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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최대의 사찰 황룡사가 사라진 자리에 당간지주만 남아 석양 빛을 받으며 쓸쓸히 서 있다.
 동양 최대의 사찰 황룡사가 사라진 자리에 당간지주만 남아 석양 빛을 받으며 쓸쓸히 서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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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라는 용어가 있다. 세 나라가 팽팽하게 다투면서 영토를 분할 점령하고 있던 시대를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위(조조), 촉(유비), 오(손권)의 시대,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주몽), 백제(온조), 신라(박혁겨세) 때가 삼국 시대이다.

우리나라의 연도별 삼국 시대는 과연 언제부터 언제까지일까? 세 나라가 한반도 일원을 분할한 채 존재했던 시기는 언제일까? 대답은 간단하지가 않다. '원삼국 시대'라는 용어 자체부터가 그렇다.

원삼국 시대는 부여 등 무수한 나라들이 존재했던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에는 아직 고구려, 백제, 신라가 특별히 강하지 않아 부여, 동예, 옥저 등 상당한 존재감을 가진 나라들은 물론 이서국(청도), 조문국(의성), 압독국(경산), 사벌국(상주) 등 소국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따라서 그 무렵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도 구려국, 십제국, 계림국 등등 이런저런 국명들을 쓰는 형편이었다(참고로, 신라가 공식 국명이 된 때는 지증왕 재위 4년째인 303년이다).

보물 201호 (남산) 부처바위. 황룡사의 원형으로 보이는 탑 그림이 새겨져 있다.
 보물 201호 (남산) 부처바위. 황룡사의 원형으로 보이는 탑 그림이 새겨져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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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는 기원전 57년,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었다. 이는 고구려가 삼국 중 가장 먼저 세워졌다는 학계의 통설과 전혀 다르지만, 어쨌든 세 나라는 건국 이후 차차 주변 소국들을 정복했고, 결국 원삼국 시대는 종료된다. 말하자면 '원삼국 시대는 삼국 시대인가, 아닌가?' 그것이 궁금하다.

연도별로 한반도 일원에 존재했던 나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준)

원삼국 시대- 562년 : 발해, 동예, 옥저,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연맹 등
562년- 660년 : 신라, 고구려, 백제
660년- 668년 : 신라, 고구려
668년- 698년 : 신라
698년- 892년 : 신라, 발해
892년- 901년 : 신라, 발해, 후백제
901년- 918년 : 신라, 발해, 후백제, 후고구려
918년- 926년 : 신라, 발해, 후백제, 고려
926년- 935년 : 신라, 후백제, 고려
935년- 936년 : 후백제, 고려

이렇게 보면 실제의 삼국 시대는 562년(대가야 멸망)부터 660년(백제 멸망) 사이의 98년에 불과하다. 562년 이전까지는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연맹의 4국 체제였다. 660년부터 668년(고구려 멸망)까지 8년은 고구려와 신라 2개국이, 668년부터 698년 발해 건국까지 30년 동안은 통일신라 1개국이 존재했다.

698년부터 892년과 901년의 후백제 및 후고구려 개국까지는 신라와 발해의 남북국 시대였고, 후삼국 시작부터 926년(발해 멸망)까지는 4국 체제였다. 후삼국 시대도 사실은 926년부터 936년(고려 재통일)까지 잠깐이었다.

국보 31호 첨성대
 국보 31호 첨성대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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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보다 275년 더 존속했던 신라

신라는 의자왕이 중국으로 끌려간 이후에도 275년이나 더 오래 존재했다. 이제 신라가 백제보다 훨씬 많은 문화유산을 남긴 까닭이 분명해진다. 사실 뛰어난 문화재 중 통일 이전의 신라 작품은 첨성대와 분황사탑 정도가 있을 뿐이다.

삼국 통일 이전의 문화재 중 가장 안타깝게 사라진 것은 553년(진흥왕 14)부터 643년(선덕여왕 12)까지 90년에 걸쳐 지은 동양 최대의 사찰 황룡사이다. 1238년 몽고의 침략 때 불에 타 사라졌다. 그래도 남산 불곡의 부처바위에 황룡사 9층 목탑의 원형으로 보이는 탑 그림이 새겨져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또 불곡 옆 부처골에는 석굴암의 원형으로 여겨지는 할매부처(보물 198호)도 남아 있다.

덧붙이는 글 | 황룡사터 답사는 분황사 앞에 주차를 한 다음, 오른쪽으로 들어서면서 바로 시작됩니다. 천천히 걸어서 넓고 넓은 분황사터를 걸으며 외세의 침략 때문에 우리나라가 입은 피해를 생각해보는 것도 역사여행의 참뜻을 살리는 한 가지 방법일 것입니다. '부처바위'와 '할매부처'는 최치원 유적인 상서장(경주시 인왕동 274) 앞에서 바로 우회전을 하여 개울 따라 이어지는 좁은 도로로 들어서면 남산 동쪽 비탈 속에 그 둘이 있다는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각각 산 입구에 주차한 후 평이한 등산로를 따라 들어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태그:#삼국, #황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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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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