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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동아시아는 전통적인 한미, 한일 동맹관계가 북중러 삼각관계와 대립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미국과 중국이 G2로 쟁패하는 가운데 일본과 북한이 접근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여기에 한국은 중국과 경제협력관계를 심화시키고 있는 복잡하기만 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에 코리아연구원에서는 <오마이뉴스>와 공동으로 격동하는 동아시아 상황을 진단하고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히기 위해서 6번에 걸쳐서 기획특집을 진행합니다. 독자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힐러리 전 미국 국무장관은 자신의 회고록(Hard Choice)에서 아시아중시정책(Pivot to Asia)이 아시아의 미래가치를 중시한 자신의 직관에 의한 것이라며, 회고록의 상당부분을 아시아와 중국에 할당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아시아중시정책은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중국의 부상(China Rise)으로 인한 아시아의 불균형(imbalance)을 수정하기 위한 재균형(rebalance)이라는 측면이다. 다른  한편으로 동남아시아의 전략적 지위상승에 따른 미국의 국가이익의 장기적투사(deployment)라는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다.

아시아 중시, 중국발인가 일본발인가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월 3일 오후 청와대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월 3일 오후 청와대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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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국의 아시아중시정책은 유럽이나 중동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같은 전통적 우선순위를 지닌 미국 대외정책의 지정학적 선호에 일대 혼란을 가져왔다. 그저 레토릭일뿐이라는 비난이  비등해졌다.

지난 연말 미국 연방정부의 자동예산 삭감조치인 시퀘스트 사태로 APEC 회담에 오마바가 불참하자 이 같은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미국의 아시아중시정책에 의거해 중국과의 영해분쟁에 나서려던 동남아의 몇 개국들은 오바마의 불참으로 닭 쫓던 개라는 비아냥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필리핀은 중국과 화해할 수 없는 길에 들어섰고 결국 20년 전 내몰았던 미군기지를 수빅만에 다시 불러들이는 협정을 체결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미국의 아시아회귀정책은 일본 우익의 신전략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 외에 다른 역할을 한 것이 별로 없다. 일본 우익들은 중국에 대한 견제를 국익의 최우선적 과제로 삼아 21세기 국가개조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일본을 국빈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센카쿠열도(조어도)에 대한 미일방위조약 5조의 적용을 공인해 줌으로써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뒤이어 아베가 일본헌법 9조 재해석에 의한 집단자위권 공식화라는 수순을 밟게 됨에 따라 미국의 재균형 정책이 중국 때문인지 일본을 돕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지금 워싱턴의 동아태전문가들 사이에는 부시 행정부 시절의 크리스토프 힐(C. Hill) 동아태차관보의 정책행보를 재앙이라고 보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 그 표면적인 이유는 6자회담이 실패했다는데에서 연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힐 차관보가 중국과 북한과의 협상을 중심으로 동아태 전략을 짰기 때문에 그 결과로 전형적인 일본 무시(Japan Passing) 현상에 일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론이다. 한국에서는 그가 새 정부에서도 계속 역할하기를 기대했던 여론이 있었다. 하지만 힐러리 국무장관의 팀은 커트 캠벨(Curt Campbell) 전 동아태차관보 같이 전형적인 일본중시정책에 입각해 아시아정책을 입안하는 성향이었다. 힐이 힐러리팀에  남아있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바람이었던 것이다. 

대북정책: 전략적 인내에 담긴 워싱턴관료들의 오기

부시 행정부 시절 입안된 대북정책 원칙 중의 하나는 노 레드라인(No Red Line) 정책이었다. 미국이 레드라인을 제시하는 순간 북한이 그것을 의도적으로 침범할 것으로 보았다. 그 결과는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과 충돌이냐 협상이냐 라는 양자택일식 선택의 상황에 놓이게 강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시 정부는 이것이 바로 북한의 전술 즉 벼랑 끝 전술이라는 판단 하에서 '노 레드라인 정책'을 수립했다. 즉 북한이 어떤 도발로 공세를 펴든 간에 미국은 레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음으로 해서 북한과 원하지 않는 협상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1:1 협상을 피하는 대신 그 대안으로 다자체제를 형성하고 특히 중국의 대북영향력을 활용해 북한을 관리하는(outsourcing) 정책이 선택 되었다. 6자회담의 초기버전은 이처럼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유용한 대북압박공간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6자회담 틀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함에 따라 무너져 내리게 된다. 노 레드라인 정책이 무너지고 결국 양자협상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시작된 크리스토프 힐 차관보의 활약(?)은 미국이 애초에 원했던 6자 회담의 프레임을 벗어나기 시작했고 6자회담은 대북압박공간이라기보다는 사실상의 다자체제로 전환해가기 시작했다. 미국과 일본의 안보통들이 좋아할 리 만무했다. 

오바마 행정부팀이 입안한 '전략적 인내'(실제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태평양정책을 담당하는 팀들은 이 용어가 정식대북정책이라는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상 부시 행정부 시절의 노 레드라인 정책의 진화로 볼 수밖에 없다.

자기 임기 내 두 차례 핵실험과 수백발의 미사일 발사가 있었음에도 정녕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오바마팀이야 말로 진정 '노 레드라인 정책'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비아냥이 미국 의회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7월 말 제네바 합의 20주년 관련해 벌어진 하원청문회에서 의원들이 전략적 인내를 비판하자 대북협상대사인 데이비스(G. Davies)가 '전략적 비인내'(strategic Impatience)라고 답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국무부의 대니얼 러셀(D. Russel) 동아태차관보와 백악관의 사일러(S. Seiler) 한반도 담당관 등이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대북정책은 부시 행정부 시절의 마이클 그린(M. Green)이나 빅터 차(V. Cha) 등과 같은 6자회담 주역들의 시각과 노선을 그대로 견지하고 있다. 그들로부터 전수된 학습효과는 북한정권에 대한 강압외교와 군사적 억지 그리고 일방주의적 제재라는 삼박자에 투철하다.

이들은 중국과의 재균형 정책 추진 때문에 발생하는 미-중 긴장관계에서는 6자회담이라는 다자주의 틀이 더 이상 대북압박에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6자회담은 더 이상 유용한 대북 프레임이 되지 못한다. 그들이 6자회담에선 듯 나서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워싱턴에 '북한은 없다?'

부시 행정부 초기 북한과 협상(negotiation)은 없고 단지 접촉(talk)만 있을 뿐이라는 원칙은 지금도 백악관의 중요한 논리이다. 전략적 인내에 대한 비판 앞에 북한과 대화를 거부하지 않는다는(Not no talk) 방어논리는 비판을 피해가기에는 그럴 듯하나 해법과는 멀어보인다. 

오바마 정부의 비확산담당특보를 지낸 아이혼(R. Einhorn)은 최근 <내셔널 인터레스트>(National Interest)지에 북한과 탐색적 대화(Exploratory Discussion)가 필요하다는 글을 발표하였다. 백악관, 국무부 대북담당팀들은 아인혼의 제안을 애써 무시하고 있지만, 워싱턴 코리아워쳐들 사이에서는 진중하기로 소문난 아인혼의 글에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미국에 북한은 없다'고들 하지만(중앙일보 8월 12일 칼럼) 이에 대해서는 양론이 있다.

국무부와 백악관 관료들만 바라보면, 그리고 그들이 전권을 쥐고 있는 한 '미국에 북한은 없'지만 아인혼의 제안처럼 협상의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필요성은 관료의 장벽(gatekeeper)을 넘어 직접 케리 국무장관에게 전달되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중동협상에 집착하던 케리 장관이 중간선거 이후 대북협상에서 외교적 성과를 내기 위한 제스처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문제를 더 이상 무시하기에는 상황이 만만치 않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이어, 시리아-이라크 사태 그리고 아프칸 상황은 오바마에 역대 최약체 대통령이라는 인식을 주었다. 여기에 북한의 4차 핵실험마저 더해진다면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상상도 하기 싫은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전통 관료들의 입장에서야 대통령의 외교적 치적보다는 자신들의 행동관행이나 업무상 형성된 승부욕(anti-north korea rivalry)이 중심이겠지만, 고위급 정치인의 경우에는 이와 다른 정책동기가 있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임명 초기 동아태차관보직에 대북강경파인(중앙일보 8월 12일자동일칼럼) 러셀 현 동아태차관보 대신에 다른 인물을 선호하던 케리가 러셀 차관보를 어떻게 설득하여 대북협상을 직접 관할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오랫동안 의회에서 활동한 케리 장관을 돕는 라인들이 곳곳에서 움직이는 징후도 없지는 않으나 이들이 움직이기에는 계기나 환경이 중요할 것이다. 물론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아베의 아이러니

아베 총리의 대북협상은 이 점에서 백악관-국무부 강경파들의 뒤통수를 친 일대사건이었다. 지난 10년 북한에 대해 누구보다 강경했던 일본과 호흡을 맞추어 오던 이들 관료집단들로서는 아베 총리의 이 같은 행보 때문에 자신들의 대북강경책이 곤혹스러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동북아의 새로운 지정학은 미국에 그리 나쁜 게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이 중국을 견인하여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중국과의 접촉을 늘리자 중국이 이에 호응하여 한국을 한미일 동맹에서 이완하고자 나서고 있다. 대북압박의 명분을 갖고 진행되는 긴밀한 한-중협력상황에 대해 미국이 내놓고 반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을 통해 북한을 관리하는 외주전략과 한-미-중  3자협력에 의한 대북정책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들의 동맹국인 일본이 정상국가화의 과정에서 북한과의 평화적 관계를 모색한다면, 따라서 일본 외주론은 미국에 또 다른 카드로 검토할 만하다. 즉 한-미-일 3자협력에 의한 대북정책의 모색이다.

물론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정당화하며 동시에 한일관계를 강화하려는 미국에 북한카드가 의외로 유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이 화학적 촉매제가 되어야 한다. 즉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적극 주도하고 나선다면 그리고 이를 아베가 측면지원 한다면, 오바마 대통령도 과거처럼 한국정부나 일본정부에 속도조절론을 내세울 일은 없다는 일각의 평가는 이 점에서 음미해 볼 만하다.

아베의 평양행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남북회담이 이루어진다면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대북협상을 마다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9월 유엔총회에서의 한일정상회담을 독려하는 미국으로서는 이런 뜻밖의 카드를 검토해 볼 만할지도 모른다. 이 같은 지정학적 전략은 중간선거에서 상원의 과반수를 공화당이 가지느냐 민주당이 수성하느냐 하는 선거공학과는 결이 다른 문제이다.

한국 보수의 길은?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4월 25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4월 25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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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부상(Assertive China)과 일본의 정상국가화 그리고 미국의 재균형 정책이라는 전략적 환경 하에서 한반도는 중국 경제의 낙수 효과와 미국이 보장하는 안보 그리고 서구적 민주주의라는 가치 사이에서 고민(alignment)하고 있다.

물론 전통적으로 미국적 가치에 입각한 민주주의론을 선택해 온 한국 보수의 방향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기대치의 한계도 분명하다. 문제는 이 같은 전략적 방향을 새로운 환경 하에서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는가 하는 외교적 방법론에 있다.

중국 공산당과 일본 보수가 펼쳐가는 신지정학의 험로에서 한국 보수의 민족주의가 어떤 지혜로운 선택을 할 것인가? 나약한 외교로 전후 가장 위험스러운(dangerous) 세계를 만들어 놓았다고, 외교는 없고 국내 정책만 있으며 그래서 1920년 이래 최초의 고립주의(isolationist) 정책에 의거한 대통령이라고 비판받는, 심지어는 티파티 세력으로부터 사회주의자라고 비난받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한국이 어떤 동맹정책을 전개해 가는가? 한국호의 미래가 담긴 질문이다.

과거 어느 시기보다도 한국의 선택이 미국을 끌어가기에 좋은 상황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에 한국 그리고 남북관계 나아가 한반도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점이다.

워싱턴은 한국이 더 이상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아니라, 지구적(Going global) 역할을 하는 돌고래가 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상국가가 된 일본과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에 대한 기대는 더 높다. 일본과의 역사 논쟁(memory wars)을 구획화 시켜 정치 안보상의 국익 계산과는 다른 차원에서 다루라고 한다(compartmentalization of priority). 그리고 이런 국익을 위해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라고 한다.

그러나 역사는 구획화되고 감금될 수 있는 과거가 아니다. 역사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이다. 그래서 과거를 배우고 현재를 재단하고 바로 그 역사에 기반해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다. 일본과의 치열한 역사논쟁이야말로 일본을 제대로 정상국가화 시켜주는 길이고 그것이 동북아가 평화롭게 굴기하는 길이다.

그것을 미국이 이해하게 하는 과정에서 남북협력의 길을 제시하고 한일 협력의 길로 나아갈 때, 거기에 한국이 주도하는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아시아 중시정책, #아시아 재균형, #6자회담, #북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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