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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입수한 '28사단 가혹행위 사망 사건' 가해자들에 대한 '1~3차' 공판기록을 보면 군 당국은 처음부터 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전말을 모두 목격한 핵심 증인에 대한 출석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군 검찰관은 주범 이아무개 병장의 살해 의도에 대해 살펴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1차수사를 맡은 헌병도 가혹한 폭행정황에 대한 진술을 확보하고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극 규명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군 당국이 이 사건을 '상해치사로 적당히 덮고 넘기려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1차 수사를 담당했던 28사단 헌병대는 윤아무개 일병이 사망한 지난 4월 7일 입실환자 김아무개 일병을 조사했다. 천식 환자였던 김 일병은 윤 일병이 의무대로 전입오기 전부터 입원해 있어, 윤 일병에게 가해졌던 구타와 가혹행위를 대부분 목격했던 핵심 증인이다. 그는 또 윤 일병을 죽음에 이르게 한 4월 6일의 폭행과정을 바로 곁에서 지켜봤다.

김 일병은 헌병대 조사에서 "윤 일병이 주먹과 발로 하루 평균 90대 이상을 폭행당했다", "(윤 일병이) 오줌을 싸며 뒤로 쓰러지는데도 '꾀병을 부린다'며 다시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헌병대는 또 본부포대장 김아무개 대위(진급 예정)으로부터도 "윤 일병의 입에 음식물을 가득 물게 한 상태로 폭행했다는 얘기를 병사로부터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헌병 수사관의 수사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전날 밤부터 수차례 이어진 폭행으로 쓰러진 윤 일병이 소변을 옷에 지리며 쓰러져서 정신이 혼미한 모습을 보이는데도 가해자가 계속해서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면, 당연히 살인의 의도가 있었는지를 규명해야 했지만, 더 이상 수사를 하지 않은 것이다.

쓰러지기 하루 전 폭력 가혹해졌지만, 그냥 넘긴 재판부

최근 '28사단 가혹행위 사망 사건'으로 군 사망사고 문제 여론이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 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들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호소문을 전달하기 위해 영내 진입을 시도하자 닫힌 정문 뒤로 병사들이 곤봉을 들고 대기하고 있다.
▲ 진압곤봉 들고 대기 중인 군 병력 최근 '28사단 가혹행위 사망 사건'으로 군 사망사고 문제 여론이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 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들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호소문을 전달하기 위해 영내 진입을 시도하자 닫힌 정문 뒤로 병사들이 곤봉을 들고 대기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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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병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군 검찰도 마찬가지였다. 군 검찰관은 주범인 이 병장을 조사하면서 '그렇게 가혹하게 폭행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냐'는 질문을 했지만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입증하려는 적극적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 병장의 폭행 강도가 윤 일병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 하루 전인 5일부터 한층 더 가혹해졌다는 점도 재판부가 눈여겨보았어야 할 대목이다.

'너는 내가 한 이야기 중 어떤 부분이 가장 감명 깊었느냐'는 이 병장의 질문에 윤 일병이 '아버지가 조폭이라는 이야기가 감명 깊었다'고 대답하자 미친듯이 폭행을 했다는 진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윤 일병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던 당일에도 이 병장이 '네가 왜 우리 아버지 깡패 이야기를 꺼냈느냐'며 젓가락을 집어던지고 얼굴과 배를 폭행, 엎드려 뻗쳐를 시킨 상태에서 복부 등을 폭행한 것으로 진술했기 때문이다.

범행직후 이 병장의 언행도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재판부는 이를 제대로 살펴보려 하지 않았다. 4월 6일, 의식을 잃은 윤 일병이 실려 간 연천의료원 주차장에서 이 병장이 다른 공범들을 불러 모은 후 "잘 될 거야, 힘내자"라고 말했던 사실은 '죽지는 않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라는 의미가 아니라 '죽을 거야, 그러면 우리는 은폐할 수 있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병장이 범행을 추궁하는 간부에게 "만두 하나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진술했던 사실이나, '윤 일병이 냉동식품을 먹다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거짓말로 일관하던 가해자들이 '윤 일병이 곧 정신을 차릴 것 같다'는 수사관의 유도심문에 폭행사실을 시인했다는 점은 이런 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진실 규명은 재판에서도 제대로 다루어 지지 않았다.

지난 5월 23일과 6월 27일, 7월 10일 세 차례 공판이 열렸지만 법정에 출석한 증인은 단 2명에 불과했다. 이마저 부검의사와 가혹행위 주동자인 이 병장이 휴가를 가 있는 동안 잠시 운전병으로 와 있던 윤아무개 상병으로, 두 명 다 가혹행위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증인들이다.

결국 28사단 보통군사법원은 결과적으로 헌병대와 군 검찰이 내놓은 '상해치사' 선에서 재판을 진행했다. 핵심증인인 김 일병이 이미 질환으로 '조기전역'을 했다는 이유로 공판에 부르려는 적극적인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군 검찰은 1차 공판에서 김 일병을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그는 2차 공판에 나타나지 않았다.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 군 수사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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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검찰은 김 일병에 대해 '김 일병의 부모가 출석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증인신청을 다시 하지 않았고, 재판부 역시 구인장 발부 등의 적극적 노력을 하지 않았다. 만약 재판부가 수사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봤다면 핵심증인인 김 일병을 반드시 출석시켜 신문한 뒤 군 검찰에 상해치사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해 공소장 변경 가능성을 타진할 수도 있었지만 재판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에서 재판부는 8월 5일에 모든 심리를 마무리하는 결심공판을 하려 했다.

오히려 가해병사 변호사가 "이 병장 살인죄 기소해야"

결국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한 가해병사 중 한 명의 변호인이 주범 이 병장에게는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까지 불러왔다.

이 사건 공판 기록에 따르면, 가해병사 중 한 명의 변호를 맡고 있는 한 변호사는 5월 23일 1차 공판에서 "살인의 고의가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피고인 이OO가(주모자 이아무개 병장) 자신의 아버지가 조폭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뒤, 그 이전과 폭행의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며 "그 이전에는 생명과는 지장이 없는 허벅지 같은 부분에 폭행을 한 반면, 그 이후에는 가슴과 복부에 폭행이 집중된 것이 수사기록에 나와 있고, 사건이 발생한 날 행동을 보면 피고인 이아무개가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지 않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군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윤 일병 사망 이틀 전인 4월 5일 오후 9시 45분께 그동안 자신이 했던 이야기 중 감명 깊었던 대목을 묻는 이 병장에게 윤 일병이 "(이 병장) 아버지가 조폭이라는 이야기"라고 답하자, 이 병장은 윤 일병을 미친 듯이 폭행하고 잠을 재우지 말라고 했다.

매우 이례적으로 군 검찰이 아니라 가해자쪽 변호사가, 검찰이 기소한 '상해치사죄'가 아니라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태그:#윤 일병, #28사단 가혹행위, #군대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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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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