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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성심여자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딸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지난 6월 28일 마사회는 주민 합의를 무시한 채 화상 경마도박장을 기습적으로 개장했습니다. 학교 주변의 정화구역이 200미터로 규정하는 '학교보건법'을 교묘히 이용한 결과입니다.

마사회는 200미터에서 35미터를 살짝 넘겨 동일 지역 내 이동 시 재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법 조항을 이용, 작년 2013년 25층 규모의 화상 경마 도박장을 완공했습니다. 시공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시행사를 바꿔가며 주민들의 눈을 속였습니다.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이런 상황이 참으로 답답하고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상식의 틀 안에서 봐도 학교 주변과 주거 밀집 지역에 화상 경마장같은 사행성 시설이 들어서는 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교육, 주거 환경 파괴 상황을 지켜만 볼 수 없어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화상 경마 도박장 반대 시위에 참여해왔습니다.

경마 자체가 스포츠 레저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진 않습니다. 과천이나 제주 등 야외에서 실제 말이 뛰는 경마를 보며 즐길 권리를 뭐라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그 나름대로 존중받을 개인적 취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울 시내 한복판의 커다란 콘크리트 건물 안에 갇혀 스크린을 보며 돈을 거는 화상 경마를 저는 '도박'이라는 용어 외에 달리 표현할 적당한 어휘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화상경마, 도박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마사회는 줄곧 화상 경마는 레저라고 주장합니다. 더불어 유력 신문들은 그들의 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마사회를 위한 광고성 기사를 줄곧 내보내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광고에 목을 매는 언론을 마주할 때면 우리 학부모들은 실망을 넘어 좌절을 느낍니다. 사회적 유력 인사를 동원한 언론의 선전, 선동은 분명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기에 이 또한 또 하나의 야만으로 느껴집니다.

제가 생각하는 '레저'란 일상에 쫓기는 바쁜 현대사회에서 업무 활동 사이 짬을 내어 즐기는 삶의 동력을 위한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격무에 찌든 삶을 재충전하며, 더불어 서로 간 삶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하는 모든 종류의 여가 활동이 여기 해당할 것입니다.

통상 여가 활동(스포츠, 음악, 미술, 문학, 다양한 동호회 활동 등)이라 불리는 것들은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우리 삶에 신선함을 제공해줘 우리의 삶을 유익하게 해줍니다. 만일 화상 경마가 레저라면 이처럼 각자에게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해줘야 할 뿐 아니라 삶의 만족감 또한 증진해야하며 우리의 미래에 활력을 줘야 합니다.

성심여중ㆍ고 학생들이 화상경마도박장 앞에서 개장을 반대하는 피켓팅을 하고있다.
 성심여중ㆍ고 학생들이 화상경마도박장 앞에서 개장을 반대하는 피켓팅을 하고있다.
ⓒ 용산 경마도박장 입점저지 주민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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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사회가 지속적으로 도심에 개설하는 화상 경마장은 어떠합니까? 위의 조건 중 어느 것 하나 충족시켜주지 못합니다. 단지 화상 경마장 내부를 어떻게 고급화시키냐, 혹은 건물의 외관을 얼마나 그럴 듯하게 짓는가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어떤 논리를 가져다 붙인들 화상 경마장은 도박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국가 공인 사행성 도박장일 뿐입니다.

도박장이 도심 한복판에 생기면 접근성이 쉬워진 용산 구민들 중 많은 피해자들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우려에 많은 용산 주민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용산 화상 경마장 추방 집회에 참가하는 우리는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동원된 게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무언가로부터 동기를 부여받았다면 그것은 주민들 각자 가슴 속에 자리한 양심의 요동일 겁니다. 불볕 더위와 싸워가며 우리는 목소리를 높이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 화상 경마장 추방 대책위를 이끌어가는 대표단과 대책위 식구들을 보면 존경과 미안함이 교차합니다.

끝으로, 매주 시위에 참석하느라 주말이면 가족을 온전히 돌보지 못하는 아내에게 "이길 수 있다"며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사랑하는 남편과 엄마의 손이 가장 절실한 청소년기를 꿋꿋이 버텨주고 있는 딸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합니다.


태그:#용산, #화상경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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