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색감이 니키와 비슷한 요소가 있다. 그런데 재질이 달라서 그런지 덜 인상적이다. 또 다른 작품은 파크 호텔 쪽으로 전시된 댄 그래엄(Dan Graham)의 '밀어 여닫을 수 있는 원통'이다. 이것은 예술이라기 보다는 건축이라는 생각이 든다.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이 가지는 의미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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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보고 우리는 해안을 따라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 쪽으로 이동한다. 멀리서도 호박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인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 점이 뚜렷한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다. 호박 주위에는 관람객들이 모여 사진도 찍고 만져보기도 한다. 우리도 바다 쪽으로 나 있는 방파제를 따라 노란 호박 가까이 간다. 가까이서 보니 그로테스크한 느낌이다.

또 꼭지가 무슨 손잡이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꼭지에 사연이 있다. 호박의 꼭지가 과거 어느 땐가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 후 얼마 동안 이걸 어떻게 할까 논의를 하는데, 다행히 마을 어부가 꼭지를 찾아 가지고 온 것이다. 고기잡이를 나갔다 바다에서 호박 꼭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쿠사마는 기뻐하며 어부에게 사례했다고 한다. 이제 노란 호박은 나오시마의 역사이자 아이콘이 되었다.

츠츠지소 비치 풍경
 츠츠지소 비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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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작품구경을 마친 나와 아내는 버스정류장이 있는 츠츠지소(つつじ莊)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2시에 버스가 미야노우라항으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 일찍 도착했는지 버스가 아직 안 왔다. 그래서 나는 해안 쪽으로 가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한여름이라 바다 속에 들어간 사람들도 여럿 보인다. 바닷가에 설치된 표지석에는 이곳이 아버지(あやじ)의 바다라고 적혀 있다. 왜 아버지의 바단지 그 연유를 모르겠다.

나오시마를 떠나며

혼무라 지구
 혼무라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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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후 버스가 도착해 우리는 미야노우라항으로 향한다. 버스는 혼무라를 지난다. 혼무라는 이에 프로젝트가 진행된 장소다. 그곳에는 또 나오시마초 사무소가 있다. 우리로 말하면 면사무소 정도 된다. 시간이 있으면 혼무라에서 안도 다다오 뮤지엄을 보고 싶은 데 안타깝다. 버스는 2시 5분쯤 미야노우라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한다. 그동안 자기식으로 나오시마를 즐긴 우리 일행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미술관을 중심으로 나오시마를 둘러보았다. 처음과 끝은 관광버스를 탔고, 중간에는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그리고 베넷세 하우스 뮤지엄에서 츠츠지소까지는 걸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자전거를 이용한 사람도 있고, 관광버스만 이용한 사람도 있다. 이제 15분 후면 나오시마를 떠난다. 나는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 마지막으로 나오시마 관련 자료를 챙긴다. 그리고 멀리서 빨간 호박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배에서 바라 본 빨간 호박
 배에서 바라 본 빨간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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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 오르니 천천히 배가 움직인다. 높은 곳에서 보는 빨간 호박은 다른 느낌이다. 여전히 사람들이 안과 밖에 많다. 배가 천천히 미야노우라 항구를 빠져 나간다. 산 너머 혼무라로 가는 길도 보인다. 세토내해의 잔잔한 바다로 들어온 지 한 시간쯤 후 배는 다카마츠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버스를 타고 항구를 떠나 공항으로 가면서 보니 가가와현 지사 선거벽보가 보인다. 8월 31일 선거가 치러지는데, 선거 결과 무소속의 하마다 게이죠(浜田恵造)가 재선되었다. 그의 2기 임기는 9월 5일 시작된다. 일본 현의 지사 임기는 4년이다.

2013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2013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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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나오시마 여행을 통해 나는 일본의 현대예술을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이우환의 예술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의미 있는 일이었다. 또 안도 다다오 건축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던 것도 큰 성과였다. 문화와 예술은 이렇게 보고 만지고 느낄 때 내 것이 된다. 2016년 제3회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때 나오시마와 데시마를 다시 한 번 찾아야겠다.


태그:#야외조각품, #니키 드 쌩 팔, #노란 호박, #츠츠지소, #혼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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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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