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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30 국회의원 재보선 때문에 한동안 서울엘 가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우리 고장의 진정한 명예를 위해 힘껏 선거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패배를 하고 말았습니다. 상심과 시름을 안고 며칠 동안 칩거를 하다가 지난주 월요일(4일) 오랜만에 출타를 했습니다. 서울 광화문으로 가서 세월호 유족들의 단식농성장 안에 몇 시간 동안 머물며 절절히 기도했습니다.

수많은 사제, 수도자, 신자들과 함께 기도를 하니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차례차례 병원으로 실려 가고 혼자 남아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단원고생 고 김유민 양의 아빠 김영오씨의 수척한 모습을 보며 마음아파 하면서도 수많은 이들의 동조 농성기도가 그에게 힘이 되리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김영오씨는 오늘(13일) 현재 31일째 단식을 하고 있고, 몸무게가 48Kg로 줄었으며 움직일 때는 지팡이를 사용해야 하는 상태랍니다.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의 거리미사가 11일 저녁에도 대한문에서 봉헌되었다.
▲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대한문 미사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의 거리미사가 11일 저녁에도 대한문에서 봉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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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대한문 앞으로 이동해서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의 거리미사에 참례하면서 영성체 후에는 제대 앞에 나아가 '가톨릭행동'의 공동대표 자격으로 자유발언을 했습니다. 사회를 맡은 이원영 실행위원이 오랜만에 오신 분이라며 나를 호명한 덕에 마이크를 잡게 되었지요.

나는 방금 전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한 분 연세 드신 수녀님으로부터 "형제님 시들을 감명 깊게 읽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번쩍 하고 불이 켜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마이크를 잡았을 때 인사말을 하고 나서 다음 주 월요일 미사에 다시 올 때는 시를 또 한 편 지어 가지고 와 낭송을 하기로 자진해서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 이틀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그 수녀님 덕분에 또 한 편의 시를 짓게 된 것이지요. 세월호에 관한 가슴 아픈 시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확실하게 스스로 존재증명을 할 수 있는 시였습니다.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의 거리미사가 11일 저녁에도 대한문에서 봉헌되었다.
▲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대한문 미사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의 거리미사가 11일 저녁에도 대한문에서 봉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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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시를 가지고 11일 오후 다시 서울엘 갔고, 우선 광화문 단식농성장으로 갔습니다. 29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김영오씨는 손님들과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고, 일주일째 단식 중인 가수 김장훈씨는 누워서 잠을 자고 있더군요. 일주일 전인 지난 월요일(4일) 오후 나는 동조단식을 시작하는 김장훈씨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취재 카메라들이 그에게로 집중되었고, 기자들이 다투어 그를 인터뷰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김장훈씨와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고마움과 존경심으로 가슴이 뻑뻑해지더군요. 우리에게 저런 연예인, 높은 정신을 소유한 대중음악인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지….

미사 중 영성체 직전 사제, 수도자, 신자들 모두 두 줄의 원을 만들고 안쪽 줄이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두 사람씩 차례로 서로의 손바닥에 십자가를 그려주고 가볍게 포옹도 하면서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다.
▲ 평화인사 미사 중 영성체 직전 사제, 수도자, 신자들 모두 두 줄의 원을 만들고 안쪽 줄이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두 사람씩 차례로 서로의 손바닥에 십자가를 그려주고 가볍게 포옹도 하면서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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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에도 천주교 텐트 구석에 앉아서 기도를 하며 근처 양편 하늘에 우뚝 솟아서 위용을 자랑하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건물을 자주 보곤 했습니다. 바로 코앞에서 세월호 유족들이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단식을 이어가고 있고, 유명 대중음악인을 비롯한 수많은 시민들이 동조 농성을 하고 있건만, 메이저 언론이라는 족벌언론들은 무시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그것도 보통 배짱은 아닐 터였습니다. 하지만 한 줄의 보도도 하지 않은 그 무관심의 죄, 언론의 정도를 벗어난 그 죄과들은 켜켜이 쌓여 언젠가는 저들의 무덤이 되리라는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나는 6시쯤 여러 신부님들, 수녀님들과 함께 정동의 프란치스코 회관으로 이동했고, 회관 대성당에서 7시에 거행된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이 땅의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매주 둘째 주 월요일마다 거행되는 미사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때 약속했던 쌍용차 문제 해결은 여전히 꿩 구워 먹은 소식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약칭 '쌍차 미사'라고도 불리는 그 미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잰걸음으로 대한문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거리미사'에 참례했습니다. 간이 제대 앞을 장식하고 있는 '세월호 진상규명이 복음의 기쁨입니다'라는 글귀에 다시금 벅찬 감격을 맛보았습니다.

미사 중 영성체 직전 사제, 수도자. 신자들 모두 두 줄의 원을 만들고 안쪽 줄이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두 사람씩 차례로 서로의 손바닥에 십자가를 그려주고 가볍게 포옹도 하면서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다.
▲ 평화인사 미사 중 영성체 직전 사제, 수도자. 신자들 모두 두 줄의 원을 만들고 안쪽 줄이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두 사람씩 차례로 서로의 손바닥에 십자가를 그려주고 가볍게 포옹도 하면서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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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체 후에 나는 다시 제대 앞으로 나아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지난주 월요일 저녁 스스로 공표했던 시낭송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을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광화문 단식농성장에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건물을 보며 느꼈던 소회를 잠시 피력했습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 문인임에도 동아일보와 담을 쌓고 사는 상황을 설명했기도 했지요.

그리고 나는 또 한 편의 세월호 관련 시를 낭송했습니다.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이기도 했고, 수많은 형제자매들과 공유하는 시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세월호 안에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시를 지었습니다.

내가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족들, 잠을 못 이루며 눈물을 흘렸던 수많은 겨레들 가운데서 문인 명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시 한 줄 써서 가없는 슬픔과 분노와 기원들에 동참하는 것뿐임을 다시금 되새겼습니다. 글 한 줄이라도 써서 작게나마 몸과 마음으로 동참하고 연대하는 것, 천주교 신자로서 진실과 정의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나는 시를 두 부 프린트해서 가져갔는데 미사 후 한 분 신부님과 한 분 대학교수님의 요청으로 그분들께 시 원고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시를 이 지면에 올립니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가만히 있지 않기 위해 내가 세 번째 지은 시를 11일 저녁 대한문 미사 중에 낭송했다.
▲ 시닝송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가만히 있지 않기 위해 내가 세 번째 지은 시를 11일 저녁 대한문 미사 중에 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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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는 눈물의 항해를 계속한다

세상을 깨어나게 한 우리 아들딸들아
너희들을 태우고 갔던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는
오늘도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세월호는 너희들을 선실에 가둔 채 바닷물 속으로 사라졌지만
너희들의 엄마 아빠와
대한민국의 무수한 생령들을 태운 세월호는
검푸른 바다, 거친 물살을 헤치며
오늘도 힘겨운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험살궂은 비바람 속에서도
찌는 듯한 폭염 속에서도 
만난고초와 싸우며 나아가는 세월호의 항해 목적은
단 하나,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
너희들을 바닷물 속으로 끌고 들어갔던
눈에 보이지 않는 검은 고리의 정체를
기필코 찾아내고 밝혀내기 위해서다
그래야 너희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고
온 겨레의 눈물을 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너희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또 다른 세월호가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00일이 지나고 또 보름이 이우는 오늘도
짙은 해무를 헤치며 나아가는 세월호에는
선실마다 눈물방울이 가득하구나
갑판 가득 지속적으로 피어나는 한숨과 비탄, 처절한 외침!
진실을 향한 뜨겁고도 절절한 기원들이
세월호의 키를 단단히 움켜잡고 있다
때로는 슬픔도 힘이 되듯이
수많은 겨레들이 함께 나누는 슬픔과 분노가
세월호의 거센 동력이 되고 있다

4월의 개나리 같았던 우리 아들딸들아
너희들의 빈자리를 메우듯이
엄마 아빠들과 수많은 겨레가 동승한 세월호는
오늘도 갖가지 기괴한 암초들과 부딪치고
모진 역류들과 맞싸우며 나아간다
너희들의 죽음을 교통사고라 부르고
너희들의 엄마 아빠를 노숙인이라 칭하고
대통령의 눈물만 닦아주자는 저 파렴치한 언설들
자신이 바로 개조의 대상인 줄도 모른 채
국가개조를 부르짖다가 슬며시 꼬리를 내린 대통령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시각
어디론가 잠적했던 대통령의 일곱 시간 미스터리
그것을 감추기 위해 국가안보를 끌어대는 궤변
세월호 안에서 수거되어 올라온 국정원의 노트북
세월호 근처에 떠올랐던 정체불명의 물체
유족의 등에 칼을 꽂는 야당의 비겁한 타협
그런 흑막 속의 암초들 때문에
그 암초들을 보호하려는 역류들 때문에
오늘도 세월호는 사투의 항해를 계속한다

5월의 신록 같고 머루 알 같았던 우리 아들딸들아
너희들을 태운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는
깊은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았지만
너희들의 엄마 아빠와 수많은 생령들을 태운 또 다른 세월호는
오늘도 눈물의 항진을 계속한다
광화문과 대한문에서
서울광장과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
안산과 진도에서
광주와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전국 방방곡곡 생명이 흐르는 거리들에서
진실과 양심
정의와 평화
인간회복과 민주회복을 향한
뜨거운 절규를 멈추지 않는다

결코 잊지 않고, 가만히 있지 않기 위하여!
너희들의 환생과
대한민국의 부활을 위하여!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가만히 있지 않기 위해 내가 세 번째 지은 시를 11일 저녁 대한문 미사 중에 낭송했다.
▲ 시낭송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가만히 있지 않기 위해 내가 세 번째 지은 시를 11일 저녁 대한문 미사 중에 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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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세월호 특별법, #광화문 단식농성, #대한문 미사,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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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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