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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외식을 합니다. 맛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도 맛이 그저 그럴 때가 있습니다. 맛과 영양보다는 화려한 장식과 찬란한 꾸밈이 먼저 한 상 차려지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처음 몇 숟갈 뜰 땐 자극적인 맛들이 침샘을 자극해 맛있는 것 같은데 먹으면 먹을수록 뭔가 모자라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처음 먹을 때는 별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깊게 우러나는 감칠맛으로 다시 찾아 먹고 싶은 음식도 있습니다.

흔치 않은 경우지만 먹을 때도 맛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또 먹고 싶어질 만큼 맛도 깊고, 나중에 알고 보니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보양식 같은 완벽한 음식도 있습니다. 말과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듣거나 읽고 있는 순간에는 재밌고, 말이 끝나거나 다 읽을 즈음엔 감동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마음의 지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8월 14일부터 18일, 4박 5일 일정으로 방한을 마친지 며칠이 흘렀습니다. 떠들썩하지 않게 다녀간 교황의 방한이지만 교황이 여기저기 남기고 간 행적이나 말씀은 아직도 커다란 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교황이 들고 다니는 검은색 가방, 뭐가 들어있을까

베르골리오는 교황이 되고 예수회원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첫 질문은 "호르헤 베르고글리오는 누구입니까"였다. 이 질문을 받고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순간 긴장이 흘렀다고 한다. 잠시 후 교황은 담담하게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교황 문장에 쓰인 "자비로이(miserando) 선택하시니"를 설명했다. 그는 이 말을 "불쌍히 여기시어(misericordiando) 선택하시니"로 옮기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우리 곁의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20쪽

<우리 곁의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지은이 프란치스코 교황 / 옮긴이 주원준 / 펴낸곳 궁리출판/2014년 8월 5일 / 값 2만 3000원)
 <우리 곁의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지은이 프란치스코 교황 / 옮긴이 주원준 / 펴낸곳 궁리출판/2014년 8월 5일 / 값 2만 3000원)
ⓒ 궁리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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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마디의 말이나 백 줄의 글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걸 이야기하고, 훨씬 더 감동적일 때가 있습니다. 책 <우리 곁의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는 교황의 어록을 담은 사진집입니다. 한 장, 한 장의 사진마다 교황의 어록이 캡션처럼 들어가 있습니다. 교황이 강론과 대화, 인터뷰와 연설에서 남긴 어록들은 우리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커다란 발자국처럼 느껴지는 말씀도 있고, 아픈 상처를 다독여주듯 조심스레 다가오는 말씀도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고 어록으로 읽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박한 인간의 전형입니다. 군림하지 않으며 실천하는 지도자. 가식적이지 않아서 친근감까지 느껴지게 하는 우리 이웃의 커다란 어른의 모습입니다.

"왜 늘 검은 가방을 직접 드십니까? 그리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핵폭탄 버튼이 들어 있지는 않아요!(웃음)...안에 무엇이 있냐고요? 면도기, 성무일도, 수첩, 읽을 책이죠...저는 여행할 때 늘 가방을 들고 다녀요. 그게 정상이죠...우리는 정상적인 것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7월 28일 기자회견, 이탈리아행 귀국 비행기 안에서
-<우리 곁의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54쪽

온화함과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보듬어 안으려는 무한한 사랑이 사진과 글에서 뭉툭 뭉툭 느껴집니다. 말과 글로만 하는 게 아니라 몸소 무릎 꿇어 자세를 낮추고, 몸소 손 내밀어 먼저 안아주며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부패와 타락엔 '돌직구' 과감히 던져

부패한 정치, 타락한 교회들을 향한 그의 말은 비수보다 더 날카롭습니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지적하며 힐난합니다. 침묵하지 말고 행동할 것을 주장합니다. 때로는 선동의 말처럼 들릴 정도로 강력하게 말씀하시지만 이는 곧 용기를 돋우기 위한 격려이며, 바른길로 가라는 타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치는 너무 더러워졌죠.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게 왜 더러워졌죠? 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적 영성으로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죠?" 2013년 7월 7일 이탈리아와 알바니아 예수회 학교 학생들과의 대화 -<우리 곁의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101쪽

"교회 안에는 줄을 타고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차라리 북쪽으로 가서 진짜 등산을 하세요. 그것이 더 건강하죠! 하지만 줄타기를 하려고 교회에 오지는 마세요! 예수님은 권력을 추구하는 이런 줄타기 꾼을 꾸짖으십니다." 2014년 5월 5일 강론
-<우리 곁의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211쪽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드디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지난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를 하던 교황은 김영오씨 등 세월호 유족을 보자 일부러 자동차를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씨는 교황에게 “세월호를 잊지말아달라”며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교황은 그를 위로한 뒤 김씨의 편지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 프란치스코 교황과 김영오씨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드디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지난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를 하던 교황은 김영오씨 등 세월호 유족을 보자 일부러 자동차를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씨는 교황에게 “세월호를 잊지말아달라”며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교황은 그를 위로한 뒤 김씨의 편지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 교황방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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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여 장의 사진으로 읽을 수 있는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은 눈빛과 스스로의 마음을 엄숙하게 할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페이지를 가득 메우고 있는 몇몇 사진들은 아이맥스 영화관 스크린에 비춰진 영상만큼이나 시야를 배부르게 합니다.

가난은 그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다. 베르고글리오가 최초로 교황명으로 채택한 스란치스코는 대표적인 '빈자의 성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하자마자 "나에게 복음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라고 했고 "하느님은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가난한 사람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교황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곁의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16쪽

덧붙이는 글 | <우리 곁의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지은이 프란치스코 교황 / 옮긴이 주원준 / 펴낸곳 궁리출판/2014년 8월 5일 / 값 2만 3000원)



파파 프란치스코 - 우리 곁의 교황

프란치스코 글, 주원준 엮음, 궁리(2014)


태그:#우리 곁의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교황 , #주원준, #궁리풀판,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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