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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이 땅에서 부모로 산다는 것은 참 고단한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금까지 뭐하나 속 시원히 밝혀지는 것은 없고,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습니다. 28사단 가혹행위 사망 사건을 보니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듯합니다.

이제야 솔직히 얘기하지만 가능하다면 이 나라를 뜨고 싶었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대형 사고를 넘어서 '왜?'라는 질문만 가득한 참사로 커지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그간 아이를 키우며 느껴왔던 불안감이 폭발했다고나 할까요? 이제는 어린이집도, 학교도, 수학여행도, 군대도 모두 믿다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참사가 일어나도 진상조사조차 속 시원히 이뤄지지 않는 현실 앞에선 그저 비통할 뿐이었습니다.

최근 더해가는 세월호 유가족을 향한 폭언과 왜곡된 발언들을 접하니 이대로 마음 편히 여름휴가를 즐길 수 없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이제껏 관련 집회나 문화제에 참여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때마침 세월호 가족과 함께 하는 국민휴가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유가족들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광화문 광장을 기점으로 자유롭게 서울 도심 속 문화 공간 등을 둘러보며 지내는 휴가였습니다. 부담 없이 함께 하기로 시작했는데, 끝나고 나니 어느 여름휴가보다 의미 있고 값진 시간이 되었습니다.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 광화문 국민 휴가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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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첫 날, 마음을 열다

마음을 다잡고 온 휴가였지만, 막상 광화문 광장에 들어서는 일은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늘 보던 이순신 동상과 분수대였건만, 천막도, 그 아래 모인 사람들도 무척 낯설었습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 한참을 머뭇거리다, 일단 진행요원인 듯 보이는 청년에게 물어 참가 접수도 하고, 대략적인 설명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국민휴가는 8월 1일부터 9일까지 언제든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8월 1일부터 3일간의 일정으로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단식이 계속되고 있는 광장에서의 하루 일정은 오전 10시 인사 나누기, 12시 전후 점심 홍보활동, 오후 2시 몸자보 산책, 오후 5시 유가족과 만남 후 저녁 홍보활동 등으로 짜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정에 꼭 얽매일 필요 없이 각자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된다고 합니다. 근처 대형서점이나 문화공간을 둘러보거나, 서울 도심 여행을 해도 좋다는 얘기입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하고 잠시 고민하다 분위기도 익힐 겸, 단식장에서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이다 보니 살짝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어 여기저기 기웃거려 봅니다.

이순신 동상 아래쪽 천막에는 단식 19일째를 맞은 단원고 2학년 10반 유민이 아버지 김영오씨가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함께 17일째 단식 중인 도철 스님도 계셨습니다. 단식을 해도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특별법 제정은커녕 갈수록 의문만 쌓여갈 뿐이니, 이 땅에서 부모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고단한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 광화문 국민 휴가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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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 광화문 국민 휴가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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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쪽에는 '광화문에 그리다' 행사가 이틀째 진행 중이었습니다. 천막 뒤쪽에 그림을 그려 넣고, 천막마다 간판도 달고, 테이블이 있는 카페를 만드는 등 이곳 단식장을 함께 꾸미고 가꾸고 있었습니다. 뜻을 함께하는 예술가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했습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지칠 줄 모르고 이어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적잖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단식장의 앞쪽과 뒤쪽에서는 늦은 밤까지 세월호 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진행됐습니다. 한쪽에는 단원고 아이들이 바다 속에서 보내온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건널목을 건너던 많은 시민들이 멈춰 서서 영상을 보고 서명에 참여했습니다.

안쪽 ​'행동하는 방' 천막에서는 동시·동화 작가와 함께 세월호 노란 엽서를 만드는 활동이 이어졌습니다. 오가던 시민들의 참여로 광장 주변이 금세 노란 엽서로 물들었습니다.

반대편 분수대 옆 서명 장소에서는 교사들이 노란 배지 만들기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배지에 넣을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어떠한 참사도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사회에 대한 요구가 더없이 절실해집니다. 교사들은 서명 참가자들에게 직접 만든 손뜨개 리본도 나눠주었습니다.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 광화문 국민 휴가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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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 광화문 국민 휴가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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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과 마음을 나누다

오후 2시, 몸자보 산책 시간에는 단원고 희생자 고 박예슬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촌갤러리에 다녀왔습니다. 유가족들과 함께 하루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시민 몇 분과 함께 나섰습니다. 경찰의 허가를 얻은 대신 몸자보가 아니라 우산을 들고 정해진 길을 따라 다녀와야 했습니다.

노란 우산에는 안전한 나라를 꿈꾸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내용의 글귀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단원고 2학년 5반 선생님과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우산도 있었는데, 보고 있자니 또다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한 달여 만에 다시 찾은 박예슬 전시회는 전시 첫날과 다름없이 많은 시민이 눈시울을 붉히며 관람하고 있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시민들이 적은 염원의 쪽지들이 전시장 입구를 가득 메웠다는 정도입니다. 이토록 많은 이들이 마음 아파하며,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바라고 있다는 것에 다시금 놀라게 됩니다.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 광화문 국민 휴가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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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 광화문 국민 휴가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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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장에서는 매일 오후 5시, 유가족과 만남의 시간을 가집니다. 지난 7월 14일,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관과 광화문에서 단식을 시작했던 15명의 세월호 유가족들은 하나둘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이제 국회에 있는 유경근씨와 이곳 광화문 광장의 김영오씨 두 분만 남았다고 합니다.

남은 ​단원고 희생자 가족들은 반별로 돌아가며 국회와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날 광화문 광장에는 2학년 8반 부모님들이 함께하고 계셨는데, 저는 이승민군의 어머니와 주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의 학생증을 목에 걸고 있던 승민이 어머니의 모습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습니다.

영어를 무척 잘했던 아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꿈이었던 아들, 혼자인 엄마를 생각하며 청소와 빨래도 도와주던 아들, 배려심 많고 착한 아들... 승민이를 그리워하며 어머니가 가슴에 묻은 사연 하나하나가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그토록 다정하면서도 의젓했던 아들은 사고 당일 통화를 하면서도 사고에 대해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엄마는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답니다.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느라 억척스럽게 살아왔던 지난 시간은 승민이가 있어서 아픈 줄도 모르고 지냈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합니다. 마음의 병이 몸까지 무너지게 하는 모양이라며 쓸쓸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 제 가슴은 다시 한 번 미어집니다. 때로는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었을 하나뿐인 아들... 그 의미를 알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 광화문 국민 휴가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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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광화문의 특별한 휴가 '제대로' 보내기

​휴가 둘째 날부터는 '제대로' 특별한 휴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계속 유가족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도 컸지만, 국민휴가를 제대로 보내고 알리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남은 이틀 동안 광화문 광장을 기점으로 서울 도심 여행을 다녀보기로 했습니다. 크게 광장 주변, 서울시청, 정동길, 서촌 일대, 북촌 일대 등을 둘러보는 코스로 나누고 하루 일정을 짰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인사동, 부암동, 남산 등도 둘러봐도 좋겠지만 주어진 이틀 동안 광화문 주변만 돌기에도 벅찬 일정이었습니다.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 광화문 국민 휴가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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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여행은 일단 매일 오전 광화문 광장 단식장에 도착하여 참가 접수를 한 후 시작합니다. 매일 오후 5시 다시 단식장으로 돌아와 유가족을 만나고 음악회 등 저녁 행사에 참여한 다음 집으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단식장에서 함께 밤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잠은 집에서 자는 것으로 했습니다.

지난 7일, 여야가 진상조사특별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지 않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상설특검법에 따라 특검을 하겠다는 내용에 합의했다고 합니다. 그 소식에 단식 중이던 유민이 아버님이 실신하셨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어쩌면 지금은, 유가족 뜻대로 특별법을 반드시 성사 시키겠다 목소리를 높이던 야당 국회의원보다 그간 침묵했던 시민들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더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나서준 유가족들에게 제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처럼, 우리 모두가 각자의 마음을 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성역 없는 조사를 통해 안전한 사회의 초석을 다지는 일, 이건 유가족의 이기심이 아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일이니까요.

이번 주말에는 광화문 일대 나들이를 계획해보면 어떨까요? 단식장에서 모든 시간을 보내지 않고도, 단지 광장에 들러 서명을 하고, 나눔 카페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아이스티와 커피를 받아 마시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이왕이면 아주 특별한 휴가 마지막 날인 오는 9일 오후 7시, 국민휴가 문화제에 함께하면 더 좋겠네요. 국민휴가 참여 안내와 이후 일정은 세월호 참사 국민 대책회의 홈페이지 (http://sewolho416.org/)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ewolho416), 트위터 (@sewolho416)를 참고하면 됩니다.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그 마지막 날을 함께합시다.
▲ 광화문 국민 휴가 마지막 날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 그 마지막 날을 함께합시다.
ⓒ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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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축약본은 서울시 온라인 뉴스 <서울톡톡>과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세월호 특별법, #세월호 유가족 단식,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국민휴가,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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