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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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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애매모호'다. 어떨 때에는 고도로 압축되고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다가도 어떨 때는 정말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 그래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기도 한 이른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그렇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압박과 대화'인데 무엇이 우선이고 목적인지가 애매모호하다. 그래서인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 정책을 논할 때 외교부의 정책 순위와 통일부의 정책 순위가 다르다고 하고,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투 트랙'이라고 일축한다.

정책 기조야 조금 애매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모습이 현실에 그대로 나타나는 데 있다.

'통일 대박'부터 통일준비위까지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은 느닷없이 '통일 대박'을 이야기하면서 통일에 대한 환상을 던지더니 봄에는 독일 드레스덴에서 '낮은 수준의 교류협력'(인도적 지원 등)을 하자는 대북 제안을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통일준비위를 구성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천안함 사건 이후 이른바 5·24 조치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대북교류협력을 전면 중단 시킨 것은 우리 정부이다. 진정으로 대화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5·24 조치부터 해제하는 게 순서 아닐까. 그런 내용 없이 교류 협력이라니, 심지어 '대박'이라니. 그래도 대화를 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통일과 교류 협력을 이야기하는 한편으로 남북 긴장을 고조 시키는 태도를 꾸준히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이 그렇게도 격렬하게 반발해마지 않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강행하면서 전쟁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 것은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니 새삼 더 말이 필요 없다.

최근 한민구 신임 국방부장관은 가는 곳마다 "도발 원점, 지원 세력, 지휘 세력까지 단호하게 응징"한다느니, "적 도발세력을 조기에 탐지하고 가용전력을 신속히 투입해 공중에서 원천 무력화 할 것",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체제의 생존까지도 각오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안 그래도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을 앞두고 살벌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판국에 기름을 붓는 셈이다. 이런 자극이 어떻게 '신뢰'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투 트랙 그리고 대화와 압박. 이 둘이 어떻게 버무려지는지,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통일을 하자는 것인지 싸우자는 것인지 궁금하다.

지금 이 순간도 '투 트랙'은 계속된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 나온 '고위급 접촉' 제안

8월 교황 방한 일정이 끝나는 시점에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이 시작될 예정이다. 특히 올해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에서 북핵 위협에 대비한 '맞춤형 억제전략'을 처음 적용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북의 대응 수위도 매우 높아졌다.

북한의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는 "군사 연습을 강행하면 청와대와 미국 백악관이 북한 '화력타격수단'의 주요 목표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고, 북 국방위 대변인 담화는 "이제 남은 것은 최후의 선택뿐"이라며 여느 때보다 높은 경고를 하고 있다.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국-미국 정부는 훈련을 예정대로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와중에 우리 정부가 지난 11일 북에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뭘까. 이 팽팽한 긴장과 대화 속에 감춰진 본질은 무엇일까.

한미동맹이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하는 정부가 미국의 대북정책 테두리를 벗어났을 리는 없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두고 '내 방식과 유사'하다고 했다고 하지 않나. 결국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란 미국의 '전략적 인내'와 닮은 꼴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전략적 인내'라 함은 봉쇄하고 군비경쟁을 하면서 시간을 끌면 상대가 제풀에 지쳐 쓰러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좀 선명해지는 것 같다. 대북 강경 자세와 대화 제의라는 투 트랙의 본질은 '언젠가 망할 북한을 기대하며 시간 끌기를 하겠다'는 것 아닐까. 이런 측면에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도 얼추 이해가 된다. 쫄딱 망하면 기업 인수하듯 날로 먹으면 된다는 뜻일 수 있으니까.

이번 고위급 접촉 제의도 회담의 성과보다 적절한 평화와 지루한 '밀당'(밀고 당기기)에 더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회담 제의가 교황 방한과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에 대한 북의 격렬한 반발이 나오고 있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도 그런 의심을 키운다. 그래서일까, 주 의제로 제안한 추석 이산가족 상봉만으론 부족했는지 "5·24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재개 문제도 논의해볼 수 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이래서야 '한반도'에 '신뢰'가 쌓이겠는가?

우선 5·24 조치부터 해제하라

북한 개성공단 통행제한 조치가 이뤄졌던 지난해 4월 7일 일반 차량이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를 오가고 있는 모습.
▲ 긴장 속 통일대교 북한 개성공단 통행제한 조치가 이뤄졌던 지난해 4월 7일 일반 차량이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를 오가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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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가 다가오고 있다. 광복절이 마냥 기쁘지 않은 것은 온전한 해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광복 69주년은 분단 69주년이기도 하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8·15에 맞춰 통일을 생각하고 연중 가장 큰 통일 행사를 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통령이 해마다 8·15 경축사에서 중요한 대북 제안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마침 교황 방한 중에 맞는 이번 8·15가 남북 사이의 진정한 '화해와 신뢰'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길 다시 한 번 기대한다.

서로를 자극하는 전쟁 연습을 중단하고 남북 사이의 교류협력을 막고 있는 5·24 조치를 해제하는 '통 큰 양보'부터 시작해야 한다. 모든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처럼 달려 있는 '북핵 폐기'를 대화의 목적으로 돌려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시작될 것이 아닌가?

기왕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면 민족대단결의 정신에 맞게 보수인사들만의 조직이 아닌 그동안 통일을 위해 거리에서 뛰어다닌 민간통일단체나 진보인사들도 포괄하는 조직이 되게 해야 한다. 그때서야 정부가 말하는 '신뢰'를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재원님은 코리아통일교육문화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북한, #통일, #5·24, #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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