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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본청 앞. 세월호 유가족들의 출입을 막고 있는 경찰들.
 국회본청 앞. 세월호 유가족들의 출입을 막고 있는 경찰들.
ⓒ 권순범군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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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의 국회 출입을 막고 있다
 경찰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의 국회 출입을 막고 있다
ⓒ 권순범군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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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현장입니다. 8일 오전 10시 30분경 전화를 받았습니다. 국회가 유가족과 일반인을 구분하여 유가족에 대해서는 국회 진입을 원천봉쇄하였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어제(7일) 여야 원내대표 협상이 이루어진 후 분노한 많은 유가족 분들이 대책회의를 위해 안산으로 돌아갔습니다. 일부만 남아 국회 본청 앞에서 밤을 지새웠기 때문에 몇 분 안 계시는 유가족 분들이 걱정되어서 김밥 몇 줄을 사서 국회로 향했습니다.

사실 어제 세월호 특별법 관련 국회 여야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는 달리 어제부터 국회는 분위기가 한층 더 어두워졌습니다. 우선 유가족의 편이 되어주었던 야당이 유가족과 의논이 없는 상태에서 원내대표들끼리 협상을 타결했다는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의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대신 대통령이 임명하는 상설특검법에 따른 특검 실시에 합의한 것은 가장 우선순위인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보다 더 국회로 빨리 발걸음을 향했던 이유는 어젯밤 유가족 분들끼리 자포자기 반, 분노 반에서 나오는 생의 마감에 대한 말씀들이 차마 글로 적기 두려울 정도로 잔인하고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단원고 2학년 6반 고 김동영군 아버지
 단원고 2학년 6반 고 김동영군 아버지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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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은 더 해. 사건 나고 20일 정도 지나고 수습된 시신들은 아빠만 확인했어요. 차마 보여줄 수가 없어서. 어떤 아이들은 온 몸을 붕대로 감아서 보여줬다더라고. 형체라도 알아보라고... 그리고 건드리지도 못하게 했어. 푹 들어가니까. 내 새끼 그렇게 죽은 모습을 보고 나면 많은 아빠들의 정신은 정말 잔인하고 무섭다고 보면 돼. 아이 생각날 때마다 마지막 모습이 떠오르는데 어떻게 견딜 수 있어."

단원고 2학년 6반 김동영군 아버지는 4월 16일부터 안산에서 6년 가량 운영했던 10평 남짓 김밥집도 문을 닫았습니다.

단원고 2학년 10반 고 김송희양 삼촌이 목에 걸고 있는 송희양 이름표
 단원고 2학년 10반 고 김송희양 삼촌이 목에 걸고 있는 송희양 이름표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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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래요. 저만 봤어요. 송희가 항상 하던 목걸이가 아니었으면 아마 알아보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송희가 115사이즈가 넘는 점퍼와 이상한 꽃무늬 긴바지를 입고 나왔어요. 그게 무슨 뜻인지 아세요? 안에서 살아있었다는 거예요. 추우니까 아무거나 꺼내서 입고 있었던 거예요.

송희가 아버지 없이 자랐거든요. 게다가 엄마는 불치병으로 고생하고 있어요. 그래도 예쁘게 커서 나중에 모델시키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송희는 고생하는 엄마한테 항상 미안해서 커서 돈을 많이 벌거라고 했었어요. 송희가요.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이 수학여행 간다고 보내준 몇십만 원에서 겨우 4만 원 들고 간 아이예요. 짧아진 교복 다시 사달라는 말을 못해서 그 돈으로 교복사겠다고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10반 김송희양 삼촌 옆에는 아직 차마 아이 사진도 꺼내 볼 수가 없다는 7반 민석이 아버지도 계셨습니다.

국회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
 국회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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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경. 국회에 일반인은 들어가기 쉬웠습니다. 심지어 견학을 온 학생들과 산책을 나온 일반 시민들도 많았습니다. 국회본청 앞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유가족분들이 많았습니다. 대략 30여명. 소란스런 틈을 타 몰래 들어왔거나 새 옷을 사 입고 일반인인 것처럼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유가족이 일반인과 구분되는 종류가 되었냐며 자조섞인 웃음을 짓습니다. 오후 4시경에는 국회에서 철수해 달라는 국회의장의 서한이 유가족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바로 국회본청과 의원회관에는 유가족뿐만 아니라 세월호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출입이 불허되었습니다. 이제 화장실을 쓸 수도,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도 없습니다.

"정말요. 왜 자꾸 의사자니 특례입학이니 저희는 버리고 싶은 것들을 자꾸 말하면서 저희 유가족들을 귀찮은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지 모르겠어요. 누나 둘과 홀어머니와 살면서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학원도 못 보내주는데 학교 끝나면 친구들하고 놀지도 않고 집에 와서 집안일을 다 해주던 아이예요. 그런 저희 집의 기둥을 잃었어요. 저희는요. 끝이 없는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에요. 언제까지 얼마나 달려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아요.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뭔지 아세요? 그냥 하염없이 동그란 원을 달리라고 한다는 거죠."

단원고 2학년 6반 권순범군의 누나는 이제 스물다섯. 한참 아르바이트를 하고 구직을 할 나이인데 아직도 시계는 4월 16일에 멈춰있다고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 국회 농성장에 펼쳐져 있는 우산
 세월호 유가족 국회 농성장에 펼쳐져 있는 우산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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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아직도 국회 밖에는 버스 다섯 대에 유가족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노란 리본을 접거나, 단식을 하거나, 서명을 받거나, 국회나 광화문에서 노숙을 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가족이 왜. 어떻게 해서 죽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기 위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안에 있던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염없이 가만히 있는 것 이외에는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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