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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라는 왕조가 당대 민중들에겐 무엇이었을까? 과연 그렇게까지 목숨걸고 지켜야만 했던 왕조였던 것인가?
 조선이라는 왕조가 당대 민중들에겐 무엇이었을까? 과연 그렇게까지 목숨걸고 지켜야만 했던 왕조였던 것인가?
ⓒ 빅스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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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 1500만 명 관객 돌파. 하지만 난 아직 명량을 보지 못했으니 그 1500만 명 중에 나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나중에 심심하면 볼 날이야 있겠지만 '남들 다 보는 거니 나도 어서 봐야지'하며 부리나케 영화관으로 달려가고 싶지는 않다.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서 안 본 건 아니다. 굳이 영화 마니아라 내세우지 않아도 현대인 중에 영화 싫어하는 사람이야 얼마나 되랴? 필자는 그냥 '영웅 이순신'이 조금 불편하다. 전 국민이 존경해 마지않은 이순신이 불편하다는 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사실이다.

그 어색함은 이순신 개인의 맥락이 아니라 우리 역사 맥락 속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비롯된다. 그 당시 과연 조선은 꼭 지켜내야만 했던 나라였던가? 아니 지켜낼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였던가? 왜군을 물리친 공으로 이순신은 역사적 위인이 됐지만, 민중의 삶은 여전히 질곡에서 허우적대지 않았던가?

자고로 국가의 존재 이유는 뭔가? 아무리 계급사회였던들 한 나라가 구성원들에게 큰 부를 제공해주지는 못해도 외부의 위험으로부터는 지켜내야 하는 건 아니였던가? 애초에 국가가 생겨난 이유 중 하나는 외부 집단의 침략과 위협으로부터 자기 집단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다.

외부의 침입을 막기에 개인의 힘으로는 약하니까 공동체를 형성하고 위계를 만들어 집단을 강건하게 했다. 물론 나라가 백성들에게 밥을 배부르게 먹여주면 더 바랄 것이야 없다만, 조선이라는 나라는 백성들에게 밥은 고사하고, 외부의 위험으로부터도 지켜내지 못했다.

막을 수도 있는 전쟁을 유발시키고(병자호란), 또 전쟁이 발발해도 그것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함으로써(임진왜란) 민중을 집단적 고통의 질곡으로 빠뜨린 나라다. 상업의 발달을 억제해 민중들을 빈곤으로 시달리게 하고, 노예 세습이 당대에 그쳤던 중국과 일본에 비해 노비신분을 대대로 세습시키는 노비세전법이있던 나라였다. 솔직히 필자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후손이라는 게 별로 자랑스럽지는 않다.

잠시만 짚고 지나가자. 나는 지금 우리 민족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의 문제점을 얘기하는 거다. 역사학계에서는 우리나라가 조선 이전만 해도 명실상부한 동아시아 선진국이라고 일컫을 수 있다고 했다. 이미 2000년 전, 가야의 국왕은 인도 야유타국의 공주를 모후로 맞을 정도로 한반도는 개방적이고 국제화된 지역이였다. 동아시아를 제 집 안방 드나들듯 하며 무역을 하던 장보고라는 걸출한 해양왕이 활동했던 무대이기도 했다.

고려 때는 그 이름이 아라비아반도에까지 전해져 코리아라는 명칭까지 받았다. 그렇게 뛰어났던 우리 민족을 끊임없는 전란에 노출시키고,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추락시킨 것은 누가 뭐래도 조선이다. 조선 중기 이후, 즉 성리학적 지배질서가 자리 잡기 시작한 이후 우리나라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조선 후기 이미 동아시아의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조선의 지배층은 상업을 억제하고, 서양의 학문과 기술은 오랑캐의 것이라며 거부하고 오로지 주자학이라는 현실에 쓸모없는 학문으로 나라를 통치했다. 그렇게 하니 나라는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지배층은 그런 허점을 자폐적인 성리학적 질서의 공고함으로 가리며 정권 유지에만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공공연히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조선은 임진왜란 때나 병자호란 때 멸망했어야 했다."

그때 조선이 멸망하고 새로운 국가가 들어섰어야 했다. 적어도 조선과는 다른 지배이데오르기를 지닌 나라가.

조선왕조 500년. 세계사적으로 드물게 장수한 나라였다고 자랑하고는 하는데, 그게 자랑할 일인가 싶다. 그 500년은 부국강병과 지혜로 나라를 지켜낸 시간이 아니라, 지독한 빈곤과 갖은 전란 속에서 민중들의 고통과 죽음을 담보로 지켜낸 시간이다. 조선의 지배층은 민중들의 삶보다는 자신들의 안위와 정권 유지에 더 관심이 많았다. 요새 세월호 사건으로 자주 입에 오르는 말을 빗대자면 '그게 국가였던가?'

중국 대륙에서는 수많은 국가가 부침을 거듭했다. 청나라 296년. 명나라 276년. 그 유명한 당나라만 해도 수명이 289년이었다. 이전 왕조가 멸망했던 시기는 나라의 기운이 다하기 시작한 때다. 국초의 의지를 상실하고 지배층 내부로부터 부패의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한 때다. 민족의 기운이 완전히 소진되기 전에 멸망함으로써 분위기를 새롭게 일신할 수 있는 천신의 기회가 다음 왕조에서는 주어졌던 것이다. 아직 힘이 있었기에 이전 왕조의 문제점을 빠르게 보완하고 고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청나라와 명나라라는 세계적 강국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납치해간 조선의 도공들을 잘 대접하고 활용해 기술 강국으로 발전해 나갔다. 조선에서는 천대받던 도공들이 일본에서는 도자기의 신(도조 이삼평)으로까지 추앙받으며 대대로 대접받고 살았다. 그 결과 이미 에도 막부시대 때 수도인 에도는 100만 명이 거주하는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해나가고 있었다.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일본의 도자기는 세계적인 인기 상품으로 유럽에서 히트를 쳤다. 일본의 목판화는 유럽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알려진 바대로 고흐는 일본 유키우에(일본의 다색 목판화)의 열렬한 찬양자였다. 

그때 조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조선의 지배층들은 임진왜란 이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오히려 혼란된 민심을 지배 질서의 강화로 수습하려고만 했다. 즉 성리학적 충효 윤리의 강화다. 그러다가 병자호란의 전란을 맞이하며 민중들을 또다시 고통과 죽음으로 밀어 넣었다. 영정조 시대 때 잠시 정신을 차리는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세계적인 역사발전 방향과 일치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왕권 강화를 통한 국가 질서의 안정 정도였다. ​그나마 그것도 세도정치 이후 다 힘을 잃었다.

이웃 일본이 이미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을 때 조선은 세계 누구도 모르던 '신기한 은자의 나라'였다. 일부 민족주의자들이 은자의 나라라며 아름다운 선비 정신을 지닌 나라로 조선을 미화했지만, 주체를 객관화시켜 보자. '은자의 나라'라는 건 누가 뭐래도 낙후함을 의미했다. ​개화기 때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질척대는 가난과 낙후함 속에서 허우적대는 민족'이었다.

"중국과 조선, 일본을 비교해보면, 개항에 앞서 일본이 이미 조선보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300년 이상 경제적으로 앞선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 <못난 조선> 문소영.

영웅 이순신만 바라볼게 아니라 조선 문제점을 반면교사로 삼자

물론 이순신은 세계적으로 훌륭했던 전쟁 영웅이다. 이순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 위인이다. 하지만 절체정명의 나라 위기 시기에 애국적 고뇌와 천재적인 전략으로 민중의 역량을 모아 나라를 지켜낸 이순신을, 지배층들은 배반했다.

조선의 지배층들은 이순신과 조선 민중을 배반함으로써 나라를 더 큰 위험 속으로 빠뜨렸다. 임진왜란을 어렵게 막아낸 민중들의 삶은 현실과 괴리된 성리학적 지배질서의 강화와 병자호란, 빈곤이라는 이전보다 더 깊은 어둠속으로 잠겼다.

그래서 생각이 들었다. 국가의 역량을 모아 왜군을 물리치지 못하고 조선이 멸망한 후 일정 시기의 혼란(일본과의 전쟁 또는 내전)을 거쳐 새로운 왕조가 들어섰더라면 한반도의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물론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한다. ​만약 조선이 멸망한 후 더 무능한 왕조가 들어섰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가정이야말로 우리 역사를 비하하는 것이 아닐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 민족은 조선 전기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국제적으로 소통하는 개방성과 앞선 기술력으로 무장한 동아시아의 강국이었다. 타고난 잠재적 토대가 하루아침에 어디 가랴? ​조선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이야말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에 와서 '임진왜란 때 조선은 망했어야 했다'라는 가정을 하는 이유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의 역사가 지금 시대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 나라 위정자들이 눈과 입을 막으며 민중들의 삶의 개선보다 정권 유지에만 급급하면 국가는 쇠락의 길을 걷는 다는 것이 명약관화하다. 조선 후기의 시대상이 지금의 시대에게 보내는 엄중한 경고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영화 <명량>을 보곤 '우리 역사에 저런 위인이 있었지'하며 잠시 심리적인 힐링을 취하고 끝낼 게 아니라 저렇게 힘들게 조상이 지킨 나라를 왜 또 빼앗길 수밖에 없었는지도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 지점에서 어쩌면 지금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참고자료
<못난 조선> 윤소영 (전략과문화, 2010)
<명량,어설픈 애국에 호소하다> 정문순 (경남도민일보, 8월12일)
<나의 문화유산 답가시 일본 교토편> 유홍준
<서양인 교사 윌리엄 길모어 서울을 걷다> 윌리엄 길모어 (살림, 2009)​


태그:#명량, #조선시대, #임진왜란, #최민식,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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